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 작가의 독서도를 따라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이곳에 도달하게 되기까지 보이지 않은 인연의 끈이 있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온다 리쿠가 그녀의 소설 <라이언 하트>를 쓰게 된 데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순전히 온다 리쿠 때문에 알게 된 셈인데, 그래서인지 그리 객관적이지 않은 태도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별볼일 없던 젊은 화가 이벤은 어느날 아름다운 소녀 제니를 만난다.
원래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운명지어져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소녀와의 만남을 기억하게 되고, 또다시 그녀를 만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불쑥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녀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딘가 시대를 거꾸로 돌린 듯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그녀,
나타날 때마다 부쩍부쩍 자라있는 그녀지만, 이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시간을 초월해서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라고 보이는 이 소설은,
그러나 사랑이야기로 읽히진 않았다.
제니는 사랑하는 여인이라기 보다는 이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궁극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녀와의 만남보다 그녀를 그린 그림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 탓일 것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낭만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장르소설로 읽기에도 연애소설로 읽기에도 어정쩡해서 마지막까지 개운치 못했다.
특히나 81년도에 번역된 책이어서 그런지 가끔씩은 머리속으로 재번역하느라 버퍼링시간이 걸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