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카페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안시열 옮김 / 김영사 / 2001년 10월
절판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즉 자신이 믿는 바를 주장할 용기와 함께 자신이 믿는 바에 다른 사람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 카페의 신조이다."-23쪽

"소크라테스는 어떤 지식을 깨닫거나 어떤 가정을 세우고 나면, 이에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이를 다시 조명하고 분석하여 도전해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어느 것에 ㄷ해서도 완전한 영구불변의 해답을 찾아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32쪽

"소크라테스식의 문답법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가능성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37쪽

"소크라테스에게서 새로운 점은,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방식이다."-45쪽

"과학은 관찰 대상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왜'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입니다. '왜'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유와 의미를 추구합니다. 인간 개인의 특성이나 아름다운 인생, 훌륭한 삶과 같은 것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86쪽

"어떤 일을 행하게 될 때까지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주저함은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서 언제나 비효과적인 결과만을 낳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창조하는 데에는 하나의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을 모르면 수많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멋진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 진실은 바로 결행의 순간에 그 결정으로부터 모든 사건의 흐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보이지 않는 사건과 만남, 그리고 꿈도 꿔보지 않았던 물질적 지원이 밀려온다. 무엇을 할 수 있든, 무엇을 꿈꿀 수 있든 간에, 일단 시작하라. 용감함에는 천재성, 힘, 마술이 들어있다. 지금 시작하라."(괴테)-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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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9년 9월
구판절판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
(제 1장 제 1부의 주제)-5쪽

"아무리 강한 자도 자기의 힘을 권리로, 그리고 그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영구히 지배자가 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제 1부 제 3장 강자의 권리에 관하여)-9쪽

"힘의 강압으로 복종해야 한다면 사람은 의무로써 복종할 필요는 없으며 또 복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복종할 의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리라는 말은 힘에 아무것도 덧붙이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제 3장 강자의 권리에 관하여)-9쪽

"어떤 인간도 자기와 같은 인간에 대해 자연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고 또 힘은 어떤 권리도 만들어 내지 않으므로, 계약만이 인간 상호간의 정당한 모든 권위의 기초로 남는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1쪽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에게는 어떤 보상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포기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며, 또 인간의 의지에서 모든 자유를 빼앗는 것은 바로 인간의 행동에서 모든 도덕성을 제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2쪽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사물간의 관계이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아니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3쪽

"사회계약은 유명무실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전체 의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제 1부 제 7장 주권자에 대하여)-25쪽

"전체 의사만이 국가의 힘을 공동 이익이라는 국가 설립의 목적에 따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해 사회의 설립이 필요해졌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 이해관계의 일치이기 때문이다."
(제 2부 제 1장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35쪽

"우리를 사회체에 결합시키는 계약이 의무적인 것은 오직 그것이 쌍무적이기 때문이다. 이 계약의 특성은 그것을 이행할 때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는 데 있다. 전체 의사가 항상 옳은 것이 되고, 또 사람들 모두가 각 사람의 행복을 끊임없이 원하는 것은 누구나 '각자'라는 말을 자기로 생각하고 또 모든 사람을 위해 투표할 때 실은 제 자신을 생각하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 2부 제 4장 주권의 한계에 관하여)-43쪽

"입법자는 국가에서 어느 점으로 보나 비상한 인물이다. 재능에 있어서 그러하지만 그의 직무에 있어서도 재능 못지 않게 특별하다. 이것은 행정직도 아니고 주권도 아니다. 이 직무는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구조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구조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공통되는 것이 없는 특별하고도 상위의 기능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지배하는 자는 법을 지배해서는 안되고, 법을 지배하는 자는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제 2부 제 7장 입법자에 관하여)-55쪽

"진정한 민주정치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가 지배하고 소수가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제 3부 제 4장 민주정치에 관하여)-88쪽

"단일정부는 그것이 단일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 최상의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가 입법부에 충분히 의존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국민과 군주와의 관계보다 군주와 주권자와의 관계가 더 가까우면, 정부를 분할함으로써 이 균형의 결함을 보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분할된 각 부분들은 국민들에게는 같은 권위를 유지할 수 있고, 주권자에 대해서는 힘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제 3부 제 7장 혼합정부에 관하여)-101쪽

"국민이 주권의 주체로써 정당하게 의회를 구성할 때 정부의 모든 법률은 중지되고 행정권은 정지되며 가장 미천한 시민의 신분도 최고행정관의 신분에 못지 않게 성스럽고 불가침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대표된 자가 몸소 나타날 때 대표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 3부 제 14장 주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3))-121쪽

"법은 오직 전체 의사의 선언인 만큼 입법권에 있어서 국민이 대표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의 적용에 불과한 행정권에 있어서는 국민은 대표될 수도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
(제 3부 제 15장 대의원 또는 대표자들에 관하여)-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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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진작 이 책을 보지 않았던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처음 들어본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가 늘어놓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사유는 정말이지 나를 '깜딱' 놀라게 했다. 너무 다 까발린거 아냐? 라는 반응과 함께.

 1995년에 이미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쩐일인지 금새 절판이 되었나보다. 이 책은 결국 2002년에 청미래 출판사를 통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아마도 제목이 주는 딱딱함과 지루함 때문에 먼저번 것이 절판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청미래는 제목을 바꿈으로써 표지를 이쁘게 디자인함으로써 다시 독자의 눈길을 끌었고 이 책은 꽤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정영목씨에 대해서 말하자면, 요전에 내가 읽은 <극단의 형벌>이라는 책의 역자이기도 했다. 참 익숙한 이름이다 싶어 최근 읽은 책들을 살펴봤더니 일치했다. 자신이 번역할 책을 고르는데 재주를 가진 듯 하다. <극단의 형벌> 역시 베스트셀러라고까지는 말 할 수 없지만 꽤 인기있는 사회과학 서적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 이 전혀 보통사람같지 않은 보통은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책을 25살 무렵에 썼다고 하니 어이쿠 이런 지금의 내나이보다 어리지 않은가? 어린놈(?)이 사랑과 연애, 이별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거 아냐? 라는 약간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섞어 보통을 부러워하는 나.

 엄연히 '소설'이라고는 하나 역시 보통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개 소설에는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이라는 구성이 있는데 이 구성들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높낮이를 조절하며 관객을 사로잡기도 하고 잠시 풀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의 형식을 무시하고 있다. 물론 보통의 소설에도 형식은 있고, 스토리도 있다. 두 연인이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기까지의 줄거리가 있으니깐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런데 그 비중이 지극히 낮다. 보통의 소설에서 스토리가 아닌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스토리는 남는 게 없다. 그럼 스토리를 제외한 나머지 것이 뭐냐? 사유다.

 보통은 사랑에 대한 사유와 분석을 적용함으로써 소설을 풀어나간다. 소설의 원동력이 줄거리가 아니라 사유인 셈이다. 누가 철학자 아니랠까봐 그는 소설 속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 칸트 등을 끌어들이고 조지오웰과 알베르 카뮈 등의 작가들까지 전방에 포진시킨다. 마치 자신의 현학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 또 여기서 그 나이대의 그의 현학에 시기심과 부러움을 다시 한번 보낸다.

 자신의 경험담일까? 아니면 순수한 허구일까? 소설이라 했으니 허구라고 해야겠지만 모든 작가들의 자신의 경험담을 비롯해 주변의 경험담을  토대로 삼아 소설을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혀 백지상태에서는 소설을 전개해나갈 수는 없다. 더군다나 사랑에 대해서라면 나의 경험담이 필수다. 보통의 이 소설은 아마도 추측하건대 보통의 젊은날의 사랑의 경험담을 녹여 이것저것 붙여놓음으로써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지난 사랑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많이 서툴렀다. 사랑에. 사랑은 그저 마음만으로 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물음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대사처럼 사랑은 변하는 것이 맞고,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으며, 사랑은 마음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었다. 그리고 지금 비록 그 때 이후로 내게 사랑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때보다는 좀더 낫겠지라고 내게 속삭인다.

 보통은 사랑의 싹틈에서 사랑의 진행, 다툼, 갈등,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자기사유를 통해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그가 그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까발리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뭘 생각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야 할 바 이상으로 그가 더 까발려줘서 나는 그의 까발림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의 사유과 분석을 읽고 다 기억해낸다 하더라도 실전에 부딪혀 내가 경험하지 않는 한 난 그의 사유를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할 듯 싶다. 그렇담 남은 과제는 내게 사랑이 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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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보관함에 이 책 들어갑니다. ^^

하루(春) 2005-03-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요즘 인기 많은가 봐요.. 자주 눈에 띄어서 힘들어요. --;

마늘빵 2005-03-1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자주 눈에 띄길래 샀어요. 알라디너님들이 혹시 저 출판사와 짜고서 고스톱을 치는건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제기함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구판절판


"배고픔의 경우에는 요구의 표시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며, 시간의 경우에 따라서 그 요구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다."-24쪽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물 도구가 된다. 이야기는 전화를 거는 사람의 손에 놓여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전화는 나를 수동적인 역할로 묶어놓았다."-30쪽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의 다리가 지금처럼 내 다리를 스쳤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클로이의 경우 나는 의미가 자체 내에 담겨 있지 않고, 문맥에 의해서, 독자에 의해서 부여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35쪽

"구애하는 위치 때문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타이가 어떤가? 하고 묻지 않고 그녀가 내 타이를 어떻게 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 였다."-44쪽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에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45쪽

"구애란 연기의 한 형식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청중에 의하여 결정되는 행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배우가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듯이, 구애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할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을 결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구애하는 배우는 자신의 관객이 무엇에 감동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원래대로의 행동과 비교할 때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54쪽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열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이와 비교하면 생각은 병, 질서를 강제하려는 병적 충동, 흐름에 굴복하지 못하는 침울한 정신의 상징과 다름없어 보인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 법칙을 어긴 것이며, 타락 전의 생각없는 영역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58쪽

"정신이 전통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면, 그 이유는 정신이 분석불가능한 것으로 여기지는 원인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62쪽

"인간은 둘로 나누어져 행동을 하는 동시에 뒤로 물러서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열로부터 반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분열을 다시 통합할 수 없다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면, 그것은 자의식 과잉이라는 병이 된다."-63쪽

"사랑을 바라지만,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인 사고방식이다."-76쪽

"당신이 지금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 당신이 내 전체를 보게 될까 초조해하며 당신의 사랑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바보짓이다."-76쪽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모두'아주 완전해 보이고,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81쪽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90쪽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110쪽

"플라톤은 요소들이 서로 상응할 때에만 대상이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역동적 고요와 자기 완결성을 지닐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것이 그녀에게는 빠져 있는 셈이었다.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치수와 비례라는 특질들"이라는 플라톤의 말이 맞다면, 클로이의 얼굴은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결여한 셈이었다."-113쪽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161쪽

"사랑의 경계에는 두 가지 해체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선 밑에서 살아감으로 해서 생기는 해체이며, 또 하나는 너무 적은 시선을 받으며 살아감으로 해서 생기는 해체이다."-163쪽

"사랑이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되돌려주는 것이라면, 고독은 거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상상력은 우리의 얼굴에 있는 베인 상처나 점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내게 된다. 거울의 폐해가 무엇이든, 적어도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을 되돌려준다는 점, 우리의 가없는 상상력에 대응할 수 있는 분명한 윤곽을 부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165쪽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학자들은 정체성을 보장받는 다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사람의 경향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로 구성된다."-189쪽

"나는 클로이를 사랑했고, '그리고 나서' 클로이는 떠난 것이 아니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클로이가 나를 떠난 것이다."-252쪽

"죽음이란 그 의미를 문자 그대로 따르는 행동이라서 나에게 상대가 그 비유를 읽어내는 것을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러니였다."-259쪽

"자살의 쾌락은 유기체를 죽이는 끔찍한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었다. 따라서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죽게 되면 나의 소멸이라는 멜로드라마로부터 어떤 기쁨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행동일 터였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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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4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신문에 경제부총리 후보로 한덕수씨가 예상된다는 기사가 일면을 장식했다. 그리고는 다른 면에 이에 대한 또다른 기사가 올라왔다. 경제부총리를 뽑는 기준이 뭐냐고. 그 기자 曰 4명의 후보를 올려놓고는 청와대에서 이들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의 검증을 받게 한 뒤에 뒷탈이 없는 한덕수씨로 내정했다는 말이었다. 즉 다른 나머지 세 명은 '아들병역기피의혹' '외환위기책임' '구시대이미지'로 탈락이라는 것이다.

 근데 참 웃기는 사실은-난 한덕수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를 옹호할 의사도 없지만- 언제는 도덕성 때문에 안되고, 언제는 도덕성만 가지고 있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언론의 뜻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 물론 뛰어난 도덕성과 뛰어난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우선시 해야 할 텐데, 얼마전에 사퇴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그의 도덕성 때문에 사퇴했고, 그래서 도덕성을 기준으로 새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왜 도덕성만 보느냐며 따지고 든다. 물론 한덕수씨가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난 그를 모르니까. 내가 청와대라고 해도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를 판이다. 이리하면 저리가라 하고 저리하면 이리오라하고. 언론이 때리는대로 움직여줘야한다.

  지금까지의 내 요지는 언론의 때리기에 대한 비판이었고, 다음의 나의 발언들이 위의 나의 발언과 대립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난 한덕수씨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기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런 이유 때문이라면. 물론 그들이 누구고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각각의 이유들 때문에 탈락시켰다면 온당한 처사라 생각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덕수씨를 포함해서 네 명 다 괜찮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위와 같은 이유로 탈락이라기에 그렇게 말하는 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랐을 때는 그에 상당하는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더욱 도덕적 기준은 중요시 되어야 한다. 플라톤의 <국가>를 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인정치를 내세우는데, 이때의 철인이란 哲人으로 결국 철학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가 직업상의 관점에서 보는 철학자가 아니라 사고가 깊으며 넓고 도덕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으며 능력이 뛰어난 이를 말한다. 철인은 능력도 능력이짐나 대단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지극히 이상적이라 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상향은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라면 그것이 오르기 힘든 지경이라 할지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있어서 조금 더 유연성을 발휘하면 될 뿐이다.

 위 세 명의 인물들의 탈락사유는 그다지 흠잡을 만한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병역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고위층 관료들의 자식들의 병역문제를 끌고가다보면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외환위기책임도 그에게만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구시대 이미지라는 단지 이미지상의 이유로 인재후보에서 탈락시킨다는 것도 도덕적 잣대에 비추어볼 만한 성격이 아니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다른 도덕적인 흠이 있지 않는 한 각각의 이유로 후보에서 탈락시킨 것은 부당하다 생각하며 정부는 언론의 때리기에 왔다갔다 하지말고 소신껏 적임자를 찾아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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