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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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만화를 좋아했다. <소년중앙>과 <보물섬>이 나오는 날을 월급쟁이 봉급날 기다리 듯 기다렸다.독고탁,봉구,꺼벙이,찌빠,둘리,까치 등등....  이들이 펼치는 웃음과 울음에 본 만화를 또 보고 봐도 질 리지 않았다.연습장에는 전부 만화만 그려놨다고 선생님께 꿀밤 먹은 기억도 난다.고등학교 때까지 라면집에서 틈틈이 만화를 즐겨봤는데 언제 부터인가 만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굳이 만화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요즘도 스포츠 신문에 나는 만화는 별 관심 없으면서도 본다,<씨네21>이 있으면에 정훈이의 만화도 잊지 않는다.00일보에 실리는 손문상의 한컷 짜리 그림은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에 본 만화다.(손문상의 그 한 컷 짜리 스케치를 만화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만화가 멀어진 건 만화 자체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세상에 만화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만화집<사이시옷>은 <십시일반>의 후속편이다.국가 인권 위원회가 기획했다.만화가들이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사이시옷>에는 비정규직,성차별,미혼모,빈부격차에 의한 교육차별,군내의 폭력 문제등이 다루어 지고 있다.언젠가 당대비평의 특별호로 나온 <탈영자들의 기념비>라는 책이 생각났다. 한국 사회 소수자 문제와 국가 파시즘의 문제를 여러 필자들이 나누어 집필한 것이다.<십시일반> 역시 똑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좀 더 대중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최근에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손문상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렸다.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버스가 도착했다.몇 몇은 버스를 타고 간 듯 하다.남겨진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어떤이는 분노에 찬 얼굴,어떤 이는 황당한 표정,어떤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난감해 한다.버스안내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통근버스...정규직외 탑승금지'....   한 사무실 청소부 아주머니가 걸레 카트를 밀고 화장실로 들어간다.화장실 문을 여니 그곳은 아주머니들의 휴게실이며 탈의실이다.옷들도 걸려있고 심지어 전기밥솥도 있다.아주머니는 좌변기 위에 밥상을 얹어 놓고 웃는다.'어서와...'

우리 여자 화장실도 청소아주머니들의 카페다.여자 화장실이라 볼 수는 없지만 지나가며 들어보면 아주머니들이 바닥에 앉으셔서 커피드시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알 수 있다.가끔 어떤 여직원이 '왜 여기 계세요..."하며 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노동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현안이다.양대 노총도 어떻게 든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결코 쉽사리 풀리지가 않는다.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은 결국 인간의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하지만 경영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앞에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그들에게는 최소 비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는 보수 언론들도 같은 방식이다.비정규직이 시위를 하고 시끄럽게 하면 결국 대한민국 경제 다 말아먹는 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한 편에서는 비정규직의 서러운 삶에 대해 휴먼기사를 쓰기도 한다.면피를 위한 양다리 걸치기다.경영진을 압박하는 것도 중요하고 정규직의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필요하다.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자기 권리를 보장 받으며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눈감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새 자본가의 논리,경영자의 논리에 슬근 묻어가려는 것일까?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작가 손문상은  비정규직의 차별을 보여주기 위해 정규직의 모습을 반대 급부로 보여준다. 이 부분은 또 한번 곱씹어 봐야한다.정규직들에게 비겁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이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내지는 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기존 노조와의 관계도 고려해야한다.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결코 적대적 모순 관계가 아니다.그들은 어떻게 보면 자본에 의해 끌려다니는 사람들이다.한 쪽이 손목을 묶여 끌려다닌 다면 한 쪽은 목줄이 묶여 있는(물론 이 차이도 엄청나지만)것이다.결국 정부 정책으로 비정규 문제를 풀어내기 전에는 개별 노조와 회사별 투쟁이 진행돼어야 한다.그렇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공감은 필수적이다.손문상은 물론 정규직의 동참을 바라는 마음,또 정규직의 비겁함을 질책하는 차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모습을 적대적 관계처럼 그렸을 것이다.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편애가 만든 것은 아니다.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의 고민은 어려웠던 것일까? 물론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나의 노동자로써의 위치가 정규직 사원을 적대시해서는 곤란하다는 논리로 나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서 봐 온 소시민적 노동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심정적으로는 동의한다.그러나 이러한 차별의 적시를 위한 적대에는 또 감정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만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에 실린 군내 내 폭력문제를 다룬 <창>이다. 주인공 병장 정철민은 군대 속어로 FM(음..뭐 모범적이다 뭐 이런 뜻이다.여자분들을 위해..)이다.나름대로 군대 역시 사회의 한 영역이라 생각하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동료애도 높고 맡은 바 소임도 끝까지 다한다.군대 상사로 부터도 인정을 받는다.우리가 흔히 대학이나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성실한 보통 젊은이이다.그의 분대에 고문관 신병 홍영수가 온다.병장 정철민은 홍영수의 교육을 담당한다.어느 정도 군인 하나 만들었다 생각햇을 즈음 훈련 중 사단장의 검열,신병 홍영수의 군장에서는 깔깔이 두 벌과 건빵,그리고 비닐 봉지가 나온다.(주:군장 무게를 줄여 편해보려는 잔꾀로 대개 말년 병장들이 쓰곤 하는 방법,물론 걸리면 죽는다)...평범하고 성실한 정철민과 분대원은 단체로 뺑뺑이를 돈다.평범하고 성실한 병장 정철민은 열받아서 어떻게 했을까?... 몇 대 때리고 밟았다.....신병 홍영수는 화장실에서 자살 미수를 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이유는 병장 정철민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청년이라는 것.또한 그가 가한 폭력이 '저 정도면 어휴 나같아도..' 하는 이런 상황이라는 것.그리고 그가 행한 폭력이 내가 군대에서 또는 사회에서 겪는 폭력에 비하며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것.이러한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약간 혼란스러웠다.그러다 곧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만화를 보면서 군대 문화에 나도 모르게 감정동화가 돼어 버린 것이다. 대개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군대 경험이 금방 만화 속 내무반으로 나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햐..우리 때도...'"나같아도'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폭력적인 군대문화 속에서  군대 폭력에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군대에는 어디나 고문관 하나 둘 있다.나 역시 그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어깨를 다독이며 돌봐주지도 않았다.대개 비웃거나 무시하거나 아님 '아휴..이 빙신..됐어.널 어떻게 믿겠냐 ..꺼져' '담에도 이러면 진짜 죽는다'  이런 언어 폭력이 주를 이루었다.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아무래도  자기를 통제하는 법,타인에 대한 고려,폭력에 대한 생각 등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이 만화의 진짜 압권은 이렇게 평범함 속에 있는 폭력,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쪽에 동화돼는 다수의 마음 속에 있는 폭력,그리고 평범함이 폭력의 가해자가 돼게끔 만드는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병장 정철민은 영창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나를 새로 생긴 작은 창이 비웃듯 맞아 주었다."

폭력을 만든 것은 나와 당신이며 또한 키운 것 역시 침묵한 나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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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2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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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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