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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첫 장을 읽고 넘기면서, 아, 김연수다 하고 안도하고 기뻐했고, 또 새삼스레(아니, 새삼스럽지도 않게) 감동했다. 그래, 감동했다. 김연수의 유머도 무척 좋아하고 그의 문장들도 끝없이 사랑하지만,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소설 쓰기에 대한 글이지만 세상살이에 대한 글이기도 하고, 나에게는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글이기도 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 그는 평생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그 대답을 알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그 대답을 알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그 대답을 전하기 위해 역사를 가르친다. 그래서 종래에는 우리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이 모두 이루어져 가는 것을, 나 또한 그런 우주의 작은 티끌임을 기억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좀 다른 것이었는데, 마치는 글을 읽고 나니 더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글을 쓰는 남편이 매우 소중하게 품고 있는 책이어서, 언제고 읽긴 해야지 하면서도 한 번 읽고 나면 글들이 휘발되어 버릴 것 같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었다. 책장에서 이 책을 뽑아든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준비가 적잖이 필요하다. 김연수의 글들은 늘 그렇다. 너무너무 좋아서 절대 뜯어보고 싶지 않은 선물 상자 같다.
소설을 쓸 생각은 없으니 알맹이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 책장을 펼쳤는데, 역시 엄청난 잿밥들이었다. 물론 소설쓰기에 대해서도 이보다 더 나은 작법서를 없으리라 판단하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계를 창조하고 인생을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소설쓰기란 세상살기 혹은 인생살기와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세상살기에 대한 엄청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절로 탄식이 나온다.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