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획자들
기획이노베이터그룹 지음 / 토네이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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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들의 프로필도 쟁쟁하고 그들과 인터뷰한 인물들의 면면도 쟁쟁하다. 삼성, 현대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의 전략기획이나 히트한 상품의 기획자들의 경험담이 망라돼 있다니...

그런데 30개의 명제들을 따라 가노라면 "맞는 말이야...그런데?" 라는 의문이 따라다닌다. 각각의 꼭지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정말 훌륭한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수준의 기획자가 아닌 독자들이 그들과 같은 이들에게서 뭔가 배울려하니 그들의 이야기엔 알맹이가 없다. 훌륭한 방향은 제시를 해주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30개 각각의 주장만으로 한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니 이렇게 그냥 하나씩 맥락만 잡아줬다면 뭐라 달리 반박할 방법은 없지만 그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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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 리뷰어로 뽑힌 <농부의 밥상>을 읽었습니다. 음식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히 귀농을 꿈꾸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자연과 환경, 먹거리들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필요할 듯 합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혼분식을 장려해서 일주일에 꼭한번은 분식을 해야하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해서 혼식을 했는지 확인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햄버거 피자 등 서구의 멋지게 보이는(?) 먹거리들이 들어오고 주변의 먹거리들이 풍성해지고 대학 입학 후 집에서 먹는 경우보다는 밖에서 음식을 사먹거나 회사의 식당을 이용하면서 예전 우리 부모님들께서 즐기시던 된장이나 다른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내 식성이 빵이나 면 등 밀가루 음식을 즐기고 육고기를 즐기는 편이라 다소는 거친 느낌을 주는 향토적인 음식은 그리 즐겨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간혹 해외로 출장을 가더라도 비싼 한식보다는 저렴한 현지 음식으로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었다. 내게 밥과 밥상은 단순히 하루에 세번 주어지는 에너지를 보급 받는 시간이고 그속에서 시간적 경제적 효율만이 고려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전부터 웰빙이라는 말이 돌고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면 와인처럼 보이기에 좋음직한 것들에 눈을 돌리고 소비의 관점에서 엘빙을 고민했었다.

이책에는 자연농, 유기농으로 생활하고 자신들의 밥상을 가꾸는 10곳의 농부들의 밥상에 올려지는 음식들과 그음식들을 통해 그농부들의 생활과 철학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당장의 고된 노동과 입에 거칠고 항상 수고가 필요한 음식들이지만 그들의 밥상은 그들 생활에서 빚어지는 고된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자연이 준 선물로 보였다. 물론 나와 같이 도시에 사는 일반인이-그들을 딱히 독특한 사람으로 볼 순 없지만- 그들과 같은 밥상을 흉내내며 살 순 없지만 하루 세번 밥상머리에 앉는 순간만이라도 우리의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과 밥상을 제공하는 자연과의 연관관계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볼 계기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농부들의 투박하고 소박한 밥상을 보며 그 밥상을 차리는 농부 가족들의 평안한 얼굴 모습이 사실은 밥상보다 더 부러웠다. 교회를 다녀도 목사님이라도 막걸리를 빚고 자신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 걸 계명으로 삼고 있더라도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생선 요리를 준비하고 기독교 신자이지만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몇십년 유기농 농사를 해왔지만 손님이 가져온 농약 듬뿍 묻은 딸기를 웃으며 즐기는 농부들의 마음. 그들의 그 풍요롭운 포용의 생활이 그들의 밥상과 그밥상의 재료가 되는 자연에서 왔으리란 걸 느끼며 나는 당장 그런 삶을 살긴 어렵지만 왜 그러한 생활이 필요한지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이번에 이사한 집 베란다에 자그마한 화단이 있는데 여름에는 상추라도 심으며 아이들과 농부의 마음을 느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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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인게 뻔해 보이는 프로젝트가 떠넘겨져서 오늘같은 휴일에 출근하고야 말았다. 월화 이틀을 구미 출장가서 회의할 자료를 작성하고 원래 계획된 업무가 펑크나게 생겨서 늦은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 회의자료는 대강 마무리 짓고 원래 다음주에 처리할 계획이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잘 안잡힌다. 사실은 이일 또한 이렇게 공들여 해봐야 몇달을 못쓰고 사장될게 뻔해 보여서 미루고 미뤘는데 이젠 더 이상 미룰 시간도 없어서 간단하고 기본적인 기능들만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원체 오래 미뤄서 머릿속에 그림은 다 그려졌는데 이게 맘이 떠나서 그런지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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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7-02-2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있죠. 정이 안가는 일이^^ 주말에도 수고가 많으시네요^^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1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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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국어라는 과목에서 성적이 좋았고 한때는 잠시나마 문학소년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이 먹고 이런 저런 기회에 글을 쓰려면 왜 이리 힘들고 뭔가 어색해 보이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나 하는 원초적인 문제뿐 아니라 동일한 어휘나 단어가 반복될 때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하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고민까지 직업적, 전문적으로 글을 쓰진 않지만 많은 것을 고민하곤 한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인터넷도 뒤져 보고 동의어, 반의어를 잘 설명한 책자나 사전이 없나 찾아보기도 하지만 마땅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차에 늦었지만 국밥을 만난 건 큰 소득이었다. 작은 뉘앙스나 의미의 차이를 구별하고 우리말과 글을 쓴다면 지금보다도 더 풍부하고 아름답게 생각과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단어편으로 시작한 저자들의 고민과 노력의 결심이 앞으로 좀더 풍성한 결과물들을 가져오길 기원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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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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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EBS에서 방송되는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를 두고 말들이 많다. 도올은 4대복음 중 가장 마지막 쓰여진 요한복음의 해설을 통해 죽어 천당가기를 비는 기독교가 아닌 심오한 기독교의 진리를 알려주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기독교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도올이 주장하는 구약의 낡은 계약을 버리고 예수의 새로운 계약을 통해 유대인만의 기독교가 아닌 세계인의 기독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견 공감을 표하지만 19세기 선교사들에 의한 피동적인 수용이 아닌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한 우리나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은 우려의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이책은 도올과 같이 성경이 성령에 의해 쓰여졌으며 한글자의 오자도 없다고 주장하는 축자무오류설을 비판하지만 도올처럼 극단적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지금 활자화된 성경을 가지고도 도올과 기독교단은 다른 해석을 하게되는데 아주 옛날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필사나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과정들 속에서 의도되던 그렇지 않았건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잘못 인용되고 필사되는 과정을 통해 초기 복음서의 기자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과는 굴절되고 후세의 필요에 의해 첨삭되었거나 필사자의 실수로 인해 진정한 의도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못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한다.

동일한 예수의 일생을 서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예수의 인성에 방점이 찍혔던 마태오(마태/마태우스)복음에서 신성이 부분에 방점이 찍혔던 요한복음까지의 네복음서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오로(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의 편지로 알려진 다른 신약의 성경들 중 어떤한 곳에서 잘못 이해되어 왔는지 알려준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 이후 성경의 출판은 종교개혁의 또다른 토대가 되었다. 사도들의 전승과 사제들에 의한 성경의 해석에서 벗어나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성경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살찌울 수 있었지만 지난치게 문구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국내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서도 발견되곤 한다. 2000년전 유대땅에서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한번쯤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성경은 철학서가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서 믿음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신앙과 믿음을 강조하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 등 예수의 진정한 메시지는 잊고 문구에만 매달려 자신의 신앙을 측정하고 있진 않았는지 한번쯤은 돌이켜보는 계기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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