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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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언제나 지속된다. 마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놓고 매번 다른 대답들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삶은 진행 중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를 찾고 있는 중 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모색 중이다. 결국 아마도 난 자연히 나이가 들어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연령에 도달하는 즈음에서 죽어가는 시점에서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복거일은 '세속적으로 현명한' 보다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것이 삶의 본질에 맞다고 이야기한다. '세속'과 '현명'은 '삶'을 똑같이 수식해주지만, 똑같은 질감으로 삶을 수식하진 않는다. '세속적으로 현명한 삶'과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분명 다르다. 영국의 시인 콸스는 어느 싯구절에서 "현명하게 세속적이어라. 세속적으로 현명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복거일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 처신으로 시종하면, 무언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맞는 방식과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고, 당연히 우리는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한편 모두 세속적 성공에 대해서 또 약간의 진정한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자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지만, 그들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존경을 받는 너무 낮은 자리를 차지하면 당장 살기 어렵고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뜻하고자 하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공산이 크다. 고로 여기서 "현명하게 세속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거일이 말하는 "현명하고 세속적인 삶"을 지칭하는 것은 기업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공무원, 관료 등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위치재는 "가치의 큰 부분이 특수한 위치 덕분에 생긴 재화"를 가리키는데, 이는 더 생산될 수 없고 재분배 될 수만 있다는 것이다. 위치재에 대한 다툼은 치열하고 이를 향한 경쟁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는 없다. 그러나 기업 등의 상업활동은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위치를 높일수도 있으며, 아울러 물질적 가치를 창출해 사회에 공헌하므로 권장할만하다. 위치재와는 다르게 높은 사회적 성공에 따르는 부러움과 존경도 받을 수 있고, 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복거일에게서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바로 이를 뜻한다.

  더불어 그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삶에 도달한 뒤에는 회사나 기업의 이름으로 자선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재산으로 기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의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사회적 공헌과 함께 나 개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다면 내 이름으로 내 재산을 털어 자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소 복거일의 발언내용이나 다른 책을 통해서 접했던 그의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복거일은 친기업적이고, 친시장적인 발언을 자주했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라 믿는 사람이다.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기업인의 삶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도 그의 평소의 생각과 같다. 그는 한국의 지식인 지도에서 '자유주의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과 그의 몇몇 책들을 살펴본 결과, 그의 자유주의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그럴 듯 하고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아갔을 때는 다르게 바라봐야 할 듯 하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그것을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 적용했을 때의 차이랄까.  

  책 몇 권 읽었다고 복거일과 그의 생각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하면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는 꽤나 굳건하게 꾸준히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 논변을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메세지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책에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기업인으로서의 삶'과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작은 소제목이 그 하나요, 이 책 전체를 통해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복거일의 눈으로 본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또 하나다. 짧은 글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읽으며 생각할 거리들은 꽤 많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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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게 세속적인.. 보통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양상일 것입니다.
복거일의 책은 유행하는 '왜곡된 평등'에 대한 일종의 'rebound'일 것입니다.
세상이 노멀이라면 무의미한 책이지요.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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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를 토대로 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강준만, 한홍구, 김동춘, 탁석산, 박노자, 홍세화 등등. 하지만 진중권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재미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르게 표현한다. 진중권이 이 책을 통해서 드러낸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는 우리가 살면서 흔히 접하는, 또 느끼는 것들이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것만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이런 면은 이렇다, 라고 스치듯 생각이 지나치는 경우들도 많다. 진중권은 이런 평범한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 한국인을 성찰한다.  크게 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 로 나누고, 각각에 들어맞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진중권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했다. "'정체성'이라는 낱말은 다분히 이념적이어서, 한국인이 마땅히 수립하고 보존해야 할 어떤 가치 체계를 함축한다. 가치관이 다양해진 시대에, 과연 한국의 문화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어떤 양식 같은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정체성' 담론은 종종 특정인의 주관적 가치관을 사회의 객관적 규범으로 제시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정체성'에 관해서라면 철학자 탁석산이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업 한 바 있다. 그는 정체성과 주체성은 분명히 다르며, 정체성이라 할지라도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알기는 매우 어려운데, 한국인이 만든 작품을 통해서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도 한국인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이란 집단이 역사를 통해 공동으로 만들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가 언어요, 둘째가 한국과 관련된 각 분야의 공통 속성을 찾는 것이다.

  진중권이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서 하는 한국인에 대한 작업은 탁석산이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그는 이 책이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비투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서문에서 밝히는데, 하비투스란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 살피고 있는 우리 사회는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의 습속이다. 지하철 문화, 식탁에서의 식사문화, 예절, 황우석 사건을 대하는 태도, 국가대표, 월드컵, 취미와 여가생활 등등 우리 생활의 일면을 재료로 삼아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단 이것을 근대화와 전근대성, 미래주의로 나누어 해당 범주안에 묶어놓아 단순히 일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근대성과 전근대성을 살펴본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의 글은 매우 재밌다. 일단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친근하고, 글 자체가 어렵지 않으며, 그의 분석은 날카로우나 즐겁다. 때로는 그의 글은 심한 경우 '비꼬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으나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음으로써 읽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들로 진중권의 일상의 한국인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볼 수 있다. (참고로 비꼬기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으로 그의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도 불편했다.)  

  "수직적 위계를 위한 예법이 매우 복잡하게 발달된 한국 사회, 수평적 교제를 위한 예법에는 이렇게 구멍이 나 있다. 원래 전통 예법 자체가 신분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데다가, 근대화마저 군대를 모델로 하여 이루어지다 보니, 예법이 주로 수직적 위계를 세우는데에 소용된 것이다. 그 결과 개인과 개인의 평등한 교제를 규제하는 품위있고, 격조 있는 시민적 예법은 발달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한국인이 느끼는 어색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근거리 지각에 따르는 쾌, 불쾌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일단 내가 불쾌해야 남도 불쾌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않겠는가. 자신이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행동은 당연히 남에게도 별 생각 없이 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것은 '배려'의 문제이기 이전에 먼저 '감각'의 문제다. 이른바 에티켓의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불쾌를 불쾌로 느끼는 미적 취미다."

 진중권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행동하고 살았던 부분들이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활 곳곳에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리 속엔 그의 시각,후각,미각,촉각 등에 대한 지적이 맴돌고 있다. 쥐포를 구웠더니 난 구수했는데 내 동생은 대뜸 화난채로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고는 들어간다. 어찌 볼 것인가. 내 동생의 근대화된 후각을. (다른 차원에서 보면 동일 냄새에 대한 개개인의 취향 문제로 들어갈 수도 있다)  

  진중권의 한국인의 하비투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는 동의하고, 웃음의 미학에는 즐거움을 느꼈으면서도,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의 한국과 한국인의 습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접했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홍세화와 고종석이 프랑스를 기준으로 삼고 한국을 바라보듯, 진중권은 독일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을 바라본다. 도식화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굳이 연결지어본다면, 옳은 독일의 모습으로 그른 한국의 모습을 바라본달까. 재밌게 읽으면서 불편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물론 진중권은 독일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모습 중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지고 한국의 동일한 부분에 대해 지적했겠지만, 글 전체에서 풍겨지는 인상만큼은 지울 수 없다.

 p.s. 이 책과 함께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과 강준만의 <인간사색> <한국인코드>를 비교하며 읽는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든 습속이든,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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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7-02-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리뷰쓰시는 실력이 느신다는 느낌. ^^

마늘빵 2007-02-06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합니다. ^^

파란여우 2007-02-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팀전님과 아프락사스님때문에 진중권 책을 그만 사야겠다던 각오(??)가 무너집니다. 자꾸 이런식으로 강력 뽐뿌를 하면!(하면? 할수 없죠 뭐. *.*)^^
보관함으로!

마늘빵 2007-02-15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여우님 저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요 =333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이선민.최홍렬 엮음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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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00편까지 나오곤 했지. 그러니 어떤 배우는 심지어 20편을 동시에 촬영할 때도 있었어. 신인 감독의 진입도 쉬워졌찌. 양이 질을 지배한다는 논리엔 수긍을 하지만, 양에 함몰되는 순간 그때부터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사실이야.
(영화감독 유현목) -31쪽

"물론입니다. 학교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책을 통한 배움도 이에 못지 않아요. 우리는 책에서 인생의 다양한 좌절과 성취와 깨달음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자극을 받습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 과외에 치중하는 것을 봅니다만,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은 책을 만났을 때부터라고 말하고 싶어요."
(민음사 회장 박맹호) -41쪽

"세계적인 어느 수학자가 한 말인데, 자기가 두렵게 생각하는 수학자는 머리가 좋다든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보다 수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수학을 좋아할 수 있는가 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더 수학을 잘하는가는 누가 더 좋아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그만큼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서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68쪽

"저는 인문학을 '기본적 학문'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기본' '기초'라고 하면 왠지 초반 일정 기간만 배우고는 '졸업'할 대상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근원적인 것을 천착하는 '일상적인 학문'으로 인문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젊음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은대로 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삶은 의외로 높고 깊고 넓습니다. 아무리 부지런하게 살아도 모자랍니다. 약삭빠르게 계산하고 재는 삶은 이미 젊음이 아닙니다."
(한림대 특임교수 종교학 정진홍) -156쪽

"요즘 교육이 경쟁력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대학을 비교하는 수치가 있는데, 그 수치에는 속임수가 많아요. 대학의 서열 매기기는 미국의 잣대를 사용한 겁니다. 유럽 대학은 수치를 매기는데 모두 빠져 있는 상황이죠. 대학 강의를 영어로 하면 경쟁력이 커진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하짐나 학문의 모국어가 영어일 수 없는 한국에서 영어로 바꾸느라 힘만 들 뿐 소득이라곤 별로 없지요. 우리 학문은 우리 말로 강의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국산품의 질을 높여야 하듯 우리 학문도 기술 도입과 같은 문제나 주문자 생산 방식의 수준에서 벗어나야 해요. 국내에서 생산한 물건을 외국 것과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서만 외국어로 바꿀 필요가 있겠지요."
(계명대 석좌교수 국문학 조동일) -172쪽

"저는 후학들이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이 되길 바랍니다. 지식인은 활자나 기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여 그 사회의 문화 향상에 영향을 주는 사회 계층을 지칭합니다. 교수와 언론인, 종교인이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국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식인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술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강대국 국제 정치 이론을 충실히 전파하는 집단인데, 이들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대국 이론을 전달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전달 자체가 자기 해석이 결부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념 전달자 또는 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 집단의 명분을 선전하는 집단인데, 그들이 지탱하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고 이른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의 그들 역할도 상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너무 많은 교수들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국제 정치학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셋째,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처한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설정해 이에 대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입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런 지식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에게는 자연히 뒤따라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김용구)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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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인터넷에 들어와 돌아댕기다 네이버 뉴스를 접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요즘 나이 어린 신입사원들이 학력, 영어나 컴퓨터 능력 등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조직 적응력, 문제 해결력, 대인관계 능력 등은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에 업무능력이 부족해 일을 못하는 사원들이 많자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대학에서 영어 토익점수 몇 점 이상 졸업 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놓고, 또 취업전에 대학에서 집중 취업준비를 해줬기 때문에 개인의 토익점수나 회화능력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나홀로 공부'를 하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고, 기사내용도 관심은 가지만,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보게 된 것이다. (역시 제목은 잘 뽑아야돼)  '신입사원 어머니가 찾아와 '인사부장 면담 좀 합시다" '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들이 석사를 끝내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연수를 받고 난 후 지방으로 발령이 났는데, 아들의 우울증 진단서를 가지고 와서 인사부장에게 제발 지방은 안되고 서울에 발령내달라고 토로했다나 뭐래나. 아들이 우울증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상관할 바는 아니고, 왜 어머니가 와서 인사부장을 만나 인사조치를 바꿔달라느니 어쩌느니 하느냐 말이다. 그것도 석사를 끝낸 나이면 도대체 몇살인거야. 아무리 못해도 내 나이잖아. 서른 가까운 나이 먹은 아들의 일을 가지고 왜 어머니가 그러는건데.  

  대학 졸업하고 - 왜 대학시절엔 잘안했는지 모르겠지만 - 외박하는 경우도 있고 하다보니 - 다른 일로 외박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학부시절 술을 마실 때면 집이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늦어도 항상 들어왔다 - 슬슬 딴지가 들어오는 것이다.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들어오냐는 식. 저 내일 들어가요, 라고 친절하게 문자메세지까지 날려드렸건만 뭐가 문제인건데. 내가 외박을 매일 하는것도 아니고 한달에 많아야 두 세번 했는데. 집에서 기거하는 날보다 밖에서 숙식하는 날이 많다면 그나마라도 이해하겠는데 왜.왜. 20대 중반을 넘긴 아들이 외박하는게 문제가 되는건데. 

  어머니는 아셨던 것이다. 내가 외박하는 날 당신께서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는걸. 그러나 말은 못하고 왜 늦게 들어오느냐고 뭐라 하신게지. 그러나. 엄연히 나는 이미 독립했어야 할 나이를 먹은 법적 성인이고, 단지 돈이 없어 여기에 붙어있을 뿐 돈만 있으면 충분히 나갔을 것이다. 이런 말을 어릴적에도 한 적이 있다. 나 돈만 있으면 나가서 따로 살거라고. 그때도 어머니는 뭐하러 돈을 두 군데 쓰느냐 고 뭐라 하셨더랬지. 집에서 밥먹으면 밥값 안들어, 가스비, 전화비 등 공과금도 한번만 내, 월세는 또 어쩌고. 그래 말씀은 맞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잖아. -_- 

  제작년에 운동을 하면서 살을 좀 뺐더랬다. 어머니가 돈 들여 3개월 끊어주길래 다녔는데 내가 운동을 안하는 날에는 왜 운동 안가니, 빨리 갔다오는게 낫지 않겠니, 이러다 오늘 못가겠다, 등등 간섭을 하시는거다. 아 진짜. 운동을 가고 안가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지 왜 남의 신체와 자유의지에 대해서까지 명령을 하는거야. 그래도 돈을 내줬으니까 그 돈에 대한 참견이라 생각하고 참았는데, 내가 내 돈주고 운동을 하던 때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시는거다. 그래서 몇 차례 언쟁이 오간 뒤 이제는 덜 하시지만, 역시나 지금도 그러신다. 그러다 언제 가려고 그러니. 제발. 내 몸와 내 의지에 자유를. 아멘.

  사례 하나. 나의 이야기는 아니고. 얼마전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였나. 여기서 종교갈등 문제를 다뤘는데 - 사실 종교갈등이라고 해도 종교가 거기에 끼어들어가 있을뿐이지 온갖 갈등의 종합병동이었다 - 한 집안에서 나이 서른일곱쯤 된 남자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이 여자가 증산도를 믿는게다. 아들쪽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였는데 아들이 이 여자를 만나고 증산도를 믿게 되었고, 집에서는 여자 때문에 아들을 망쳤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여자에게 헤어지라고도 했나보다. 아들은 또 왜 여자친구와 헤어져야하느냐 뭐 등등. 더 말 안해도 충분히 상상가능한 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사귀고 함께 살겠다는데 왜 부모님이 헤어져라 말아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걸까. 아들이 사람을 잘못봤다면 조언을 해주면 될 것이고, 조언했는데 안통했다면 어쩔 수 없는거지 왜 '명령'과 '강요'로 일관하느냐.  

  사례 둘. 티비 아침마당 프로그램 같은 데 보면 어머니들이 나와서 우리 아들이 어쨌어요 저쨌어요 자랑질을 한다. 서로들 자기 아들 자랑을 한다. 상대가 듣던 안듣던. 요즘 송일국씨가 주몽으로 뜨자, 김을동씨가 나와서 우리 아들이 어쩌구 저쩌고. 제발. 71년생이면 37살이라고. 헉.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정말 많네. 그런데 37살 먹은 아들 자랑을 엄마가 아직도 하고 다니면 어쩌란 말이냐. 김을동씨 라고 불리기보다 '주몽 어머니'라고 불리는걸 더 좋아하는 이 분 어찌보면 좋을까. 

  우리 어머니도 내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동창의 어머니들 만나면 - 정작 친구들끼리는 어머니 통해 소식 듣는다 - 서로들 딸자랑, 아들자랑 하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이번에 우리아들이 인턴 들어갔는데 3월에 결혼을 한다, 여자친구네서 여의도 아파트 하나를 가지고 왔다, 우리 딸이 이번에 대기업 어디에 들어갔다, 아들은 정부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 중인데 거기서 여자친구 만들었나보더라 지금 박사학위만 받으면 다시 들어온단다 등등. 나야 뭐 초반에 잘 나가다 지금이야 별 볼 일 없으니 자랑할 거리도 없지. 그러면서 또 빼먹지 않는 말씀이, 누구네는 엄마한테 한달에 40만원씩 준다더라. 아들은 통째로 월급 내놓는다더라. 현장에선 암말 안한다. 속으로 아 정말.  

  왜 이리 되었을까.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한국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외국이야 내가 잘 모르겠고. 유독 두드러진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나 딸에 대한 태도보다, 어머니의 딸에 대한 태도보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태도가 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유독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을 보인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집착당하는 아들은 못살겠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장남'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남이라고 나에게 의지하고, 아들이라고 나에게 의지하고, 이런거 원치 않는다. 내가 한 살 어린 동생보다 더 받은 것도 없고, 덜 받은 것도 없으며, 똑같이 언제나 똑같이 대해줬으므로 나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적인 예만을 지킬 뿐 그 이상의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이 한국의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불편해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각 가정의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이와 같은 행위를 서로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해한다면 이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대개는 아들의 불편에서 시작이 되겠지. 그래서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미리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분명히 하고자 어린시절부터 언질을 했으며, 꾸준히 내 사고방식을 피력하고 있지만, 받아들이실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머리로는 받아들이셔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실게다.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자유를 허하라.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 말씀드리오니. 애정어린 관심과 조언은 고맙지만 지나친 간섭과 강요와 명령은 사양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어머니들이 나와 자식자랑삼아 웃고 즐기는 아침마당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면 한다. 자식을 더이상 소유물로 생각지말고 프로그램에 나와선 본인 자랑을 하시길, 남편과 아내 자랑을 하시길 권합니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낳으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자식의 인생까지 낳으신 것은 아닙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개별자입니다. 부모님으로는 관심과 조언을, 하나의 개인으로서는 사생활과 의사 존중을 기본으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나는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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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2-0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_*
구구절절...^^;;
저도 아들만 둘인데... 참고해야 겠어요...^^;;
하 하 하 ^^

책속에 책 2007-02-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딸만 둘인데, 갈수록 어머니 아버지가 딸 둘을 못 놓으셔서, 조금씩 갈등상황이 빈번해져요..사춘기때 부모님하고 치뤘어야 할 걸 이제야 한다는 기분이라니까요..ㅎㅎ

마늘빵 2007-02-0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 ^^
데이드리머님 /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10년전에 치뤘어야 할 일들이 이제와서 벌어진다는 것이 참. 왜 이 나이를 먹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 언쟁을 해야하는지 답답합니다.

2007-02-03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7-02-0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할 때 완전 절정에 이르릅니다. 모든 의지를 했던 아들이, 자신에게는 한번도 안보이던 애정과 관심을 쏟는 여인에 대한 질투, 상실감, 서운함, 위기 등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제 동생도 결혼할 때 몇 번 싸웠죠.. 며느리보다는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크셨던 겁니다....

sweetrain 2007-02-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버지가 저한테 너무 간섭을 안하셔서 가끔 서운할 때도 있다는...
너무 일찍 손에서 놔줘버리셨어요;;;

얼룩말 2007-02-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제가 다 머리가 아파요

2007-02-03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0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 네 아마도 그렇겠죠. 여자친구만 생각하고 위하고 그런다면 극에 달하겠죠. 더군다나 함께 사는 집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저는 확실히 따로 살 생각입니다만. 지난번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당신과 아내가 싸운다면 당연히 아내편 들겠네? 이러시는데, 옳고 그름 여부를 봐서 편을 들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전 아내편이죠. 이런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_-

단비님 / -_- 음... 그게 좋은 겁니다. 잘생각해보면 서운한건 '관심'을 덜하셔서겠지요, '간섭'을 안하셔서는 아닐거에요.

얼룩말님 / 두통엔 게보린! ^^
속닥님 / 아 여자친구가 혼자 나온지 좀 되서 거기서 놀고 있슴다. 데이트 비용도 절약하고, 밖에서 피곤하게 빨빨 거리고 돌아댕기지도 않아서 편해요. 음식도 해먹고.

춤추는인생. 2007-02-0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그렇군요..^^ 저는 적당한 관심은 아직 좋은것 같아요. 저도 쪼금 더 있으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마늘빵 2007-02-0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적당한 관심은 환영합니다. 관심을 넘어서면 문제가 되는거죠. 나이를 먹을수록, 따로 나가 살지 않는 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순전히 '액션'만 있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몇몇 좋아하는 시리즈 물이 있는데, <다이하드> 편과 <리셀웨폰> 편이 그렇다. 둘 다 굉장히 오래된 영화들인데, <다이하드>는 88년에 1편이 나오기 시작해 4편까지 있고, 리셀웨폰은 3편까지 나왔던가. 뭐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귀찮아.  

  순수 액션 영화인 다이하드의 주인공은 언제나 존 맥클라인 경사. 브루스 윌리스. 이 사람 나온 영화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특별히 매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브루스 윌리스는 나오는 영화마다 거의 이런 식의 액션영화들인데 출연작도 엄청 많고 대개 흥행했다. 비슷한 이미지로 이렇게나 오래 읅어먹는 사람도 많지 않을텐데, 게다가 이렇게 또 오래도록 사랑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참 멋있게 늙었다. 저 나이(55년생)에 몸매도 저 정도면 잘 빠졌고.

  언제나 살짝 벗겨진 이마에 인상 잔뜩 지푸린 얼굴로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브루스 윌리스. 영화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올시다. 탐크루즈가 나오는 액션도 좋아하지만 대개 탐크루즈의 액션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영화에 메세지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출연작은 그렇지 않다. 나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두 사람 다 온몸을 내던지며 열연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은 안쓰럽다. 맨날 많이 당하고 주먹구구식 싸움인 경우가 많다. 탐 크루즈 처럼 최첨단 무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기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 그냥 냅다 몸만 던진다. 이제 나이 생각도 하셔야지. 88년 첫 작품이면 거의 20년 세월이다. 대단하다.

   역시나 <다이하드> 1편에서도 홀로 독일 우익 테러범들과 맞서 고군분투 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맨발의 청춘으로 계단을 이리저리 뛰댕기고, 엘리베이터 안에 위에, 옥상에, 책상 밑에 여기저기 안다니는 곳이 없다. 그러다 결국 발바닥에 유리 잔뜩 찔리고, 근육질 어깨는 피투성이다. 아 그냥 얼굴만 봐도 아프겠다 싶다. 수고했다 존 맥클라인 경사. 당신이 수고한 만큼 20년 뒤에도 이 영화를 사랑하는 나같은 이가 있으니. 이 영화를 내가 대여섯번은 본 거 같은데 봐도 봐도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재밌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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