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床錄 - 김관식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肝, 心, 脾, 肺, 腎……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 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 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결코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 나는 늘상 주눅들어 있는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난을 노래하나 결코 구차해 보이지 않는 시인의 기백이 느껴지는 멋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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