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좀 뜨악.

안철수 룸살롱 운운 기사는 지난 4월에도 나왔던 걸로 알고 있고 '논란의 진원지'라는 2009년도 프로그램이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오늘 한겨레신문 기사에는 '무릎팍도사'는 커녕 '예능' 내지 '오락' 이라는 말 한 마디 없이 '방송사 대담 프로그램'이라고 적혀 있었다. 논란의 그 프로그램이 마치 공식적인 검증 성격이라도 띄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뉘앙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이야 원래 그 수준이려니 하지만, 농담삼아 주저리던 얘기를 심각하게 둔갑시키는 한겨레 기자의 묘수는 참 뜬금없다..

 

 

'대담 프로그램'이나 '사회자의 질문' 같은 말이, (아무리 강호동의 무릎팍도사가 진정성을 추구하는 방송이라고 해도) 예능과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 건 분명하다. 무릎팍도사가 대담 프로그램이 아니냐, 강호동이 사회자가 아니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면 왜 인터넷판은 위의 종이신문과 내용이 다른 건지 모르겠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8651.html

 

실수라고 해도 이상하고, 실수가 아닌 고의라면 더 문제 아닌가. 기자가 은근 안철수 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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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그렇고 또 청춘 특강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저자 면면이 그냥 넘겨버릴 분들이 아니라서 주문하고 보니... 잘못 생각했던 거구나. 청춘은 웬 청춘. 특강의 첫 주자인 김진숙부터 피와 땀이 철철 흐르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크레인에서 309일을 버텨낸 기적이 나는 아직도 남의 일같고 낯설다. 그 기간 동안의 수많은 기사와 사진을 접하면서 가슴으로 눈물 한 번 흘려본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눈으로만 읽고 말은 입으로만 했다. 목숨을 이어가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 1년여의 기간이 그녀에게, 그녀의 동료들에게, 또 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은 흔들림없이 무지했고 입으로만 뻔한 단어들을 주워섬겼다.

 

내가 사는 부산의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났던 작은 전쟁. 나는 그 때 편안한 내 방에서 모니터로 기사를 보고 마우스나 깔딱거리며 얄팍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그녀의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고 해서 그 시간들의 절박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가 없다. 살아서 내려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던 상황이 담담하게 이어질수록, 깃털보다 가벼웠던 내 '지지'가 수치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메마르고도 뜨거운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녀의 토로에 가슴이 아프게 뛰었다. 그리고 이 말이 머리를 쾅. 쳤다.

 

1월 6일에 크레인에를 올라가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춥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것도 새벽 3시에. 6시에나 올라갈걸, 그럼 세 시간은 덜 추웠을 것 아니에요.(웃음) 그 때는 무슨 대의명분, 이런 것 없었어요. 2003년도에 그 일 있고 나서 크레인을 어찌나 단도리를 해놓았는지, 자물통을 큼지막한 걸 매달아 놓고 쇠사슬을 몇 겹 둘러놓은 거에요. 그걸 자른다고 한 시간을 씨름하다가 올라갔는데요. 계단으로 사수대들이 있던 중간 지점을 지나서, 제가 있던 공간까지 올라가려면 원통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통이 20미터 높이에요. 그런데 거기는 깜깜절벽이거든요. 크레인의 동력선 자체가 끊어져 있으니까요. 사다리도 없어요. 철근 하나 끼워놨는데, 거기 올라가는 게 엄청 힘들어요. 안나푸르나를 타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그녀가 올랐던 CT-85호 크레인은 동지 김주익이 2003년 10월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농성을 129일간이나 벌이다가 결국 목을 매 자살했던 그 크레인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문재인은 청와대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나와서 제2의 인생을 즐기기위해 안나푸르나로 트레킹을 떠났다.

 

2011년이 시작되던 겨울, 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노동자도 트레킹을 떠났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35미터 상공으로. 삶이 휘청이다 그대로 스러져버린 동지들을 보내놓고, 웃는 것도 죄고 등 따순 것도 죄라서 한겨울에도 냉방에서 자고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는 김진숙. 밧줄 하나에 의지해 저 동굴같은 원통을 오르던 그녀에게 안나푸르나가 떠오른 것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김주익의 죽음과 그녀에게 곧 닥칠 지도 모를 죽음을 관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실책을 잘 알기에 더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지지하는 분이긴 하지만, 그 뼈아픈 후회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겠느냐에 관해서는 아직은 회의적이다. 예전에 <운명> 북콘서트에서 하셨던 말씀도 불현듯 떠오른다. 경제정책 실패를 아프게 인정하고 노동문제를 소홀히 다뤘던 부분에 통감하면서도, "노동자들이 노무현은 다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한꺼번에 많은 요구사항들을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그거 받아달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었을까? 또, 받아주면 안 될 일이었을까? 나라가 망합니까?...

 

한때는 노동자들의 든든한 빽이었던 노무현. 한창 노동운동의 변호인으로 활약하던 시절, 김진숙이 수감되었을 때 면회를 와서는 재판 이야기는 안 하고 시시콜콜한 수다만 한 시간 동안이나 늘어놓는 것이 의아해 "대체 왜 오신 거냐"고 묻자 "진숙씨 수감생활 지루할까봐 놀아줄라고 왔지요" 라고 했다던 노무현. 그러던 노무현이 정치계로 떠나고 노동운동을 하던 '똑똑한' 사람들도 다 정치하러 가면서 노동자들은 외롭고 잔인한 섬으로 남았다. 살기 위해 싸우다 죽어나가는 동지들을 보면서 "시대가 변했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신들이 좀 너무했다"는 유력 대선 후보 문재인의 말도 들어야 했다. 눈 앞에서 여전히 동지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활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삶 전체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어떻게 시대가 변한 것이며 우리가 너무한 것인가. 당신이 휴식 차 떠났던 안나푸르나보다 더 힘든 크레인을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당장 살고 있는 현실인데.

 

김진숙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처절한 문장을 그저 늘 그렇게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만 보아왔던 시간들이 사정없이 너덜거렸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일일 체험을 했던 문재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편의점에 잠깐 서있으면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기업 본사와 점주와의 계약이 얼마나 불공정한지, 그 불공정계약으로 인한 손해를 결국엔 아르바이트생이 처참한 시급으로 부담하고 있는 약자착취 구조에 대해 관심이라도 갖게 되었을까? 개혁의지가 샘솟았을까? 최저임금 보장, 비정규직 철폐 따위의 추상적인 구호를 위한 형식적이고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한 건 아니었을까.

 

올해 대선의 주인공이 누가 되든 실제 노동자들의 삶을 철저하게 한 번 들여다보시기를 바란다. 한걸음 물러선 자리에 앉아 머리로만 구상하지 말고 최소한 김진숙과 한번쯤 대화를 나눠보셨으면 좋겠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피고 땀인 그녀의 삶을 듣다 보면, 당신들이 평생 글자로만 습득했던 지식이 얼마나 허울뿐인 것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알바 체험따위 백 번 천 번 해도 알 수 없는 진짜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 무엇인지 뼛속까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인 부의 증대를 위해 숫자놀음이나 하며 피와 땀을 우습게 아는 자들의 징징거림에 속아넘어가는 "또 한 명의 바보"가 되지는 말기를... 다시는 노동자들이 안나푸르나보다 힘든 크레인을 타는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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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7-2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건조기후님. 이렇게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박근혜와 차별화하려고 남성성을 내세우는 것도, 이해가 아닌 체험으로 그치는 것도 좀 아쉽네요.

건조기후 2012-07-22 21:19   좋아요 0 | URL
안나푸르나 라고 하는 순간 등골이 뻣뻣해지더라고요.. 무식하다고 고백하는 부끄러운 글이에요.

남성성을 내세운다고 하시는 것은 특전사 시절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와서 그런가 싶은데요 (혹시 다른 일이 있었나요?) 저는 그런 점은 의식하지 못 했고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이 워낙에 아들들까지 신의 아들이 많아서 차별화라면 그런 부분에서 차별화되는 거 같아요.

인간적으로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민주당도 그렇고 여러모로 못 미덥긴 해요. 지금이야 또 다른 훌륭한 대'안'이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하고요. 어떻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Arch 2012-07-24 09:38   좋아요 0 | URL
댓글 달면서 '한줄만 쓸걸' 했어요. 뒷부분은 건조기후님 글을 읽다 생각난거지만 앞 구절의 '남성성' 부분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거라서요. 건조기후님이 짚은 부분이 맞아요. 남성성을 내세웠다기보다는 특전사 시절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 부분을 언급하려고 했던거였어요.

건조기후 2012-07-25 13:57   좋아요 0 | URL
저는 여러가지 군사행정이 비합리적인 게 많고 군대문화라는 것도 좀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부분이 많아 혐오스럽긴 하지만 국방력 자체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군대에서 적응 잘 하는 남자들 능력있는 군인들 멋있더라고요. ㅎ 제 바람 중의 하나가 민족주의적 사고로 무장하고 문무를 겸비한 제대로 된 군인 한 번 보는 거에요. ㅎㅎ 어딘가에 있긴 있겠죠?

스스로 남자답다고 내세울 거라곤 군대 갔다온 것 밖에 없는 저질 마초들은 답이 없지만요 ; 병역의무가 있는 나라에 태어나 젊은 시절 희생해가며 충실하게 수행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같아요.. (아치님께서 그랬다는 뜻은 아닌데 말이 좀 엉뚱하게 흘렀네요;;)

아그리젠토 2012-09-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대'안'에도 회의적...안철수씨가 과연 노동자에 관한 발언이나 액션이 있었던가요..?
 

이번 달부터 한겨레신문 월구독료가 올랐다(15,000원→18,000원). 지지난 주인가 신문 1면에 안내문이 실렸길래, 공고 전에 1년 계약으로 구독하던 사람까지 적용하는 건 좀 부당하다고 고객센터에 글 올렸더니 이번 계약기간 동안은 기존 구독료대로 납부하라고 했다. 대신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한겨레가판대앱 무료이용은 못 하고, 구독료납입은 본사로 자동이체하던 방식에서 지국에 지로납부하는 방식으로 해야한다고. 난 뭐 앱은 상관없고, 지로납부는 귀찮지만 어차피 인터넷으로도 되니까 그러겠다고 했는데

 

오늘 지로용지가 신문이랑 같이 왔길래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납부를 하는데 지로 청구인명으로 뜨는 것이 [중앙일보고객서비스센터]. -_- 지국에서 여러 신문 함께 취급하는 걸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내 계좌의 거래내역에 저런 이름이 찍히는 건.. 좀.. 싫다. 그냥 기부하는 셈치고 인상된 요금대로 낼 걸...

 

암튼 한겨레에 3월부터 <조국의 만남> 코너가 새로 생겨서 좋아라하며 보고 있는데, 첫 인터뷰대상자였던 무한도전 김태호피디♡를 시작으로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성근 야구감독,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신 전순옥 국회의원 당선자 그리고 지난 주 문재인의 인터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대상인 분인지라 신문에 본기사가 실리기도 전에 인터뷰 내용이 언급돼서 빨리 읽고 싶었던 차에, 막상 신문을 펼치고 눈으로 보게 된 사진 한 컷이 어찌나 훈훈하던지. 이 인터뷰들 어차피 나중에 모여서 단행본으로 나올테지만 그래도.. 하며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데, 이번 기사는 완전 더 못 버리겠어..

 

<조국의 만남> 문재인 인터뷰 보기

 

정치인에 대한 지지여부 기준이라는 것이 당연히 그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 그것에 기반한 구체적인 정책이 되어야 하겠지만 개인적인 매력을 포함한 외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는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은 여러모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일단, 실언이 잦고 행동거지가 진중하지 못했(다고 비아냥을 많이 받았)던 고졸 노무현과 달리 이 곳 부산에서 꽤 먹히는 이유가 바로 저 중후한 외모 덕분이기도 하니까. '대졸' 법조인 이력에 안정된 이미지가 적극적인 지지로까지 이어지는 건 별도로 치더라도, 최소한 노무현에게 쏟아졌던 유치한 공격들을 받고 있지는 않다.

 

노무현의 걸음걸이조차 못마땅해했던 엄마도 문재인은 볼 때마다 인물 괜찮다고 좋아하시는데, 뭐 이건 그냥 엄마 한 사람의 반응에서 엿볼 수 있는 변화이고 아니 그 자체로 변화라고까지는 말 할 수도 없지만, 단지 인물에 대한 단순한 호감일뿐이더라도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정치적 변동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이 된다면 그것도 꼭 나쁜 건 아닐 거다. 물론 이런 방식은 분명 지양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이미지에 취약한 대중의 속성이 사라질 리는 없을 것이고, 결국 실제로도 존경할만한 분이 좋은 용모와 이미지로 어필까지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테니까.

 

근데 왜 새삼 외모 타령.. ㅎ 저 사진 보면서 어휴 진짜 그림 된다 그림 돼, 감탄했는데 다시 봐도 그렇구나. '그림 된다'는 게 오로지 생김새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살아가고 있는 삶과 그 이야기들이 갖는 아우라 덕분에 빛나 보이는 것이지. 저런 외모로, 보온병을 진지하게 살펴본다거나 남의 집 아들 몰카 현상공모하고 MRI 불법입수해서 농간질이나 친다면 그림 되니 어쩌니 우스갯소리나 할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속편하게 외모 운운 하는 건, 그저 존경할 뿐 달리 할 말이 없는 분들을 향해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팬심의 일부. ㅋ

 

이렇게 좋은 분을 정치인으로 얻었지만 내 평생 그토록 마음을 다해 좋아한 적이 없었던 정치인을 잃은 슬픔은, 또 그저 슬픔. 마침 요 며칠간 [노무현 평전]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다른 책을 고르느라 들락거리다가 이 책이 5월 23일 '오늘의 알사탕 도서'인 걸 알았다. 보자마자 웃겨서 큭 하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이제 알사탕까지 감동적인 알라딘, 3주기는 알사탕 덕분에 웃어요. 하하하 ㅜㅜㅜ

 

그리고 마침 이런 글이 올라와 있는 걸 봤다.

 

 "노무현 3주기, 그는 실패한 대통령일까" 


오는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 3주기다. 1주기가 슬픔을 잊지 못한 추모의 공간이었고 2주기가 조금은 무던해진 기억의 시간이었다면, 이번 3주기는 인간 노무현을 넘어 역사와 시대 속에서 성찰을 시작하는 새로운 계기가 아닐까 싶다. 마침 국내 유일의 평전 저술가 김삼웅이 노무현 탄생 65주년(2011년 9월 1일)에 맞춰 연재를 시작한 <노무현 평전>을 선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100여 권에 가까운 관련 도서가 나왔지만 ‘평전’이라 이름 붙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일생 전반을 조밀하게 짚어가면서, 저자가 끊임 없이 되묻는 질문은 두 가지다.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노무현은 패배자일까?” 3년이란 시간, 섣부른 대답일 수 있겠지만, 후임을 겪어보고 수구언론의 덧칠을 벗겨보니 비로소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뒤틀린 권력구조 속에서 보복성 토끼몰이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패배자였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치학자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끊임없이 노무현과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우리 시대가 과연 노무현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충실한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한 <노무현 평전>은 기억과 추모를 넘어 성찰을 시작하는 괜찮은 출발점이다. - 인문 MD 박태근

 

<편집장의 선택>에 짤막하게 실린 글은 때론 전혀 와닿지 않아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가슴을 콕 찌르기도 한다. 책이 '노무현'의 평전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책소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감상에서 '아마도 연필을 쥐었다면 힘주어 꾹꾹 눌러 썼을 것같은'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일 수 없지만 개인적이지 않을 수도 없는 이런 글, 단어 선택과 문장 구성마저도 새삼 눈에 박힌다.

 

노무현은 패배자일까. 이의는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실패가 우리에게 던져준 의미는 다시 천천히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막연하고 값싼 위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노무현으로 인해 희망에 부풀었고 노무현으로 인해 절망했으나, 그 과정에서 직시하게 된 현실을 통해 그의 꿈과 좌절을 한단계 더 나아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노무현 안에서 꿈꿨던 세상을 노무현 밖에서 더 크게 꾸게 됐으니까. 우리가 노무현을 겪은 경험 자체가 하나의 의미이기도 할 거다. 그의 실패는 교훈삼아, 그의 성공은 모범삼아,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새로운 방향과 에너지를 갖게 해주는 의미.

 

2000년대를 노무현으로 시작했고 노무현으로 끝냈던 세대가 지금의 2010년대를 거쳐 30대, 40대, 50대, 60대로 점차 넘어갈 때, 이 땅에서 이제는 실패하지 않을 새로운 노무현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흘러 나이 먹는 것이 노무현이 던져준 의미냐,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노무현을 겪은 세대'가 살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뜨거운 쇳물에 담금질을 반복하면서 견고해지는 검처럼, 뜨거웠고, 식었다가, 다시 뜨거워질 땐 예전의 무른 검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참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많이 고마웠고 결국엔 그리운 노무현...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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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디오를 하나 샀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건 열라 비쌀테니 애써 찾아볼 것 없이 대충 괜찮으면 사자 싶어서, 그냥 책장 한 칸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기본 기능만 있는 저렴한 걸로 골랐다. 그래서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사용해 본 결과는 완전 대만족. 특출나게 좋거나 나쁘지 않은 지극한 적당함이랄까 ㅎ 처음엔 트레이가 하나 더 있었으면 싶었으나 2-3시간 연이어 음악을 들을 짬이 없으니 하나로 됐고, 카세트데크는 탑 부분에 매몰식?으로 들어가있어서 외관으로 보이지 않아 깔끔해서 좋다. 굳이 없어도 되지만 이렇게 티 안 나게 있어주니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고맙게 쓸 수 있어서 든든. 그 외에도, 아주 조예가 깊은 음악감상을 하는 것도 아닌 나에겐 딱 필요한 만큼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버릴 것도 바랄 것도 없이 말 그대로 적당해서 좋다.

 

오디오 덕분에 생활 패턴에도 약간의 변화가 왔다. 알람으로 설정해놓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깨는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아침이 이렇게 상쾌하다는 걸 지금까지 정말 까맣게도 잊고 살았다. 새벽 6시가 이렇게 환하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운 감격. (바보는 새삼스러운 게 많아서 행복하다) 겨울 내내 추위에 너무 시달려 한낮의 초여름 날씨를 느끼면서도 일찍 일어날 생각을 전혀 못 했는데, 뜻밖에 오디오가 이렇게 하루의 시작을 내게 선사해줬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올 봄, 이 적당지극한 오디오 덕분에 만끽하고 있는 앨범들은

 

넬 5집. 주문을 하고선 벌써 5집이구나.. 생각하다 움찔, 하,,, 10년도 훨씬 더 넘었네, 놀라버렸다. 진짜, 놀랐다. 1999년 봄, 종로의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저 빨간색 음반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선명한데. 영화 nell 을 보고 감명받아서 밴드 이름으로 쓰게 됐다고 어눌하게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마침, 지지난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넬이 나왔었다. [기억을 걷는 시간]을 심장에 숭숭 구멍난 채 듣고, 이어진 토크에서 4년 만에 방송하는 거라고 하는데 또 머리가 띵.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서 [Stay]를 부르던 장면이 난 또 생생한데... 어떻게 13년 전 일이, 4년 전 일이, 이토록 또렷하게 남아있는 건지.

 

그건, 아마도, 그들이 그 엄청난 시간의 간극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온전하게 보존해 온 덕분일 것이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새 앨범이 나오고 그들의 음악과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종로 거리와 빨간 자켓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었으니까. 가끔은, 매번 그 음악이 그 음악이라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결국 난 그 느낌에 끌려왔고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유희열이 물었다. 넬스러움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 것 같으냐고. 멤버들은 식상한 대답을 했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들이 하는 거.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그 모든 것.

 

내가 갖고 있는 넬스러움은 바로 13년 전의 그 느낌이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던 봄날을 아련하고도 서늘하게 만들어버리던 목소리와 사운드. 저 가슴 한 구석에 처박혀있던 "날 것 그대로의" 고독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한기를 느끼며 난, 저마다 얼굴에 봄빛을 띤 사람들 속을 하염없이 걸었었다. 거리는 봄의 것이었지만 나는 겨울의 것이었던 그 때의 정서는 이후로 넬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반복되었다. 한결같이 온전한 그들의 음악에, 마치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난 시디를 걸고 가사지를 쭉 훑다가 한순간 주사바늘이 들어오기 직전에 경직되듯 멈칫 굳어버렸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Slip away] 의 한 구절, 이런 처절함.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는 나를 위로했지

하지만 모르고 있는 듯 해 뭐가 날 이렇게도 슬프게 하는지

 

혼자 남겨질 그 날들보다

잊혀질 날들이 눈물겹다

 

너를 가질 수 없는 것보다

나를 줄 수 없음이 아프다

 

가질 수 없는 것과 줄 수 없는 것. 그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비참함을 미묘하게 구별지어 표현해내는, 유독 슬픔의 영역에서 섬세하게 발달된 감정분화능력이랄까 그런 것이 점점 더 세밀해지는 것 같다. 이런 노래를 듣는 봄날은 봄날이 아닐 수 밖에 없다. 아픈 곳을 이렇게 아름답게 후벼파기도 힘든데 ㅠ 혹자의 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론 그들의 음악이 위로가 되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Slip away 가 끝나고 나면 수록곡 리스트에는 없는 연주곡 하나가 조용히 흘러 나온다. 이런 히든트랙은 왠지 조금 더 내밀하게 전해주는 선물같기도 하고 돈 받고 파는 음악이 아니라 진짜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음악같은 순수함이 더 느껴져서 자연히 마음이 더 끌린다. 꿈결을 걷는 듯한 선율... 일관되게 아름답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박. 슈스케는 한 번도 안 봤다. 존박이나 허각의 이름을 기사로 몇 번 접해서 노래를 어떻게 하는 지 무척 궁금했는데, 일찌감치 가수활동을 시작한 허각은 취향에 맞지 않았고.. 존박은 일단 목소리가 좋았는데, 그가 뮤직팜에 들어가 무려 김동률과 함께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땐 하루하루 손꼽으며 앨범을 기다렸다.

 

Falling 이 시작되자 심장이 간질간질. 다른 곡들 역시 김동률 특유의 소심한 가사도 여전히 귀엽고 그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멜로디도 좋고, 모든 곡이 흡족하다. 김동률의 목소리에서 물기를 빼고 말린 것 같은 존박의 목소리도 참 좋고. 이제 내게 김동률의 음악은 그 자체가 좋아서 듣는 것이기도 하지만 편안해서 찾게 되는 오랜 친구같은 것이기도 해서, 어떻게 보면 더 특별하지만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도 않은 당연한 일상같은 것이 되었다. 잘 지냈는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이야기를 듣는 마음...

 

근데, 이렇게 나처럼 김동률에 워낙 익숙해있는 입장에서 보면 좀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있다. 김동률이나 전람회를 거치지 않고 들으면 그 자체로 좋을 수 있는데 이게 마치 김동률 앨범에 존박이 객원보컬로 참여한 것 같아서, 역시 김동률이야, 가 되어버리는 것. 음악적 취향이나 추구하는 바가 비슷해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존박에게 김동률은 하나의 숙제가 되어버릴 것 같다.

 

 

 

 

 

 

 

 

 


뭐 좀 들을까 하고 보면 자연히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에피톤 프로젝트. 줄기차게 듣다가 좀 지겹다 싶어 치웠다가도 이내 다시 듣게 되는 음반이다. 잔잔한 감성이 들을 수록 깊어진다. 그러고 보니 지지지난;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엔 [선인장]을 불렀던 심규선이 나왔었다. 루시아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나 보더라. 목소리가, 음반이랑 똑같이, 정말 예뻤다.

 

포털 다음 메인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돌아왔다! 2집 티저 공개] 라고 뜬 거 보고 급 클릭해봤더니 새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보니까 알라딘에도 예약안내가 되어있다. 하. 또 간질간질... 설렌다. 근데 돌아오긴 뭘 돌아와. 어디 간 적 없어요. 내 곁엔 늘 있었답니다...

 

 

역시, 여전한가. 여전해서 질리는가 여전해서 좋은가 하는 것은 경계가 참 아슬아슬한데, 이렇게 아슬아슬한 지점에 위치해있어서 더 좋은 걸까. 여전해서 질리고, 질리니까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여전해서 좋고, 좋으니까 질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지겨울 때는 있으니까. 

 

지겨운 걸로 끝이라면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이고, 결국 뭔가를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지겨워도 다시 찾게 만드는 힘 때문인 것 같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워도 어느 날의 아침은 진심으로 사랑스럽기 때문에 산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인 것처럼. 흔한 이별 이야기가 지겨워 듣기 싫어도 어떤 노래에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흩트려 놓는 갖가지 감성들을 조곤조곤 펼쳐놓는 에피톤 프로젝트, 이 음반들이 지겹다가도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흔한 듯 흔하지 않은 감성.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노래...

 

어쨌든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음악들. 내 봄은 이렇게 채워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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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3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토록 미치게 좋은 페이퍼에 아직도 추천이 없었다니!! 제가 하나 했습니다, 건조기후님!
그리고 뭐라구요? 에피톤의 새 앨범이 나온다구요? 우왕 ㅠㅠ 완전 짱기뻐요 ㅠㅠ 이날만 기다렸는데 ㅠㅠㅠㅠ 이 소식을 여기서 알게 되다니 더 기쁩니다. 흑흑

너무 좋아서 울것 같아요. 흑흑

건조기후 2012-05-01 07:55   좋아요 0 | URL
전 다락방님같은 인기 알라디너가 아니에요 ㅎㅎ 오히려 추천이 많으면 어색 ;;
에피톤 프로젝트 2집은 예정일이 6월 초래요 헛
새 앨범 나온대서 좋아 죽을 뻔했는데 기다리다 죽게 생겼어요 어흑흑흑

Arch 2012-05-0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시아 목소리가 좋다고 해서 지금 듣고 있는데요. 저도 들어봤고, 좋다 했는데 저는 건조기후님처럼 조근조근 예쁘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없나봐요. 저도 이 페이퍼가 참 좋아요.(<--다락방 따라쟁이?)
저는 자전거 타면서 듣는 음악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이 페이퍼로 좌절 ㅡㅡ.. ^^ 언젠가 쓸 날이 오겠죠.
아, 좋은 노래랑 좋은 페이퍼로 시작하는 아침이라니~

다락방 2012-05-01 11:02   좋아요 0 | URL
써요,아치!

건조기후 2012-05-01 15:06   좋아요 0 | URL
자전거 타면서 듣는 음악! 궁금해요 아치님 ^^

마노아 2012-05-0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디오 어디서 사셨어요? 링크 좀 걸어주세요. 눈여겨뒀다가 저도 나중에 구입하려고요~
넬의 목소리는, 또 가사는 언제나 마음을 후벼파요. 어휴, 이 페이퍼 참 좋아요.^^

건조기후 2012-05-01 21:50   좋아요 0 | URL
옥션에서 샀어요. 포털에서도 필립스 MCM-207 검색해보심 나와요 ^^
http://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A538755792&cc=&keyword=&scoredtype=0&frm2=through&acode=LC_PP_0101

마노아 2012-05-03 13:10   좋아요 0 | URL
히히, 옥션에서 바로 관심상품 찜해놨어요. 내 방이 확보되는 순간 저도 지를 거예요. 고맙습니다.^^

건조기후 2012-05-03 16:21   좋아요 0 | URL
사실 때 옥션말고 다른 사이트도 찾아보세요. 쇼핑몰마다 카드별 혜택이랑 쿠폰같은 게 차이 나요.
똑같은 물건 돈 더 주고 사면 억울해서 잠 못.. 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ㅎㅎ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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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하다. 강자의 권력에 짱돌을 집어던지고 약자의 눈물에 가슴을 내어주는 이런 기자... 악마기자의 쪽팔리지 않는 삶을 위해, 17세 주진우를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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