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품절


‘국부론’이라는 제목 자체가, 국가가 부유하거나 잘사는 것은 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혹은 스페인처럼 식민지에서 금은을 대량으로 가지고 온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얼마나 국가가 건전하게 경제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책의 진짜 관심사였단 말이지요. 전쟁 따위를 해서 다른 나라의 은을 가지고 온다고 국가가 잘살게 되지는 않는다는 게 정말로 애덤 스미스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62쪽

‘국부론’에서 시작된 고전학파의 세계가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엄청나게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던 게 아닙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기술과 지식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속에서 더 이상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72-73쪽

이때(박정희)부터 두 가지 정치이념, 즉 한국은 여타 나라와 다르다는 ‘박정희식 민주주의’와 일단 기다려서 압축성장을 끝내고 나면 분배를 하겠다는 ‘한국식 성장 우선주의’의 원형들이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런 두 가지 정신에 충실한 사람들을 한국식 우파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여기에 ‘미국 없이는 우리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약간 변형된 실용적 숭미주의 같은 걸 결합시키면 바로 한국 보수이념의 원형이 됩니다. -123쪽

법조계에서 삼성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 역시 단순히 삼성이 관리를 했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법조인이 동시에 부패했다기보다는 좋은 국민 경제에 대한 시각을 법조인이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시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다름 아닌 한국의 관료집단입니다. 이를 김용철 변호사가 해석하는 것처럼 ‘관리에 의한 부패’로 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건전한 국민경제에 대한 상식 수준에서의 시각을 한국의 법조계가 가질 기회 없이, 수출경제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해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략) 한국의 자본주의는 불행하게도 삼성이라는 존재로 인해 사법권이라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된, 아무도 사법부의 결정을 믿지 않는 불행한 시장경제 모델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145-146쪽

농지 투기까지 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정치권력까지 갖는 건 중남미형 경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이 전면화된 게 바로 이명박 정권 초기의 모습입니다. -162쪽

기껏해야 자기 집 한 채 정도 가지고 사는 사람들, 혹은 전,월세로 살아가는 세입자들, 즉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80% 가까운 사람들과 정상적인 기업에겐 땅값과 농지값이 안정된 상태가 더 좋은 경제입니다. 이건 그야말로 상식인데, 노무현은 지방의 땅값을 올리는 것이 지역경제가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이명박은 서울과 수도권의 땅값을 올리는 것이 국민경제가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나 저 경우나, 국민경제에는 다 치명적일 뿐입니다. -170쪽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스한 자본주의, 혹은 인간적 자본주의, 좀 투박한 용어로 복지국가 등등 자본주의가 나름대로 사람들이 숨이라고 좀 쉴 수 있게 해보자던 노력들이 2005년 어디쯤의 한국에서는 무너져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제’라는 용어 한 마디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좀비들처럼 변해버립니다.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의 국민경제는 이 순간에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좀비처럼 경제만을 외쳐대고 있지만, 실제로 철저히 경제적 합리성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선택하는, 지독한 경제적 인간과 시장적 원칙만이 지배하는 상황이기라도 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손해 보는데도 지지하는 행위, 예를 들면 세입자가 뉴타운 개발을 지지하거나 땅도 없는 소작농이 지방토호들인 군수들의 땅값 올리기 개발정책을 지지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기업의 노동유연성 정책을 지지하거나 하는 행위들은 ‘경제적 합리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190-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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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15인 시공초월 맞장 인터뷰
김중현 지음 / 서해문집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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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자기 스스로가 적일 때 혁명적 미래는 가장 밝다(체 게바라)-169쪽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내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들이 많다.
그래서
난 더욱 행복한 혁명가"라고... -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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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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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는) 노동자 10명 중 1명꼴로 업무에서 비롯된 우울증, 정서불안, 스트레스 내지 신경쇠약 등 각종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한국에서는 직장인의 70퍼센트가 스트레스성 정신신체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50퍼센트가 직장에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3분의 2가 이직을 고려한 바 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직장생활이 삶의 스트레스를 높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작 이들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가짐에도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느낌을 ‘그냥 옆에 제쳐두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갈 뿐이다. 이것이 일중독의 심각성이다. -19-20쪽

"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묻혀 바삐 지내는 것은 실제 그 일이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바쁠 필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A.W.셰프)

"우리는 스스로 자기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가, 거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A.W.셰프)-21쪽

‘팔꿈치사회’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마라톤경주와 차원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마라톤에서는 설사 번번이 일등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생존 자체가 위협에 처하는 것은 아닌데 비해, 자본주의 상품경쟁에서는 남보다 계속 뒤처지게 될 때 생존 자체가 큰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시대에 와서는 생존경쟁이 범지구적 범위에서 치열해지기에 심지어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팔꿈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지에 대한 동정은커녕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냉혹해야만 하는 ‘경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6-37쪽

생존에 대한 두려움, 강자와의 동일시, 경쟁의 내면화가 초래하는 자기소외나 자기고립을 적극 넘어 ‘관계적 존재’로 다시 서려는 것이 소통이며, 문제상황의 정면 돌파를 위해 힘을 합쳐 해결의 주체로 ‘함께 ,당당히’ 나서는 것이 연대다. (중략)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면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뿌리가 같다고 보고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사파티스타 농민군 여성의 말) -47-48쪽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모든 기업들은 서로 일등을 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부단히 경쟁적으로 추출한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일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등과 꼴찌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엑기스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누가 좀더 많이 가져 가고 누가 좀더 덜 갖고 가는가 하는 차이일 뿐이다. 심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파산하고 소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하여 서로 살벌하게 경쟁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전략이라 믿고 따르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로 행위하고 또 그러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배적 시스템에 ‘모두’ 지배당하게 되는 근본원리다. 결국 경쟁은 지배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만이 살 길’이라며 사람과 자연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것, 그러면서도 소수의 기득권층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세상이 얼마나 병들어 가는지 눈치 채지도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기업체제의 근원적 무책임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79-80쪽

미국 주도의 군사력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에마뉘엘 토드는 "문제의 근원은 미국이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라고 말한다. 즉 세계적 무력행사 뒤에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의존이라는 취약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무역적자는 1990년에 천억 달러였는데 2000년엔 4천 5백 억 달러, 2005년에 5천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대량소비 위주의 낭비적 생활 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를 시장화, 세계를 공장화한 결과가 대형적자로 나타나고 또다시 이를 모면하기 위해 더욱 강제적으로 시장자유화를 추진하려 하니, 역설적이게도 세계의 파국과 제국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140-141쪽

일리치 선생에 따르면 평화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가진 자, 위로부터의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기층민중, 아래로부터의 정의다. 전자는 ‘평화의 유지’를 강조한다. 즉 온 세상이 자기들 뜻대로 굴러가는 것, 아무도 기존질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잘 따르는 상태, 바로 이것이 위로부터의 평화 개념이다. 후자는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평화로 보는 것이다. 즉, 세상 살림살이를 민중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그대로 제발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풀뿌리 민중에 의한 삶의 자율성, 바로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평화다. -154-155쪽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인간이 된다." (일리치)-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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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어김없이 연례행사 하나를 치뤘다. 작년과 달라진 것은 하루 짜리가 닷새 짜리로 바뀌었다는 것. 대학원생으로 학교에 소속된 것과 직장인으로 동사무소에 소속된 것은 천지 차이였다. 이런 빌어먹을. 작년에 하루 다녀온 것만으로도 역겨웠던 그 짓을 올해는 닷새나 해야하다니. 그렇다. 예비군 훈련이다. 이미 이 공간에서는 여러 차례 말해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까지 해두고 감옥행 이후의 사태를 감당할 용기가 없어, 처음으로 내 존재를 배반하고 입대한 군 생활.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예비군'이라는 이름으로 일년에 한 차례씩 불려다니며 군복을 입고 총을 들어야 했다. 일년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

  작년까지 대학원생으로 학교에 적을 두어 예비군 훈련을 하루만 간략하게 받았던데 비해, 이번엔 5일이나 가야했다. 제도가 어떻게 되는건지 도통 난 잘 모르겠는데, 쯩이 나오면 일단 가야한다. 원래는 강원도 어디 산골짜기에 2박 3일로 가게 되었는데, 연기를 신청했더니 5일 짜리 출퇴근으로 바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군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어깨엔 큰 가방 하나가 들려있다. 가서 바꿔 신을 군화와 훈련 후 갈아입을 내 옷가지다. 마음같아선 집을 나설 때도 사복을 입고 훈련소에 도착 후 갈아입고 싶은데, 아침 시간이 그리 넉넉치가 않다. 가서 갈아입을 곳도 딱히 없다. 훈련이 끝난 뒤에도 땅바닥에 군복과 군화를 패대기치고는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번엔 작년에 경험했던 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작년 6월인가 7월쯤에 입소했던 그 곳에서는 대대장이라는 녀석이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수없이 쏟아내면서 마음을 불편케했다. 손들고 일어나서 "지금 뭐하시는거니?"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대대장 정신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강당에 불러내 앉히고는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는데, 구멍이 어쩌니, 러시아, 필리핀이 어쩌니 하는 여성비하적 발언은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적 발언이 쏟아져 마음이 불편했다. 건국 60주년으로 시작해 촛불집회에서 좌익반동세력들이 활개를 치며 체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사전에 준비된 동영상, 파워포인트 자료와 함께 내보내는데 한참 잘 자고 있다가 그 소리에 정신이 화들짝 깨더라. 얜 뭐니?

  아마도 그곳에 모인 수백명의 예비군들이 자신의 발언에 동의를 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그 따위 막발언을 하는 것 같은데 - 동의할거란 생각 없이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 , 일어서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을 또 눌렀다. 아예 확 토론장을 만들어버릴까 하다가 그래 국방부가 불온서적 읽기운동을 벌이고, 전두환, 박정희를 찬양하는데, 너라고 예외겠냐는 생각이 들어 그냥 포기했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대대장 정신교육'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세뇌교육'이라고 해야겠다. 군에 있던 현역시절에도 이런 식의 정신교육이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있었다. 군에 있는 기간을 2년 2개월이라고 치면, 최소한 이런 정신교육을 100회 이상 받은 셈인데, 계속 아무 생각 없이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보다 싶다가, 나중엔 적극적인 지지자가 된다.

  국가는, 군대는 이렇게 2년 2개월 동안 - 지금은 조금씩 줄어 1년 10개월이라고 한다 - 100회 이상의 세뇌교육으로도 모자라, 사회에 진출한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직장인, 학생들을 불러내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다. 평소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해서 책을 들여다보거나 별도로 고민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북한이나 국가, 국방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그냥 바로 머리에 주입된다. 예비군 훈련에서 의자에 앉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정신을 무방비 상태로 놓는 가장 치명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차라리 잠을 권한다.

  국방부는, 군대는, 국가는 아직도 8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적은 북한이요, 북한의 전투력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군의 모범으로서 이스라엘의 예를 들면서, 고로 우리가 군사력을 키워 북한의 침공에 대비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맺는다. 국제 사회 돌아가는 꼴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라는 가정을 세우고서 자꾸만 주입하려 드는데,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일어나도 그 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이 되기가 더 쉽다. 이데올로기, 이념 전쟁이 아니라 (우석훈이 말했듯) 자원 전쟁이 되기가 더 쉽다. 이렇게 시대를 못 따라오는 논리를 펼치니 2008년에 불온서적 발표나 하고 앉아있지.

  쟤들은 아직도 80년대에 살고 있고, 80년대가 그리운게다. 어떻게든 다시 군부독재시절로 돌아가고픈게다. 이런 애들이 나라 지킨답시고 세금 받아먹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으리. 과거에 광주 시민들 학살하고, 제주 시민들 학살하던 녀석들이, 박정희, 전두환 밑에서 깔짝대며 놀아나던 녀석들이 지금 군대의 상급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해도 된다만, 한편으론 아니 어떻게 이런 녀석들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윗대가리 노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앞이 깜깜하다. 내가 군에 있던 시절에 소대장 하나는 대놓고 전두환, 박정희 찬양 발언을 해대면서 독재시절을 그리워했다. 이런 애들이 군에 수두룩 빽빽 하다고 생각하면...

p.s. 예비군 첫해부터 계속해온 '사격 거부'는 올해도 이어졌다. 총을 들지 않으면 감옥행이지만 사격을 하지 않는다고 감옥에 처넣지는 않는다. 용기없는 자의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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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 2008-10-0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직장예비군에 소속되지 못하셨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주변에는 아프님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비군 훈련을 즐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1)모처럼의 체력단련, 2)일상에서의 사상투쟁, 3)미래의 도시 게릴라 투쟁을 대비한 실전훈련.... 뭐 생각에 따라 ..쩝. 아, 그리고 예비군 끝나면 민방위 훈련 또 있습니다.

이잘코군 2008-10-03 20:02   좋아요 0 | URL
직장예비군은 또 뭔가요? -_- 전 도통 예비군 제도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 걍 나오니깐 갔는데. 직장 소속으로 하면 뭐가 또 다른가요? 직장엔 예비군 훈련을 받을 사람이 저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다들 나이가 있으셔서. 다른 한 분이 또 해당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고.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구판절판


희소성이라는 상황은 "욕망은 무한하고 달성하고픈 목적은 끝이 없는데 수단이 부족할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욕망이 무한하지도 않고 달성하고픈 목적이 많지도 않은 사람들,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하고픈 일도 없고 되고픈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도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배를 곯으면서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사회가 하나의 극단이라면 인간의 운명은 희소성과의 투쟁이라고 선언한 뒤 불철주야 경제 행위에 매진하다가 일 중독증이나 과로사에 봉착하고 마는 근대적 인간형도 또 하나의 극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는 희소성에서의 선택이라는 정의의 보편 타당성은 심대하게 타격을 입게 된다.-26쪽

희소성이란 경제나 재화와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권력과 관련이 있다. ‘무한한 욕망’과 더불어 희소성을 낳는 또 하나의 축인 ‘한정된 수단’이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재화는, 햇빛이나 엄마의 사랑처럼 공짜로 얻을 수 있어 비용 문제가 생기지 않는 자유재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비용을 치러야 하는 희소재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몇십 년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전화는 상당히 희소한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전화를 개인 생필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재까지는 아니지만 구입을 위해 치르는 비용 또한 상당히 줄어들었다. 반대로 어떤 일들이 만약 자유재였던 지하수나 공기를 독점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가게에서 물이나 공기를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재화 자체에서 희소성이란, 주로 어떤 것을 희소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그 사회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지 그 수단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28쪽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마취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망각한 채 제 흥에 겨워 "마취술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극단을 달리면 그야말로 큰일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제 행위에서의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95쪽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이다."(아리스토텔레스)-112쪽

자연적인 생활과는 동떨어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이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과정은 이미 보았다. 만약 행복한 삶의 내용을 구성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던 수많은 종류의 프락시스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이 돼버린다면 이윤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한 포이에시스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또 기존의 포이에시스에 해당하는 활동들도 일단 이윤을 목적으로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로 전락하게 되면 원래 목적했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113쪽

"국가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도덕적 내면이나 일상생활의 영역에 참견하는 도덕적,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생겨난 연합에 불과하다."(존 로크)-129쪽

오로지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자들만이 살아남고 대다수의 무능한 자들은 굶어죽거나 지배당하도록 자유방임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사회적 다윈주의)은 공공 교육에 반대하고 아동의 노동금지 법안이나 근로 환경 개선 법안 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38쪽

그(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통용되던 경제학 이론(편의상 고전파라고 부를 수 있다)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한 욕망, 즉 소비에 대한 욕망만을 가질 뿐이며 화폐는 단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교환의 매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폐 자체에 대한 욕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써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 소비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희생일뿐인 저축을 장려하려면 어떤 보답이 따라야 한다. 그 보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이자이며, 이자율은 궁극적으로는 실물 생산에서의 생산성과 이윤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158쪽

케인스는 기본적으로 권력욕이나 성욕과 같이 독립적인 욕망의 한 종류로서 ‘돈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동기로만 돈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파와 달리 저축이라는 행위는 순수한 희생이기는커녕 그 자체로서 즐거운 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케인스가 자본주의의 역동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심리 현상이라고 보았던 유동성 선호 현상이다. 따라서 이자라는 것의 의미도 돈을 모아놓는 것에 맛을 들인 수전노들로 하여금 돈을 풀어 투자로 이끌기 위해 지급되는 유동성에 대한 일종의 웃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자율은 화폐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될 뿐 아니라 고전파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것이 자본의 한계 효율과의 비교를 통해 실물 생산의 투자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자율을 적당히 낮춰가면서 화폐 보유자들의 유동성 선호를 조절하여 장기적으로는 이 금리생활자들을 ‘안락사’시켜버리는 일이다. -158-159쪽

여기서부터 각주

27) 여기서 교역trade와 시장market은 구별해야 한다. 인간 또는 인간 집단 간 물품의 이동을 전부 교역이라고 한다면, 교역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교역이 항상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흥정에 의해 자유롭게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고려와 원나라의 교역처럼 조공 형태를 띨 수도 있고, 또 산간 오지의 미개인들처럼 원정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또 요즘 우리가 결혼할 때 겪게 되는 혼수, 예단과 같은 선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 현대 경제학자들은 교역과 시장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인류학적 지식의 결여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웨이틀리 주교는 인간 사이의 모든 물물 이동을 시장 교환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아예 교환학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동서고금의 모든 인간 사회에는 (교역이 아니라) 시장이 존재해왔다"는 혼동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용어상의 혼동만 피한다면 시장 없이도 사회의 발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171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약탈을 자연적인 생계 활동으로 보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이 먹이를 얻기 위해 동물들과 싸우는 수렵의 기술은 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수렵은 단지 동물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타인들에게 지배당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그 자연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전쟁은 자연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윤을 남기는 상업을 비자연적인 것이며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도둑질도 용감하게 창칼을 휘두르며 하면 자연적인 것이지만 치사하고 쩨쩨하게 판매자, 구매자를 등치는 식으로 하면 비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상업은 그야말로 "강도질만도 못한 도둑질"이 되는 셈이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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