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007. 7. 18 예스24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6349&ref=77&m_type=1




* 스포일러 경고

   분명 다시 확인해봐도 영화 장르는 애정/멜로/로맨스를 벗어날 수 없는데, 영화를 보면 한 가지 장르를 추가해야 할 듯 하다. 미스테리. 이 영화를 보고서 관객이 충격받지 않도록 하려면 장르 명칭을 제대로 붙여야 한다. 멜로/로맨스로 알고 기대했던 영화를 보고 의외의 충격을 받는 관객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싶다. 미스테리 로맨스.

  영화를 무작정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잘나가는 일본의 미스테리/추리물 작가의 동일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번역된 책에 달려있는 별의 갯수와 평가는 영화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별의 갯수가 중요한건 아니고, 그것이 영화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도 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은, 영화를 본 많은 독자와 관객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한데 모인 이 결과물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영화 <변신>은 높아진 관객의 기대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고, 소설의 미스테리/추리도, 영화가 추구하려했던 멜로/로맨스도 모두 잡지 못했다.




  * 나루세 준이치(타마키 히로시). 메구미를 사랑했고, 사랑하지 않는건, 내가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았기 때문인가.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건, 달라진건, 내가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았기 때문인가. 생각을 전환하자. 영화를 달리 보자. 주어진 그대로를 바라보지 말자. 뇌이식은 잊어라.

  "타인의 뇌를 이식한 나는 본래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영화는 어색한 멜로/로맨스의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면서도 끝까지 이 물음을 놓지 않고 있다. 총에 맞아 뇌의 일부가 다쳤고, 마침 십 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에 나올까 말까한 나의 뇌에 딱 들어맞는 뇌가 있다고 하자. 수술대에 올라간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딱 들어맞는 뇌의 일부를 이식받았고, 몇날며칠을 잠을 잔 끝에 깨어났다. 뇌를 이식받기 전의 나와 이식받은 이후의 나는 동일인물인가. 의학적으로 일부의 뇌만을 이식하고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뇌 기증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의 행동습관을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된다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의 진리 관계를 떠나 애초의 물음에서 좀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뇌이식을 받기 이전의 나루세 준이치는 메구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하고 수줍고 착한 사랑스러운 남자였다. 하지만 뇌이식을 받은 이후의 준이치는 메구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을 따름이고,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심지어 옆방에서 떠드는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식칼을 손에 쥐는 등의 살인충동까지 느낀다. 뇌이식을 전후해서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A의 뇌를 B의 뇌로 바꾼다면 A는 B가 될 수 있단 말일까.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심리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은 '통 속의 뇌'라는 걸 가정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책의 '완전한 은둔자' 부분에도 '통 속의 뇌'를 언급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한 사람의 뇌를 육체에서 분리하여 이 뇌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영양액이 담긴 통 속에 옮겨 담았다. 뇌의 각 신경 조직은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고, 이 컴퓨터는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우리의 감각 경험과 똑같은 질적 정보를 준다. 그 사람(뇌)의 입장에선 환경, 각종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고 또한 완벽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컴퓨터와 신경 세포 간의 전기적 자극의 결과일 뿐이다."

  통 속에 담긴 뇌가 컴퓨터의 전기적 자극에 의해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면, 누군가가 피자를 먹고 있을 때 피자 맛이 나도록 전기 자극을 주고, 손을 들었다고 착각하도록 전기적 자극을 줄 수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지금 가정하고 의심하고 있는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뇌를 떼어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할 영양분이 담긴 통 속에 집어넣고 이런저런 조작을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뇌는 각기 다른 통 속에 들어있고 각각의 뇌는 각각의 전기적 자극을 통해서 대화한다고 느끼고, 숨을 쉰다고 느끼고, 생각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 자판을 치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나 또한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나 자신에게 몸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두 팔과 두 다리가 두 눈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심지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모든 것들, 참이라 알고 있는 것들을 확신할 수 있는가.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결국 '통 속의 뇌' 개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현대적 검증이라 할 수 있다.



* 멜로/로맨스라 해서 눈물 쏙 빼겠다 싶었던 영화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으로 관객을 몰고간다. <변신>은 울고 싶지만 웃긴 영화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 여자, 메구미(아오이 유우). 결국 그녀가 받아들여야할 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다. 준이치의 말과 행동과 마음이 달라졌다고 그녀의 준이치에 대한  사랑이 변하는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준이치를 사랑했다.

  영화를 보면 수술대에서 회복 중이던 준이치가 일어나 병원의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뇌와 기증자의 뇌가 통 속에 담긴 것을 보고 구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잘려진 나의 뇌와 잘려진 기증자의 뇌는 모두 투명한 통 속에 잘 보존되어있었다. 그로부터 지금 나는 내 뇌의 일부와 기증자의 뇌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잘려진 일부의 뇌와 잘려진 일부의 뇌가 내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추리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통 속에 담긴 두 개의 뇌를 봤고 구토를 했다는 것은 확실한가. 그것도 믿을 수 없다. 투명한 통 속에 담긴 뇌는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통에 붙여진 N.J. 라는 알파벳 약자를 통해 '나루세 준이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조차도 또 거짓.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 이론을 적용시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루세 준이치의 뇌를 가졌을 때 사물을 인식하는 법과 기증자의 뇌를 가졌을 때 사물을 인식하는 법은 다르다고. 그 또한 조작된 것이라고. 결국 나루세 준이치가 자신의 뇌를 가졌을 때 보였던 행동양식과 가치관이 기증자의 뇌를 가졌을 때 보였던 그것과 다르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전기적 자극에 의해 조작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메구미를 향한 준이치의 사랑도, 준이치에 대한 메구미의 사랑도. 

  뇌를 바꾸면 그 사람의 특성도 바뀌는지, 그 사람의 정체성도 바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애초의 물음 "타인의 뇌를 이식한 나는 본래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그렇다, 아니다, 라는 확실한 답을 내리려하진 말자. 행동의 급격한 변화를 보인 뇌이식 이전의 나루세와 이후의 나루세 뿐 아니라, 뇌이식을 받지 않은 우리 모두 또한 변화하고 있다. '뇌이식'은 잊고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의심하라.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신기루 2007-07-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만을 꺼내놓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통 속의 뇌'는 <매트릭스>와 비슷하네요
인간의 신체를 움직이는 데 사용될 에너지를 기계에 사용하는 대신 가만히 누워있게 만든 인간에게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을 머릿속으로만 인식하도록 하는 거 잖아요
만약 우리가 정말 매트릭스 안에 사는 거라면, 가상현실 속에서 뇌수술 따위를 하고 그로 인해 인격이 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거겠죠??(이 질문은 약간 생뚱맞은 듯.)
뇌이식에 대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정말 많은데 정리가 안돼요ㅠ_ㅠ

이잘코군 2007-07-1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 다른 식을 전개해나가다가 바꾸지 못한 흔적이 그렇게 남을 줄이야. -_- 수정했습니다.
신기루님 / 모든 것이 의심스럽죠? :) 인간들은 어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나오는 수많은 개미들 중 하나 일 수도 있어요. ㅋㅋ

이잘코군 2007-07-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데도 하긴하는데, 활동은 잘 안하고 주요 글만 올립니다. 알라딘에서만 '놀아'요.
근데 <변신> 영화 영 아닙니다. -_-
 
비평 15 - 2007. 여름
비평이론학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품절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를 떠나서, 만약 우리가 고교생들에게 미국 방식의 에세이를 쓰게 한다면 어찌될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학생들이 소질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는 우선 학생들의 소질을 북돋아 줄 방법이 없고, 이미 사회에 만연한 상호불신과 반교육적 '에토스'가 그런 자발성의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으로서 당장 그 제출된 에세이가 학생이 제 손으로 쓴 것인지 누가 대신 써준 것인지 판별할 길이 없다. 미국 방식의 자유논술 같은 것은 "학생 에세이는 절대로 타인이 써주지 않는다"는 규칙과 명령의 교육적 준엄성이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학교, 사교육장, 학부모, 학생이 모두 그 규칙을 준수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잘 쓴'혹은 '잘 썼다'는 에세이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시장이 즐비하고 대신 써줄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데가 대한민국이고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규칙을 제 혼자 지키려는 자는 바보가 된다. 학생들은 바보이고 싶지 않다. 부모들도 바보이고자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붙고 보자"는 명령이 다른 모든 명령들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고 규칙을 따질 겨를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어야 하기 때문에 그 '무슨 수'들이 아무리 부당하고 불법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이라 해도 일단 대학에 붙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임수를 포함해서 '무슨수' 이건 쓸 줄 아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이다. 고교생 독서이력철 같은 제도가 시행되어도 대학으로선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난감한 문제에 봉착한다.

(경쟁력, 수월성, 창의성의 비극 - 도정일)-27-28쪽

대학입시 경쟁에서 91점을 받은 학생은 입학하고 90점을 받은 학생이 탈락하는 것은 개인의 실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학과정원 수에 의해, 30명 정원일 경우 30등을 한 91점 학생은 입학이 가능하고 31등을 한 91점 학생은 탈락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91점과 90점 간의 차이 1점은 결코 인간의 능력이 실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점으로 겨우 붙은 학생은 실력 있는 학생처럼 사회적으로 대우 받는 반면 90점으로 탈락한 학생은 열등생으로 낙인 받게 된다. 이것이 입시 위주 한국 교육의 병폐인 동시에 한국 교육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교육 붕괴와 교육의 민주화 - 한준상)-32쪽

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어른들에게뿐만 아니라 곁 사람에게, 세상에,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버르장머리가 없다. 사람대접은 보고 배운 적도, 따로 익힌 적도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가끔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불러 야단치면 "왜요?"하고 눈부터 치켜뜨고 대든다.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는 고사하고 도대체 남을 배려하는 일엔 손방이다. 하기는 이들이 누구에게 뭘 보고 배워 그걸 알겠는가?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에 기대 함부로 악담으로 대거리로 마녀사냥을 일삼는 이들의 버르장머리 없음과 배려 없음은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또 디지털 세대로서 어른들보다 월등한 핵심역량으로 어른세대의 위선과 모순에 앙갚음하는 서슬 또한 무섭기 짝이 없다. 아이들을 이렇게 죽음과 죽임의 나락으로 내몬 어르신들은 과연 어떠신가?

그토록 교육이라면 맹신하다 못해 광신하는 세상에서 정작 교육을 맡은 교사들부터 헌신짝 취급이다. 그림자도 밟지 않도록 모시고 기리던 스승의 자취는 어느 새 간 데 없고, 스승의 날이면 교문 닫아걸고 손사래 치며 대접은커녕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처지다. 그깟 세상이야 뭐라던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 잘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내가 아는 어느 초등교사가 울먹이며 한탄하듯이 아이들은 숫자나 글자는 죄 배워갖고 오면서, 정작 싸가지는 하나도 배워먹지 못하고 학교에 들어온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퍼져 자기나 하다가 행여 이름이라도 부르면 눈을 부릎뜬다. 나무라거나 꾸지람 할라지면 핸드폰으로 호시탐탐 동영상 찍어 신고할 건수나 노린다. 부모들은 이제 교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아무 때나 달려들고, 걸핏하면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두렵다고, 부모들이 무섭다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다.

(교육, 마지막 식민지 - 정유성)-106-1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절판


주어진 문제를 틀리지 않고 정답을 골라야 하는 자아의 정신과 의식은 완전히 해체되어 문제를 출제하는 외부자의 일부분, 아니 외부자의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몰 주체화 과정이자 몰 개성화 과정이다. 즉 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부정하고 말살해버리는 과정이다. 이처럼 대학 입시에 점령당한, 대학 입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은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인간 유형을 양산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개인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위에 존립한다.-38-39쪽

사실 체벌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몸은 더 이상 규율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정신과 더불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나의 인격은 너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물리적이 강제력이나 폭력도 가해서는 안된다. 체벌은 다른 사람의 인격에 강제력과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꼴이다. 따라서 교육이나 훈육이 필요하다면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밑줄그은이 주 :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간혹 발생한다. 명백히 누가 봐도 - 잘못을 저지른 본인을 포함 - 잘못인 것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을 경우, 다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해당 학생을 포기해버리거나 신체에 폭력을 가하더라도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두 가지 길 밖에 남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으니 후자를 택할 밖에)-50쪽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한다. 가르친 사람이 그 결과를 평가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유기적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가르치는 사람 따로 있고, 평가하는 사람 따로 있다. 후자는 전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자가 소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전자가 가르친 학생들을 시험한다. 마치 자신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국의 대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비유기적으로 분리시키고 괴리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회집단이다.-68-69쪽

그러나 민사고에서 10등은 어디까지나 10등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일반고의 1등은 어디까지나 1등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신이란 학생들이 동일한 환경과 여건에서 경쟁을 해서 나타난 결과를 점수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신은 학생들이 주어진 조건에서 얼마만큼 학업을 성취했는가를 따지는 제도인 관계로 서로 조건이 다른 고등학교의 내신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민사고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어디까지나 다른 민사고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특목고의 경우도 그렇고 일반고의 경우도 그렇다. 서로 다른 학교의 내신은 상호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러한 근거로 일반고에서 1등은 민사고나 특목고에서 1등과 동일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108-109쪽

내가 보기엔 내신 그 자체가 말이 안된다. 즉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학업 성취도에 따라서 줄을 세운다는 발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객관화하고 계량화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상호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여기서 인간은 객체화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 그리고 인격은 부정되고 무화된다. 남는 것은 산술적 논리일 뿐이다. -109쪽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의 경우 내가 받은 90점은 네가 받은 95점과 당연히 비교된다.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시험에 정답이 없다면 나의 A학점과 너의 B학점은 단순히 비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중략 ... 그러므로 굳이 내신을 반영해야 한다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해야한다. 즉 단순히 기계적으로 누가 몇 등급에 속하므로 몇 점을 받는다고 평가해서는 안되고, 그가 주어진 여건에서 어느 정도의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었는가를, 그리고 그가 지원하는 대학에서 어느 정도의 학업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109-110쪽

한국인들은 외국의 언론사들이 실시하는 대학의 서열화 작업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대학들이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른바 세계적인 대학들은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고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으며 질높은 교육을 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의 발전을 이룩하고 명성을 획득한 것이지, '쩨쩨하게' 고등학교에 기대고 힘입어 그리된 것이 아니다.-112쪽

최소한 동일한 조건인 경우에는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공부한 학생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잠재력과 창의성이지 결코 고등학교에서의 학업 성취도를 계량화하고 지수화한 점수가 아니다. -114쪽

요즈음에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고등학교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러나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러한 학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사교육으로 왜곡된 학교 교육을 바로잡아 전인 교육이나 인성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다만 학생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대학 입시 준비를 시킨다는 점에서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142쪽

(밑줄그은이 주 : 음주 문화와 와인의 이해 등의 실용적인(?)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대학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뒤처져 고리타분한 '상아탑주의'로 남아서는 안된다. 글로벌화와 글로벌 시대는 대학 사회에도 커다란 도전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글로벌 에티켓'을 가르치는 것에 대학의 역할이나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은 오히려 글로벌 에티켓을 글로벌 시대의 구성요소로서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하고 설명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즉 글로벌 시대는 대학에게 인식의 대상이지 예의범절의 대상이 아니다. 예의범절로서 글로벌 시대는 시민회관이나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배우도록 하라-162쪽

대학에서는 단 한두 명 밖에 수강생이 없더라도 칸트, 하이데거에 대한 강좌를, 성리학에 대한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토론식과 논술식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대학이외의 그 어떠한 사회문화적 조직이나 공간에 의해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면 대학은 굳이 존재할 근거나 의미가 없다. 역으로 만일 대학이 상품을 생산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기업의 존재 근거와 의미는 퇴색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민 교양 수준의 강좌는 폐지해야 한다. 설령 수백명이 몰린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대학 밖의 어디서 그런 강좌가 열리는지 홍보하는 포스터나 책자는 학생들을 위해서 비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대학생에게는 교양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추구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학 밖 어딘가에-162-163쪽

시험에서도 고등학교와 대학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고 전도된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대는 2008학년도 논술 고사의 시험시간을 5시간으로 결정했다. 문항은 인문계가 3개, 자연계가 4개를 각각 출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른 대학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술 고사를 거쳐서 들어간 대학에서 치르는 시험은 어떠한가? 대략 한 시간 정도에 걸쳐 2-3문제를 푸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말이 주관식 서술형이지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을 착실히 암기해 충실히 답안을 채우는 방식이 주종을 이룬다. 결국 변형된 객관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험으로 학생들을 측정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논술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182-183쪽

독일의 대학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식 수업 방식의 구조와 과정은 다음과 같이 기술해 볼 수 있겠다. 우선 담당 교수는 한 학기 동안 진행할 세미나의 주제, 목표 및 세부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물론 구체적인 사항들을 학생들과 의논해서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에 속해서 담당 교수가 제시한 또는 공동으로 결정한 세미나 주제 중에서 특정한 것에 대해서 발제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토론의 실마리와 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어느 발제가 좋았느냐, 아니면 나빴느냐에 대한 기준은 얼마나 발제자가 혼자서 많은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느냐에 달려 있다.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은 이후에 글로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학년 세미나에서는 주로 발제 내용의 정리 수준에 머문다면, 고학년 세미나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작은 논문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한편 담당 교수는 제출된 글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해당 학생들과 직접 면담하고 토론을 하는데, 그는 여기에서 학생의 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후에 점수를 주게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비로소 한 과목의 이수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217-218쪽

한국에서 엘리트는 명문대 출신과 동일시되는 명목상의 엘리트이다. 엘리트다운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 명목상의 엘리트는 당연히 허약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엘리트가 허약하다는 명제는 무엇보다도 엘리트 집단은 획일적이며 정답을 찾아 헤매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그리고 이처럼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는 당연히 허약할 수 밖에 없다.-229쪽

객관식 시험은 언제나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강요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하는 흑백논리를 키우기 수비다. 한국 사회에서는 '빨갱이'이니 '이단'이니 하는 흑백논리를 아주 쉽게 접한다. 물론 이 둘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치적 경험과 종교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빨갱이'와 '이단'과 같은 흑백논리의 형성에 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또는 우리, 즉 '정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은 너 또는 너희, 즉 '오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답'은 선한 것이요, '오답'은 악한 것이다. 둘이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둘 사이에 접점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정답'과 '오답'은 논의나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객관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찾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273쪽

언젠가 도덕시험에 '다음 중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5개의 지문이 주어졌단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자신이 볼 때 중학생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문항을 골랐다. 그는 나름대로 '주관적 정답' - 물론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 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답으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교사에게 항의했더니, 교사가 제시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교과서 어딘가에 중학생이 되면 하는 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정답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을 교과서에서 규정할 수 있다는건가. 그리고 학교와 교사는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참고 자료로 이용할 수 있지, 어떻게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아니 신주 모시듯이 하면서 무성찰적이고 무비판적으로 학생 평가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객관식 시험을 통해서 말이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276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에 2007-07-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점점 찌들어버렸던 불행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네요. 언제쯤 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이 될까요.

이잘코군 2007-07-2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르치는 저도 힘겹습니다. 읽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해야한다는게 - 그렇다고 따로 뭔가를 만들어 수업할 능력도 안되고 - 답답합니다. 사고를 강요하는 교과서는 바뀌어야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밑줄긋기 부분에서 볼 수 있듯 도덕교과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옳고 그름을 재단하고, 사고의 틀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죠. 저런걸 가르치는 저나, 시험보기 위해 외우고 있는 학생들이나.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007. 7. 16   예스24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6312&ref=76&m_type=0



 
* 스포일러 경고 

  개봉한 지 좀 시간이 흘렀고 이름 높은 영화평론가들에 따르면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아님에도 내게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영화이다. 생명보험회사와 고객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영화의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매일 신문 재테크란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의 의뢰로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조언을 해준다. 현재 빚이 얼마가 있고, 연봉은 얼마이며, 생활비는 얼마를 쓰고 있다. 은행저축보다는 적금을 매달 얼마씩 들고 있는데, 좀 더 효율적인 재테크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를 하고, 일단 적금은 만기가 찰 때까지 놔두시고 이후에는 적립식 펀드 해외형, 국내형 분산투자하시고, 청약부금에 가입하시고, 보험에도 얼마씩 넣으라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취업을 하고나면 일단 생각하는 것이 월급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것인가 하는 점인데,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보험에 가입하고 매달 얼마씩을 넣으며, 적금과 펀드를 이용해서 나름 재테크라는걸 시도한다. 그래봐야 종잣돈도 없는 이들에겐 남들따라 흉내내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번듯한 집 하나 전세로 얻기도 힘든 판이니 어쩌랴. 먹여살릴 자식있는 결혼한 가장의 경우,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자신과 아내에게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나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한 미래에 대비하기도 한다.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남은 자식들은 어찌하냐는 지극히 이타적인 사고(<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이런 것도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로 비춰지겠지만).




* 검은집의 내부는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로처럼 새로운 공간이 나온다. 이 집의 외양새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빛의 제국’은 하늘은 맑은데 집과 그 주변은 깜깜한 밤처럼 보인다. 신태라 감독이 미술팀에 보여 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과 제국' 이 영감의 실마리가 됐다고 한다. 

  영화 <검은집>은 이토록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위에 현실적인 공포를 덧씌운다. 언젠가부터 보험이란 제도를 통해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보험사는 나름대로 수익을 내는 이익집단이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수익을 내고 우리는 우리대로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생물학에는 r 전략과 K 전략이란 것이 있는데, r전략은 곤충처럼 수많은 자손을 만든 다음 거의 내버려두는 방법이고, K전략은 인간처럼 소수의 자식을 에지우지하면서 키우는 것을 지칭한다. 영화 <검은집>의 원작인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집>의 등장인물 기나이시는 이렇게 보험회사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변화를 설명한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도 특히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K전략자이지요. 옛날에는 잠시 눈을 떼기만 해도 아이가 죽어버리는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부모가 따뜻하게 보살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게 되었고, 문자 그대로 부모 없이도 자식이 자랄 수 있게 되자 r전략의 상대적 유리성이 증가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어두고 내동댕이쳐도 사회가 돌봐주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지요. 즉,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것보다, 자식을 만들어놓고 도망치는 전략이 유리해져 버린 것입니다."(p242)

  결국 언제 닥칠질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제도 중 하나인 보험이 약자를 보호해주는 사회제도의 역할을 넘어 냉혹한 r 전략자를 증가시켰다는 말. 생물학을 공부해보지 않은 필자로서는 소설 속의 대사에 불과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의 사실여부를 떠나 적어도 우리네 현실이 냉혹해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바로 이 r 전략자의 전형적인 사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이코패스'이다.

  사이코패스. 어떤 국어사전에도 사이코패스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없다. 동일명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본 바로 간단하게 사이코와 사이코패스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사이코는 살인 자체에 목적을 두고 행동한다. 살인 이후의 어떤 쾌감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사이코라면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이 따로 있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살인이란 방법을 택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이코패스에겐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양심이 결여되어있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사이코패스를 일반인과 구별하는 방법으로, 웃거나 우는 사진을 여러장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웃는 사진을 분류해낼 수 있다면 정상인이고, 구별하지 못한다면 사이코패스라는 말이다. 그들은 타인의 웃고 우는 감정의 변화모습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즉 타인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보통사람이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 중에 사이코패스가 섞여있다고 한다. 그들은 겉으로보아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내 친구와 가족, 회사동료들 중에서 사이코패스를 찾아낼 수 없다. 양심이 없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없다면, 사이코패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뉘우치는 척, 반성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이봐 이제 나올 때도 됐잖아? 나는 참을 만큼 참았어. 제발 부탁하는데, 꼭 돈이 필요하다구!" "죄송합니다. 본사에서 결정하는 일이라서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해 달라고 재촉해보겠습니다." "나는 보험료를 냈잖아! 비싼 보험료를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냈단 말이야. 그런데 아이가 죽었는데도 왜 보험금을 주지 않는거야?" 

  매일 같이 뉴스에 보도되는 애인, 친구, 가족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들의 소식은 더 이상 우리에게 놀랍지 않다. 얼마전 다시 본 영화 <공공의 적 2>에서 보여지는 돈많은 재벌회장 한상우는 아버지를 죽이고, 형을 죽이고, 이어 자신을 추척하는 검사 강철중을 죽이려한다. 탐욕과 이익을 위해서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겐 가혹하다. 골프채를 휘두르고, 주먹을 날리고, 때로는 이용해먹기 위해 기꺼이 맞는 일도 감수한다. 많이 배웠지만 양심이 결여된 그는 똑똑한 만큼 상황을 역이용할줄도 안다. 반면 작은 불의로운 일에도 내 일처럼 나서서 부정의를 시정하려하고, 정의감으로 똘똘뭉친 강철중과 처자식도 떠나버린 부장검사 김신일은 한상우와는 정반대편에 머물러있다.

  모든 연쇄살인범들을 사이코패스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들 중 다수인 사이코패스는 같은 사람을 죽이는데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죄의식과 죄책감이란 것이 없으니 사람을 죽이기 한결 쉽다. 영화 속 신이화는 자식을 자살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고, 박충배의 손가락과 나아가 두 팔을 자름으로써 추가로 보험금을 타냈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이 남자가 죽으면 보험금을 탈 수 있나요?"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생명보험이라는 것이 가족구성원을 죽여가면서 보험금을 받아내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비단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뉴스거리도 안되는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자살로 위장해 살인 한 후 보험금을 받아내는 그들이나, 남편이나 아내가 죽은 뒤 우연히 언젠가 가입된 거액의 보험금에 기뻐하는 이들은 얼마나 다른가. 전자는 사이코패스라 칭하고, 후자는 일반인이라 칭할 것인가. 전자와 후자는 정도의 차이일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나이 많으신 여자분의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며칠 후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더라. 가입한지 몰랐던 보험사로부터 거액의 보험금을 받았고 그걸로 새 집을 사서 들어갔다. 얼마나 다행이냐고. 잘됐다, 라고 하기보다 다행이다, 라고 했기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지극히 일반적인 현대인의 모습이고 아마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목적과 고의적인 행위가 전제된다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다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건 아니지 싶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엄밀히 구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들어가야겠지만, 사람사는 모습은 전자와 후자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으로 희귀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인의 15% 에 불과해서 타인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또한 양심도 결여되어있다. 물론 후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화학 성분의 과다축적으로, 임신 중에 병에 걸리거나 약물로 뇌에 손상을 입는 경우에도, 장시간의 스트레스에도 후천적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연극배우 강신일씨는 공교롭게도 사이코패스 영화에 거듭 출연했다.  <공공의 적> 1,2 는 사이코패스 영화라 홍보하지 않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첫편에서 자신의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조규환과 뒷편에서 돈과 야망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 형 등을 죽인 한상우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닐런지. <공공의 적>과 더불어 <검은집>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도 탁월했다.     

  범죄는 날로 흉악해지고 잦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뉴스에도 쉽게 당혹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티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하는 것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나에게, 나의 가족에게, 나의 친구에게 닥치지 않는 한 딴 세상 이야기고 결코 난 그런 잔혹한 범죄로부터 벗어나있다고 생각한다. 닥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이런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들이야말로 사이코패스가 아닐런지.

  얼마전 일본 기차에서 한 젊은 여성이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어떤 남자로부터 성추행받고 있었음에도, 그 여자가 도와달라고 소리쳤음에도, 그 열차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다못해 직접 나서지 못한다면 전화로 신고를 할 수 있고, 달려가 차장에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여자는 기차 뒷편 화장실에서 성폭행 당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성폭행범만의 잘못이라고 할 것인가, 그저 성폭행 당한 여자가 재수가 없었으려니 하고 말 일인가. 처벌은 물론 성폭행범이 받겠지만 침묵하고 바라보던 그들 모두 유죄이다. 사이코패스는 어떤 특수한 유전적 결함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인의 15%에 불과한 양심을 결여한 이들 뿐 아니라, 부정의를 당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서도 나서지 않는, 아무렇지 않은, 우리 모두는 사이코패스이다. 

  맹자는 인간에겐 네 가지 선한 마음이 있다 하였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그것인데,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논증하기 위해 맹자는 측은지심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았다. 그는 분명 깜짝 놀라 얼른 달려가 아이를 구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위험에 처한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은 측은지심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인 '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인 '시비지심' 등도 우리 인간의 내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본성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사람이라면 무릇 이같은 네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사이코패스라 불리우는 특별한 문제가 있는 어떤 병자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네 가지 본성이 결여되어있음을 느낀다. 사이코패스와 일반인을 분류하고 그들을 병자취급하는 우리들 또한 사이코패스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맹자는 <맹자>의 '공손추'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이는 모두 계발시켜 채워갈 줄 안다. 불이 처음 타오르고 물이 처음 솟아나듯이 진실로 사단을 계발시켜 채워갈 수 있으면, 온 세상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발시켜 확충해가지 못한다면 부모조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약자를 보호한답시고 여러가지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지만, 정작 약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노라고 새로운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비정규직은 예전보다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이랜드 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다. 맹자의 네 가지 선한 본성은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다스리고 키워나감으로써 확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계발하지 않고 자신의 선한 본성을 버려둔다면 그것이 사이코패스가 되는 지름길이요, 열심히 계발해 확충한다면 그것이 '사람'이 되는 지름길일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되고 사람이 되고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7-1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7-16 15:03   좋아요 0 | URL
앗 찔리시다니요. 속닥님이요? 그럴리가요. :)

비로그인 2007-07-1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되게 땡기네요. 난 영화는 별로일것 같더라구?
그러고보니 난 이미 사이코패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크흐흐...

이잘코군 2007-07-16 17:31   좋아요 0 | URL
아니 체셔님이 왜 싸이코패스에요? 이거 영화도 재밌고 책도 재밌어요. 책은 영화가 다루지 못하는 저런 류의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를 싣고있어서 생각해볼 거리를 찾기엔 더 좋습니다. 이런 영화는 집에서 티비나 컴퓨터로 보면 실감나지 않을거고, 극장서 봐야 제 맛이 납니다.

프레이야 2007-07-1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쓰셨군요, 아프님.
연쇄살인범들의 뇌를 연구하고 싸이코패스를 정의하던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납니다. 15% 정도의 양심만으로 버티려는 우리가 싸이코패스의
혐의에서 풀리기란 쉽지 않겠어요. 양심을 콱콱 찔러대는 글..^^
강신일은 다른 영화에서도 참 연기를 잘 하더군요.

이잘코군 2007-07-16 18:1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이코패스에 대해 관심이 깊어져서. 강신일씨의 <진술>이란 연극을 대학로에서 봤는데 대단했습니다. 또 한다면 꼭 보러갈겁니다.

네꼬 2007-07-16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감당하지 못해서 못 볼 것 같아요. =_= 무서워.

이잘코군 2007-07-16 18:16   좋아요 0 | URL
ㅋㅋ 네꼬님 좀 무섭긴해요. 집에서 보면 별로 안무서울거에요. 영화관에서 보면 무섭지만. 무섭다기보다 소름끼치죠. 무엇보다 현실감있는 영화라.

푸른신기루 2007-07-16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영화보고 싶어요..ㅠ_ㅠ

이잘코군 2007-07-16 21:33   좋아요 0 | URL
이거 재밌어요. 평은 별로인데 난 재밌었는데... -_- 너무 나 믿지는 마삼. ㅋㅋㅋ

비로그인 2007-07-1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 게다가 듀나의 평을 본뒤에 볼까 말까...하고 있어요.

이잘코군 2007-07-16 22:29   좋아요 0 | URL
책을 먼저 읽으셨군요. 책이 어쩜 더 재밌고 깊이있을수도 있어요. 영화를 먼저 보는게 나았을텐데. 한번 보세요. 강신일씨의 연기에 주목하면서. :) 듀나가 이 영화 평도 썼었나요? 듀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비로그인 2007-11-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영화 봤어요. 삭제된 부분이 있었으면 훨씬 더 이해가 빠를터인데. 넘 많이 잘라내서 으응?했어요. 여하간 원작의 기시 유스케도 나왔고, 유선 연기 잘하더군요. 황정민씨는 으으음...여하간, 책보다 덜, 그러나 듀나의 평보단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여기서 깨달은 점: 영화평 보고 가서 영화보지 말자.
 
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품절


집안의 대들보 같은 중요한 가족 성원이 세상을 등지면 유족의 생활에는 엄청난 타격이 미친다. 그런데도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면, 유족의 생활 보장이라는 생명 보험 본래의 사명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자살로 인한 사망은 생명보험료율의 기초를 이루는 생명표의 사망률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자살을 배제하면 보험회사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일본 생명보험회사에서는 가입 후 1년 동안을 자살에 따른 면책기간으로 삼고 있다. 처음부터 자살을 염두에 두고 보험에 가입했다고 해도, 보통사람이라면 1년인나 죽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는 어렵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과연 이 1년 이라는 기간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23쪽

"신문에서 보았는데,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잖아? 원래 독일어를 잘못 번역한 것으로, 전혀 병태와도 일치하지 않고 다중인격과도 착각할 수도 있고 말이야. 게다가 불치병 같은 어두운 어감이 강해서, 그런 선고를 받으면 가족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버리지. ...... 그와 마찬가지로 정성결여에 대해서도 다른 표현을 쓰는게 좋다고 생각해."

"잠깐만요. 당신까지 단순한 언어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신지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잠자코 담배만 피웠다.
"당신은 정말로 이 세상에, 인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211쪽

"r전략이라는 것은 곤충처럼 수많은 자손을 만든 다음 거의 내버려두는 방법이고, K전략은 인간처럼 소수의 자식을 에지우지하면서 키우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도 특히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K전략자이지요. 옛날에는 잠시 눈을 떼기만 해도 아이가 죽어버리는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부모가 따뜻하게 보살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게 되었고, 문자 그대로 부모 없이도 자식이 자랄 수 있게 되자 r전략의 상대적 유리성이 증가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어두고 내동댕이쳐도 사회가 돌봐주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지요. 즉,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것보다, 자식을 만들어놓고 도망치는 전략이 유리해져 버린 것입니다."

가나이시는 얼음이 녹은 버번을 한 모금 들이켜 마른 목을 적셨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떠올린 것처럼 히죽거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선의로 가득 찬 길도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 미국에 유학 갔을 당시에 친했던...... 어느 친구에게 배운 속담이지요. 약한 자를 보호해 주는 사회보장제도가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냉혹한 r전략 유전자를 급속히 증가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사이코파스의 정체이지요." -242-243쪽

"이런식의 명렬한 유전독성으로 인한 환경오염 속에서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걸쳐 태어난 사람들이 성인이 된 최근 10년은 사이코파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요? 한 마디 덧붙이자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이쓴 전자파가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도, 반드시 망설(妄說)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예로 든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뒤얽히며 인간의 DNA를 손상시켜서, 사이코파스의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실마리를 풀어가는 단계에도 접어들지 못했습니다. 어느 의미에서는 사이코파스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49-250쪽

"문제는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한 사람의 사이코파스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승수효과에 의해서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좋지 않은 영향이지요. 그것은 지금의 현실을 둘러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까지 배금주의가 침투하고, 정의와 도덕을 입에 담는 것은 촌스럽다고 조소당하고, 다른 사람을 태연하게 상처입히는 사이코파스적 가치관을 냉정하다든지 멋있다는 이유로 입이 닳도록 칭송하고 있지요. 예를 들면...... 글쎄요. 요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절반은 사이코파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전의 만화에는 조금 더 인간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요. 요즘에는 상대방이 악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량한 주인공이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그냥 죽여버리잖아요? 게임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적이 되어 싸우는 상대방을 처음부터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히 움직이는 표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251-252쪽

가나이시는 생명보험에 관한 범죄 중에서도 보험금을 노린 살인에는, 다른 범죄에 비해서 사이코파스가 관여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일단 그의 논거는 앞뒤가 맞는 것처럼 보였다. 우발적인 범죄나 격정에 휘말린 범죄와 달리 보험금 살인에는 주도면밀한 계획성과 의심을 받지 않으려는 용의주도함, 나아가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상대를 살해하려고 하는 냉혹한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55쪽

그에게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실감은 거의 없었다. 사치코의 죽음이 남긴 것은 단지 생리적인 불쾌감과 꺼림칙한 뒷맛뿐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치코가 아무리 잔악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귀라고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퀴벌레의 목숨을 빼앗은 것만큼의 감정 밖에 솟구치지 않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는 오히려 뒤꼭지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448-449쪽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 모든 사건이 악의에 가득찬 것으로 보이는 거에요. 그러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교묘한 트릭을 사용하게 되지요. 배신을 당해도 상처 입지 않도록 모든 것에 대해서 마음의 인연을 끊거나 애착을 갖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에 사악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막상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고통당하지 않도록 배수진을 쳐두지요. 우리 사회에 정말로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알아보기 쉬운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오히려 평범하게 보이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454-455쪽

생명보험이란 과연 무엇일까. 신지는 자리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뛰어난 치안과 저축을 좋아하는 근면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가입률을 달성한 시스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하여 생명보험회사들은 화려한 봄을 구가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한때의 지나간 꿈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사회 전체가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거대한 도덕적 붕괴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가치를 경시하고 돈이 최고라는 풍조, 사고력과 상상력의 쇠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결여, 그러한 징조들은 이미 손해보험 분야에서 시작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청구 금액의 절반은 사기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생명보험에까지 파급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보장에 대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것을 단순히 세기말이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 전체가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469-470쪽

인간의 정신적 위험인 모랄 리스크는, 예전에는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급격히 감소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방향을 더듬어가고 있다. 그 원인은 죽은 가나이시와 일부 사회생물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복지제도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현재의 복지제도가 약자에게 그렇게까지 따뜻하게 배려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농약이나 식품가공물, 다이옥신, 전자파와 같은 사회오염이, 인간 존재의 근간인 유전자를 잠식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 중략 ...

가나이시의 말을 대변하자면,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에 가장 잘 적응하도록 진화한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언젠가 그들에게 잡아먹히게 되리라.

그것은 가나이시의 병적인 염세주의가 낳은 환영에 지나지 않을까. 죽음의 악취로 충만한 검은집이 우리 사회의 내일의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470-472쪽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1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안보구 책으로 읽는 거예요? 아프님도 이런책 읽는구나 ㅎㅎ

이잘코군 2007-07-1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보고 책도 보는거에요. :)
이거 곧 영화칼럼(?) 나갑니다. 쓰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중. 오늘 중으로 쓰려고 하는데 지금 지치고 더워서 뇌가 호흡곤란을 일으켜서 맛난거 먹으며 쇼파에서 티비나 보다 오려고요.

프레이야 2007-07-1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원작이군요. 저도 언능 이 영화 보고 싶던데, 아직이네요.
아프님 칼럼 기다립니다.^^

푸른신기루 2007-07-1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아프님도 이런 소설 읽는구나ㅎㅎ
急친근^-^
영화는 어땠어요?? 재밌어요??
영화랑 책 중에 어떤 게 더 괜찮아요??

이잘코군 2007-07-1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이 영화도 좋았고, 책도 좋았어요. 영화는 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섬뜩함을 표현해줬고, 책은 영화가 담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를 담아냈죠.
신기루님 / ㅎㅎㅎ 둘 다 재밌습니다. 이 소설 누구한테 빌린건데;;;

red7177 2007-07-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은 아직 못 읽었는데, 책이 더 으스스하다고 하네요. 정말 그런가요?
조금 더 더워지면 한밤중에 읽으려고 하고 있답니다. ㅋ

이잘코군 2007-07-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자꾸 상상하게 되니깐요. 근데 영화를 먼저 봐서 책을 통해서 상상되는 장면도 영화의 장면이 먼저 떠올라요. 영화와 다른 으스스한 부분이 책 뒷부분에 나오는데 무섭습니다. 이제 엘리베이터도 못타겠습니다. :)

sweetmagic 2007-07-1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별 용달 보다는 **택배 하지 ㅋㅋㅋ

이잘코군 2007-07-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매직님 댓글 잘못 단거 같아요. ㅋㅋ 이 페이퍼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