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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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 동네는 가끔 '천막 극장'이 들어왔다.동네 친구들과 함께 총싸움하고 벽돌치기 하던 공터에 갑자기 못 보던 어른들이 나타난다.우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침입자들이 하는 양을 요리조리 살폈다.동네 아이들의 시선을 등 뒤로 하고 그들은 뚝딱 뚝딱 하던 일을 계속했다.공사 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지루해 질 때쯤 돼면 여기 저기서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아 ....밥 먹으러 와라' '준아...그만 놀고 들어와서 씻어.' 떨어지는 노을 빛을 받으며 친구들은 휑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우리들이 놀던 그 공터에는 까만 천을 두룬 거대한 가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천막극장'이다.꺼끌 꺼글한 소나무 기둥과 이어 붙인 밧줄들로 지탱되어 있는 천막 극장은 거대한 코키리 같았다.동네 아이들의 호기심은 그 코끼리 내부에 있었다.아이들은 몰래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겁많던 나는 호기롭게 내부로 들어간 형들이 별일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천막 극장 앞에 쭈볏쭈볏 서있었다.형들이 극장 천을 살짝 들어 올리며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면 고개를 숙이고 벌어진 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낮 시간 동안 천막극장 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냥 맨 땅에 흰 벽면,그리고 중간 중간 송진내를 풍기는 소나무 기둥들이 전부였다.그래도 아이들은 마치 실내 체육관에 들어온 듯 즐거워했다.하지만 신세계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저씨들의 호통에 도망치 듯 천막 극장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동네 천막극장은 3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했다.한 편은 만화영화 였고 두 번째 영화는 '일지매' '각시탈'같은 국산 액션영화였다.마지막 영화는 성인 영화였는데 짐작만 할 뿐 당시 상영했던 영화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두번째 영화가 끝나면 대개 8시쯤 되었던 것 같다.그 다음부터 까만 코끼리 내부는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캄캄한 밤에도 켜져있던 공장 서치라이트가 천막극장 영사기에서 쏘는 빛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와 영화 무용담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영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멀티 플렉스에서는 매주 영화가  바뀌어 올라온다.푸른 조명과 팝콘,박스 오피스의 친절함 속에 영화는  '베스킨라빈스 31'의 아이스크림처럼 소비되고 있다.나는 영화가 과잉 소비되고 있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나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라고 믿는다..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영화는 체리 주빌레를 먹을 것인가 아몬드 피스타치오를 먹을 것인 가하는 상품소비의 대상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활동사진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등장하고 난 이후 영화를 둘러싼 상업성과 예술성과의 갈등은 클래식한 질문이다. 영화는 초기 제작 단계부터 자본과 협업이란 형태-즉 산업의 한 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그 특성으로 인해 영화는 다른 순수예술-편의상-에 비해 깊이 있는 장르로 존중 받지 못했다.또한 상업성이란 족쇄는 만드는 이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는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과 별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했다.실제로 나는 우리 영화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와 영화관의 팝콘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면 대개 아침 회의 후 직원들은 그런 말을 나눈다. '00영화 어땟어? '00영화의 주인공은 어때?"  무수하게 영화와 관련되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하지만 대개 이야기의 핵심은 '재미있다''재미없다'로 귀결된다.그 단순한 감상도 그 영화가 간판 내릴쯤 되면 기억에서조차 사라진다.가끔 욱하는 마음에 그 단순한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별로 먹히지도 않고 나만 뭐 잘난 척 뾰족한 사람돼는것 같아서 그만 둔다.

이야기가 길어졌다.<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 과잉, 담론 부재'의 대중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단순히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난 후 남은 팝콘을 쓰레기통에 비우며 '그 영화 재밌네' 하고 끝내는 단순행위가 아니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책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한살이가 너무도 짧다.대박을 터트려서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영화들조차 한 철을 버티지 못한다....흥행작이 이럴진대 먹물 냄새 풍기는 예술영화의 경우에 새삼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문학,철학,예술의 독자나 관객들은 그토록 잔인하지 않다....하지만 영화를 대할 때는 다들 성마르게 다가서서 서둘러 즐기고 조급하게 판단한 뒤 황망히 잊어버린다.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독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 묻어난다.저자의 머릿말 처럼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조금은 철지난-그래봐야 그리 오래지도 않았지만-영화 작품들의 텍스트 분석이다.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다. 저자는 철학적 개념들을  영화를 분석하는 한가지 기준으로 삼는다.하지만 잘 살펴보면 영화 분석을 위해 철학적 개념을 들이민 것만은 아니다.오히려 한 가지 철학적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영화가 철학을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영화를 캐스팅'한 것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물론 누가 주체가 돼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철학적 개념과 영화 텍스트가 상생을 이루며 대중들에게 두 이야기를 다르게 또는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온다면 돼는 것이다.철학과 영화의 만남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이렇다.트루먼 쇼는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드' '탈주'라는 개념,슈렉은 '포스트모더니즘론'과 칸트의 '숭고'개념,동사서독-내가 무척 좋아했던-은 베르그송의 '표층자아,심층자아' 굿 윌 헌팅은 파스칼의 '섬세 정신'..그리고 중경삼림,쉘 위 댄스 등등의 니체,와호장룡의 '장자'.....등등등

각 개념들에 대해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철학사를 흔들었던 중요한 아이디어들이기때문에 몰랐다면 이번에 관심을 가지면 돼고 또 알고 있었다면 조금 쉽게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정리하면 그만이다.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은 분명하다. '온전한 자아 찾기' '참 나 찾기' 정도로 요약하면 조금 단순화한 경향은 있지만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철학 만이 총체성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영화라는 단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가 추구하고 있는 바라고 생각된다.여러모로 많은 장점에도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구성의 문제이다.한 편의 글은 세가지 단락으로 나뉜다.개인적 경험,문제제기가 서론.그리고 영화의 줄거리.결론에 해당하는 철학적 개념의 분석....이 패턴은 각 장마다 똑같이 적용된다.일단 이러한 통일성은 독자가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다음에 어떠한 글이 나오리라는 예상을 가능케해서 부담감을 줄여준다.통일성을 얻기 위해 약간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구성의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물론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종횡무진 넘나드는 글쓰기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다음 작품에서는 그러한 넘나드는 글쓰기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를 보면서 다시 비디오 샵에서 빌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개봉 당시 먼저 영화를 본 친한 친구-영화아카데미 졸업하고 지금은 드라마 찍는다-가 '..딱 너 같은 영화다..'라고 했던 <동사서독>, 글을 읽는 내내 뉴질랜드의 풍광과 바닷가에서 울리는 주제음악이 머리를 울려서 결국 CD찾아 듣게 했던 <피아노>,영화 개봉 후 철학적 담론의 난장판을 만들었던 <매트릭스1,2,3>...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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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4-05 18:20   좋아요 0 | URL
^^ 수정.... 전부 다 손대기는 힘듬.
 
황해문화 50호 - 2006.봄
황해문화 편집부 엮음 / 새얼문화재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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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 리뷰는 귀 빠지고 처음 써 본다.내가 일등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선수를 치신 분도 계시다.ㅜㅜ 내가 한 동안 즐겨 봤던 계간지는 <당대비평>과 <사회비평>이었다. 한국의 근대 문제에 대한 <당대비평>의 포스트모던한 시각은 신선했다.이제는 일상적인 용어가 돼어버린 '일상적 파시즘'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 임지현을 필두로 한 <당대비평>이었다.또한 강준만을 필두로 한 <인물과 사상>의' 안티 조선운동' '상업주의 좌파'논의에 <당대비평> 필진 들이 걸려들어 논쟁은 불꽃이 일었다.그리고 그 논쟁에 김진석이 주도하던 <사회비평>과 진중권의 <아웃사이더>등이 백가쟁명했다.논쟁의 당파성을 떠나서 계간지를 통한 공론의 장이 형성돼었던 시대가 언제 일인가 싶다.불과 몇 년 사이에 대개의 계간지가 문을 내렸다.동시에 그 많던 사회적 담론들 역시 문을 내린 듯 하여 안타깝기 그지 없다.물론 공론의 장에서 형성된 논쟁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거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이제는  각개의 논의들이 저자의 단행본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 뿐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떠난 자리에 <황해문화>의 위치는 돋보인다.내가 서점을 이용하던 시절,계간지 파트에 쌓여 있는 책 중 <황해문화>는 일단 눈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시인한다.일단 <창작과 비평>처럼 오랜 연륜이 가져다 주는 지명도도 없었다.또한 제호에 들어 있는 '황해'라는 말이 지역적이며 또한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지엽적이라는 이미지도 주었기 때문이다.내게 <황해문화>의 이미지는 각 지역마다 지역문인들이 만드는 약간은 조잡해 보이는 '문학지''지역사회비평지' 정도의 영상으로 머릿 속에 남았다.물론 지독한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다.당시 서점에서도 아마 표지와 목록 한 두장 넘겨 보고 그렇게 단정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황해문화>가 50권째 책을 냈다.서울이 아닌 지역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일이다.인천이란 도시의 지역 특성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하지만 수도권이란 이름으로 서울에 묻어가면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독자적인 지역문화가 존재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지역 관공서가 가장 자주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지역에서 세계로..' 뭐 이런 식의 구호들이다.세계까지는 몰라도 <황해문화>가 이루어가고 있는 방향은 분명 '지역에서 나라 전체로...' 에는 해당할 듯 하다.이번 특집호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다.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5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글쓴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대개는 '마이너리티'들이다.장애인,비정규직 노동자,이주 노동자,재일 조선인,철거민,에이즈 환자,납북자 가족 .... 글쓴이들의 개인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역사 문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황해문화>가 계간지로서 가지고 있던 아이덴티티에 비해 조금은 대중적이지만 현 시대의 선결과제들을 전부 건드린다는 차원에서 50호 특집판으로 기획은 손색이 없다.물론 각 장의 통일성에서는 어느 정도 양보할 수 밖에 없다.글쓴이들의 역량에 따라서 또는 글쓰는 방식에 따라서 담론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어떤 경우는 마치 대자보를 보는 듯 하다.또 다른 경우는 한 개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일상사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하다.이번 기획은 아마 이러한 글쓰는 양식의 차이 조차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의 하나로 보는 듯 하다.그렇다면 다시 한번 기획 자체의 발상 전환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 이야기는 최근 인문사회과학의 최대 화제이다.만화,영화,소설,TV다큐멘터리 등등 매체의 종류와 장르를 불문하고 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파편화 되어 있다.그냥 개인의 불행이나 재수 없음,별난 인간,사회 부적응아,원만하지 못한 자 등으로 바라보는 것이 대다수의 시각이다.모든 문제들이 사실은 사회구조적 차별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철거민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철거민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근대산업화와 농촌의 붕괴이다.전근대 이전의 빈곤이 근대로도 이어지고 또한 대한민국의 과잉교육열에서 소외된 또다른 교육부재로 이어져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철거반과 싸우는 철거민들을 보며 법질서 위반자라는 둥 가난은 나랏님도 못구한다는 둥 빈곤과 강제철거 문제를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만 취급한다.언젠가 신문에서 본 이야기가 있다.어느 어머니와 아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도로에서는 맨홀 안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엄마 왈 '저거봐 너도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무식한 다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개인화하고 세대를 걸친 개인의 성공만을 독려한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깨부순다는 것 참으로 난망한 일이다.이런 사람들이 소수자와 관련된 책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데 사실 그들은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발칙한 생각은 회피하기 일수다.그러므로 변화는 더욱 난망해진다.

소수자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사실 마음이 답답해진다.세상에 소수자들이 너무 다수다.그들을 위한 우리사회의 배려와 시스템적인 지원은 너무 미비하다.지하철의 장애인 이동 휠체어는 계속 누르고 있어야 올라온다.거북이 걸음 속도로.겨울이 되면 지하철 입구에서 휠체어 올라올 때까지 그 곱은 손으로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한다.10분이상이 걸린다.날씨가 추워서 기계가 오작동하면 승무원을 불러야한다.승무원을 부르고 고치고 뭐하고 나면 지하철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가는데 무려 30분이 걸린다.일반적인 사람들은지하철 10분 연착하면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화를 낸다....세상에 너무 많은 소수자들...그들의 싸움에 박수를 보내주진 못할 망정 돌을 던지지는 말자.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라 망치는 매국노도 아니고 노점상들이 도로정체의 주범도 아니며 트랜스젠더가 비도덕적인 악마도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소수자들이 바라는 마음 한 구절을 얻었다. 선천성 척수장애인 박찬오씨가 쓴 글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 장애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황박사의 기적같은 줄기세포가 아니다.당신과 동네 포장마차에서 줄기세포가 필요한지를 토론하며 취하는 것이다.".....

한동안 계간지를 접었는데 다시 편 기념으로 정기구독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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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3-22 12:32   좋아요 0 | URL
편집장님 좋아하시겠네요. 흐흐.

돌바람 2006-03-22 12:43   좋아요 0 | URL
저도 계간지 리뷰는 코에 바람 들어간 이후 처음 써봅니다. 호호^.,^
나중 썼으면 저도 좀 쿨하게 별 하나 깍을 수도 있었는디...

드팀전 2006-03-22 16:43   좋아요 0 | URL
1년에 4권 2만원이데요.(맞나?)..뭐 그정도면....
별 하나 깍은 거는요.돌바람님 글의 마지막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요.'오타무시파'인 저도 몇 개 봤습니다....기획 특성상 우후죽순의 글들이 산만하게도 느껴지고...장점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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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빛으로 먼저 온다.이제 눈 앞이다.봄.... 시 한 편 읽고 시작하자.

초토의 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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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지 50년이 넘었다.하지만 지금도 지리산 어느 골짜기엔  이름 없는 파르티잔의 원혼들이 녹아내려가는 잔설과 함께 봄을 맞고 있을 것이다.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서 또 너무 모르고 있는 전쟁이다.전쟁 세대의 직접적 경험은 너무도 강렬해서 객관의 시각을 압도한다.또한 한 쪽만을 강요한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했다.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국전쟁은 6.25사변이며 북괴의 남침 야욕이다.이 관념은 너무도 강해서 대한미국 헌법도 뛰어넘는다.동국대의 강정구 교수는 그의 학문적 연구 내용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당했다.강정구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역시 보수언론의 몇 줄 기사에 흥분하여 돌을 던진다.그들의 앙다문 입술과 눈매에선 마치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을 마다 않던 학도병의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이제는 좀 달라져도 될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대학교 1학년 세미나가 떠오른다. 신입생들을 가장 당혹케 하는 역사 공부시간.고등학교에선 거의 배우지 않았던 현대사의 숨은 이야기들이 재미와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국 전쟁 이야기까지 역사가 흘러가면 곳곳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신입생들의 반응은 대게 '끙...그게 아닌데' '북한놈들이 그런거 아니야' 대개 이런 반응들이다.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만이 진실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수준낮은 세미나의 역할은 다한 것이리라.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은 2005년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말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특히 반강제성을 띤 역사세미나의 수혜를 받지 못한 요즘 대학생 친구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책 좀 팔아 줄려면 대학 논술에도 좋다고 해야하나..) 이 책의 미덕은 여러가지다.

우선 한국전쟁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돋보인다.이 책은 그동안 학계의 한국전쟁 연구의 다이제스트판이다.물론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상세한 접근은 애초부터 힘들었을 것이다.저자는 이 책이 개론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나 독특한 시각보다는 그간의 연구를 종합한 성격이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다.그래서 한국전쟁에 관해 몇권의 책을 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수능앞두고 다시 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책 같은 정도의 느낌을 줄수도 있다.반면 한국 전쟁에 대해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전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해보자.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정권의 도발이 그 원인이다.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전쟁의 기원을 살피면 국내 갈등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그 기원이 될 수 있다.저자는 내적 기원론과 외적 기원론으로 나누어 이를 설명한다.내적 기원론의 핵심은 한반도 내의 좌우익 정치갈등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외적 기원론은 한반도 내에서 소련에 비해 열세적 권력 구도를 형성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집행에 그 기원을 둔다.저자는 각 주장들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짚고 넘아가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전쟁도발에 대해서도 저자는 종합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남침설,그리고 북침설,대학 시절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침유도설.특히 저자는 남침유도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전략의 변화,미군의 철수 이유,미군의 공군 중심 전술변화,한반도의 인플레이션 등등이 소상히 설명된다.남침 유도설을 설명하는 논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초반 한국사회의 안정성등을 들며 남침 유도설이 갖는 한계 역시 지적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둘러싼 전후 관계에 대해서도 친철하다. 전쟁 전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거시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방 후 한바도 정세에 대해서도 꼼꼼히 설명한다. 모스크바 3상 회의부터 시작되는 한반도 분단과정과 당시 국내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좌우 합작운동,스탈린과 김일성의 만남, 미국과 소련의 세계 외교전략의 변동에 따른 한반도 정책 변화 등등....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은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대리전이자 냉전을 알리는 최초의 전쟁임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준다.

이 책은 또한  한국 전쟁의 수수께끼를 제시하면서 역사책 읽는 재미를 붇돋운다.대표적인 것들이 한국전쟁의 실패 라는 장이다.여기서는 한국전쟁 동안 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전술적 실패 내용을 설명한다.여기에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어서 흥미있었다.저자가 들고 있는 한국전쟁의 실패는 이런 것들이다.왜 북한은 서울에서 사흘을 머물렀는가? 왜 소련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불참했을까? 북한은 왜 사전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천방어를 소홀히 했는가?미국은 왜 38선 돌파 결정을 내렸는가? 등등이다.각 각의 이유가 제한된 자료안에서도 설득력있게 설명된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서울에서 사흘을 소비한 것에 대해 저자는 '제한전쟁설'을 인용한다.즉 북한은 처음부터 서울만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끝내려 했다는 설이다. 인천상륙작전같은 경우도 미리 정보가 있었음에도 낙동간 전선의 궤멸을 두려워한 전술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책 후반부로 가면서 포로 송환 문제,이승만과 미국의 갈등 그리고 타협,민간인 학살 문제,정전협정 문제등을 이야기한다.이렇게 보면 6월 25일 북한이 밀고 내려왔다는 것 말고도 한국 전쟁을 둘러싼 역사적 내용들은 너무나 많다.한 주제를 가지고도 책 몇 권 분량은 족히 나올 법하다.책은 얇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룰 수는 없다.저자 역시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 지면 부족을 아쉬워했다.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 책에서 못얻은 것은 또 찾아보면 될 터. 한국전쟁의 방대한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다 얻으려는 것이 욕심이다.단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알아보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이 책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그런면에서 좋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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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0   좋아요 0 | URL
전 리뷰에도 썻듯이 요즘 대학생들이 좀 봤으면 좋겠어요.요즘 애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영 알수가 없네요.영어 공부? 지들 학과 공부? 그외엔 안하나 아님 하나?

글샘 2006-02-21 17:35   좋아요 0 | URL
보관함으로 갑니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 읽고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새로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새삼 듭니다.

레이첼 2006-02-21 18:3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리뷰였어요. 이 책 읽고 감동했던 저도 추천 한 표~!

2006-03-02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06-03-30 23:51   좋아요 0 | URL
저는 대학생 아니지만 땅스투를 누릅니다. 아줌마가 뭐하는 거냐고, 대학생도 안 읽는 것을... 으그그

드팀전 2006-03-31 18:25   좋아요 0 | URL
ㅋㅋ 돌바람님....아줌마가 위대하죠.ㅎㅎㅎ
 
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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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만화를 좋아했다. <소년중앙>과 <보물섬>이 나오는 날을 월급쟁이 봉급날 기다리 듯 기다렸다.독고탁,봉구,꺼벙이,찌빠,둘리,까치 등등....  이들이 펼치는 웃음과 울음에 본 만화를 또 보고 봐도 질 리지 않았다.연습장에는 전부 만화만 그려놨다고 선생님께 꿀밤 먹은 기억도 난다.고등학교 때까지 라면집에서 틈틈이 만화를 즐겨봤는데 언제 부터인가 만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굳이 만화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요즘도 스포츠 신문에 나는 만화는 별 관심 없으면서도 본다,<씨네21>이 있으면에 정훈이의 만화도 잊지 않는다.00일보에 실리는 손문상의 한컷 짜리 그림은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에 본 만화다.(손문상의 그 한 컷 짜리 스케치를 만화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만화가 멀어진 건 만화 자체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세상에 만화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만화집<사이시옷>은 <십시일반>의 후속편이다.국가 인권 위원회가 기획했다.만화가들이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이시옷>에는 비정규직,성차별,미혼모,빈부격차에 의한 교육차별,군내의 폭력 문제등이 다루어 지고 있다.언젠가 당대비평의 특별호로 나온 <탈영자들의 기념비>라는 책이 생각났다. 한국 사회 소수자 문제와 국가 파시즘의 문제를 여러 필자들이 나누어 집필한 것이다.<십시일반> 역시 똑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좀 더 대중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최근에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손문상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렸다.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버스가 도착했다.몇 몇은 버스를 타고 간 듯 하다.남겨진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어떤이는 분노에 찬 얼굴,어떤 이는 황당한 표정,어떤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난감해 한다.버스안내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통근버스...정규직외 탑승금지'....   한 사무실 청소부 아주머니가 걸레 카트를 밀고 화장실로 들어간다.화장실 문을 여니 그곳은 아주머니들의 휴게실이며 탈의실이다.옷들도 걸려있고 심지어 전기밥솥도 있다.아주머니는 좌변기 위에 밥상을 얹어 놓고 웃는다.'어서와...'

우리 여자 화장실도 청소아주머니들의 카페다.여자 화장실이라 볼 수는 없지만 지나가며 들어보면 아주머니들이 바닥에 앉으셔서 커피드시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알 수 있다.가끔 어떤 여직원이 '왜 여기 계세요..."하며 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노동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현안이다.양대 노총도 어떻게 든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결코 쉽사리 풀리지가 않는다.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은 결국 인간의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하지만 경영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앞에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그들에게는 최소 비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는 보수 언론들도 같은 방식이다.비정규직이 시위를 하고 시끄럽게 하면 결국 대한민국 경제 다 말아먹는 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한 편에서는 비정규직의 서러운 삶에 대해 휴먼기사를 쓰기도 한다.면피를 위한 양다리 걸치기다.경영진을 압박하는 것도 중요하고 정규직의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필요하다.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자기 권리를 보장 받으며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눈감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새 자본가의 논리,경영자의 논리에 슬근 묻어가려는 것일까?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작가 손문상은  비정규직의 차별을 보여주기 위해 정규직의 모습을 반대 급부로 보여준다. 이 부분은 또 한번 곱씹어 봐야한다.정규직들에게 비겁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이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내지는 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기존 노조와의 관계도 고려해야한다.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결코 적대적 모순 관계가 아니다.그들은 어떻게 보면 자본에 의해 끌려다니는 사람들이다.한 쪽이 손목을 묶여 끌려다닌 다면 한 쪽은 목줄이 묶여 있는(물론 이 차이도 엄청나지만)것이다.결국 정부 정책으로 비정규 문제를 풀어내기 전에는 개별 노조와 회사별 투쟁이 진행돼어야 한다.그렇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공감은 필수적이다.손문상은 물론 정규직의 동참을 바라는 마음,또 정규직의 비겁함을 질책하는 차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모습을 적대적 관계처럼 그렸을 것이다.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편애가 만든 것은 아니다.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의 고민은 어려웠던 것일까? 물론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나의 노동자로써의 위치가 정규직 사원을 적대시해서는 곤란하다는 논리로 나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서 봐 온 소시민적 노동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심정적으로는 동의한다.그러나 이러한 차별의 적시를 위한 적대에는 또 감정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만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에 실린 군내 내 폭력문제를 다룬 <창>이다. 주인공 병장 정철민은 군대 속어로 FM(음..뭐 모범적이다 뭐 이런 뜻이다.여자분들을 위해..)이다.나름대로 군대 역시 사회의 한 영역이라 생각하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동료애도 높고 맡은 바 소임도 끝까지 다한다.군대 상사로 부터도 인정을 받는다.우리가 흔히 대학이나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성실한 보통 젊은이이다.그의 분대에 고문관 신병 홍영수가 온다.병장 정철민은 홍영수의 교육을 담당한다.어느 정도 군인 하나 만들었다 생각햇을 즈음 훈련 중 사단장의 검열,신병 홍영수의 군장에서는 깔깔이 두 벌과 건빵,그리고 비닐 봉지가 나온다.(주:군장 무게를 줄여 편해보려는 잔꾀로 대개 말년 병장들이 쓰곤 하는 방법,물론 걸리면 죽는다)...평범하고 성실한 정철민과 분대원은 단체로 뺑뺑이를 돈다.평범하고 성실한 병장 정철민은 열받아서 어떻게 했을까?... 몇 대 때리고 밟았다.....신병 홍영수는 화장실에서 자살 미수를 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이유는 병장 정철민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청년이라는 것.또한 그가 가한 폭력이 '저 정도면 어휴 나같아도..' 하는 이런 상황이라는 것.그리고 그가 행한 폭력이 내가 군대에서 또는 사회에서 겪는 폭력에 비하며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것.이러한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약간 혼란스러웠다.그러다 곧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만화를 보면서 군대 문화에 나도 모르게 감정동화가 돼어 버린 것이다. 대개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군대 경험이 금방 만화 속 내무반으로 나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햐..우리 때도...'"나같아도'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폭력적인 군대문화 속에서  군대 폭력에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군대에는 어디나 고문관 하나 둘 있다.나 역시 그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어깨를 다독이며 돌봐주지도 않았다.대개 비웃거나 무시하거나 아님 '아휴..이 빙신..됐어.널 어떻게 믿겠냐 ..꺼져' '담에도 이러면 진짜 죽는다'  이런 언어 폭력이 주를 이루었다.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아무래도  자기를 통제하는 법,타인에 대한 고려,폭력에 대한 생각 등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이 만화의 진짜 압권은 이렇게 평범함 속에 있는 폭력,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쪽에 동화돼는 다수의 마음 속에 있는 폭력,그리고 평범함이 폭력의 가해자가 돼게끔 만드는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병장 정철민은 영창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나를 새로 생긴 작은 창이 비웃듯 맞아 주었다."

폭력을 만든 것은 나와 당신이며 또한 키운 것 역시 침묵한 나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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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2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17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현대송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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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헤어스타일이 죽인다.도쿄 어딘가에 있는 효자동  이발소 도쿄지점에서 하시는 머리인 듯 하다.그 헤어 웨이브는 소싯적 김완선 올챙이 춤의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아무래도 일본의 자랑 코끼리표 고데기를 쓰시나 보다.그래도 가끔은 고이즈미 선생도 거울을 보며 스트레이트 퍼머에 대한 욕망을 느끼곤 하 실 것 같다.혹시 모른다.집에서 약사가지고 발라 봤을 지도.. 고이즈미 총리의 멋있는 점 중에 하나는 그의 당당한 걸음이다.그는 참 씩씩하게 걷는다.걸음의 속도는 '알레그로 모데라토' ,보폭은 김기수 쭉쭉 춤의 3분의 1,걸음의 무게는 비단 겉 이불 펼칠 듯 날렵하다.

은발을 휘날리며 고이즈미가 간다.즐겨입는 회색양복 사이로 비치는 하얀 와이셔츠가 그의 머리 색과 참으로 어울린다.고이즈미가 간다.날렵하게 삭삭삭.....바람을 가르는 닌자도 고이즈미의 움직임을 상찬했을 것이다. 검은 칠을 한 일본 절 집 사이로,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고이즈미가 간다.

TV에서 본 고이즈미는 날렵한 일본도처럼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일본 통신원의 목소리는 잔뜩 상기돼어 있다.  '이번의 방문은 사실 예정이 돼어 있던... 그동안 일본 우익은... 중국과 한국정부는 강력하게....도쿄에서 ...이 아무개였습니다"

야스쿠니....  지난 해 일본 연수 중 어떤 일본인 강사가 그런 이야길 했다. "뭐 별로 갈 때 없으면 야스쿠니 신사도 그리 멀지 않은데..왜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데 궁금하진 않으실까 해서.."  일본인 강사가 무슨 민족주의적 사명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그냥 연수생들이 시간 남을 때 뭐하나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슈가 돼는 곳이니 직접 한 번 보는 건 어떠냐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것이다.연수생들의 반응은 그냥 시큰둥 했다.말해 놓은 강사가 무안할 정도로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나 역시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아...야스쿠니는 TV에서 많이 봐서 별로 새롭지가 않네요.그냥 TV로 보는 것에 만족하죠."라고 말했다.그러자 강사가 "하이...소우데까.....", 우리가 역시 '하이 소우데스"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노니 장판 뜯는 다고 그 강사의 말을 들어볼 걸 하고 뉘우친다.그랫으면 이 책<야스쿠니 문제>를 보면서 조금 더 실감났을 것 같다.사실 야스쿠니에 A급 전범 14명이 봉안돼어 있는 것은 누구나 안다.또한 야스쿠니 신사가 침략전쟁의 상징이라는 곳도 누구나 안다. 그곳을 웨이브 머리 일본 총리가 방문한 다는 것이 역사에 대한 뉘우침이 결여된 행동이란 것도 전부 안다.뉴스에서 뭐 대개 그정도 이야기 해주니까 말이다.그리고 끝이다. 나 역시 야스쿠니 문제가 나오면 '재네들 또 저러네." "어디 한 두번이냐""국내 우익들의 힘을 모으려고 잔머리는.." "저러다가 주변국에서 난리치면 또 조용했다가 다시 몇년 지나면 또 그러겠지 "....이 정도 생각했다.다른 말로 뉴스에서 주는 정보 이외엔 별로 생각 안해봤다는게 사실이다.그래서 이 책 <야스쿠니문제>를 읽으며 나의 무관심에 머리를 쳤다.띠용...띠용.

야스쿠니는 일본 군국주의 신앙의 상징이며 국가교의 보루이다.1911년 나온 가와카미 하지메의 <일본의 독특한 국가주의> 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일본은 신국이다.나라는 곧 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 일반의 신앙이다.이 신앙은 명백히 의식되지는 않지만 추론해보면 일본인 일반이 반드시 수긍하는 것이다.일본인의 신은 국가다.그리하여 천황은 이 신인 국체를 대표하는 자로서 이른바 추상적인 국가신을 구현하는 자이다.

일본제국주의는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대외전쟁을 치룬다.전쟁을 위해서는 국민동원이 필수다.마지못해 끌려가는 동원은 부족하다.병사들 뿐 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전부 국가를 위한 죽음을 아름답다고 믿어야 제국은 승리할 수 있다.국민 동원의 이데올로기 상징으로 야스쿠니가 등장한다.야스쿠니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국가를 위해 산화한 신으로 모신다.촌로들에게는 평생가여 한번 친견하기도 불가능한 천황-그도 곧 신이다-이 죽은 이들을 위한 제주가 된다.유족들은 전사한 아이의 슬픔보다 그들이 천황을 위해 국가를 위해 올바르게 쓰였다는 것에 감사한다.전사자의 유족은 만족감은 느낀다.유족의 비애를 그 상태로 계속 두면 제국의 팽창에는 마이너스이다.전국의 유족들이 매일 울어대기만 해봐라 누가 자기 자식을 전쟁터로 내 보내겠는가.전사자는 신으로 유족은 가장 명예로운 사람들로 국가의 영예를 돌리는 것이다.1895년 시사신보에 실린 <전사자의 대제전을 거행해야 한다>라는 사설은 야스쿠니의 목적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전사자가 현창되어 유족이 그것을 기뻐함으로써 다른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희망하게 되는 것...

히시키 마사하루는 <정토진종의 전쟁책임>이라는 책에서 야스쿠니 본질의 세가지 요소를 이렇게 말한다.오랫동안 자국의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하는 '성전교의', 전사한 장병을 나라를 위해 죽은 존재로서 영웅화하는 '영령교의', 국민에게 영령을 본받으라고 호소하는 '현창교의'

사실 모든 근대 국가가 전쟁 사망자에 대해 국가적 예후를 아끼지 않는다.그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가 운영되는 원리와 유사하다.국가라는 이름으로 죽은 자들은 호명된다.그 호명은 다분히 현세적이며 또한 정치적이고 선별적이다.일단 그렇게 국가의 이름으로 호명된 망자는 전부 호국의 영령이되며 야스쿠니에서는 신이 된다.하지만 야스쿠니와 대개 근대국가가 설치하고 운영하는 국립묘지와는 차이가 있다.가장 큰 차이는 '추도'와 '현창'의 차이이다.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유족회단체의 어떤 사람들은 아무때나 수구의 깃발을 휘날리는데 동원돼기도 한다.그러면서 하는 말은 "피로 지킨 대한민국 빨갱이가 왠 말이냐?" 하는 식이다.국가가 망자를 호국영령으로 만들어 준 것 까지는 이해를 한다.하지만 국가를 지켜온것이 유족회나 상이군인만은 아니다.또한 아무때나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수구의 깃발을 휘날리는 것은 볼성 사납다.호국영령이 지키 이 나라가 잘 돼는게 과연 그 길인가는 언제 생각할 것 인지 모르겠다.

야스쿠니가 일본의 독특한 문화적 한 형태라고 하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이러한 문화주의적 주장은 사람을 가끔 헷가리게 한다.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그러는데 지들도 뭐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이 지들 입장에서 보면 애국자겠지...지들 입장에서 보면 이해는가"... 그럴싸 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 순수한 마음은 무식하기 때문에 나온 설사형 휴머니즘다.마치 자신이 폭넓은 사람인 양 하지만 결국 아시아의 모든 일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를 돌아보지 않은 모자란 말이다.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다원주의나 문화상대주의에 기대어 A급 전범을 용서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과거를 물에 흘려보내는 일본문화의 권리를 주장하는 셈이다.

이 책 <야스쿠니 문제>에서 가장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A급 전범 처리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야스쿠니는 2차대전 A급 전범만 합사돼어 있는게 아니다.하지만 한국과 중국 정부는 정치적 타협을 고려하여 늘 A급 전범 합사문제만을 부각한다.야스쿠니에는 B,C급 전범도 있고 끌려간 조선인 군인도 있고 야스쿠니에 들어가기 싫은 기독교인도 있다. 나카소네 일본 수상 재임시절 주일 중국대사 창슈는 "A급 전범 합사문제만 올바로 해결된다면 야스쿠니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라고 했다.하지만 주건영 동양학원대학교수는 "B.C급 이하의 전범을 문제삼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결착을 꾀하는 방법"이라고 비난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니네도 전쟁사망자 애도는 해야되니까 야스쿠니가 필요하겠지.그렇지만 A급 전범까지 하는 건 곤란해.A급 전범을 분사하면 우리 나라에서도 더는 뭐라하기 그렇지 않겠니? "

'A급 전범 분사론'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 해보인다.일단 분사론은 야스쿠니신사와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돼었다고 한다.정교분리문제에 있어서 일본정부가 야스쿠니에 강압할 수 도 없는 문제다.하지만 A급 분사론은 역사인식을 방해한다. 전쟁 책임을 축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를 은폐한다.전후 도쿄재판은 전쟁책임을 천황을 제외한 A급 전범에게 집중시켰다.그렇게 됨으로써 천황과 국민적 동의를 보냈던 다수의 일본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일본의 역사 인식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전후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독일은 나치와 나치에 동의 했던 과거 독일에 대해 철처히 그리고 수시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있다.A급전범이 야스쿠니에 있던 없던 야스쿠니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에 일본국의 총리나 천황이 가서 참배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뉘우침이 없다는 것의 반증이다.

저자는 철저한 정교분리,국가기관으로서의 야스쿠니 폐지,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신앙 자유보장,근대 일본의 대외전쟁에 대해 긍정하는 역사관의 극복을 결론적으로 주장한다.또한 마지막으로 평화헌법 9조에 언급돼어 있는 '비전,평화주의'국가로의 방향설정을 제안한다.

이 책<야스쿠니문제>는  야스쿠니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감정의 문제,역사인식의 문제,종교의 문제등 5가지 섹터로 나누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논리적이며 설명 또한 명확하다.여러모로 우리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좋은 안내서이다.TV 뉴스에서 보는 정도로만 야스쿠니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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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12 23:06   좋아요 0 | URL
일본의 국가주의종교에 가장 직접적 세례를 받은 <천황의 은총 국가> 한국도 자연스럽게 국가주의 종교, 애국교에 물들고 말았겠지요.
읽어보고 싶던 책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드팀전 2006-02-13 09:28   좋아요 0 | URL
네...식민지 시대의 내적 식민화 경향과 한국전쟁후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가를 절대시 하면 자기 행동의 윤리적 기준에 돼게끔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데요.앞으로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행은 계속 될 듯 합니다.그런면에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시는데도 좋을 듯 하네요.우리 아이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극단적 생각 역시 반성케 하시면 더욱 좋을 듯.....

산그늘 2006-08-17 14:56   좋아요 0 | URL
그러는 사이에 고이즈미 써글놈이 또 갔군요. 다카하시는 또다시 강도높은 비난...한국인들도 뉴스 100번 보는 것보다 이 책 한 권 읽는게 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