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변 사람-꼭 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소식을 듣고는 죽은 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어떤 친했던 이는 울기도 할테고, 그 죽음이 온전치 못한 것이라면 어떤 이는 분노를 할테고, 어떤 이는 아무렇지도 않을테고, 어떤 이는 관심밖의 이야기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내게 주변인이 죽었다는 것이 사실로서 현실에 와닿은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고, 할머니의 죽음이었고, 그리고 동아리 후배놈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나이듦에 의한 자연스러운 수명의 다함에 의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죽음 역시 그러했기 때문에 흔히 말하듯 잘  가셨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의 경우 중풍으로 꽤 오래 앓아누워있긴 하셨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기 얼마전 할아버지의 누워계신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두 분 다 온전히 가셨다.

 세번째의 죽음. 나의 동아리 후배의 죽음은 비정상적이었다. 그 놈은 나보다 젊으니 지금 팽팽하게 살아있는 나보다 늙어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바고, 그렇다면 그 놈에게 무슨 지병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놈은 지병은커녕 힘이 넘쳐서 공연장에 구경가서도 그냥 보는 축이 아니라 맨 앞에서 헤드뱅잉하고 이리저리 부딪히기도 하며 안경도 몇차례 깨먹고 온갖 '지랄'을 해대는 애였다. 이놈은 내게 드럼을 배우던 놈이었다. 그러던 애가 나보다 먼저 군대에 갔고 군대에 간지 100일이 채 안된 어느날 동아리 다른  후배에게 그놈의 죽음을 접했다. 자.살.

 이놈은 자살할 놈이 아니다. 그 밝은 아이가 자살이라니. 그런데 상황조차 미심쩍었다. 자살이라기엔. 해안경계부대로 야간에 다른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나갔는데 다음 날 아침 바다에 떠있더라? 말이 안된다. 그런데 결국 그 아이는 자살로 판정났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부대앞에서 몇날 며칠을 시위하시고 장난도 아니었겠지. 그치만 나를 비롯한 우리 동아리 애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진실규명을 위한 서명운동 정도가 고작. 자살 한 이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창 인터넷 칼럼니스트 생활할 무렵이었고, 나는 그의 죽음의 부당성을 알리는 글을 써서 여기저기 보냈다. 그걸 본 아버지 왈. 그러지 마라. 국가에서 잡아간다. 아버지는 경찰이었고 보안요원이었다. 국가보안을 책임지는. 훗. 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아버지가 잡아가면 되겠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분노가  솟았다. 그리고 말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죽었는데 내 친구들, 내 선배, 내 후배들이 모두 조용히 있는다면 마음이 편하겠느냐고. 똑같이 생각을 해보라고. 그 부모님들이 진실규명하는데 죽음 놈의 선배, 후배라는 이들이 침묵하고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그리고 난 한 게 없다. 그놈의 부모님을 뵙지도 않았고, 시위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고작 언론에 글 쓴게 다였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렀고 그는 잊혀졌다.

 

 

 어제 엄마, 동생과 택시를 타고 백화점을 가고 있었다. 짧은거리라 세명이 버스를 타나 택시를 타나 그게 그거라고 판단했던 것. 어쨌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택시안의 대화가 중요하다.

 동생이 자기 동기 하나가 군대에서 죽었댄다. 자살이고(군대에서 죽으면 죄다 자살이다) 국가유공자로 판정되었다는 이야기. 어머니는 국가유공자라도 된게 어디냐며 그러면 그애가 결혼을 했으면 그 가족들이 보상을 받을텐데 라고 말하며, 동생과 어머니의 대화는 결국 나는 모를 그 아이의 죽음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죽은 이를 놓고, 그것도 자기 동기라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그 대가에 대한 이야기라니. 갑자기 싫어졌다. 동생이야 원래 싫어했으니 더 실망할 것도 없다치고, 엄마도 싫어졌다. 그게 가족을 꾸린 부모님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까. 결국 돈. 전에도 엄마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죽기 얼마전 보험을 들어놔서 집 한 채를 살 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잘됐다 라는 말을 하셨다. 그때도 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싫었다. 죽은 이를 놓고 돈이라니. 내가 죽어도 그럴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죽으면 그러진 않을텐데 왜 남의 죽음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글쎄다. 내가 아직 딸린 가족이 없어서 그런지, 세상살아가는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참 싫다. 나의 죽음에 대해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도록 나는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어야하는걸까? 훗...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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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밀리언달러베이비가 생각났어요. 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는 그 장면 보는 동안 마음속의 뭔가가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구판절판


"다산 정약용이 과거의 폐단과 모순을 심각하게 느끼고, 추천을 통한 인재선발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때,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오히려 과거야말로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국가의 인재선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12쪽

"세상에는 생기기 쉬운 폐단과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습니다.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입니다. 구제하기 어려운 것이 먼저 나타나고, 생기기 쉬운 것은 뒤에 나타납니다. 정신의 폐단은 원인이고, 사물의 폐단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병이 들면 좀이 쓸고 젓갈에 악취가 나면 구더기가 들끓는 것처럼, 술의 폐해가 어찌 정신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습니까?"(김구, 1488-1534, 성종 19-중종 29)-67쪽

"사회의 모순은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불균형이 더 큰 문제이다. 빈부의 차이가 심할수록 사회는 불안정하고,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결국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길은 극심한 빈부차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박광전, 1526-1597, 중종 21-선조 30)-223쪽

"문화란 예의와 절도의 결인데, 곧 '문리가 상세하고 분명하다'라고 할 때의 문화입니다. 공경함이란 '경건해서 안을 곧게 한다'는 뜻의 공경함입니다. 먼저 경건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그 다음으로 문화로 바깥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인재를 얻는 근본이 여기서 갖추어질 것입니다."(김효원, 1532-1590, 중종 27-선조 23)-242쪽

"당쟁이란 정치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점이 서로 다른 당파가 정치이념을 두고 투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쟁 그 자체는 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현상이거나 사회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파 사이의 당쟁이 없는 전제나 독재체제가 제도적 측면에서는 더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붕당을 근대적 정당에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근대적 의미의 정당이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 같은 정견을 가진 사람끼리, 정치권력에 참여할 목적으로 결성한 정치 단체라는 점에서는 붕당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정당은 국민 대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대의 정치의 기반이 되는 조직이다.
이에 반해 붕당은 근본적으로 관료집단의 이해관계와 이념을 중심으로 결합된 조직이다."-250쪽

"재능은 평상시라면 쓸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덕은 비상시에나 평상시에나 일관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과연 비상시에 쓸 수 없는 재능으로 비상사태를 만나서, 정도로 대응하거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김의정, 1495-1548, 연산군 1- 명종 3)-266쪽

"원래 교육이란 글자에는 가르치고 길러서 선으로 이끌어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敎는 위에서 베푸는 것을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고, 育은 자식을 길러서 착하게 만드는 것이라 했다. 위에서 베푸는 것이란 어른이 모범되는 것을 어린이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란 어린이가 어른이 전해준 모범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319쪽

"교육은 국가가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수단만이 아니다. 교육의 고유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가 한 성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세계관과 건전한 의식을 갖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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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32
장 자크 루소 지음, 박호성 옮김 / 책세상 / 2003년 9월
구판절판


"교육은 자연이나 인간 혹은 사물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의 능력과 신체 조직을 내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자연의 교육이다. 이러한 성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이러한 성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물체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얻는 것은 사물의 교육이다." -24쪽

"자연의 길에서 머무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살펴보자.
첫번째 원칙. 아이는 힘이 남아돌기는커녕 자연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하기에도 힘이 부족하다. 따라서 아이가 자연에게 받은 모든 힘을 사용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래도 아이는 그 힘을 남용할 줄 모른다.
두번째 원칙.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 중 아이에게 부족한 것은 지성이든 힘이든 간에 보충해주어야 한다.
세번째 원칙. 아이를 도와줄 때는 실제로 필요한 일만 한정해서 도와주어야 하고, 환상이나 이유 없는 욕망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환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므로, 환상을 품게 만들지만 않으면 아이가 고통을 전혀 겪지 않기 때문이다.
네번째 원칙. 아이의 언어와 표정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일체의 감정을 속일 줄 모르는 나이의 아이가 지닌 욕망 가운데 자연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과 억측으로부터 오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96쪽

"사회는 인간에 의해서, 인간은 사회에 의해서 연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여 고찰하려 드는 사람들은 둘 중 어느 하나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24쪽

각주
(옮긴이주) 토인비는 문명을 정신적 관점에서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문명은 인류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단일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협조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상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다.-143쪽

각주
슈펭글러나 토인비는 문명을 역사의 단위 혹은 인격체로 보았으며, 각 문명의 등장, 성장, 퇴락, 붕괴의 규칙적인 양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례로 볼 때 서구 문명은 전성기를 벗어나 가까운 장래에 멸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시드니 폴라드, <진보란 무엇인가>, 이종구 옮김(한마당, 1983), 199쪽.-143쪽

각주 -칸트
"나는 지식만이 인간의 명예를 구성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을 경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루소는 이런 나의 잘못을 고쳐주었다. 이 맹목적인 편견이 사라지면서, 나는 인간의 본성을 존경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이 인간의 권리를 수립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 자신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무용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145쪽

각주
또한 드라테에 의하면, 루소에게 있어서는 도덕이 정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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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 2000년 7월
구판절판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가 형 집행 바로 직전에 어쩌면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집행유예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집행유예의 환상 중)-31쪽

"강제수용소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막사 앞을 지나가던 죄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든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빵조각까지도 주고 가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 가지 만족할만한 확증을 제시하고 있다. 즉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주어진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112쪽

"모든 개인을 구별하고 개인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특이성과 유일성은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 못지 않게 창조적인 작용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과 계속 살아 남아야 할 책임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한 사람이 그를 지극한 애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인간에게나 완성되지 않은 작업에 대해 지고 있는 책임감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는 결코 자기의 삶을 내던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그가 실존해야 할 '이유'를 알고 있으며, 어떠한 곤경에도 참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134쪽

"모든 일이 꿈속에서 느끼는 것처럼 실제 같지도 않고 비슷하지도 않게 보인다. 우리는 자유가 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흘러간 몇 년간 우리들은 꿈속에서 얼마나 자주 속아왔던가!(비인격화 현상)" -148쪽

"정신분석에서 인간이 본능적인 것에 관하여 의식하게 되는 반면에 실존분석이나 로고데라피에서는 인간이 그 어떤 심령적인 것, 혹은 실존적인 것을 의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영성, 혹은 실존의 관점에서만 책임지는 존재라는 말로 묘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237쪽

"나는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실존적으로 그 자신의 실존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240쪽

각주에서...
프리드리히 폰 쉴러
"영혼은 이야기를 하는 그 즉시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혼일 수는 없다."-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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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서열화 현상.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서열화에 대해서 무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그저 해방감을 만끽하며 즐거운 일년을 보냈다. 대학 2학년, 3학년, 4학년 그리고 졸업.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하고서 대학서열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누가 너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이런식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사실 취직을 하는데 있어서 대학 네임밸류는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정부에서는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학력란 폐지를 하네 어쩌네 말하지만 사실 서열화는 없어진 것처럼 보일뿐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도 죽지 않았다.

서열화가 나쁜가? 그래 이름있는 명문대학 간 사람들이 아무래도 서열상 그 밑에 있는 대학에 간 사람들보다는 꾸준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가정형편에 따라 얼마전 신문에 났듯 손자 대학보내라고 과외비로 천만원씩 던져주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상류층에서는. 또 그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고액과외와 각종 학원비, 유학비를 대가며 교육시키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돈없어 사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돈있는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한 건 돈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열화는 정당한가? 또 그렇지는 않다. 대학의 서열화는 오로지 수능점수에 의한 것이다. 얘는 수능 몇점이고, 쟤는 수능 몇점이니까 쟤가 얘보다 10문제 더 맞았어. 이런 기준으로 서열화를 하는 것이다. 웃긴 이야기다. 몇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대학졸업후까지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쳐주는 학벌은 학부시절의 학벌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을 소위 이름있는 명문대학 나온다해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이름없는 지방 사립대 학부를 나온 사람이 서울대 대학원을 들어간다고 해도 서울대  학부를 나온 사람보다 서열면에서는 떨어질 것이다.  대학원은 수능이 아니라 영어 혹은 전공시험으로 판정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능점수와 영어 혹은 전공시험점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왜 수능점수를 더 중요시하고 전공시험점수와 영어시험성적을 그보다 덜 중요시하는지는. 하긴 영어도 안되는 나는 이름있는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고는 있지만 평가기준으로 따진다면  수능점수도 떨어지고 영어도 안되는 하지만 전공시험은 아는 것도 없이 운좋게 합격한 케이스가 된다. 최악의 케이스.

단한번의(어떤이들에겐 단한번이 아니라 재수, 삼수를 통해 단 두번, 단 세번이 될 수도 있겠다) 수능점수가 평생을 따라가는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또 해봤다.

만약 각 대학들이 한 가지 전공면에서는 각자 최고의 학과를 지니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네임밸류의 서열화가 아니라 과별로 분류된 학교네임밸류가 형성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것도 서열화는 서열화다. 단지 통합적인 대학 학부별 네임밸류가 아니라 과별 네임밸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흠... 생각끝에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서열화는 서열화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는 학부의 서열화보다 느슨하다. 그런데 좋은 대학원을 나왔는데 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외침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좋은 대학원을 나오고도 '특별히' 대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나는 학부는 서울 중위권(수능점수에 따라-얘도 웃긴 기준이다. 수능점수에 따라 서울 상위권, 서울 중위권, 서울 하위권, 경기권, 지방권 이런식으로 분류하는건 참으로 웃기다)을 나오고 대학원을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게 대접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심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럼 다른 대학원보다 100만원이상을 더 주고 이 대학원을 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문 대학원 나왔다고 특출나게 대접받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소원한다. 물론 물론 대학원은 별로 인정해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학부에 있어서 서열화의 엄격함이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의 느슨함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점차 느슨하게 느슨하게 이동하면서 차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여러번에 나눠보는 걸로 정부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고교생들이 안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프랑스 고교생들의 정책에 대한 이해와 참여, 행동력은 높이 살 만한데 나는 이게 더 좋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의 편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을 나눠서보면 단박에 결정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학생 개인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프랑스 고교생은 돈없는 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시험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시험을 여러번 보면 돈벌 시간이 없다고 한다. 흠...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부유층 자녀는 마음놓고 공부하고, 극빈층 자녀는 돈벌며 공부하면 아무래도 여러번 시험을 볼 경우 꾸준하게 공부만 한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번에 결정되는 것보다는 여러번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싶다. 여러번의 시험을 전부 반영하지 않고 그중 좋은 성적을 골라서 반영하게 하면 돈없는 고학생들은 한번의 시험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평소 돈벌다가 자신이 시험시기를 정해놓고 그때에 맞춰 공부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되나? 나눠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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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9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열화에 대해 부정적이시면서도,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현하시는 건 어색하네요. ^^ 그리고, 수능 성적이 오래 가는 건, 중고 시절 내내 공부했던 결과이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sky에 다니는 애들과 많이 놀아봤는데(^^) 역시나 그 친구들 똑똑하긴 하더군요. 전 따라가지 못할 무언가가 있긴 해요. 물론, 서열화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왜 그런 친구들을 더 선호하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배도 아프지만. ^^;
대학원은 대학에 비해 느슨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솔직히 교육대학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프락사스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론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해요. 그런데, 학벌 = 취업이 연결되어 있는 한 어려울 것 같아요.

릴케 현상 2005-03-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홍세화님의 따님이 서울대 다닌다는 게 생각나네요

마늘빵 2005-03-0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 /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기한 것은 제 의견이 아니고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게 지칭하기 때문에 붙인 것이랍니다. 전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대, 연대, 고대 애들이 '대체로'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만 '특별히' 똑똑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똑똑한 애들이 다른대학에 비해 조금 더 많을 뿐이죠. 전 서울대나 고대다니는 애들중에서 생각없고 개념없는 애들 많이 봤답니다. 물론 좋은 애들이 더 많지만.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똑똑이가 70%인 것을 100%로 취급하고, 똑똑이가 30%라도 존재하는 것을 0%로 취급하는 극단화의 논리가 심하다고 봐요. 서열화의 무서움은 거기에 있죠. 다른 대학에도 똑똑이가 있는데 이들을 무시하는거죠. 간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우주 2005-03-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하다는 기준, 참 모호하죠? 때론 말이죠.
쨌든 전반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가 없어져야 한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요. 우리 사회의 오랜 모순이잖아요. 다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잘 모르는거구요. 어려운 문제지요.

마늘빵 2005-03-1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그런면에서 철학자 김상봉의 학벌반대모임은 의미있는 활동이죠. <학벌사회>라는 두꺼운 책을 샀는데 아직 못봤네요. 이걸 보면 그의 나름의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법은 계속 고민중...

릴케 현상 2005-03-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들레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류의 책들도 함 보심이^^'학교를 넘어서' 같은 책들은 이제 학교 없는 사회를 제안하고 있더군요.

마늘빵 2005-03-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 추천. 저 책 다 보고 나면 봐야겠어요.

2005-03-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3-1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의 똑똑한 명문대생에 대해서 저는 좀 비관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겉똑똑이거든요. 이런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하면 낭패보기 쉽죠. 언젠가 아웃사이더가 망하는 거 보면서도 그런 생각 좀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젤 똑똑하다는 위인들이 하는 게 저정도라고...(어떤 사람들은 사업은 그 사람들 전공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거기서 단순 필자일 뿐이었다면 아웃사이더는 우리가 아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지 싶어요)

마늘빵 2005-03-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책 주신다면야 감사히 읽겠습니다. ^^; 저도 그들 70% 마저도 의심스럽습니다. 70%라는건 다수를 나타내는 임의의 숫자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