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ㅣ Mr. Know 세계문학 24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작가 루카스 요더, 편집자 이본 마멜,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독자 제인 갈란드, 소설을 둘러싼 이 네 입장에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루카스 요더는 펜실베이니아 독일인으로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소설을 쓰는 노작가이다. 이 책은 요더가 자신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소설을 탈고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이 소설은 '그렌즐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 될 것인데, 그렌즐러란 요더의 상상 속 독일인 거주 마을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드레스덴'을 모델로 한 곳이다. 나는 네 인물 중에 요더를 제일 좋아했는데, 소설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남의 의견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문학관을 뚜렷하게 견지하는 주관, 외부의 악평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탄탄함, 그러면서도 결국엔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유연함.. 이런 점들에서 인간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참 이상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본 마멜은 요더의 책을 출판해 주는 키네틱 출판사의 중견 편집자로서 자신의 삶을 소설을 편집하는 데 바친 사람이다. 요더의 그렌즐러 시리즈의 첫 몇 권이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음에도 끝까지 요더를 변호하여 마침내 그렌즐러 시리즈를 성공시킨다. 능력 있는 편집자로서 요더에게도 스트라이버트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며 나중에는 제인 갈란드와도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된다.
칼 스트라이버트는 드레스덴의 메클렌버그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이자 평론가이다. 문학 평론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공부밖에 모르는 외곬수이다. 스트라이버트는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을 깎아 내리고 '의미 있는' 미국 작가를 새롭게 제시하면서 유명해진다. 평론가답게 요더를 내심 얕보며 자신의 문학관을 주장하고 그런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제인 갈란드는 드레스덴에 거주하는 부유한 사업가로서 문학 애호가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제인은 지역 문학 모임에 자주 얼굴을 내보이며 작가, 편집자, 평론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녀의 손자 티모시는 매우 재능 있는 젊은 소설가이자 평론가로서 활약하는데..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 같은 사건이 터진다.
이 소설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소설이 이상적인 소설이며 소설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요더가 쓰는 것과 같은, 잊혀져 가는 문화를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문화적 유산을 남겨주며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이 좋은 소설인가? 칼 스트라이버트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그 시대의 주요 문제'들을 미학적으로 암시하며 대중을 선도해 가는 소설이 좋은 소설인가? 사실 우리 일반 독자들은 어쩌면 이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재미있고 나를 돌아보게 해주고 감동을 주면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나처럼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골수팬이든지, 아니면 문학 전공자들이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소설이다.
이 소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지만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 소설이 하나의 소설을 바라보는 작가, 편집자, 평론가, 독자 이 네 사람의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것보다는 각 개인의 개인사가 위주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럼으로써 재미는 더해졌을 수 있겠지만, 정말 이 소설이 추구하려고 했던 것을 이루어 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렇게 된 것은 상당 부분 편집자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주로 서는 입장인 '독자'의 이야기가 가장 비중이 작았다는 것도 아쉬웠다. 독자가 소설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일까? '독자 제인 갈란드' 편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흥미를 돋울 뜬금없는 사건만 터뜨리고 있어서 '우리들' 얘기를 제대로 해 주지 않은 작가에게 조금 서운했다.
또 하나, 소설이 만들어내는 경제적인 효과 면에서.. 베스트셀러 소설가는 - 특히 미국과 같이 시장이 큰 나라에서는 - 가수 보아와 같이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이 소설 속에서도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소설의 몰락과 출판사 경영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렌즐러 시리즈'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으면서도 검소하게 살면서 자신의 수익을 지역 사회와 문학계에 환원하는 요더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우리 나라에서도 요더 같은, 또는 현실 속의 조앤 롤링 같은 부자 소설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더욱 다양하고 더욱 위대하고 더욱 재미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 - 남의 나라 이야기라서 그런지도.. -, 그리고 적당한 지적 자극, 깊이 있는 인물 묘사가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었다.(올해 읽은 첫 번째 보석!) 그리고 여러 가지를 뛰어 넘어, 네 인물 모두 소설에 대한 열정이 한결같이 뜨거워 나까지도 마음이 뿌듯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