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달리는' 소녀 라는 제목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애니메이션 소개에 본 짧막한 장면들도 상당히 매력적인 그림들이어서, 책을 고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건, 이 책은 1965년 (무려 40년 전)에 지어진 책이며, 이 작가는 일본 SF계의 포문을 열고 그 길을 다지기 시작한 작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현대 SF작품에 대한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라면, 이 이야기는 엉성하고 유아적인 (간혹 귀엽기까지 한) SF 동화 쯤으로밖에 읽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런 고려를 미리 하고 있었다고 해도 SF동화 라는 면은 그리 달라지지 않겠지만.
뒤에 붙어있는 두 단편들 역시 그렇다. 어찌나 엉성한지. 물론 과학적 엉성함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과학적 검증 같은 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관심도 없고... 여기서 말하는 건 플롯의 엉성함, 감정처리의 엉성함에 대한 것이다. 기막힐 만한 타임 리프가 간단한 몇 마디 말로 해결되고, 엄마아빠의 말 한마디가 귀신이 되고, 겁쟁이 동생이 갑자기 용감해지는 등.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읽었던 지경사의 책들을 여러모로 기억나게 한다.
그러나 SF 장르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한 개념어가 생명을 얻은 후 확대재생산이 천연덕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에 있는데, 그런 면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의 공은 혁혁하다고 하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그 씨앗을 받아 태어난 많은 소설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재밌게 읽었다면, 다음 순서는 타카하타 쿄이치의 <타임리프>다.
사족, 이 책이 왜 양장본으로 나왔는지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오히려 라이트노벨처럼 문고판으로 나온다면 훨씬 극의 분위기를 잘 살렸을 텐데. 도대체가 어울리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