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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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묻는다.
타인의 고통이 참혹하게 표현된 사진들을 보면 그 상황을 이해, 나아가 공감할 수 있는가.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들의 고통의 실마리는 잡고 더듬어 가다보면 그 끝에 당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고통스런 상황, 특히 전쟁의 고통과 참화를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잔혹함을 공감해보면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교육받은 계급'인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믿어왔고, 그를 위해 많은 사진들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수전 손택이 묻는다. 정말 그러하더냐고. 참혹한 사진들이 중첩될수록 연민은 연민일 뿐으로 가라앉고 천천히 무뎌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녀의 글에 마음편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온화하지만 예리한 눈초리로 한번 더 묻더라. 피부색도 다르고 눈동자의 색도 다른 사진 속 그들을 보면서 그들을 타자화하는 사이, 아, 나는 역시 가해자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 속으로 숨어버리고 있지 않느냐고. 어쩜 우리가 그 고통스런 사진을 보는 것은 나는 안전하다는 것을, 나는 그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교육받은 계급'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증오해, 당신이 고통받아서 너무 안됐어 하는 마음?

하, 이거 고약하다.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에게 지식이 다 무슨 효용이며, 진보가 다 무엇이냐 하는 회초리구나.
그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한번 더 쐐기를 박는다. 당신이 타인이라고 인식한 그들의 고통 끝에 당신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당신이 바로 가해자일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알든 모르든, 당신의 고의였든 아니든 말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 내가 신는 신발, 내가 입는 옷에 수많은 바나나 리퍼블릭의 아이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언제나 뼈아픈 사실이지만, 실천은 못할지언정 잊지는 말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기억하기와 상기하기 , 사색하기를 이야기한다. 연민만으로 끝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고맙게도 그녀는 내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어떤 실천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단지 사진 그 자체는 상황을 이해시켜 주지도 앞으로의 방향을 말해주지도 않으니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보라고 할 뿐이다.

W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그 프로그램을 혀를 차며, 가끔을 눈시울까지 적셔가며, 분개하며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자.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나는 어떻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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