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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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빛으로 먼저 온다.이제 눈 앞이다.봄.... 시 한 편 읽고 시작하자.

초토의 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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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지 50년이 넘었다.하지만 지금도 지리산 어느 골짜기엔  이름 없는 파르티잔의 원혼들이 녹아내려가는 잔설과 함께 봄을 맞고 있을 것이다.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서 또 너무 모르고 있는 전쟁이다.전쟁 세대의 직접적 경험은 너무도 강렬해서 객관의 시각을 압도한다.또한 한 쪽만을 강요한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했다.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한국전쟁은 6.25사변이며 북괴의 남침 야욕이다.이 관념은 너무도 강해서 대한미국 헌법도 뛰어넘는다.동국대의 강정구 교수는 그의 학문적 연구 내용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당했다.강정구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역시 보수언론의 몇 줄 기사에 흥분하여 돌을 던진다.그들의 앙다문 입술과 눈매에선 마치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을 마다 않던 학도병의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이제는 좀 달라져도 될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대학교 1학년 세미나가 떠오른다. 신입생들을 가장 당혹케 하는 역사 공부시간.고등학교에선 거의 배우지 않았던 현대사의 숨은 이야기들이 재미와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국 전쟁 이야기까지 역사가 흘러가면 곳곳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신입생들의 반응은 대게 '끙...그게 아닌데' '북한놈들이 그런거 아니야' 대개 이런 반응들이다.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만이 진실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수준낮은 세미나의 역할은 다한 것이리라.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은 2005년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말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특히 반강제성을 띤 역사세미나의 수혜를 받지 못한 요즘 대학생 친구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책 좀 팔아 줄려면 대학 논술에도 좋다고 해야하나..) 이 책의 미덕은 여러가지다.

우선 한국전쟁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돋보인다.이 책은 그동안 학계의 한국전쟁 연구의 다이제스트판이다.물론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상세한 접근은 애초부터 힘들었을 것이다.저자는 이 책이 개론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나 독특한 시각보다는 그간의 연구를 종합한 성격이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다.그래서 한국전쟁에 관해 몇권의 책을 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수능앞두고 다시 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책 같은 정도의 느낌을 줄수도 있다.반면 한국 전쟁에 대해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전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해보자.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정권의 도발이 그 원인이다.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전쟁의 기원을 살피면 국내 갈등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그 기원이 될 수 있다.저자는 내적 기원론과 외적 기원론으로 나누어 이를 설명한다.내적 기원론의 핵심은 한반도 내의 좌우익 정치갈등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외적 기원론은 한반도 내에서 소련에 비해 열세적 권력 구도를 형성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집행에 그 기원을 둔다.저자는 각 주장들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짚고 넘아가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전쟁도발에 대해서도 저자는 종합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남침설,그리고 북침설,대학 시절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침유도설.특히 저자는 남침유도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전략의 변화,미군의 철수 이유,미군의 공군 중심 전술변화,한반도의 인플레이션 등등이 소상히 설명된다.남침 유도설을 설명하는 논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초반 한국사회의 안정성등을 들며 남침 유도설이 갖는 한계 역시 지적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둘러싼 전후 관계에 대해서도 친철하다. 전쟁 전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거시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방 후 한바도 정세에 대해서도 꼼꼼히 설명한다. 모스크바 3상 회의부터 시작되는 한반도 분단과정과 당시 국내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좌우 합작운동,스탈린과 김일성의 만남, 미국과 소련의 세계 외교전략의 변동에 따른 한반도 정책 변화 등등....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은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대리전이자 냉전을 알리는 최초의 전쟁임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준다.

이 책은 또한  한국 전쟁의 수수께끼를 제시하면서 역사책 읽는 재미를 붇돋운다.대표적인 것들이 한국전쟁의 실패 라는 장이다.여기서는 한국전쟁 동안 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전술적 실패 내용을 설명한다.여기에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어서 흥미있었다.저자가 들고 있는 한국전쟁의 실패는 이런 것들이다.왜 북한은 서울에서 사흘을 머물렀는가? 왜 소련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불참했을까? 북한은 왜 사전 정보에도 불구하고 인천방어를 소홀히 했는가?미국은 왜 38선 돌파 결정을 내렸는가? 등등이다.각 각의 이유가 제한된 자료안에서도 설득력있게 설명된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서울에서 사흘을 소비한 것에 대해 저자는 '제한전쟁설'을 인용한다.즉 북한은 처음부터 서울만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끝내려 했다는 설이다. 인천상륙작전같은 경우도 미리 정보가 있었음에도 낙동간 전선의 궤멸을 두려워한 전술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책 후반부로 가면서 포로 송환 문제,이승만과 미국의 갈등 그리고 타협,민간인 학살 문제,정전협정 문제등을 이야기한다.이렇게 보면 6월 25일 북한이 밀고 내려왔다는 것 말고도 한국 전쟁을 둘러싼 역사적 내용들은 너무나 많다.한 주제를 가지고도 책 몇 권 분량은 족히 나올 법하다.책은 얇고 이 모든 것을 전부 다룰 수는 없다.저자 역시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 지면 부족을 아쉬워했다.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 책에서 못얻은 것은 또 찾아보면 될 터. 한국전쟁의 방대한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다 얻으려는 것이 욕심이다.단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알아보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이 책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그런면에서 좋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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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0   좋아요 0 | URL
전 리뷰에도 썻듯이 요즘 대학생들이 좀 봤으면 좋겠어요.요즘 애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영 알수가 없네요.영어 공부? 지들 학과 공부? 그외엔 안하나 아님 하나?

글샘 2006-02-21 17:35   좋아요 0 | URL
보관함으로 갑니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 읽고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새로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새삼 듭니다.

레이첼 2006-02-21 18:3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리뷰였어요. 이 책 읽고 감동했던 저도 추천 한 표~!

2006-03-02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06-03-30 23:51   좋아요 0 | URL
저는 대학생 아니지만 땅스투를 누릅니다. 아줌마가 뭐하는 거냐고, 대학생도 안 읽는 것을... 으그그

드팀전 2006-03-31 18:25   좋아요 0 | URL
ㅋㅋ 돌바람님....아줌마가 위대하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