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 페이지가 다 되어가는 벽돌같은 책을 전혀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건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감언이설로 상대를 속이며 자신의 배를 채워가는 사기꾼들의 모습이나 참회와 응징을 이어가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 그 안에 있는 온갖 나약함과 용기를 잘 버무려냈다. 무엇보다 재벌가의 사위로 살면서 자신의 이전 생은 포기한 사부로의 번민과 그를 바라보는 따스한 주변의 시선들도 모두 진실해 보였다. 미야베 미유키가 줄곧 이야기하는 ‘인간은 선하다. 때로 마음이 풀어지거나 악한 마음에 휘둘릴 때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선하게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등등의 신념들을 신뢰하고, 그래서 그녀의 소설들도 신뢰한다. 이번 책 역시 그런 면에서 믿음직한 마음으로 한껏 안심하며 보았다. 800쪽이 넘어가서, 이제 백짓장같이 가벼운 페이지들만 나머지 손에 남아있는데도 사건들이 뻥뻥 터졌건만, 그래도 나는 미야베 미유키를 믿었다. 그래도 너무하지 않나. 마지막에 우리의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는 것은 !!! 물론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짠해서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