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품절


그러던 중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벌떡 일어나 박생을 흔들어 깨우고는 "자네는 오늘 이 비를 앙는가? 이것은 옛사람의 문장일세" 라고 크게 말했다네. 박생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에 상세히 말해주었지.

"지난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오늘을 위해 쌓아두었던 것이고, 오늘 이 비는 지난날 쌓아둔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네. 오로지 오래 축적해야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쏟아질 수 있는 법이지. 문장도 마찬가지야. 옛날 작가들은 모두 길게는 수십 년이요, 짧아도 십여 년이 되도록 학문을 쌓고 생각을 깊이 하여 콸콸 솟아 넘쳐나고 눌러도 다 없어지지 않은 연후에야 마침내 그것을 꺼내어 문장을 지었네. 그래서 그 말이 콸콸 쏟아지고 항상 촉촉하여 마르지 않았지. 그렇지 않고 없는 살림에 하루하루 쓸 거리를 맞춰 살다 보면 머지 않아 부족하여 남에게 빌리고 표절하게 되니 어찌 굶주리지 않겠는가."
(서유구가 사촌 동생 유경에게 쓴 편지) -52쪽

산 높고 물 깊은 이곳에서 명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옛말에 "움직이면 비방은 받겠지만 그래도 명예는 따른다"고 하였으나 모두 빈말인 것 같습니다. 겨우 한 줌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벌써 비방이 한 자 만큼이나 따라와 있습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늙어서야 그런 이치를 깨닫습니다.
저 또한 젊어서는 헛된 이름을 얻고자 옛사람의 글줄을 훔치고 꾸며 칭찬과 명예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은 겨우 송곳 끝만 한데 비방은 산만 합니다. 밤마다 조용히 생각하면 신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구한 명예란 것도 제 손으로 깎아내도 모자랄 판에 다시 가까이하다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명예를 좇는 친구는 제 눈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일찍이 이익이나 권세를 추구하는 길에도 들어서보았지만 다들 남의 것을 가로채서 자신의 몫으로 챙길 생각 뿐, 제 것을 덜어 남에게 보태주는 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명예란 본래 알맹이 없이 텅 빈 것. 사람들도 돈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쉽게 남에게 내어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익이 되고 권세가 되는 일을 기꺼이 미루어 남에게 주는 이는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덤벼들어 내달리다가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나자빠지기 일쑤지요. 결국 기름통을 가까이 하다가 옷만 더럽히는 꼴입니다. 이 역시 이해를 따지는 비루한 소리겠으나,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쓴 편지)
-75-76쪽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명나라 이탁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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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늘빵 2007-04-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귀찮아서 리뷰 안쓰고 있어요. 편지글이 재밌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