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床錄 - 김관식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肝, 心, 脾, 肺, 腎……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 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 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결코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 나는 늘상 주눅들어 있는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난을 노래하나 결코 구차해 보이지 않는 시인의 기백이 느껴지는 멋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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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사진 출처: http://blog.empas.com/jix777/read.html?a=15305498

정말이지, 이 세상 무엇으로도 내 마음 속의 외로움을 몰아내지 못할 것 같은 날이 있다. 나이를 자꾸 먹으면서 깨달아가는 것은, 그 외로움은 결국 내 심장이 멎고, 내 감은 두 눈이 다시는 떠지지 못하는 그 날까지 나와 함께 해야 할 내 친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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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일
- 박수근의 그림에서.                  - 장석남

  인쇄한 박수근 화백 그림을 하나 사다가 걸어놓고는 물끄
러미 그걸 치어다보면서 나는 그 그림의 제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보곤 하는데 원래 제목인 「강변」도 좋지만은 「할머니」
라든가 「손주」라는 제목을 붙여보아도 가슴이 알알한 것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장
면이 떠오릅니다. 그가 술을 드시러 저녁 무렵 외출할 때에
는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빨래를 개는 손이 참 커다랐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장엄
하기까지 한 것이어서 聖者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멋쟁이이긴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
이 꼼지락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갔
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 빨래를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
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
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
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가을이 되어 오는지……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아이들의 이미지를 그린다.' 화가 박수근이 한 말이다. - 김용택의 코멘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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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책 읽는 여자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가사, 남편, 경우에 따라서는 애인조차 잊어버린다. 오직 책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지닌 내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경제면을 펼치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편은 가장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녀의 생각은 지금 전혀 딴 곳에 가 있고, 남편은 그곳으로 아내를 쫓아갈 수가 없다. 남편은 아내가 저곳 안락의자에, 창가에, 소파에, 침대에, 기차 칸에 있는 것을 보지만, 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다. 그녀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고 있지만 남편이 옆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인 당신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264쪽

나이가 들수록 여자에겐 때때로 책이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269쪽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슬픔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 몽테스키외-271쪽

"현 존재를 견디는 유일한 방식은 영원히 지속되는 광란의 축제처럼 문학에 열광하는 것이다." - 플로베르-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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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유행할 때 제목 보고 시시할 거라 생각하고 안 읽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소설도 읽고 싶어진다.
이 영화를 보며 배운 점이 있는데 -_-;
어떤 조직에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key person을 공략해야 한다. 이 영화에선 나이젤이 그에 해당하는 인물 되겠다.
둘째, 절대 밀려날 수 없다는, 이 앙다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리포터 미발표판이라 해도 구해오는 그 자세 -
셋째, 사람의 심중을 읽고, 미리 헤아려서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 두는 센스.

오늘 내가 속한 조직에서 힘든 일들이 좀 있었는데, 고군분투하는 앤디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부분 공감하기도 하고. 재밌는 영화여서 기분이 확 풀렸다.
패션이나 명품에 관해선 잘 모르니까 그냥 봤지만 잘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분명 보는 내내 침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사실은, 이 세상에서 눈이 제일 큰 사람은 앤 헤더웨이라는 것. 내 눈의 세 배 이상은 족히 될 것 같은 큰 눈이 놀랍기만 했다;;; 이 사진에서 입고 있는 옷이 내가 제일 맘에 들어했던 out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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