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에도(江戶)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미 튀김을 한 입 물었다.

“이거 굉장히 맛있군”

이에야스는 평소 검소한 음식만을 먹었다. 그러다 처음 생선튀김을 먹고는 평소와 달리 과식을 했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인지 이에야스는 복통을 일으키며 중태에 빠졌다. 주치의의 빠른 조치로 일단 건강은 회복됐지만 3개월 후에 결국은 사망했다.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킨 후 1년 후인 1616년으로 그 때 나이 75살이었다. 사망 원인은 고령에다 도미 튀김을 많이 먹은 것이 위장 장애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역사 소설 ‘대망(大望)’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오와다 데쓰오가 쓴 ‘사건과 에피소드로 본 도쿠가와 3대’라는 책에도 언급돼 있는 내용이다.

덴뿌라가 일본에 소개된 시기는 16세기 말이었으니까 당시 일본 최고 권력자의 입에도 꽤나 낯설고 진기한 음식으로 입맛을 끌었던 모양이다.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고령이었을 75세의 노인이 평소와 달리 과식을 할 정도였다.

각종 해산물이나 야채를 밀가루에 묻힌 후, 계란으로 옷을 입혀 고온의 식용유에 튀겨 낸 일본 음식이 ‘덴뿌라(てんぷら)’다.

영어로는 ‘Tempura’, 한자로는 ‘天婦羅’로 쓴다. 우리 말로는 튀김이다.

그런데 생선회인 ‘사시미’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인 ‘덴뿌라’의 유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상식을 넘어서는 의외의 사실이 많이 발견된다.

먼저 덴뿌라는 종교와 관련이 있다. 그것도 불교나 일본 종교가 아니라 천주교와 깊은 인연이 있다.

또 덴뿌라의 어원은 일본말이 아니라 라틴어다. 그것도 튀김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계절’이라는 의미다.

일본은 1570년 나가사키(長崎)항을 서양에 개방했다. 그러자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먼저 일본에 들어왔다. 특히 선교사들이 일본에 거주하면서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이 무렵 일본에 들어 온 ‘예수회’ 소속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덴뿌라를 전파시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카톨릭에는 ‘사계재일(四季齋日)’이 있다. 라틴어로는 ‘Quatuor Tempora’라고 부른다. 사계재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시작될 때 각각 3일씩 고기를 먹는 대신 생선을 먹으며 천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음식의 강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일본에서도 ‘사계재일’을 지켰다.

사계재일에는 육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고기 대신 일본에서 흔히 잡히는 새우를 기름에 튀겨 먹었다.

일본 사람들한테는 낯선 요리였다. 맛도 기가 막혔다.

‘일본 음식의 역사와 문화(The History and Culture of Japanese Food)’에 의하면 에도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튀김 요리가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튀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사원 근처에 불과했고 여기서 먹은 튀김 음식도 두부나 곡물류 정도였다.

음식을 기름에 튀기는 기술도 뒤떨어졌고 무엇보다 튀김 요리에 쓰는 기름이 참기름이었기 때문에 값이 너무 비싸 극히 소수의 상류층만 음식을 튀기는데 기름을 사용했다.

참기름보다 값이 싼 유채 기름은 등잔불을 밝히는데 썼고 아직 값싼 동물성 기름은 튀김용으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기름으로 새우와 같은 어류를 튀겨 먹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신기해서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다.

일본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탓인지 혹은 선교를 위한 목적이었든지, 포르투갈선교사들은 ‘사계재일(四季齋日)’, 즉 ‘Quatuor Tempora’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기간 동안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새우를 튀겨 먹는다는 말을 했다.

일본사람들은 포르투갈 선교사가 말하는 ‘콰투오르 템포라’ 중에서 핵심 단어가 ‘템포라(Tempora)’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말을 새우나 야채를 튀길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덴뿌라’의 유래다.

‘콰투오르(Quatuor)’는 라틴어로 4를 뜻하는 말이고 ‘템포라(Tempora)’는 계절(seasons)을 의미한다.

따라서 덴뿌라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계절이라는 뜻이 된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선교 활동의 수단으로 튀김 요리를 사용하면서 생겼다는 설로, 절을 뜻하는 ‘Temple’에서 덴뿌라가 생겼다는 설이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도착해 활동을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가 절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비교적 값이 싼 새우 등 각종 해산물을 기름에 튀겨 나눠주며 천주를 믿으라고 포교 활동을 했다.

그러자 일본인들이 절(Temple)에 가면 서양인들이 튀김 음식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템플(Temple)가 발음이 비슷한 덴뿌라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지만 신빙성은 떨어진다.

이 밖에도 ‘덴뿌라’는 타이완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 타이완에는 지금도 튀김 음식 가운데 ‘첨불랄(甛不辣)’이 있다. 일본의 덴뿌라(天婦羅)와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비슷하다. 중국어로 ‘첨불랄’은 ‘텐뿌라’로 발음된다.

발음도 비슷하고 요리 내용도 튀김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덴뿌라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튀김 기름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덴뿌라는 1770년대부터 길거리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유행을 하게 된다.

그 이전에는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지만 이 무렵부터 생선, 가재, 야채 등에 밀가루를 입혀 대나무 꼬챙이에 꽂은 후 기름에 튀겨 팔면서 서민층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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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그림은 현대문화의 ‘젖줄’이다. 그의 초월적 상상력은 현대미학의 최대 화두다. 시 소설 음악 영화 무용 등 예술 전(全) 분야에 마그리트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도 드물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끈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숱하게 복제되는 장면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겨울비’(신세계백화점 가림막에도 쓰였다)를 패러디했다고 한다. 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장면 중에는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상상력을 첨단기술을 통해 실현한 대목이 많다.

현대 록음악의 창조자인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는 마그리트의 작품 속 ‘사과’를 응용해 ‘애플레코드’사를 설립했고, 롤링스톤즈도 마그리트의 작품을 응용해 레코드판을 디자인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저 유명한 그림 ‘빛의 제국’<사진>은 국내서 최근에만도 3명의 소설가(김영하 김연수 정이현)가 소설로 녹아낸바 있다. 특히 밤과 낮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기이한 분위기의 역작 ‘빛의 제국’은 문학을 하는 작가들을 가장 매료시키는,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 김연수는 그의 단편소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화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자꾸 보니 그림 속 지상의 시간은 분명 밤인데 하늘의 시간은 낮이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영역(낮과 밤)이 모인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세계가 재편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후 작가는 술술 소설을 써내려갔다. 김영하도 신작소설 ‘빛의 제국’에서 밤이면서도 낮인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빛을 차용했고,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미학 오딧세이’에서 마그리트의 작품과 철학을 자주 인용했다.

심지어 2003, 2004년 연세대 논술고사에서도 마그리트의 작품이 출제돼 암기력에만 의존했던 적지않은 수험생들에게 한방 먹인(?)바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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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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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란 무엇일까? 찬란한 반만년의 문화 유산은 어디에 이어져 있을까? 조선말 이후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 속에 고리타분하고 낙후한 옛 것들을 다 버리고 선진국들을 따라 잡느라 애써온 우리에게 남아 있는 우리의 것이 뭐가 있을까? 겨우 겨우 명맥을 이어온 전통 문화들이 있지만 정말 어쩌다 겨우 한두번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 문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표지와 제목만으론 구한말의 신소설을 떠올리게 했지만 가장 힘든 곳에서 힘들게 우리의 문화를 지켜오고 사회적 약자로써, 특히 여성이라서 겪어야만하는 애환들을 가진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것을 지켜내는 일이 <서편제>에서나 봤던 응어리진 한이 타박네에게도 오마담에게도 그리고 끝내는 미스 민에게도 이어져 내려온다. 어렵고 모진 삶 속에서 진정한 소리를 찾는 이들처럼 그녀들의 애환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돌아 볼 수 있었다.

뉴욕과 유행을 같이 하는 이땅의 어느 곳에 이제는 다 잊혀져 그 존재감 마저 없어진 기생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삶의 터전인 부용각을 배경으로 보여지는 인간 군상들 속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그녀들의 그늘진 모습이 애처롭다. 제대로된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식을 포기하는 어미가 되고 남자를 믿지 못하지만 진정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리 살 수 없는 기생의 숙명에서 도망칠 수 없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머지 않은 미래에 명맥이 끊기고 사라질 운명에 꿋꿋이 맞서는 그녀들의 용기가 옛날 이름을 날렸던 고고한 기생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내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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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살살 녹는 케이크, 부드러운 스테이크, 감칠맛 나는 소스가 얹어진 샐러드, 향기가 입안 가득 머물고 있는 포도주, 부처님이 음식냄새에 담을 넘었다는 불도장, 샥스핀 등등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향기를 음미하면서 즐기는 식사는 먹는 즐거움 그 이상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식사다. 즐거운 식사는 스트레스를 없애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방법이 요즘은 난무하지만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쳐흘러 모든 병의 원인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음식도 그냥 먹으면 안 되고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골라서 먹어야 된다고 한다. 아무리 먹고 싶지 않아도 건강에 좋다고 하면 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더 스트레스를 줄 때가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때의 기분은 즐거움을 넘어 일상의 피로도 회복시켜준다.

웰빙을 지향하는 시대에 건강을 위한 식단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것처럼 사람의 기분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도 없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식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지만 그것처럼 가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가난은 행복한 삶을 위태롭고 고통스럽게 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지만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식사를 한다면 그것처럼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도 없다. 불행한 삶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식사이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자의 슬픔
빈세트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가난한 자는 하루를 보내기도 버거운 날들 속에 가족이 생기고 그 가족들 때문에 할 일은 넘쳐나 몸은 곤고하다. 아침이 오면 가난이 사라져 주기만을 기도하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가난은 불어오는 바람도 빛나는 햇살도 느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내일은 언제나 무섭게 다가올 뿐이다. 그들의 하루는 생존을 위한 시간만 존재한다. 노동이 신성하다고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노동은 끝도 없는 고통만 선사할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이 작품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목사였을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품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흐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리게 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에 대해서 ‘등불 아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땅을 경작할 때 쓰는 바로 그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림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과,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등불 아래 커피와 감자를 나누어 먹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의 모습에서 비장함마저느껴진다. 고흐는 화면 중간 중간 노란색으로 붓 터치를 거칠게 넣음으로써 빛의 효과를 주고 있으며 이 작품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화면을 어둡게 처리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노동자의 삶을 사랑했다. 이 작품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대규모 구성 작품으로서 다섯 명의 시선이 다른 것은 그동안 작업한 것을 한 화면으로 옮겨 그렸기 때문이다.

식사, 또 다른 즐거움
에두아르 마네의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

일상적으로 도심에서 하는 식사도 즐겁지만 때로는 황금빛 햇살 아래 휴식을 취하기 위해 피크닉을 떠나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먹는다면 더 큰 즐거움은 없다.

식도락가들은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먼 곳까지 원정도 불사한다. 그들은 일을 하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맛있는 것을 향한 욕구가 강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한다. 맛있는 식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먹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피크닉의 더한 즐거움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묘한 해방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먹는 즐거움의 두 배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사과도 몰래 먹는 사과가 맛있는 것처럼.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지만 벌거벗은 여성 때문에 에로티즘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작품이다. 살롱 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낙선작 전시회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충격 때문에 다른 어떤 작품보다 유명해졌다. 이 작품으로 인해 마네는 첫 번째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작품이 당시 비평가는 물론 대중에 비난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남자들이 당시 유행하는 옷차림을 한 부르주아로서 벌거벗은 여인과 대낮에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비도덕적인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외설 시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이 작품에서 화면 정면에 앉아 있는 벌거벗은 여인이 빅토리아 뫼랑이다. 그녀는 관람객을 향해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앉아있고 화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과 뒤로 보이는 여자의 시선은 관람객을 외면하고 있다.

그 당시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인 여성의 누드는 이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 작품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했기에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더군다나 위대한 자연 앞에서 외설스런 포즈로 앉아 있는 모델의 벌거벗은 모습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의 이미지였기에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들과 대중은 에로티즘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신화 속에 숨겨진 의미로서만 보았었다. 실제 삶 속에 있는 창녀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 작품을 전시장에서 본 것에 당혹감을 느꼈던 것이다.

마네에게 여인은 환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여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벌거벗은 여인에 가려져 있지만 정물화가로서 마네는 빵과 바구니 그리고 자연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화가 박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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