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심각한 스포일러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음)

세상에나, 어이쿠, 조너선 캐럴 선생, 이건 반칙이지 않수?
꿈많은 청년 작가의 익살스런 모험기 또는 매력적인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의 러브스토리, 내지는 이야기 속 세계와 그 작가를 동경하는 독자들의 로망, 정도를 예상했고 또 그렇게 읽혀온 이야기의 뒤에 이런 음모와 계략을 숨겨 놓다니, 너무해.
차라리 웃기지를 말지. 그 놈의 개새끼가 말만 안했더라도, 상상도 안되는 쥐어짜는 목소리로 그 놈의 개새끼가 잠꼬대만 하지 않았더라도,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유쾌해하며 멋대로 꿈과 환상의 나라를 꿈꾸지는 않았을 거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마냥 순진한 척 귀여운 척 꿈꾸지는 않았을 거란 그런 얘기다. 애초에 뭔가 좀 꺼림칙하긴 했다만...
그래도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니! 쓰면 쓰는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니!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저 어릴적 종이인형 오리기 하는 것 정도로만 가볍게 봤던 내가 잘못한 거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책을 읽을 때 심각하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나는 작가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길 좋아한다. 아,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된다. 그.런.데. 이 망할 작가, 조너선 캐럴은 도저히 찾아보질 못하겠다. 작가 스스로도 사진 공개를 좋아하질 않았거니와, 직접 보면 그 사람 눈에서 마법의 광선이라도 나와서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다. 무슨 메두사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실소가 나오지만, 왠지 오싹해진다.
어제는 이 책을 읽느라 새벽 4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도망간 토머스를 어쩔 것인가를 두고 게일런 마을 사람들이 매일밤 모여 모의했을 걸 생각하니, 오지도 않던 잠마저 다 달아나더라.
"역시 그때 그놈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피터 멕시코(이름이 이게 뭐냐??)처럼 지하철에서 확 밀어버렸어야 했어.."
이런 대화들이 오갔을텐데 으아.. 잠이 올 턱이 있나.

작가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일 거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실존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믿고 있는. 독자들도 때론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인데, 작가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그러나 그것이 꿈에서 현실로 변하는 순간,
두둥. 또 하나의 게일런이 탄생하는 거다. 우~와, 무섭다. ㅋㅋ

사족)
책 뒷표지에 보면 닐 게이먼이 쓴 소개 문구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야말로 좋아하는 책이 최고의 위안처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

하, 닐 게이먼 그 양반 책을 떠올린다면,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를. 그 말 뒤에서 닐 게이먼이 흘린 음흉하고 개구진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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