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병원이 무대가 되는 스릴러가 종종 보이는데, 읽지도 않고 나는 왠지 편집증적이고 신경질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잘 읽게 되질 않는다. 폐쇄공포증 같은 건 없지만서도. 가보지도 못한 정신병원의 무거운 공기와 몽롱한 약기운이 느껴진달까. 어릴 때 잠시 입원했던 동생을 보러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갔을 때의 일 때문인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거 같은데, 병원에만 있기가 심심해서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도 끝에 있던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아차 싶더라. 엄청나게 큰 금속성의 살풍경한 상자. 아마도 침대가 들어오느라 그렇게 컸겠지만, 그 크기에 압도당하고 덜컹하고 닫힌 문에 압도되어 버려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 땡 하고 문이 열리자 컴컴한 지하실의 복도, 저멀리 녹색으로 점멸하는 비상구의 불빛.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때는 저혼자 그게 시체안치소일 거라고 착각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한채 발발 떨었었지.
이 소설의 표지가 딱 그렇다. 검은 형체로만 보이는 사나이는 컴컴한 병원 복도에 서있다.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밝은 바깥과는 이미 등을 돌려버린 상태로. 으.. 그래서인지 이 책 손에 잡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사건의 첫 시작 부분이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생각해 봤더니, CSI 에서 본 내용과 비슷하다. 물론 사건 뒷부분은 다르지만, 도입이 너무 비슷해서 그 에피소드에 혹시 존 카첸바크의 이름이 어디에라도 나오나 하고 유심히 살폈다. 안 나오더만. 어쨌든 별개의 이야기니까. 라스베가스 시즌 5의 21편이었는데, 이야기의 짜임새도 좋아 인상이 깊었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니 지레짐작으로 오해한 부분이 있었는데, 실제로 읽으니 의외로 차분한 어조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침착하고 때론 천천히 가슴을 때리기도 한다. 사건이 어떻게 끝나려나는 아직 모르겠다. 400페이지 가까이를 읽었지만, 아직 누가 살인범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얼굴에 흉터가 난 여검사도, 가슴의 불을 끄지 못하는 소방수도, 머리속 목소리와 살아가야 하는 바닷새 모두 무사하길 바란다. 그들이 무사히 이 병원에서 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