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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혁명을 팝니다>는 매력적이다.책에도 언급되는 단어를 빌자면 'cool' 하다.부제 부터 cool 하지 않은가? '스타벅스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체게바라..^^' (국내 출판사가 붙인 건지 원래 부터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책 속에 체게바라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으니 체 게바라가 어떤 커피를 좋아했는지 애써 찾을 필요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대중문화서 답게 '대중적' 이라는 것이다.'반문화에 대한 비판' 이라는 큰 목적하에 다양한 문화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이 예들은 커트 코베인부터 <매트릭스><반지의 제왕>까지 다양하기까지 하다.또 하나의 즐거움. '반문화'의 이념형을 제시한 유명한 분들이 모두 모두 도마 위에 올려져서 모듬회 취급을 당한다.물론 나는 그분들의 얼치기 문하생이다. 그들의 혜안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권위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왜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존경하는 선배라도 딴지 걸고 시비걸고 싶은 마음.<혁명을 팝니다>는 내 개김성에 대리만족을 준다.(그렇다고 내가 얼치기 문도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나는 여전히 얼치기 문화생일뿐 그들을 배반할 생각은 없다.)이 책에서 씹히는 사람들의 면면은 '반문화 지구방위대' 수준이다.반문화'의 교조라 일컬을 만한 맑스는 물론이고 프로이트,그람시,보드리야르,푸코,<노 로고>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과로하는 미국인>의 줄리엣 쇼어,<학교없는 사회>의 이반 일리히,<맥도날드 맥도날드화>의 조지 리처.....앨라니스 모리셋,제레미 톨킨,<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선불교,생태주의..<티벳 사자의 서><역경>....북미 인디언....종이봉투....
저자들은 좌파 이론을 '반문화'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그들은 '반문화' 라는 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기 드보르가 말하는 자본의 스펙터클이라는 것은 애초 없으며 좌파가 상정하는 '체제=매트릭스'라는 관념 자체도 몽땅 몽땅 거짓말이라는 것이다.그럼에도 사회에 왜 '반문화'정서가 만연하는 것일까? 저자들은 그 연원을 밝히라는 호통에 두 명의 주범을 고백한다.맑스와 프로이트다.저자들은 니체를 거론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니체까지 더한다면 폴 리쾨르가 말한 '의심의 3인방'...고스톱으로 말하면 '의심의 3광'.. 3점이 딱모인다.결국 저자들은 ''의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매트릭스로 보고 있다.이 체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전복되어야 할 구태일뿐이다.그럼에도 혁명이라는 것이 왜 이리 더딜까? 맑스는 노동자들이 '상품물신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데 혐의를 둔다.거기에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계급들이 도덕적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를 주도하는 '헤게모니'론을 들고 나온다.자본주의는 '저항'과 '포섭'을 통해 체제에 반대되는 것들의 정치성을 배제시키고 이미지만을 수용하여 '반대'를 체제 내로 수용발전 시킨다는 것이다.(대학 1학년때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저자들은 프로이트가 이론이 아니라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부터 못마땅하다.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사회와 문화를 '억압'으로 파악한다.'반문화'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외에 정치적으로는 나치즘의 획일성이 '반문화'를 부추겻다.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이 '반문화'담론이 커지는데 공여했다는 것이다.저자들은 책 중간 중간에 '파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또하나 꼽자면 유럽의 68혁명과 미국 민권시대의 급진적 자유주의가 '반문화'의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저자들은 68세대,민권 세대-베이비붐 세대-들이 60-70년대의 수혜를 입고 성장하여 현재 사회와 담론시장에서 좌파적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본다.우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월간조선 조갑제가 몇 년전에 30대들은 이제 40대 이상의 보수주의자와 20대의 신보수주의 사이에 포위되었다며 더 공세를 펴서 싹을 없애자 라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조갑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386세대들이 그다지 문화적을 급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반문화'같은 것은 그닥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이제 386세대는 문화적으로 7080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트로트보다는 조금 낫고 젊은 애들이 듣는 락보다 후진 그런 음악이나 듣는 세대로 소비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반문화'의 오지랖은 상당히 넓다.책 초반부만 보면 흔히 말하는 대중문화에서 히피,펑크운동 정도를 생각하게 된다.흔히 말하는 '하위문화'정도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그러나 저자들의 '반문화' 개념은 더 멀리간다. '주류문화'에 반대/저항 하는 문화 전체를 '반문화'로 보고 있다.다.현재 '주류'문화가 '자본주의 문화'라고 본다면 그에 반대되는 문화들이 '반문화'의 자식들인 셈이다.그 안에는 반달리즘이나 사회적 일탈에서 반소비주의,반세계화,심층적 생태주의,형식화된 선문화,대체 의학까지 포함된다.
이 책에서 첫번째 비판되는 것은 '반문화의 급진주의'이다.'반문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순응' 아니면 '전복'으로 저자들은 규정한다.'체제' 가 은폐되어 있는 매트릭스이기 때문에 그냥 살던가 아니면 빨간약인지 파란약인지를 먹고 새로운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다.이런 급진주의는 개혁으로 체제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해봐야 오십보 백보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특히 문화적 급진주의는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까지 백안시하기 때문에 치명적이라고 쓴소리를 한다.이 지점에서 '반문화'는 끊임없이 '자기급진화'경향을 갖는 것으로 묘사된다.'반문화'의 아이콘이 시장에서 소비되고 '지위 재화'로서의 위상이 떨어지면 다른 '아이콘/상품'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저자들은 '반문화'가 그 의도와 달리-의도 자체가 무의미하듯- 자본주의 시장에서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내는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체 게바라'가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저자들의 '반문화'의 상품화의 지적,체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화와 급진성이 가진 문제의식등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가 크다.생태문제에만 놓고 봤을때, 일촉즉발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의식 변화'를 주장한다거나 일상에서의 실천적 과정에만 주안점을 두는 것이 가진 한계에 대해 일정 정도 같은 생각이다.물론 사회 속의 작은 개인의 실천적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생태주의는 도덕주의 운동의 느낌이 강하다.특히 개개인에게 부과하는 도덕율에만 너무 촛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순수한 윤리의식과 물아일체의 정신과 검소한 삶,공동체의 연대,의식의 계몽....(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말이다. ) 우리의 가치관에는 불교와 도교적인 사상이 서구인들과 다르게 몸에 박혀 있는 부분이 있다.이 세계로 들어가면 '훌륭한 개인'은 탄생하는데 '훌륭한 사회'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 요원하다. '개인의 의식 변화로 사회 전체를 바꾸자' 라는 말은 너무 지당하지만 텅빈 울림 밖에 되지 않는다.인류 역사가 쓰여지고 난 후 '의식변화'를 그렇게 외쳤는데 왜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가? '의식변화' 가 애초부터 텅빈 목소리이거나 '의식변화'가 수 천년 동안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크게 다루어 지는 부분은 '반소비주의' 비판이다.'소비주의'는 엄격한 순응체계이다.이 책에서 여러번 씹히는 보드리야르는 소비주의를 '생산 기계의 필요조건에 맞추어 인간의 소비를 대량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과잉 생산은 필연적으로 소비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보드리야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산업 체제는 대중들을 노동력으로 사회화했기 때문에 이 일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소비 세력으로 이들을 사회화,말하자면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불을 지르는것이 바로 광고이고 기업의 마케팅이다.저자들은 '총수요=총공급' 이라는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논리로 자본주의 잉여생산물이 소비사회를 강제했다는 주장에 반박한다.대신 이들은 제도학파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베블린'의 유한계급론을 인용해서 소비가 악이 아니며 현대의 소비는 '지위재화','방어적 소비' 등 '구별짓기'를 위한 자연스런 선택으로 본다.이 '구별짓기'는 '반문화의 지속적 상품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이에 대해 저자들은 '대중사회비판은 전체 문화를 억압과 순응의 체제로 취급하기 때문에 반란 스타일의 수는 잠정적으로 무한하다'라고 비웃는다.
반소비주의 문제에 있어 저자들의 시각은 지극히 시장중심적이다.그나마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광고 규제에는 동의하는 정도이다.광고나 마케팅 아니 소비사회 자체가 끊임없이 상품주기를 줄이고 지속적인 물량공세를 취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그저 소비자들의 본원적인 욕구가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자연스런 과정이라는 것만 강조한다.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거나 안이하다.산업체제 내에서 소비주의적 행위의 결과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체제 내에서 부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만 생각해 봐도 소비주의를 부추길 동인은 충분하다. 강준만 교수는 소비사회의 광고나 마케팅을 피하는 것을 '폭포수 아래서 우산을 들고 서있는 것'에 비유했다.엄청난 소비 자본주의의 물량공세를 그저 '유혹'정도로만 취급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편안하게 보는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좌파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는 여러가지 공부거리를 남겨준다.그런점에서 이 책은 이들이 언급한 '반문화'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광범위한 주제를 이 정도로 풀어서 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친 비약이 발생하기도 한다.특히 몇 몇 좌파운동가들의 책을 비판할 때나 소비주의 문제와 관련된 예에서는 비약의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반소비주의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자전거 타기 모임에 갔더니 자기보다 비싼 자전거를 전부 타고 있더라....재개발을 반대하더니 결국 그 목적은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창고형 스튜디오가 엘리트적 지위재화로 작용하고 있더라...좀 유치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이들의 비약은 이런 뉘앙스일때가 있다. '당신 반소비주의자군.그렇다면 왜 돈주고 음악CD사서 들어.그것도 소비 잖아.라디오가 있잖아.공짜잖아.그게 반소비주의 아니야' '당신 빈민운동가라며...그런데 당신은 왜 자기집이 있어.당신 집 그닥 안하겠지만 그것을 팔면 대 여섯명의 홈리스들에게 집을 지어주겠구만' ....물론 이들이 이렇게 까지 말하지는 않았다만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한다.저자들은 '반문화'에 대해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사회가 어떻게 될 지 상상해봐' 라고 말한다.이 등식을 적용해보고 그 사회적 파장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물론 캐나다와 한국이 다르겠지만- '반문화' 세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담론 영역에서 '반문화'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실의 '체제'에서 그들의 사상이 투영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그만큼 '체제'의 벽은 높고 사람들은 쉽게 '체제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단순비교를 해보아도 '생태주의자'가 세상에 많겠는가 '개발주의자'가 많겠는가? 담론 영역에서의 열세에 열이 받을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는 '문화'세력들이 훨씬 많으니 외로와할 필요는 없다.
또한 '반문화'세력이 모두 철없는 급진성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이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이 상호관계를 갖지만 붕어빵처럼 동일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믿는 사람도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이 책에서 우호적으로 씹힌 줄리엣 쇼어가 그에 대한 답을 했다.'소비주의에 반대하는 길은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내일 당장 모든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잘라버리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그러니까 급격한 소비감소로 경제가 악화될 거라고 겁먹을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