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곳곳에 낯설지 않은 풍경, 나의 것인 듯한 시선...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떠나지도 못한 채 늘 어딘가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심장은 그러나 조금도 식은 적이 없었어.

백만 년만에 리뷰를 쓰고 싶은 열망이 차올랐지만 컴퓨터가 고장이네. 넌 왜 하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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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8-2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컴퓨터 사드리고 싶네요 ㅠㅠ
컴퓨터야, 왜 하필 ㅠㅠㅠ

건조기후 2016-08-24 15:47   좋아요 0 | URL
무슨 말이든 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네요. 정말 좋아요... 완전 이입해서 눈물도 많이 났고요.

하... 컴퓨터 이 눔 ㅜ

blanca 2016-08-2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당장 왠지 이 책을 꼭 읽어줘야 할 것만 같게 만드네요.

건조기후 2016-08-24 16:53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진심 추천하고 싶어요.. 이야기가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납니다 ㅜ
 

더워서 축 늘어져있다가 갑자기 땡겨서 만든 대충대충 카프레제. 영원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연어 크림치즈와(맛있음 ㅜ) 통밀 크래커도 곁들이고 냉장고에 와인이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홍초로도 괜찮았던 오늘의 점심.

이렇게 더운 날 상큼한 한 끼, 좋다 좋아.

* 북플에서 글쓰기할 때 제목칸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기술인가? 앱에서는 사진첨부가 안 되고. 기분 좋았는데 급 피곤해짐..

*제목칸 있었네 ; 모르고 타박해서 미안해요 알라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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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8-0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정갈하고 아름다운 상차림이라니!
건조기후님, 북플앱에 제목 넣는 칸 있어요!! 제가 지금 스맛폰이라 나중에 피씨로 접속하면 알려드릴게요!!

건조기후 2016-08-08 09:08   좋아요 0 | URL
아, 글쓰기라고 적힌 칸이 제목칸이었군요! 이런 무지랭이 ㅎㅎ 고마워요 다락방님 ^^

단발머리 2016-08-0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대충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요~ㅎㅎ
호텔이 부럽지 않네요.
요즘은 밥 먹으면 더 더운것 같아요.
(밥 차리기 싫은 주부의 마음인가요?)
딱 건조기후님 상처럼 먹고 싶어요.

참, 저도 북플에 제목 넣는거 위의 댓글보고 알았어요 ㅋㅋㅋ

건조기후 2016-08-08 09:24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예쁘진 않고요 ; 치즈를 너무 막 썰어서 울퉁불퉁 지 멋대로에요 ㅎㅎ 여름엔 밥이라는 글자 자체가 더운 느낌이 들어요.. 그러게요 여름에 밥 차리는 거 일이지요 일 ㅜ 저는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아서 요즘은 특히 더 간단하게 먹어요. 간단하게라고는 해도 이거저거 잘 챙겨 먹습니다 ㅋㅋ

북플 제목칸에 왜 `글쓰기`라고 뜨게 해놨을까요? 제목입력 뭐 이랬으면 처음부터 쉽게 알아보고 썼을텐데.
 

 

치즈

 

 

다락방님 뽐뿌질로 주문한 치즈치즈들 ♡

어제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확인하자마자 당장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고 내일 먹을 것이냐 지금 깔 것이냐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까기로 ㅋ 주방 소리에 민감한 엄마 깰까봐 방으로 다 짊어지고 옴.

 

 

도마가 생각보다 작아서 약간 당황했는데, 진정하고 다시 보니ㅋ 칼이 생각보다 컸던 거지 도마는 적당량의 치즈를 썰어 먹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처음에 식물성 오일로 한 번 닦고, 사용 후 세척은 레몬주스랑 소금으로 해야하고, 앞으로 6개월간은 월 1회 정도 규칙적으로 오일을 발라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한다. 나무니까 잘 말리는 것도 필수겠지. 아... 그냥 보기만 해도 귀엽고 치즈를 썰어 놓으면 정말 예쁘긴 하지만 관리하기 까다로운 니가 참 밉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어차피 사용하고 나면 씻고 말리는 거 다른 식기랑 똑같고 한 달에 한 번 기름만 발라주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밉나, 급 반성.

 

 

딱딱한 고다치즈 자르기 전. 책상이 밥상역할을 한 지 오래되긴 했지만 한밤중에 도마에 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짓인지 ㅎ

근데 이 매트가 본래 금색실이 섞여서 되게 예쁜데 불빛에 반사되니까 꼭 만들다 만 거 같이 숭숭숭해 보이네.

 

 

치즈가 한두 종류일 땐 도마에서 자르고 바로 먹는 게 간편하고 좋다. 기왕이면 예쁘게 담아 먹는 게 맛있으니 데코용으로도 더 낫고. 하지만 나는 주문한 치즈들을 다 맛보고 싶으니까 ㅋㅋㅋ 자른 건 일단 접시에 두고 나중에 다시 도마로 옮길 것임.

 

칼은 하드치즈용이라고 했는데 용도별로 나온 이유가 다 있을 테지만 그걸 다 구비해 놓을 게 아니라면 구멍이 난 걸로 사는 게 좋을 듯.. 구멍 없는 칼은 어차피 집에도 쌔고 쌨으니깐.

 

이라고 썼지만 이 칼이 하드치즈가 아니라 소프트치즈용이네 ㅋㅋㅋㅋㅋ 다른 데서 칼 검색했을 때는 저런 식으로 구멍난 게 하드용이어서 이것도 하드용이려니 하고 설명을 제대로 안 봤는 갑다. 사실 소프트치즈용이라고 하지만 이 칼도 잘 들러붙기때문에 구멍이 더 큰 걸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진 찍는 사이 까망베르가 좀 녹아서 약간 지저분해졌다.

 

 

완성. 잘라놓고 보니 한가득이네. 까망베르, 스모크치즈, 크림치즈, 고다치즈 순서이고 맨 위에는 말린 무화과. 크림치즈도 까망베르처럼 좀 녹아서 저 꼴.. 나는 일단 생으로 먹어 보려고 자른 거지만 그냥 버터 나이프로 떠서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 먹는게 제일 낫지 싶다.

 

치즈가 하나하나 다 너무 맛있다. 뭐 특이한 거 산 게 아니라서 맛도 특별할 게 없긴 한데 기본적으로 모든 치즈가 굉장히 진하고 첫맛과 뒷맛이 다르며 뒤로 갈수록 깊어지는 맛이 예술.. 까망베르는 고소한 풍미 짱이고 스모크도 원래 훈제를 좋아하는데 쫄깃쫄깃 식감도 좋고 담백하고 정말 맛있다 ㅜㅜ 바게트 위에 올려서 살짝 녹여 먹으면 환상일 거 같다. 크림치즈는 누구나 아는 그런 크림치즈로 저건 갈릭과 허브가 들어간 거. 흔하게 먹는 크림치즈보다 진하고 고소하다.

 

다락방님이 강추하신 고다치즈는 평소에 짠 거 안 좋아라하는 내 입에 정말정말 짠데, 짠맛 이외에 고소하고 깊고 진한 맛이 우러나오는 데 반하고 나니 왜 추천하셨는지 알겠다. 소금알갱이가 씹히면서 짠맛이 습격하듯 쳐들어올 때는 아 짜도 짜도 너무 짜다 막 이러다가 금세 입 안을 휘감는 향이며 맛을 즐기고 있다. 치즈들이 정말 하나같이 입에 착착 감기는데 어후 ㅜㅜ 속절없이 말린다 말려. 와인이랑 같이 먹으니 그냥 천국이고. 세상에 이보다 더 맛있는 치즈가 얼마나 많을 거며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너무 설레고 좋다. ㅎㅎㅎㅎㅎ

 

고다도 짠 데다 그린올리브도 너무너무 짰는데, 근데 이것도 짠데도 맛있더라. 치즈든 열매든 숙성되면서 안으로 품고 품고 품는 고유한 풍미라는 게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깊다 깊어. 깊어... 그린은 짰지만 블랙올리브는 안 짜고 맛있어서 푹푹 퍼서 담고, 담으면서도 하나 둘 막 주워 먹었다. 문득 생각드는 게 난 뭐가 이렇게 다 맛있지. 어떻게 사람이 맛없는 걸 모르니.

 

생으로 맛은 다 봤으니 스파게티나 뭘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 까나페 하려고 "의미없는 과자"도 사왔는데 치즈 썰다가 어느 새 내팽개치고 ㅋㅋㅋㅋㅋ 의미없는 과자를 더 의미없게 만들었네...

 

 

캐롤

 

 

 

 

 

 

 

 

 

 

 

 

 

 

 

 

 

정리를 하고, 다운받아두었던 영화 캐롤을 봤다. 어딘가에서 본 캐롤 책 역자후기가 병맛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요즘 참 병맛 번역가들 풍년이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결국 기술적인 재능이 아니라 그 사람 내면의 가치관, 철학을 이루는 인문학적 소양과 약간의 시대정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본인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면 번역을 하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 내지 성의, 자기 주관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그런 것도.

 

LGBT 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50년쯤 됐으면 이제 세상에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도 되지 않았나. 굳이 "인간적으로 끌려서" 라는 둥 "정이 들어서" 같은 말도 구차하게 붙일 필요는 없다. 그 사람들은 그래서 사랑을 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의 사랑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첫 눈에 반하고, 저절로 눈길이 가고, 잘 모르면서도 어쩐지 신경이 쓰이고, 자꾸 생각나고, 손길이 닿으면 온몸이 곤두서고, 무언가를 계속 해주고 싶고, 어두운 표정에 걱정이 되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그러면서도 함께 하고 싶고, 보고 싶고, 어느 새 빠져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꿈을 꾸고. 꿈을 꾸고... 꿈을 꾸고.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다른 걸 어쩌라는 것인지. 이성애자이길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이길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논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어째서 그렇게 온 힘을 쏟아 남의 소중한 사랑을 부정하고 혐오하는지 나는 아무리 봐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왜 그러지?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축복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생긴 대로 살게 그냥 좀 냅둬요...

 

근데 갑자기 딴 얘기인데, 캐롤은 테레즈에게 줄 카메라를 선물로 내밀면서 왜 가방을 발로 미는 거니. 성격하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고하게 흐르는 우아함에 몹시 어울리는 행동이었지만, 사랑을 느끼는 상대에게 그럴 수 있나? 사소한 발길질 하나를 자꾸 떠올리며 곱씹고 있다.

 

테레즈와 그녀의 남자친구, 캐롤과 그녀의 남편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내 애인이, 내 남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떠나려고 할 때 순순히 보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과연 그 때도 '그런가보다'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데 어쩌라고' 할 수 있을까? 드디어 정체성을 찾았다는 사실을 축하해줄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지금 생각으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을 피워도 굳이 잡을 생각이 없는데(의미없다..) 자기 성 정체성 찾아간다는 걸 어떻게 잡아(이건 더 의미없지).

 

나는 좋은 여자사람들이 좋고 좋은 남자사람들도 좋지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좋은 남자사람들이고, 여자가 여자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그저 그들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과 자는 것이 이성과 자는 것보다 어떻게 더 좋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고, 남녀가 음양이 화합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고리타분한 법칙"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또 하나의 법칙"도 부정하지 않는다. 진보냐 보수냐의 정치적 문제따위도 아닌 것 같다.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니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할 문제일 뿐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타고난 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대도.

 

캐롤이 결국 그토록 소중한 딸 앞에서도 자기 존재를 잃지 않아서 좋다. 중년 남자들 앞에서 더 이상 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서 좋다. 테레즈가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걷다 택시를 타고, 호텔직원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캐롤을 찾아 들어가서 좋다. 넓은 홀의 복잡한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가, 가려졌다가, 보였다가 하는 캐롤의 얼굴과 오로지 한 곳만 응시하는 테레즈의 시선이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한껏 물기를 머금어 오래도록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엔딩이었다.

 

싸고 맛있는 와인과 더 맛있는 치즈와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이 채워 주었던 어제의 여름 밤. 

내 인생은 딱 이만큼..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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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1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술상 넘나 근사해요!!!!! 역시 도마가 완성해주는구멍요 ㅋㅋㅋㅋㅌ 근사한 치즈 후기였어요. 고다치즈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어제 또 와인에 고다치즈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주로 1,2차 하고 들어와서 3차로 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7-17 17:34   좋아요 0 | URL
치즈 다 맛있고 고다치즈도 정말 맛있어요. 짠맛을 압도하는 맛이에요!
도마는 괜히 도마가 아닌 것입니다. 그릇의 위력이란.. ㅋ 훨씬 맛있어 보이고 실제로도 더 맛이 나는 듯해요.
저도 올리브도 빨리 먹어야하고 와인도 빨리 먹어야하니(?) 오늘 또 먹으려고요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7-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저절로 침이 흐르네요.
오늘은 저도 와인에 치즈로 ㅋ

건조기후 2016-07-17 19:41   좋아요 1 | URL
맛있는 치즈는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합니다! ㅎㅎ

2016-07-17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7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7-1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예요.
각종 치즈가 이렇게나 예쁘다니요~~ 맛은 또 어떡구요. ㅠㅠ
저도 그 때 주문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뒷북을 칩니다. 다시 다락방님 방 들어가 볼려구요.
그 사이트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도마는 행사 상품이었나요? 아니면 따로 구매해야 하나요....
아.... 너무 군침돕니다.

from 치즈가 그리운 어느 여름밤에, 단발머리~~~

건조기후 2016-07-17 23:08   좋아요 0 | URL
도마랑 칼은 따로 사는 거고요 이벤트상품은 그때 그때 다른 거 같아요 유통기한 짧게 남은 건 수시로 할인뜨고요. 저기 박스 두 개랑 고다치즈 두 개가 행사로 산 거에요 ㅎㅎㅎ 치즈 정말 맛있어요 ㅜ 또 벌써 다른 종류로 골라서 장바구니에 넣어놨어요. ㅎㅎㅎㅎㅎ
 

 

 

 

 

 

 

 

 

 

 

 

 

 

 

<가만한 당신>과 함께 온 최윤필&김명남의 <가만한 대화>

책 읽기도 전인데 이 대화만으로 울컥한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 지금까지 인물을 고르실 때에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 처음에는 그냥 제가 알고 지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사람, 친해지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을 골랐는데, 그게 하다 보니 제가 이런 사람에게 끌리는구나, 라는 게 드러나더라고요. 그게 결국 우리의 상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하게 상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근대적 가치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누리는 것들을 앞서 만들어내려고 노력한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차별, 인권, 평등, 자유, 뭐 이런 주제들. 뻔할 수 있지만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과 직접 몸으로 살아내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건 제가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그 말씀을 들으니까 기획의도의 뒷부분이 이해가 되는데요. "우리랑 동시대를 살아서 든든했고 고마운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100명 정도 연재하셨는데 그 중 이 책에는 35명이 들어가잖아요. 몇 명 빼고는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기보다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마운 사람, 그 사람 덕에 내가 알게 모르게 시민으로서 어떤 자각이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논쟁적인 인물들,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책에서 누락된 게 아쉬웠는데, 지금 말씀하신 거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요.

 

(...)

 

- 지금까지 연재된 인물들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평균 77세더라고요. 제일 많은 분이 102세. 그러다보니 1960, 1970년대 히피문화나 페미니즘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자님이 일부러 그런 분들을 찾는 걸까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그 무렵 20,30대였던 분들이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된 건 아닌가 싶어요.

 

- 그렇죠. 1960년대라는 시점, 좀 더 넓혀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볼 때 커트라인 같은 것일 수 있겠다 싶어요. 그 시대에 활동하던 분들이 오늘의 세계를 이루고 떠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언급할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고요.

 

- 그 말씀을 들으니까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가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정말 그런 근대적 가치에 하나씩 돌을 놓았던 분들이잖아요.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운동을 하셨을지 놀라운 부분이 많아요. 지금의 저한테는 너무 당연하지만 그 때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가치들, 하나를 얻어내려면 정말이지 폭력적인 수준에 가까운 투쟁을 해야만 했던 시기.

 

- 저도 비슷하게 느낍니다. 당연히 상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어떤 곳에서는 지금도 의심받고 있는 가치들이 있죠. 한국 사회의 특수한 사정들 때문에 그런 편차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미국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만요. 어쨌든 지겨운 이야기가 되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를 얻어내려면 정말이지 폭력적인 수준에 가까운 투쟁을 해야만 했던 시기"에 20-30대의 에너지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오늘의 세계를 이룬 사람들. 그들이 떠나고 없는 지금 이 자리엔, 겨우 얻어냈다고 생각했던 하나를 다시 빼앗으려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가까이에선 여자라는 이유로 칼부림을 당하고 개돼지 운운하며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한다는 공직자의 말이 떠돈다. 멀리서는 아직도 BlackLivesMatter 라는 피맺힌 외침이 들린다. 오늘도 프랑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세계 곳곳에 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아 이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인권, 평등,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생을 "완전연소"한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어떤 심정으로 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을까? 2차 대전은 커트라인일까? 아직 커트라인은 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들이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이 세계가 먼 훗날에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슬프고 답답하다.

 

목숨 걸고 이루어 놓은 것이 망가지는 모습을 봐야하는 심정이 어떨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분들의 이야기만도 아닐 것이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나라도 급속도로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이 땅에 피를 뿌렸던 수많은 선대들은 또 얼마나 피를 토하고 있을까.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 줄 모르고 함부로 여기다가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바보같은지. 그 이전에,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 줄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막아대는 이 나라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은 얼마나 또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 공적 사명에 투철해야할 사람들이 도대체 자기 한몸 입신양명하고 재산이나 빠방하게 늘리면 만사오케이인 것인지 볼수록 숨이 막힌다. 자기 이름, 그런 식으로 남기고 싶나요?

 

 

성주에서 물세례받은 세 명. 당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요?

이 사진을 보니 예전에 마음 흐뭇했던 사진 한 장이 또 생각나고.

 

 

똑같이 "사람" 셋인데. 극과 극의 미학이 그야말로 극이다...

 

책 읽기도 전에 우울하다. 어쩐지 막상 읽으면 또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도 같지만.

어지러운 세상... 조금씩이라도 아니 하루 빨리 제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가만한 당신들이 정말 가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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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1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좀전에 도착한 박스에 이 책이 있을거에요. 최종적으로 뭔가 다른 걸 빼고 이걸 넣은 것 같은데, 어쨌든 제가 마지막에 이 책을 선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페이퍼네요, 건조기후님.

건조기후님 참.. 좋아요....

건조기후 2016-07-15 18:52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이 이런 `운동`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은 몰랐어요. 마음산책이고 책 제목도 끌리고 얼핏 부고를 다뤘다고 해서 호기심에 산 건데.. 참 읽기가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니가 왜 죄송하니 ;) 울적하네요. 에휴...

단발머리 2016-07-1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너무 훈훈하네요.
이렇게 자주 자주 세 분이 나라히 서있어주면 좋겠어요.
서있기만 해도, 나란히 서있기만 해도... 아.....

건조기후 2016-07-17 23:04   좋아요 0 | URL
정말 보기만 해도 좋아요 ㅜ 저도 어찌나 가슴이 설레던지. 절망 속에 희망이라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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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아주 못나지 않아서 잘하는 것을 잘하고, 아주 잘나지는 않아서 못하는 것은 여전히 못한다는 그녀. 그런 그녀의 이야기.

 

학창시절 정말 공부를 못했다는 그녀는 작가가 된 이후 명문대 출신이 많은 편집자들과 만날 때 조금 신경이 쓰인다. 대화 중에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들이 나와서 나중에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한다. 어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넌지시 고백(?)하면 편집자는 담담하게 대꾸한다. "그렇지만 저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 하잖습니까."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가 좋다. 그녀도 누구나처럼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녀에게 잘하는 것은 더 잘하는 싶은 것이고 못하는 것은 이제라도 좀 잘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남이 잘하는 건 솔직히 부러운데 부끄러운 건 아니다. 잘하고 싶어서 노력을 하지만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일도 없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절망하지 않는 것.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고, 잘하다가 못할 수도 있고, 못하다가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잘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못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그냥 그 모든 게 나 자신이고, 앞으로의 나 자신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토록 당연한 말들이 그녀의 무심한 그림과 만나면 묘하게 빛이 난다. 그녀에게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 어느 편집자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그녀를 통하면 참 어처구니없게도 가슴을 파고 든다. 몇 개의 선과 몇 마디의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이 크다.

 

 

 

 

득만 보는 인생도 좀 그렇잖아, 라고 말하며 훗 웃는 그녀. 어쩌면 이렇게 간결한지. 모오든 취약점을 노오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고 사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을 느긋하게 그리고 쓰다 만 일기같은 문장들을 띄엄띄엄 늘어 놓으며 뭐 좀 사람이 질 수도 있다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사는 것도 좋다고 간단하게 결론 내버리는 그녀의 세상에 들어오니 숨쉬는 게 다 편해지는 것이다. 그녀에게 삶은 이토록 간명하다.

 

매사에 적당할 줄 아는 그녀를 보는 것이 행복하다. 대충 적당히 하는 적당함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못하는 것은 부족한 만큼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적당함. 그녀에게 있다는 반짝이는 무언가는 바로 이 적당함에서 나오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눈으로 보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 머리로 생각하는 것, 몸으로 살아가는 것, 그 모든 것이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이 딱 그만큼 적당하다. 너무 먼 곳에 머무르지도 않지만 너무 가까이 가서 다치지 않는 그녀는 더없이 현명하고,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기 위해 소소한 시도를 하지만 또 너무 특이해 보이지 않기 위해 자제하는 그녀는 얼마나 귀여운지! 스스로를 괴롭히며 극뽁!하려 하지 않고 자족하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득만 보려고 하는 마음'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살기가 좋아질텐데. 그녀의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조차도 간단하다.

 

그녀는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 이 이야기가 아무리 자전적이라고 해도 백 퍼센트 솔직한 모습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굳이 진실이 아닐 거라 의구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느 정도의 여지를 둔다고 할까. 이런 모습은 이런 모습대로 받아들이되 다른 어디에선가 내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그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조금쯤의 여백. 내가 아는 만큼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비워 두는 것.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이 또한 그녀의 적당한 세상을 바라보는 한 독자의 '그녀스러운' 적당한 방식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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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6-07-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진 갖고 싶었는데 ㅜ 리뷰 심사한 오지은님 미오..

다락방 2016-07-12 17:12   좋아요 0 | URL
아 이거 무슨 이벤트 했었어요? ㅠㅠ 히잉 ㅠㅠ 오지은님 나도 미워 ㅜㅜ

건조기후 2016-07-12 18:53   좋아요 0 | URL
ㅎㅎ 마스다 미리 캐릭터 들어간 넘나 예쁜 문진이랑 상금 주는 리뷰 이벤트였어요. 돈은 그냥 돈인데 문진은 이거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공 ㅜ 자질구레한 물건에 얼마나 집착하는 성격인데.. 슬퍼요. ㅋㅋㅋ

단발머리 2016-07-17 22:34   좋아요 0 | URL
일단 저도 오지은님 밉구요..... ㅎㅎ
그런데 저는 문진 말고 상금에.... ㅎㅎㅎ

건조기후 2016-07-17 23: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상금도 좋지만 저는 문진이 정말 탐났어요 ㅜ 넘넘 예쁘던데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