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막 다 읽고 났는데, 리뷰를 쓸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리뷰라고 해봐야 언제나 '서평'보다는 '독후감'의 성격이 짙은 사담일 뿐이지만.. 그래도 리뷰를 써야겠다 하고 마음먹은 책들은 책을 덮는 순간 하고 싶은 말들이 창호지 너머 비치듯 어렴풋이라도 비치곤 하는데, 도무지 이책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떤 형체를 띠고 있는 것인지 단어 하나도 뚜렷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그러나 짙은 스모그 안에 떠다니는 음험한 먼지 덩이처럼 뭔가 둥둥 떠다니긴 한다. 게다가 더욱 신기한 건 이것들이 공감각적이라는 사실. 숨막힐 듯 무더운 공기, 너무 고결하여 오히려 공포적인 꽃의 향기, 온통 파랗고 또 빨간 강렬한 색채들. 도무지 이것들이 어떻게 얽히고 설켜 한 장의 그림이 될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나 그냥 덮어버리자니 그 잔상이 너무 강해 찜찜할 정도이다.
아. 어찌하지. 좀더 머리를 식혀보고 다시 생각해 보자.
생각난 김에 책에 대한 불만 하나 덧붙이면, 왜 이런 표지를 만든 거냐고 비채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정면으로 나를 처다보는 여인의 얼굴을 턱하니 그려놓고 어쩔 심산이냐고 묻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이 그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닫혀버렸는지 아느냐고 묻고 싶다. 물론, 표지 일러스트 자체는 멋지다. 고심하고 애써서 그렸을 일러스트레이터를 탓할 맘은 없다. 요즘 차고 넘치는 강렬한 색채의 레트로하기까지 한 일러스트 표지들 전체를 욕할 맘도 없다. 취향의 차이라고 하고 넘기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그동안의 블랙앤화이트 시리즈가 갖은 표지의 주조를 보자면 아마도 출판사에서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인물을 주문했겠지.
그러나 작가가 던져놓은 글들의 향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재현하고픈 독자들에게, 이건 민폐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건 도둑질이다. 게다가 다른 작가도 아니고 온다 리쿠의, 그 온다 리쿠의 소녀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니. 편집자는 온다 리쿠의 소녀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걸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아름다움과 기품을 가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그 완벽함 때문에 오히려 본연의 색깔을 알아볼 수 없는, 그리하여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그런 온다 리쿠의 소녀를 안다면, 이럴 수 없다. 나는 부족하더라도 나의 감성으로 이 소녀를 그리고 싶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다크>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 표지의 그녀가 내가 읽으며 만난 그녀가 맞을까. 내가 읽으며 만날 그녀의 모습을 은연 중에 표지의 그녀에 맞춰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이런 조바심, 절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