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1.7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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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창간 2주념 기념 설문 조사는 매우 흥미로웠다. 설문 참여자 명단에 속한 이들은 활동 영역이 달라서인지 여러 곳에 동시에 글을 올리시는 딱 한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겠다. 나름 수년간 책을 읽고 끄적인 북로거인데 아는 분이 달랑 한 분이라니, 내 활동 반경이 좁은 건지 그들이 파워북로거가 아닌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파워북로거라는 개념조차도 알라딘, 예스24, 교보, 리브로, 인터파크 등에 둥지를 틀었느냐, 아니면 포털 사이트에 둥지를 틀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파워북로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듣보잡이다.  

  포털의 파워북로거들 70명을 대상으로 설문 메일을 보냈고, 그 중 50명이 답했다. 이들 중 58%는 서평지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로 '서평의 질' 문제를 들었고, 파워북로거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묻는 문항에는 70%가 '정보 생산자 그룹이자 1인 서평 미디어'라고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서평의 질 보다는 신문 서평이든 잡지 서평이든 서평을 읽는 이들이 소수이고, 기자의 글쓰기나 북로거들의 글쓰기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통계에서는 이런 의견조차도 '서평의 질'로 치환해버렸는데, 분명히 다르다. 서평의 질 보다는 서평의 방향성 문제라고나 할까.

  쭉쭉 빨거나 아니면 가혹하고 신랄하게 까는 문화가 없다. 좋은 부분에 대해서는 좋다고 쭉쭉 빨아주고,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비판하는 문화, 빤다고 좋은 책도 아니고, 깐다고 나쁜 책도 아니라는 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 문화가 없다. 빨면 무조건 좋은 책이 되고, 까면 무조건 안 좋은 책이 되기에 빠는 것도 까는 것도 조심스럽다. 내 딴에는 좋지만 아쉬워서 까는 건데, 별 셋을 줬다고-사실 별 셋은 무난한 건데-, 깠다고 열어봐서도 안 되는 책으로 간주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좋은 부분은 좋다고, 나쁜 부분은 나쁘다고, 아쉬운 건 아쉽다고 다 말하는 편인데, 글을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게 보인다.  

  한 출판인이 신간 출간 이후의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책이 나오면 좋은 부분을 부각해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그 책의 안 좋은 점을 비판하거나 한다고. 그러나 한국은 책을 소개하는 신문 지면에서 기자들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런 점은 아쉽다, 라고 꼭 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자들이 책을 쭉쭉 빨아주고 있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실상 까는 기사 쪽에 속한다는 것. 신문 기자는 사실상 서평이 아니라 책 소개를 해줘야 하고, 서평은 다른 이들이 써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자가 책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쓰려고 하기에 책 소개와 서평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50명의 파워북로거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서평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제각각의 답을 내놓았다. 거의 참고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전적으로 참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수도 답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내 경우엔, 이런 책이 나왔구나 라는 안내를 받는 정도로만 참고를 하고, 그 책에 대한 정보는 신문 기사가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 글(보도자료)를 통해서 얻는다. 그리고, 올라온 서평 중에 내가 관심 갖는 북로거가 쓴 글이 있다면, 그 글을 찾아 훑는다. 그 다음에야 손가락이 구매 버튼을 클릭한다. 사람마다 구매 버튼까지 가는 경로가 다 다를 것.

  북로거들은 상당수가 책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차원에서 북로거 활동을 시작했고, 책을 사서 읽거나 빌려 읽는다. 그런데, '책은 주로 어떤 경로로 구하십니까'라는 설문에, '출판사에서 기증 받는다', '이벤트 서평에 응모한다'라는 대답에 무려 33%가 답변했는데, '주로'가 아니라 구하는 여러 경로를 복수응답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합계가 50명이 나와야 하는데, 76명이 나온다. 그 아래 설문 독서량을 묻는 질문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기준이 한 달인지, 일 년인지 알 수 없는데, 그냥 짐작으로 한 달이라고 생각하자니, 45권 이하라고 답한 사람은 뭔가 싶기도 하고. 한 달 기준으로 삼자면, 이 사람은 하루에 한두 권을 꼬박꼬박 읽는다는 건데. 기획 의도는 좋은데, 마무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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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다니 놀랍네요 오호.

이잘코군 2011-07-13 09:5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합계 숫자도 안 맞고, 복수 응답인거 같은데 통계처리하는 편집자가 실수한 듯 합니다. 질문도 '주로'라고 물으면 안 되고, '주로'라는 단어를 빼고 물었어야 하고. 설문지에 문제가 좀 많아 보여요.

saint236 2011-07-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이 전부인데, 갑자기 주로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제가 이상해 보이네요.

이잘코군 2011-07-13 17:59   좋아요 0 | URL
간간히 제안 받거나, 선물 받는 걸 제외하면 저도 거의 제 돈 주고 사서 보는 편이죠. 빌려서는 잘 못 읽는 성격이라.
 


 해당 잡지는 '파워북로거 50인에게 대한민국의 서평문화를 묻다'라는 제목으로, 설문 결과를 종합하여 기사로 썼다. 이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일부 인용하고, 추가로 덧붙이며 신문 기사로 내보냈다. 아래 글은 잡지의 통계보다는 신문 기사의 내용과 관련하여, 서평의 질 문제보다는 어디까지를 북로거의 도덕성 논란 영역으로 볼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었다.



 
  깨끄미 사건 이후로 파워블로거 기사가 간간히 나오고 있다. 한 출판 잡지에서는 포털에서 활동하는 잘 나간다는 '파워북로거'들을 대상으로-내가 아는 분은 알라딘과 예스24에서도 활동했던 한 분 뿐이다- 인터뷰, 전화 설문을 했는데, 50명 중 36명이 대가성 서평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고, 12명은 있다고 답했다. 열두 명 중 세 명이 서평을 쓰고 대가를 받는다, 한 명이 좋은 서평일 때만 쓰고 대가를 받는다, 한 명은 서평을 쓰지만 대가를 받지 않는다, 세 명은 무시한다, 두 명은 거절 의사를 표시한다, 기타 한 명이었다. 이때의 '대가'는 서평을 써야 할 대상 책이 아닌 원고료 등의 물질적 대가가 될 것.

  다음은 이와 관련된 신문 기사 내용 일부. "한 출판사 대표는 “파워북로거가 서평을 쓰면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확실히 책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간이 나오면 공짜로 책을 보내주고 출판기념회 등이 있을 때 초대하는 등 주요 파워북로거를 ‘관리’하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출판사 직원이 파워북로거로 활동하면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사에서 나온 신간에 대한 서평을 쓰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 신문 기사와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출판사에서 마련하는 자리는 상당수 저자 강연회나 간담회, 출판 기념회 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알라딘, 교보, 예스24 등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저자 강연회는 대부분 강연만 하지만, 강연회인지 간담회인지 대담인지 기념회인지 북콘서트인지 성격이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파워북로거라고 해서 관심 있는 저자의 강연회나 간담회 등을 신청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뽑아주면 가고 안 뽑아주면 안 가면 그만. 공개 모집하지 않고 주변 분들 모아서 조촐하게 대담, 간담, 기념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엔 출판사가 평소 관심 갖고 있던 북로거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닌 한 파워북로거나 안 파워북로거나 누구나 기회가 있다면 신청이든 초청이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참석하고, 참석하지 않을 자유는 있는 것. 

  신문 기사에 언급한 사례 중 출판사 직원이 제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사 책에 관해 호평을 쓰는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회사가 시켜서 한 것이라면 모를까,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일개 북로거로서 서평을 쓰는 것까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만일, 직원이 자사 책에 대해 혹평을 썼다면 이는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반대 질문도 던져보게 된다. 아마 이럴 땐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 이를 문제 삼는 논리를 끌고가면 출판사 직원은 북로거 활동을 하되, 자사 책에 대해서는 쓰지 말아라, 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는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다. 이런 부분은 해당 북로거의 양심에 맡기면 될 일이다. 출판사 직원인 동시에 북로거인가 아닌가 하는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으로 썼느냐 아니냐인 양심의 문제인 것.

  서평을 쓰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경우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많진 않아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깜짝 놀란다. 주변에 그런 분이 없는데, 활동 반경이 좁은 인터넷 서점 북로거들보다는 포털의 북로거를 대상으로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또, 파워북로거라며 책을 보내달라고 출판사에 먼저 요청하는 사례를 듣긴 했지만, 이런 경우가 많은 줄은 몰랐다. 그 사례를 들었을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자신의 영향력을 내세워서 스스로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니. 간단하게 맛집 블로거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들은 돈을 내지 않고 식당에서 음식을 요구하지 않나. 출판사는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대부분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 애써 만든 책에 대해 그가 혹평을 하거나 딴지를 거는 식으로 책 홍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없어야 한다.
    
  서평단에 속해 책을 받는 경우, 서평단에 속하진 않지만 출판사가 개인적으로 책을 보내주는 경우, 책을 보내주고 서평에 대가를 받는 경우, 북로거가 출판사에 책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 관해 생각해 보자. 앞의 두 경우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뒤의 두 경우는 문제가 된다. 서평단은 공개적으로 모집하고 그 기준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활동했던 사람의 경우 성실도가 반영되는 것 같고, 처음 신청하는 사람은 출판사 직원이나 인터넷 서점 담당자가 그의 북로그를 방문해 글(의 질)을 확인하거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읽고 선정하지 않나 싶다. 또, 출판사가 북로거에게 개인적으로 제안하는 경우도 서평단과 같이 책만 받는다는 점에서 같다.

  깨끄미 사건처럼 공동 구매도 아니고, 총액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지만, 10만 원 또는 그 이하를 받고 호평을 써주는 조건이나 깨끄미의 7만 원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서평은 한 번 쓰면 그만이고, 공동 구매가 아니기에 이후에 누군가가 그 글을 보고 책을 주문한다 해도 북로거에게 추가 수수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책은 얼마 하지도 않고, 특급이 아니고서야 유명 북로거가 서평을 썼다 해서 매출이 크게 증가하지도 않을 것. 하지만, 가격이나 매출과 상관 없이 북로거가 출판사에 요청해 책을 받는 경우와 북로거가 출판사로부터 서평에 대한 대가를 제공받는 경우는 도덕성 논란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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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1-07-1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쓰는 대가로 돈을 주는데가 있다니*_* ㅋㅋㅋ

이잘코군 2011-07-13 00:10   좋아요 0 | URL
이건 처음 들었어요. 이번에.

2011-07-13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7-1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파워블로거가 되기위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었을텐데 저런 행동을 하다니 위험한 도박이네요.

이잘코군 2011-07-13 09:57   좋아요 0 | URL
돈을 위해서 일부러 파워북로거가 되진 않았을 테고, 하다보니 힘이 커졌고,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절제하지 않았다고 봐야죠. 크게 문제가 될 거란 걸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Kir 2011-07-13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는데 이쪽도 만만치않군요.
'북로거가 출판사에 요청해 책을 받는 경우'도 놀랍지만, '북로거가 출판사로부터 서평에 대한 대가를 제공받는 경우'까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잘코군 2011-07-13 17:59   좋아요 0 | URL
후자는 포털 쪽 북로거 이야기인듯해요. 알라딘이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서는 못 들어봤는데.

saint236 2011-07-1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경우도 있군요.

이잘코군 2011-07-13 17:59   좋아요 0 | URL
으음...
 
불온한 인문학 -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
최진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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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은 당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것,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려주는 것, 머리 싸매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고민하고 언어로 토해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최진석)
-8쪽

인문학이 텍스트의 쾌락이자 종이 위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세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혁명은 인문학이 묵독의 자아도취를 벗어나 광장에서 올리는 함성이 될 때, 거리에 대한 관조를 중단하고 거리를 욕망할 때, 학문이라는 성에 칩거하지 않는 비학문이 될 때, 우리의 심장과 지성, 언어를 격발시키는 불온한 인문학이 될 때 점화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진석)
-8-9쪽

그것(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제언)은 차라리 지금-여기의 현실을 작파하고 ‘다른’ 현실을, 우리의 감각과 지식, 상식의 기반을 뒤흔들어 우리를 ‘낯선’ 변경으로 던져 넣는 것이어야 한다. (정정훈, 최진석)
-17쪽

나는 온화함과 동일성의 논리로 우리를 포획하는 인문학의 이미지를 뒤흔드는, 그래서 인문학을 낯설게 하고, 그래서 인문학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인문학에 반하는 사유 활동, 즉 그 사유 활동을 ‘불온한 인문학’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정정훈)
-104쪽

통섭이란 관념만큼 횡단에서 거리가 먼 것은 없는 것 같다. 통섭은 횡단과 반대로 하나의 체계 안에 지식들을 ‘통합’하고 ‘포섭’하려는 제국주의적 전략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이른바 ‘학제적 연구’보다도 훨씬 낡은 관념이지만, 그것이 종종 학제적 연구 체계의 구성으로 오해된다는 사실은, 학제적 연구 또한 통섭처럼 통합과 포섭의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와 달리 횡단은 하나의 지식을 다른 지식과 통합하여 단일한 체계를 부여하려는 발상을 가로지르는 것이고, 이런저런 지식들을 근거짓는 것과 근거 지워지는 것, 근본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일차적인 것과 이차적인 것의 위계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발상 전체를 전복하는 것이며,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과 반대로 거기서 이탈하여 엉뚱한 만남의 장소를 창안하는 것이다. (이진경)
-145-146쪽

추방된 자들의 (인)문학적 공동체를 위해 인문학자는 스스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유의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삶의 심층에 사유의 구멍을 뚫는 두더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인문학자들의 공동체는 사유의 탈영토성을 무기로, 개별적으로 삶의 심층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구멍을 연결해야 한다. 그 통로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소통시키고, 기술을 소통시키고, 기술자들을 소통시켜야 한다. 그래서 지하 생활자들의 땅굴 네트워크, ‘지도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수)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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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이념
칼 야스퍼스 지음, 이수동 옮김 / 학지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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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스퍼스가 말하고 있는 대학 현실이 2011년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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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이념
칼 야스퍼스 지음, 이수동 옮김 / 학지사 / 1997년 5월
절판


대학은 학자와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서론) -17쪽

대학은 가르침의 자유를 요구하고 그 자유가 보장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자유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조건이며, 내외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어떠한 국가적 또는 정치적 힘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만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 (서론)-17쪽

학생들은 대학의 이념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책임을 의식하며, 교수들은 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연구가들이다. 이렇게 학생들은 그들에게 고유한 배움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의식을 형성한다. 학생과 교수들은 모두 인간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오직 진리만을 탐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디서든지 어떠한 조건도 없이 진리를 탐구한단느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다. (서론)-18쪽

지적 욕구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그 앎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서론)-19쪽

사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존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적 지식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대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과학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인식하는 지식이며, 이 지식을 통해서 기능한다. -30쪽

학문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학문이 인간의 지적 욕구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 욕구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은 이미 유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조건 하에서 지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교육 이념의 한 요소로서 존재한다면 이것도 역시 본질적이지 못하다. 여기서 ‘근원적’이라고 함은 지적 욕구와 그 결과로 유용성을 의미하는 지식은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32쪽

비판을 회피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지적 욕구가 결여된 사람이다. -44쪽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인 이성과 과학을 부정하라. 그러면 나는 너를 내 손아귀에 넣게 될 것이다."(메피스토펠레스)-47쪽

정신은 이념이 가지고 있는 힘이며, 실존은 초월적 관계에 놓여 있는 절대적 실재이고, 이성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수용하는 개방성을 의미한다. -49-50쪽

인문과학이 주장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는 인간의 과거 역사를 깨닫게 하고, 전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데 있다. 비록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이것은 언어학에서 연구된다)은 잊혀졌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당연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볼 수 있는 위대한 신화의 모습,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업적이 바로 중요한 교육적 가치이다. -57쪽

"자신의 천부적 소질을 체계적으로 계발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일찍 깨달을수록 그만큼 더 행복하다."(괴테)-66-67쪽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의미하는 문화에 대한 자의식은 지식인이 시대적 감각을 가지고, 지적으로 발전적인 사람과 교류를 하며, 그러한 경험에 바탕하여 현재를 바라볼 때 명료해진다. 그래서 대학은 사고하는 사람들이 지적 삶을 추구하는 곳이다. -69쪽

대학에 언어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면, 기술과 실습은 있되 이론이 없다면, 오직 끝없이 사실들만 존재하고 그것을 체계화한 사상이 없다면,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69쪽

스스로 연구하는 사람만이 진정 가르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나 교육학적으로 체계화된 결과들을 전달할 뿐이다. 대학은 결코 지식만을 전달하는 학교가 아니라 연구를 생명으로 하는 고차원적 교육기관이다. -71쪽

전공 분야에 대한 결과를 전반적으로 완전하게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요구는 단지 일시적이고 이론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시험을 치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71쪽

요즈음 국가고시의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전문지식의 부족은 직업적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이고 학문적 교양의 기초가 결여된 사람으로부터는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할 수 없다.-73쪽

"철학은 모든 다른 지식에 일차적으로 가치를 부여해 주는데, 이것이 바로 철학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가치이며 위엄이다."(칸트)-73쪽

"이론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일단 이론이 형성되면 현실세계도 그에 따라 바뀐다."(헤겔)-93쪽

학문간의 교류는 상호 대립하고 충돌할 수 있는 깊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이 그 학문은 비로소 명백해진다. -98쪽

공정하지 못한 선발과정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할 유능한 사람을 뽑지 못하고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을 택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학문적 업적을 통해서 학계의 인정을 구하고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행정관료처럼 자동적인 승진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또한 많은 교수들이 지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교수들은 하빌리타치온 과정에 받아들일 학생들의 지적 조건에 대한 원칙만은 확고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하빌리타치온의 후보 선발에는 적어도 자신이 이루어놓은 학문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신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자기 제자가 아니더라도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그 조건으로 해야 한다. -104쪽

필요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선별과정은 지원자를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한다. 인간의 정신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모든 개인적 관심이나 사적인 것은 불필요한 사족처럼 밀려난다. 그렇다고 어떤 고차원적 의미의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현실적 요구조건의 충족을 위하여 적합한 기준에 얽매여 있을 뿐이다. -156쪽

대학은 학생들에게 자립정신을 형성하게 하고 자기 스스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충분히 성숙하고 더 이상 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학설, 관점, 방향 제시, 사물에 대한 인식과 조언을 듣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점차 자기 스스로를 시험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159쪽

시험과 자격증 시험은 될 수 있는 한 적게 실시해야 한다. 너무 잦은 시험은 책임감 없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시험의 횟수가 적을수록 시험은 진지하고 엄격하게 치러질 것이다. 너무 많은 양으로 과다한 요구를 하게 되면 시험은 공전하게 되고 어떤 좋은 결과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험은 선별이라는 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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