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디오를 하나 샀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건 열라 비쌀테니 애써 찾아볼 것 없이 대충 괜찮으면 사자 싶어서, 그냥 책장 한 칸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기본 기능만 있는 저렴한 걸로 골랐다. 그래서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사용해 본 결과는 완전 대만족. 특출나게 좋거나 나쁘지 않은 지극한 적당함이랄까 ㅎ 처음엔 트레이가 하나 더 있었으면 싶었으나 2-3시간 연이어 음악을 들을 짬이 없으니 하나로 됐고, 카세트데크는 탑 부분에 매몰식?으로 들어가있어서 외관으로 보이지 않아 깔끔해서 좋다. 굳이 없어도 되지만 이렇게 티 안 나게 있어주니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고맙게 쓸 수 있어서 든든. 그 외에도, 아주 조예가 깊은 음악감상을 하는 것도 아닌 나에겐 딱 필요한 만큼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버릴 것도 바랄 것도 없이 말 그대로 적당해서 좋다.
오디오 덕분에 생활 패턴에도 약간의 변화가 왔다. 알람으로 설정해놓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깨는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아침이 이렇게 상쾌하다는 걸 지금까지 정말 까맣게도 잊고 살았다. 새벽 6시가 이렇게 환하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운 감격. (바보는 새삼스러운 게 많아서 행복하다) 겨울 내내 추위에 너무 시달려 한낮의 초여름 날씨를 느끼면서도 일찍 일어날 생각을 전혀 못 했는데, 뜻밖에 오디오가 이렇게 하루의 시작을 내게 선사해줬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올 봄, 이 적당지극한 오디오 덕분에 만끽하고 있는 앨범들은
넬 5집. 주문을 하고선 벌써 5집이구나.. 생각하다 움찔, 하,,, 10년도 훨씬 더 넘었네, 놀라버렸다. 진짜, 놀랐다. 1999년 봄, 종로의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저 빨간색 음반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선명한데. 영화 nell 을 보고 감명받아서 밴드 이름으로 쓰게 됐다고 어눌하게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마침, 지지난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넬이 나왔었다. [기억을 걷는 시간]을 심장에 숭숭 구멍난 채 듣고, 이어진 토크에서 4년 만에 방송하는 거라고 하는데 또 머리가 띵.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서 [Stay]를 부르던 장면이 난 또 생생한데... 어떻게 13년 전 일이, 4년 전 일이, 이토록 또렷하게 남아있는 건지.
그건, 아마도, 그들이 그 엄청난 시간의 간극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온전하게 보존해 온 덕분일 것이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새 앨범이 나오고 그들의 음악과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종로 거리와 빨간 자켓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었으니까. 가끔은, 매번 그 음악이 그 음악이라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결국 난 그 느낌에 끌려왔고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유희열이 물었다. 넬스러움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 것 같으냐고. 멤버들은 식상한 대답을 했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들이 하는 거.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그 모든 것.
내가 갖고 있는 넬스러움은 바로 13년 전의 그 느낌이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던 봄날을 아련하고도 서늘하게 만들어버리던 목소리와 사운드. 저 가슴 한 구석에 처박혀있던 "날 것 그대로의" 고독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한기를 느끼며 난, 저마다 얼굴에 봄빛을 띤 사람들 속을 하염없이 걸었었다. 거리는 봄의 것이었지만 나는 겨울의 것이었던 그 때의 정서는 이후로 넬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반복되었다. 한결같이 온전한 그들의 음악에, 마치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난 시디를 걸고 가사지를 쭉 훑다가 한순간 주사바늘이 들어오기 직전에 경직되듯 멈칫 굳어버렸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Slip away] 의 한 구절, 이런 처절함.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는 나를 위로했지
하지만 모르고 있는 듯 해 뭐가 날 이렇게도 슬프게 하는지
혼자 남겨질 그 날들보다
잊혀질 날들이 눈물겹다
너를 가질 수 없는 것보다
나를 줄 수 없음이 아프다
가질 수 없는 것과 줄 수 없는 것. 그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비참함을 미묘하게 구별지어 표현해내는, 유독 슬픔의 영역에서 섬세하게 발달된 감정분화능력이랄까 그런 것이 점점 더 세밀해지는 것 같다. 이런 노래를 듣는 봄날은 봄날이 아닐 수 밖에 없다. 아픈 곳을 이렇게 아름답게 후벼파기도 힘든데 ㅠ 혹자의 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론 그들의 음악이 위로가 되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Slip away 가 끝나고 나면 수록곡 리스트에는 없는 연주곡 하나가 조용히 흘러 나온다. 이런 히든트랙은 왠지 조금 더 내밀하게 전해주는 선물같기도 하고 돈 받고 파는 음악이 아니라 진짜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음악같은 순수함이 더 느껴져서 자연히 마음이 더 끌린다. 꿈결을 걷는 듯한 선율... 일관되게 아름답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박. 슈스케는 한 번도 안 봤다. 존박이나 허각의 이름을 기사로 몇 번 접해서 노래를 어떻게 하는 지 무척 궁금했는데, 일찌감치 가수활동을 시작한 허각은 취향에 맞지 않았고.. 존박은 일단 목소리가 좋았는데, 그가 뮤직팜에 들어가 무려 김동률과 함께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땐 하루하루 손꼽으며 앨범을 기다렸다.
Falling 이 시작되자 심장이 간질간질. 다른 곡들 역시 김동률 특유의 소심한 가사도 여전히 귀엽고 그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멜로디도 좋고, 모든 곡이 흡족하다. 김동률의 목소리에서 물기를 빼고 말린 것 같은 존박의 목소리도 참 좋고. 이제 내게 김동률의 음악은 그 자체가 좋아서 듣는 것이기도 하지만 편안해서 찾게 되는 오랜 친구같은 것이기도 해서, 어떻게 보면 더 특별하지만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도 않은 당연한 일상같은 것이 되었다. 잘 지냈는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이야기를 듣는 마음...
근데, 이렇게 나처럼 김동률에 워낙 익숙해있는 입장에서 보면 좀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있다. 김동률이나 전람회를 거치지 않고 들으면 그 자체로 좋을 수 있는데 이게 마치 김동률 앨범에 존박이 객원보컬로 참여한 것 같아서, 역시 김동률이야, 가 되어버리는 것. 음악적 취향이나 추구하는 바가 비슷해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존박에게 김동률은 하나의 숙제가 되어버릴 것 같다.
뭐 좀 들을까 하고 보면 자연히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에피톤 프로젝트. 줄기차게 듣다가 좀 지겹다 싶어 치웠다가도 이내 다시 듣게 되는 음반이다. 잔잔한 감성이 들을 수록 깊어진다. 그러고 보니 지지지난;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엔 [선인장]을 불렀던 심규선이 나왔었다. 루시아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나 보더라. 목소리가, 음반이랑 똑같이, 정말 예뻤다.
포털 다음 메인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돌아왔다! 2집 티저 공개] 라고 뜬 거 보고 급 클릭해봤더니 새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보니까 알라딘에도 예약안내가 되어있다. 하. 또 간질간질... 설렌다. 근데 돌아오긴 뭘 돌아와. 어디 간 적 없어요. 내 곁엔 늘 있었답니다...
역시, 여전한가. 여전해서 질리는가 여전해서 좋은가 하는 것은 경계가 참 아슬아슬한데, 이렇게 아슬아슬한 지점에 위치해있어서 더 좋은 걸까. 여전해서 질리고, 질리니까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여전해서 좋고, 좋으니까 질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지겨울 때는 있으니까.
지겨운 걸로 끝이라면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이고, 결국 뭔가를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지겨워도 다시 찾게 만드는 힘 때문인 것 같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워도 어느 날의 아침은 진심으로 사랑스럽기 때문에 산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인 것처럼. 흔한 이별 이야기가 지겨워 듣기 싫어도 어떤 노래에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흩트려 놓는 갖가지 감성들을 조곤조곤 펼쳐놓는 에피톤 프로젝트, 이 음반들이 지겹다가도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흔한 듯 흔하지 않은 감성.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노래...
어쨌든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음악들. 내 봄은 이렇게 채워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