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논문작성법
고려대학교 출판부 엮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1년 6월
품절


논문이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학문의 발전에 공헌하고, 나아가 인류의 지식의 총화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개념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1쪽

학위논문은 연구자의 능력 과시를 그 기능의 하나로 하기 때문에 완벽한 방증,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연구사적인 고찰, 충분한 자료의 제시 등 연구자에게 보다 많은 노력과 분석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상례이다. -5쪽

우선적으로 논문에는 독창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독창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소재의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다루어진 소재라도 기술 방법이나 관점 또는 결론으로 이끄는 방식이 새로우면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조사, 연구해서 알아낸 사실과, 이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비평이나 평가와 요구된다. 즉 다른 사람의 저술이나 견해를 비판 없이 옮기거나, 입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것 혹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저술을 인용하는 것은 논문을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연구자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6쪽

번역물은 일차자료가 아니다. 번역이라는 행위는 그 내용이 다른 언어로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번역자의 의도나 사고가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창조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번역물이 원래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번역자의 사고가 번영되기 때문에, 이것 역시 일차자료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차자료일 뿐이다. 따라서 번역물에만 의존해서는 정확한 논문을 쓸 수 없다. 만약 '퇴계의 사상'에 관한 글을 쓴다면 그가 저술한 책을 직접 읽을 수 있는 한문 실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퇴계의 모든 저술이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할지라도 원문을 직접 읽을 수 없으면 퇴계에 대한 좋은 논문을 쓸 수 없다. -40쪽

1) 논문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예술적 창의성과 달리 학문적 창의성은 '새로운 표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이 가리키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나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방법'에서 드러난다. 결국 새로운 표현이라 하더라도 결코 표현의 기법에 관한 문제만일 수 없고 새로운 발견을 향한 학문적 열의와 문제 의식 그리고 연구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이 사실상 논문의 학술적인 창의성의 전제가 된다. 그러므로 학술논문에서는 집필자의 창의적인 대목이 논문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 오도록 서술해야 한다.

2) 사고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여러 가지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논리를 펼쳐 나가는 것은 논문 집필의 핵심이며, 최초의 발상에서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일관된 사고가 이어지지 않고서는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최초의 착상을 얼마나 흔들림 없이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58쪽

인용의 원칙
1) 권위 있는 이론이나 주장, 또는 표현을 제시함으로써 자기 논리의 타당성,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2) 남의 이론이나 견해와 자기 주장과의 차이점을 밝힘으로써 역시 자기 논리의 저당함과 정확함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삼는다.
3)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이나 견해가 있을 때 이를 비교, 대조함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전개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 -61쪽

직접인용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필요하다.
1) 원문의 표현이 아니고는 다른 적나 표현을 찾을 수 없을 때
2) 원문을 그대로 제시하지 않으면 독자가 그릇된 해석을 하게 될 염려가 있을 때
3) 자기의 것과는 상충되는 견해를 더욱 뚜렷하게 노출시키고자 할 때 -62쪽

인용부분 전체는 지문의 좌측기선에서 우측으로 두세 자 들여앉힌다. 이른바 들여쓰기가 필요하다. 또한 이 때의 인용부분은 지문보다 행간을 좁히며, 특히 글자 크기를 지문보다 작은 것으로 하는 것이 관례이다. 인용부분을 지문과 분리해서 처리할 때 특히 유의할 것은 따옴표(" ")를 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63-64쪽

인증과 주
1) 주석은 인용문의 출처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한다.
2) 주석은 증거 자료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3) 주석은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확장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사용한다.
4) 주석은 본문의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데에 사용한다. -68쪽

논문의 문장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1) 논문 문장은 평이해야 한다. 현학적이고 난삽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그 논문을 읽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그 논문이 학계에 기여할리 만무하다.

2) 논문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논문은 명제와 논거로 되어 있다. 이들이 명료하지 않으면 논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때문에 논문의 문장은 가능하면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중심 사상을 담는 경제적이고 간결한 것이 좋다. 형용사나 부사와 같은 수식어의 남용은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아울러 본문의 내용은 논지 전개에 꼭 필요한 것들만을 엄선해서 쓰고 불가피한 경우 주석, 인용, 부록 등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3) 논문의 문장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이성에 토대를 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표현만이 요구될 분, 지나친 감정의 노출이나 수사적인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단정적인 표현이나 최상급의 평가는 피하는 것이 좋다. 아뮐 확정적인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개연성을 주장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좋다. 상대방을 지칭할 때 존칭을 써서는 안 되며, 자신을 지칭할 때는 3인칭을 써서 자신을 객관화해야 한다.

4) 논문의 문장은 정확해야 한다. 논문은 설명적인 글이다. 따라서 설명이나 논증과 같은 설명적인 진술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묘사와 서사와 같은 창작적인 진술 방식을 사용하여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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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 담백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3
김용규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9월
구판절판


지식이란 우리가 '어떤 것들에 대해 정당한 근거를 갖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정당화란 '어떤 것을 믿기 위해 충분한 근거를 대는 것'이고, 참 이란 '사실과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17쪽

"진리는 없다. 있어도 모른다. 알아도 말할 수 없다." (고르기아스)-53쪽

첫째, 우선 상식에 속하는 의견을 하나 골라잡은 다음
둘째, 그 의견이 거짓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없는지 따져보고
셋째, 그런 경우가 발견되면 그 의견을 새롭게 고치는데
넷째, 이 일을 예외가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 관해)-83쪽

"오직 비판의 길만이 열려있다." (칸트)
"철학자란 항상 상식이 아닌 것을 체험하고 보고 듣고 의심하고 희망하고 꿈꾸는 사람이다." (헤겔)
"철학은 그냥 두면 거의 애매하고 혼란된 사상을 명료하게 하고 명확하게 한계 짓지 않으면 안된다." (비트겐슈타인)-85-86쪽

만일 어떤 사람이 슈퍼컴퓨터가 세상의 모든 '꽃'을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꽃을 - 거의 불가능하지만 매우 어렵게 -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시켰다고 하자. 그런데 실수로 그 중 하나라도 데이터베이스에서 빠지면, 슈퍼컴퓨터는 그 꽃만은 꽃으로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다르다.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엄마가 몇 종류의 꽃을 보여주며 "이게 꽃이란다"라고 알려주면, 그 다음 어느 시점부터는 아무리 처음 보는 꽃이라 해도 그것이 꽃임을 곧바로 알아본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플라톤의 상기론으로 설명하면 간단하다. 아이는 몇 종류의 꽃만 보면 망각의 강에서 잊어버렸던 '꽃의 이데아'를 '재기억'해내고, 그 다음부터는 '꽃의 이데아'가 들어있는 사물들을 볼 때마다 즉각 그것이 꽃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어린아이에게 "꽃은 아름답다"라고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아이는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몇 종류의 꽃을 보면 잊었던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다시 기억해 내고 "아! 아름답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116-117쪽

"유럽 철학의 가장 믿을 만한 특징은 그것이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사상가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논쟁하는 모든 것은 플라톤에서 비롯되었다.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이 플라톤이다." (에머슨)-123쪽

"있는 것을 있지 않다고 하거나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요, 있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있지 않은 것을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그렇게 있는 것을 그렇게 있지 않다고 하거나 그렇게 있지 않은 것을 그렇게 있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요, 그렇게 있는 것을 그렇게 있다고 하거나 그렇게 있지 않은 것을 그렇게 있다고 하는 것이 참이다." -150-151쪽

"참과 거짓은 사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사물이 참되고, 나쁜 사물이 거짓인 것이 아니다. 참과 거짓은 오직 우리의 사고 안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52쪽

"어떤 동일한 것이 다른 어떤 동일한 것에 어떤 동일한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맺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모순되는 진술이 동시에 참일 수 없다."
"같은 것에 대해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할 수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르거나 동일하다."
"이것은 가장 높고, 안전한 원칙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 모순율에 대해)-154쪽

베이컨은 지식의 목적이 '인간의 상황을 낮게 만들고' '인간 지배권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함이라고 선언했고, 데카르트도 '실생활에서 유용할 수' 있는 '실천적인 철학'을 원했다. 그 다음으로는 진리를 찾아가려는 우리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를 위해 한 일이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을 깨트리는 것이었고,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해 보는 '방법적 회의'였다.
반면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은, 베이컨이 '경험'을 중요시하는 전통에 서 있었다면, 데카르트는 '사고'를 중요시하는 전통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얻는 방법도 베이컨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법을 내세웠다면, 데카르트가 사고를 바탕으로 한 연역법을 내세웠다. -191-192쪽

정리하자면, 연역법이란 전제로부터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논증법이며, 귀납법이란 전제로부터 결론이 확률적으로 또는 가능적으로 나오는 논증법이다. 또한 연역법은 전제의 내용 가운데서 결론을 얻기 때문에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무조건 '참'이라고 하여 '진리 보존적 논증법'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귀납법은 전제의 내용을 확장시켜 결론을 얻기 때문에 전제가 참인 경우라 해도 결론이 단지 '확률적으로 참' 또는 '가능적으로 참'이라고 하여 '진리 확장적 논증법'이라고도 한다. -204-205쪽

"나는 주의 깊은 정신 앞에 드러나는 또렷한 것을 명백하다고 한다. 이것은 대상들이 그것을 보는 눈에 충분히 강하게 작용하여 나타날 때, 우리가 대상을 명백하게 본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 다음 매우 또렷하고 다른 것들과 판이하게 달라 그 자신 안에 명백한 것 이외의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다고 한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246-247쪽

첫째, 내가 자명하게 그러하다고 알고 있지 않은 어떤 것도 참된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리하여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조급한 판단이나 편견을 피해서, 나의 정신에 명백하고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결코 나의 판단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내가 의심할 수 없는 것만 포함시키겠다.
둘째, 내가 검토하는 각각의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문제를 되도록 작게 나누어 검토한다.
셋째, 나의 생각을 질서 있게 유지한다. 그러기 위하여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차츰 복잡한 것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본래는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에게 마치 어떤 순서가 있는 것처럼 질서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무것도 빼놓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세분하여 분석한 것들을 전체적으로 재조합하고 재검토한다.
기하학자들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논증을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가장 어려운 증명을 해결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나는 이런 방법으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이 참되지 못한 것을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도록 주의만 한다면, 그리고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에서 연역해 내는 데에 필요한 순서를 지키기만 한다면, 세상에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먼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도저히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깊이 감추어진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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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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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과거의 지평(선입견)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가다머의 주장을 주체 중심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는 새롭게 만날 타자에 대해서 근본적인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거의 성심을 철저하게 폐기해야 한다는 장자의 주장은 타자 중심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의 연속성은 새롭게 만날 타자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2쪽

장자에 따르면 몸을 가지고 사는 인간은 항상 어떤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해 살아가는 존재다. 이 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해 살아가며, 그 문맥과 소통하는 데 근거하는 구성된 마음을 지닐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완성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모두 성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치 때가 낀 거울이나 맑은 거울이나 항상 무언가 비추듯이 말이다. 다만 완성된 사람은 타자와 얽히는 특정한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을 다른 삶의 문맥에 폭력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삶의 문맥에서도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허심(虛心)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33-35쪽

장자가 문제 삼고 제거하려는 것은 성심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작동시키는 성심을 절대적 표준으로 삼는 사태'를 문제 삼는다. 장자는 고착된 자의식과 무관한 성심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부정하려는 것은 '특정한 성심을 표준으로 삼는 고착된 자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착된 자의식과 무관한 성심, 즉 임시적 자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성심은 인간의 유한성에 기인하는 자연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37쪽

이처럼 장자에게는 두 종류의 자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는 그가 부정적인 것으로 보아 제거하려고 한 것으로서, 과거 의식을 자의식의 기준으로 집착하는 고착된 자의식이다. 둘째는 인간이 사회에서 산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임시적 자의식이다. 임시적 자의식은 구체적인 사태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자의식이다. -40쪽

이렇게 우리 삶은 항상 타자와의 무매개적인 소통을 전제로 영위되고, 오직 이런 무매개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변화되어 생성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을 인식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먼저 삶이 이루어지는 실존적 사태로 소통을 이해해야 한다. 타자와 소통함으로써 지금 나 자신으로 만들어지고, 앞으로도 전혀 생각지 못한 타자와 만나고 소통함으로써 전혀 생각지 못한 나로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통의 긍정은 공존과 공생의 긍정과 연결되고, 비움으로 상징되는 깨어남은 이런 본래적 존재 양식으로서의 복귀를 의미한다. -43쪽

'알 수 없다'는 경험 또는 실존 상태는 자신만의 판단을 중지하게 만들고,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제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니, 이제 타자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조율할 수밖에 없다. 장자는 이것을 인시(因是)'라고 부른다. -57쪽

'저것'과 '이것'이 대립하지 않는 경우를 '도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른다. 한번 그 축이 '원의 중앙(環中)'에 서게 되면, 그것은 무한히 소통하게 된다.

'저것(彼)'과 '이것(是)'이 대립하지 않는 것을 기호로 나타내면 '저것=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것'과 '이것'의 관계를 장자의 경우 'A=-A'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공식은 분명 모순이다. 따라서 'A=-A' 라고 표현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A'라는 것인가, '-A'라는 것인가? 이처럼 장자가 제안하는 '판단중지'의 상태는 기존의 형식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언어와 그에 따라 작동하는 사유의 분멸 작용이 불가능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 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는 이 공간이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곳이다. 장자는 이런 불편한 '판단중지' 상태에 있을 때만 타자와 소통하는 삶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59-60쪽

타자와 차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동일성'을 무너뜨리는 어떤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관조의 대상이나 풍경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삶의 차원에서 사건으로 나에게 닥쳐온다. 내면과 외면이라는 구조 속에서 결코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타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과 외면이라는 동일성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예측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타자다. 자신의 아이처럼 귀하게 키운 새끼호랑이가 어느 날 자기 손을 물 수 있다. 그렇게 타자의 타자성은 우리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75-76쪽

진정한 의미의 타자와 차이는 자신의 동일성을 파괴하는 그 무엇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타자가 지닌 타자성은 내가 다른 주체로 생성될 수 있게 하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관조의 풍경이 아닌 타자성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타자는, 어떤 공백이나 의미의 결여로만 나에게 나타나는 그 무엇이다. 내가 어떤 주체로 생성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77쪽

노자에 따르면 모든 개체는 고립적이고 자족적인 실체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가득 차서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은 이제 더는 그릇일 수 없다. 어떤 사람도 들어갈 수 없이 가득 차 있는 방은 이제 방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릇은 다른 것을 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방은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132쪽

재분배는 통치자가 직접 만들어 낸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폭력을 내세워 남에게서 배앗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되는 재분배의 목적은 단지 안정된 수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노자 당시 수탈의 유일한 대상이 농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가가 왜 농민을 위해 관개사업이라든지 토지정리 사업같은 대규모 공적 사업을 시행하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계층이 자본자이기에, 국가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존재도 역시 자본가일 수 밖에 없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에 따른 수탈과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지만, 은혜와 선물이라는 겉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 은행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자애롭게 재분배를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은행에서 투자금을 거둬들이는 경우, 채무자 스스로 약속을 이행한다는 겉모양이 유지되어야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177-178쪽

뇌물의 논리와 선물의 논리를 가르는 기준은 사실 대가에 대한 기대 또는 기억 여부에 있다. 내가 타자에게 무엇을 뇌물로 주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준 그것에 대한 대가를 항상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타자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즉 그 사람이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면, 내가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선물이 되고 만다.
반대로 타자가 내게 무엇을 뇌물로 주었다고 해도 내가 그것이 뇌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이제 상대에게 무엇을 대가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상대의 뇌물은 아이너리하게도 나에게는 선물이 된다. -180쪽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거나 받을 때 그것을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뇌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연인 관계는 바로 채권, 채무 관계로 변질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 있듯이, 사랑은 채권, 채무 관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오히려 채권, 채무 관계를 잊어야만 다가오는 것이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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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품절


그러던 중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벌떡 일어나 박생을 흔들어 깨우고는 "자네는 오늘 이 비를 앙는가? 이것은 옛사람의 문장일세" 라고 크게 말했다네. 박생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에 상세히 말해주었지.

"지난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오늘을 위해 쌓아두었던 것이고, 오늘 이 비는 지난날 쌓아둔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네. 오로지 오래 축적해야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쏟아질 수 있는 법이지. 문장도 마찬가지야. 옛날 작가들은 모두 길게는 수십 년이요, 짧아도 십여 년이 되도록 학문을 쌓고 생각을 깊이 하여 콸콸 솟아 넘쳐나고 눌러도 다 없어지지 않은 연후에야 마침내 그것을 꺼내어 문장을 지었네. 그래서 그 말이 콸콸 쏟아지고 항상 촉촉하여 마르지 않았지. 그렇지 않고 없는 살림에 하루하루 쓸 거리를 맞춰 살다 보면 머지 않아 부족하여 남에게 빌리고 표절하게 되니 어찌 굶주리지 않겠는가."
(서유구가 사촌 동생 유경에게 쓴 편지) -52쪽

산 높고 물 깊은 이곳에서 명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옛말에 "움직이면 비방은 받겠지만 그래도 명예는 따른다"고 하였으나 모두 빈말인 것 같습니다. 겨우 한 줌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벌써 비방이 한 자 만큼이나 따라와 있습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늙어서야 그런 이치를 깨닫습니다.
저 또한 젊어서는 헛된 이름을 얻고자 옛사람의 글줄을 훔치고 꾸며 칭찬과 명예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은 겨우 송곳 끝만 한데 비방은 산만 합니다. 밤마다 조용히 생각하면 신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구한 명예란 것도 제 손으로 깎아내도 모자랄 판에 다시 가까이하다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명예를 좇는 친구는 제 눈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일찍이 이익이나 권세를 추구하는 길에도 들어서보았지만 다들 남의 것을 가로채서 자신의 몫으로 챙길 생각 뿐, 제 것을 덜어 남에게 보태주는 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명예란 본래 알맹이 없이 텅 빈 것. 사람들도 돈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쉽게 남에게 내어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익이 되고 권세가 되는 일을 기꺼이 미루어 남에게 주는 이는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덤벼들어 내달리다가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나자빠지기 일쑤지요. 결국 기름통을 가까이 하다가 옷만 더럽히는 꼴입니다. 이 역시 이해를 따지는 비루한 소리겠으나,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쓴 편지)
-75-76쪽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명나라 이탁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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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잘코군 2007-04-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귀찮아서 리뷰 안쓰고 있어요. 편지글이 재밌더라고요.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4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4
김선욱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음과 모음에서 기획된 철학자, 과학자 시리즈의 한편으로 동화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명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동화에 녹여내 풀어내는 것이 기획목적이고, 꽤 잘 쓰여졌다는 생각이다. 철학 교수들이 동화를 직접 쓰니 전문적인 동화작가들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무엇보다 정확한건 초등학생의 시선이겠지만.

 숭실대학교 철학과 김선욱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활발한 논문, 저술작업을 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그는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가 수년간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해석학 등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학부시절 스승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헤겔철학과 사회정치철학을 접했고, 그의 열정이 늘 부러웠다. 대학시절 이렇다할 멘토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현재도 관심갖고 있는 국내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꾸준히 시선을 두고 있다. 철학에 있어서 내가 관심 갖는 분야들은 그의 관심분야와 상당 부분 겹치고, 그런면에서라도 난 그에 대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이 동화는 꽤 재밌게 쓰여졌다. 한나 아렌트도 전체주의도 동화 속에 잘 녹아들어갔고, 내용 또한 재미있어, 누가 봐도 부담없이 쉽게 볼 수 있다. 교실 내의 왕따 문제와 스승의 날의 일일 교사를 통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전체주의의 기원>을 살펴본다. 책 뒷면의 동국대 철학과 홍윤기의 교수의 멘트대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이 책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책 값은 꽤 비싸지만 어떤 다른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보다도 쉽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이라해도 먼저 쉽게 부담없이 한나 아렌트를 접해보고 싶은 이들은 찾아 볼만한 책이다. 소장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아무런 부담없이 그녀를 접하고자 하는 이라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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