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품절


‘국부론’이라는 제목 자체가, 국가가 부유하거나 잘사는 것은 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혹은 스페인처럼 식민지에서 금은을 대량으로 가지고 온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얼마나 국가가 건전하게 경제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책의 진짜 관심사였단 말이지요. 전쟁 따위를 해서 다른 나라의 은을 가지고 온다고 국가가 잘살게 되지는 않는다는 게 정말로 애덤 스미스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62쪽

‘국부론’에서 시작된 고전학파의 세계가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엄청나게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던 게 아닙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기술과 지식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속에서 더 이상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72-73쪽

이때(박정희)부터 두 가지 정치이념, 즉 한국은 여타 나라와 다르다는 ‘박정희식 민주주의’와 일단 기다려서 압축성장을 끝내고 나면 분배를 하겠다는 ‘한국식 성장 우선주의’의 원형들이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런 두 가지 정신에 충실한 사람들을 한국식 우파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여기에 ‘미국 없이는 우리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약간 변형된 실용적 숭미주의 같은 걸 결합시키면 바로 한국 보수이념의 원형이 됩니다. -123쪽

법조계에서 삼성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 역시 단순히 삼성이 관리를 했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법조인이 동시에 부패했다기보다는 좋은 국민 경제에 대한 시각을 법조인이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시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다름 아닌 한국의 관료집단입니다. 이를 김용철 변호사가 해석하는 것처럼 ‘관리에 의한 부패’로 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건전한 국민경제에 대한 상식 수준에서의 시각을 한국의 법조계가 가질 기회 없이, 수출경제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해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략) 한국의 자본주의는 불행하게도 삼성이라는 존재로 인해 사법권이라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된, 아무도 사법부의 결정을 믿지 않는 불행한 시장경제 모델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145-146쪽

농지 투기까지 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정치권력까지 갖는 건 중남미형 경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이 전면화된 게 바로 이명박 정권 초기의 모습입니다. -162쪽

기껏해야 자기 집 한 채 정도 가지고 사는 사람들, 혹은 전,월세로 살아가는 세입자들, 즉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80% 가까운 사람들과 정상적인 기업에겐 땅값과 농지값이 안정된 상태가 더 좋은 경제입니다. 이건 그야말로 상식인데, 노무현은 지방의 땅값을 올리는 것이 지역경제가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이명박은 서울과 수도권의 땅값을 올리는 것이 국민경제가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나 저 경우나, 국민경제에는 다 치명적일 뿐입니다. -170쪽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스한 자본주의, 혹은 인간적 자본주의, 좀 투박한 용어로 복지국가 등등 자본주의가 나름대로 사람들이 숨이라고 좀 쉴 수 있게 해보자던 노력들이 2005년 어디쯤의 한국에서는 무너져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제’라는 용어 한 마디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좀비들처럼 변해버립니다.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의 국민경제는 이 순간에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좀비처럼 경제만을 외쳐대고 있지만, 실제로 철저히 경제적 합리성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선택하는, 지독한 경제적 인간과 시장적 원칙만이 지배하는 상황이기라도 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손해 보는데도 지지하는 행위, 예를 들면 세입자가 뉴타운 개발을 지지하거나 땅도 없는 소작농이 지방토호들인 군수들의 땅값 올리기 개발정책을 지지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기업의 노동유연성 정책을 지지하거나 하는 행위들은 ‘경제적 합리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190-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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