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별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가끔은 필요하다.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 기준이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선택 기준으로 이렇게 네 가지를 언급해 볼 수 있다. 첫째, 내 돈 투자해가며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 둘째,  비디오가 나오면 볼 영화. 셋째, 편히 쉬다가 티비 켜고 채널 돌리는데 우연히 마주친 영화. 넷째, 우연히 마주쳐도 보지 않을 영화. 영화에 대한 만족도와는 달리 이와 같은 기준은 영화를 보기 이전에 이루어진다. 선택한 영화가 내게 얼마만큼의 만족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근래 1년에 90여편의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쉬는 동안에 케이블 티비 영화 채널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영화들이 상당수다. 이 영화를 봐아겠다 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밥먹다가 쇼파에 앉아 쉬다가 리모컨으로 깔짝깔짝 채널 돌리다가 만나는 영화들이다. 이런 나날이 많아지면 가끔 예기치않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접하기도 하고, 전엔 몰랐는데 참 괜찮은 영화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 <미이라>는 뇌 비워놓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어쩔 땐 그런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휴식'이라 생각하면 그런대로 썩 괜찮은 시간이다. 쉬고 싶은데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나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볼 순 없지 않은가. <미이라>는 그런 영화다. 머리 비우고 즐길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 1세의 아내 앙크수나문과 승정원 이모텝이 사랑에 빠졌고, 잉크수나문은 자결했으며, 이모텝은 홈다이에 처해졌다. 산채로 석관에 갇힌 채 조금씩 살을 갉아먹는 풍뎅이들과 함께 영원히 산채로 살아야 하는 형벌이 홈다이다. 그리고 3천년이 지났다. 황금이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하무납트라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오로지 한명이 살아남았으며, 몇몇이 다시 뭉쳐 하무납트랄의 보물사냥에 나선다. 이후의 사건이야 말하지 않아도 예상되는 일.

  고대 이집트, 미이라, 피라미드, 잉카문명 등등 고대문명의 중심지를 배경으로 놓고 만들어지는 영화의 주인공들의 목적은 보물사냥이다. 고고학자와 고대어 전문가, 그리고 돈에 눈먼 몇몇이 한팀이 되어 온갖 현대판 화기로 무장하고 흙먼지 뒤집어 쓴 채 보물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고대 문명의 희귀한 문화재를 발견하고, 이것이 또 열쇠가 되어 결국 보물이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드벤쳐 영화에 꼭 첨가되는 것은, 장소는 찾되 보물은 손에 쥐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욕심 부리지 말지어다. 벌 받는다. 그래서 꼭 팀원 중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자는 안에 갇혀 못나오고, 욕심을 버린 자들은 살아 나온다. 또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지. 욕심을 버리고 살아 남은 자들에겐 그들이 챙기지 않은 보물이 하나씩 들어있다는 것.



* 앙크수나문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녀를 제물로 삼았다. 자 이제 마지막 단계. 주문을 외워라. 야발라야히야. 야발라바히야.

  대개의 뇌 비우는 영화들은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다. 거꾸로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는 영화들은 뇌 비우는 영화다, 라는 명제도 성립한다. 대개 생각거리를 던져주거나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영화들은 - 예를 들면 메멘토나 나비효과 같은 - 한 장면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전개되어가는지도,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관객은 눈 부릎뜨고 머리칼 쭈뼛 세우고 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영화들은 뇌를 비워놓을 수 없다. 반대로 모든 것이 예상가능한 영화들은 헤벌레 입 벌리고 드러누워 어디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나보자 정도의 생각을 하거나, 혹은 이 정도도 부담스럽다면 그냥 눈만 뜨고 화면만 보고 있으면 된다.

  <미이라>는 뇌 비우고 즐길 영화 중에서는 꽤 괜찮은 영화였고, 스릴도 있고, 볼거리도 있으며, 흥미롭기도 했다. 특히나 지하동굴(?)의 고대 유령들과 풍뎅이 등의 CG효과는 칭찬할 만하다.감독 스티브 소머즈는 영화를 만들 때 "더 크고 더 재미있게"를 자신의 모토로 삼는다 한다. <미이라>는 이런 신조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이는 후속편과 <반헬싱>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모든 이들이 신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 그것이 뇌 비우기 영화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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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장면, 넘 무서웠어요. 그놈의 풍뎅이들 하고...^^

가넷 2007-02-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뎅이들... 소름이...;ㅁ;

마늘빵 2007-02-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뎅이. 무섭죠.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건 풍뎅이에요.
그늘사초님 아직 안보셨나요?

가넷 2007-02-1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1,2 다봤어요. 명절때가 되면 매번 방영되니까요.--;

전호인 2007-02-1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다 봤는 데....... 징그럽다 였습니다. ㅎㅎ

마늘빵 2007-02-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 / 전 1편 밖에 못봤는데 이거 3편까지 있나요? 그렇게 본거 같은데.
전호인님 / 징그럽다. 정답입니다. ^^

이매지 2007-02-1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OCN에서도 정말 자주하는 듯. 티비 자주 안 보는 제가 틀 때마다 하더군요-_-;;

마늘빵 2007-02-1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방학땐 오씨엔 즐겨보는데 미이라는 저한테 처음 걸렸어요. 전 씨에스아이 할 때가 젤 좋던데. 언제언제 하는지는 몰라요. 걍 틀어서 나오면 봐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늦게 일어나 밥먹고 티비보다 다시 들어와 누워 한낮까지 자고 다시 또 일어나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밤 10시가 될 때까지 티비만 봤다. 직업상 시간의 여유가 많음에도 나는 언제나 바빴다. 일 벌여놓는걸 좋아하기에,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일들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기에,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며 거기서 성취감을 느끼기에,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두 가지 직업 이외에도, 시간을 쪼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누가 돈을 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내가 보고 듣고 읽은 것에 대해 기록을 남겼고, 그것은 이제 270편의 책리뷰와 290여편의 영화리뷰로 남았다. 그리고 몇 편의 진지한 글로도 남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대단하다고. 리뷰의 질을 떠나 꾸준히 성실하게 이와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자체로서 대단하다고. 근 3년간 참 열심히도 리뷰를 썼다. 그리고 첫 리뷰와 최근의 리뷰는 질적으로 다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리뷰는 내게 다른 여러 기회들을 안겨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기도 했다.

  리뷰를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사람들'의 다수를 모르고 지냈을 것이고, 여자친구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랬다. 쿨하지 않으면서 쿨한 척 한다고. 때로 쿨한 척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내가 쿨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쿨함이 사회적 유행이 되었고, 쿨함은 곧 좋은 것으로 연결지어지기도 하지만, 난 쿨하지 않은 내가 좋다. 사랑에 있어, 만남과 이별에 있어, 쿨함은 한 사람 뒤에 또 한 사람을 쉽게 만나고 잊도록 해주지만, 그것이 사랑일까 되물어보면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기법이나 내용면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도 못하는, 대중들의 평가도 그저그런, '사랑을 놓치다'라는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올려놓는건, 그들의 쿨하지 못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애절하게 질질짜고 전혀 안 쿨한 사랑영화. 요즘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힘들어하는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 아, 한번의 고백을 위해 십년의 세월을 보냈던가. 난 그간 뭘 했던가. 우리가 만나기 위해 십년의 세월은 너무나 가혹했고, 십년은 우리의 그 애틋했던 느낌을 지속시키기 힘들었다. 어긋나고 어긋나고 또 어긋나고. 보는 관객이 더 화가 나고 답답해하는 그런 영화. 하지만 쿨한 요즘 세상에도, 과거와 똑같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그렇게 힘들다. 세상의 흐름과 사랑방식의 변화 문제가 아니라 본래적인 사랑의 문제이다. 쿨하지 않다고, 찌질하다고 그들을 욕하지마라. 정말 쿨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일지니.

   쿨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이다. 
  사랑한 사람으로부터, 헤어지자, 라는 말을 듣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사.랑. 이었다면.
  사랑한 사람에게, 헤어지자, 라는 말을 하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사.랑. 이었다면. 

  상당히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이 많다. 어쩌면 스스로를 분석해 볼 때, 내가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으로 보이는건, 나의 약한 면모를 감추기 위한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이성의 장벽을 쌓아올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쉽게 상처 받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집에서조차 나는 냉정한 놈으로 인식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태어날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그들 앞에서도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에 쌓아올린 장벽의 앞모습만 보여준다. 가족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건 익숙하다. 나 자신조차 모를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때로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하루이틀 쌓이고 쌓여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급기야는 이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잘 맞는다 싶은 사람임에도, 그 사람이 내가 아니고서야 나와 같을 수는 없으며, 차이는 존재하고 차이는 갈등을 불러온다.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준다면 갈등의 불씨는 꺼질 것이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보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사귐에 있어 '차이인정'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지는건, 그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다투는건 서로가 사랑한다는 증거다. 다르면 그만, 이 아니라 달라도 좋아, 가 난 더 좋다. 내가 찾는건 쾌락이 아니라 사랑이니. 

  리뷰를 쓰고,  내 일상의 삶 속에서 생각한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멈추지 않을테지만,  집착은 좀 버리려 한다. 안써지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말고, 밀린 것에 대해서도 부담갖지 말고. 글은 기록으로 시작해 내게 여러 기회를 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사랑을 주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므로. 수단을 위해 그 뒤에 있을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해보고픈 것들에 도전하고, 삶을 바쁘게 꾸려갈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아래,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에만 한정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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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만 이 영화에 대한 평 중 다수가 "원작과 다르지만 재미있다"로 요약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7권을 쓰고 있고, 조앤롤랑에 의하면 마지막편에서 두 주인공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과감히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결단을 주저하지 않는구나. 주인공의 죽음이야 말로 정말 시리즈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니. <터미네이터> 처럼 주인공이 다시 되살아난다거나 하는 일은 해리포터에선 없을 듯 하다. 사이보그와 인간의 차이.

  원작은 어떤지 모르지만 재미있는건 사실이다. 한번 첫편을 놓친 이후부터 후속편이 줄줄이 나와도 읽지 않고 보지 않은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데, 마음먹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시리즈를 빌리지 않는 이상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듯 해서 그냥 먼저 다가오는 순서대로 봤다. 1편, 2편 숫자를 붙여놓은 것이 아닌지라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도 헷갈리고, 아무거나 먼저 봐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세 학교의 교수와 학생이 모인 가운데 불의 잔은 트리위저드 대회 참가자 명단을 발표한다.

  트리위저드 마법경연대회. 인근의 명문 세 개 학교에서 트리위저드 컵을 놓고 대결을 펼친다. 지원자는 불의 잔에 이름을 집어넣고, 추첨을 통해 자동으로 참가자가 결정된다. 각 학교에서 세 명의 참가자가 나오게 되는데, 당연 해리포터는 나이제한으로 참가자격 미달이다. 그러나. 역시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면 재미없다. 덤스트랭 학교의 빅터 크룸(스타니슬라브 이아네브스키)과 보바통 마법아카데미의 플뢰르 델라쿠르(클레멘스 포에시), 그리고 호그와트의 케드릭 디고리(로버트 패틴슨). 불의 잔은 마지막으로 한 명의 참가자 더 추가하는데, 자격미달인 해리포터의 이름이 호명된다.
 
  모두들 어이없어하고 심지어는 해리포터에게 불의 잔에 이름을 넣었냐고 캐묻지만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자격미달인 자가 이름을 넣게 되면 불의 잔은 벌을 주게 되었었으니까. 어쨌든 이미 호명되었으니 되돌릴 순 없다. 네 명의 참가자는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 귀여운 꽃미남 해리포터와 이쁘장한 그의 단짝 헤르미온느

  영화는 마치 어드벤처 컴퓨터 게임과 같다. 우리가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 진행되는 상황과 다를 바는 없다. 마법을 사용하고 아이템을 얻고 동료를 구출하고 적을 물리치고 시간의 문을 넘어 어딘가로 빠져들고 함정에서 나와야 한다. 때로는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았더라도 '희생정신 발휘'를 통해 보너스 점수를 획득한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함정과 적들, 그리고 믿어도 될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가며 주어진 임무를 달성했을 때의 쾌감. 게임에서나 영화에서나 다르지 않다. 단지 내가 직접 화면을 보며 조작하느냐 아니면 조작된 화면을 눈으로 보며 즐기느냐의 차이일 뿐. 때로는 조작된 스토리가 직접 자판을 치는 것보다 흥미로울 때도 있다. 역시 게임과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영화는 종료된다. 다음 임무는 5편에서.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게임 추가 확장판을 사야하듯 다음 영화표를 구매해야 한다.

 p.s.

해리포터로 일약 스타가 된 이제 18살이 된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연극 '에쿠스'에 출연하며 누드를 감행했다. 그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어린 아이들이 다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연예인이니 공인이냐 아니냐의 차원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라 생각된다. 공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켜달라, 당신은 많은 이들의 우상이다, 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나는 내가 갈 길을 간다, 작품은 내가 선택하고, 노출의 수위도 내가 결정한다, 라고 말 할 수도 있는 형편.

국내 아역배우들 중 상당수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출연기를 감행한 것과 비슷하지 싶다. 김민정과 이재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영화에 출연해 떴으니 아이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었을 것이고, 이를 없애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최근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내 안의 일부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요동을 친다”며 “연극 출연은 나를 일깨우는 일이고, 대중이 ‘해리포터’보다 더 나은 뭔가를 연기할 수 있구나’ 평가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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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나라의 앨리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6
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 책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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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게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꼬마 아이들은 방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으며, 우리가 봤던 동화책과 만화를 보며 자란다.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와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단지 '이상한'이 '신기한'으로 번역되었을 뿐.  

 얼마전 영화 <매트릭스>를 오랫만에 다시 보고선 두 동화가 떠올랐다. 이것들을 단순히 동화라고 지칭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지만,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가 그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참으로 다양한 텍스트들을 짬뽕시켰으며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떠올리건 그건 자연스러울 것이다. 내가 <매트릭스>를 통해서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오른 것도 그 다양한 '떠오름' 중의 하나이며, 그 덕분에 다시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검색하면 몇 가지 번역본이 있다. 먼저 검색어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했을 때 시공주니어와 북폴리오, 삼성출판사, 중앙출판사, 지경사, 길벗이지톡, 아이즐북스 등이 나오고,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쳤을 때는 책세상 것 밖에 나오지 않는다. '신기한'과 '이상한'의 번역차이지만 어쨌든 검색해서 나오는 책 모두가 루이스 캐럴의 원본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본 책은 책세상 문고의 것으로, 다른 책들이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에 비해 이 책은 하나의 문학소설의 뽀대를 띠고서 태어났기에 꼬레 또 어른이라고 이 책을 골라잡았다.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더 쉬운 말로, 그리고 모든 것을 담아내지 않고 축약하거나 발췌하여 골랐을 공산이 크기에 위험부담이 없이 책세상의 것을 구입했다.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읽어싶어졌는데 이건 시공주니어 어린이용과 넥서스, 북폴리오 세 군데 것이 있다. 같이 책세상에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읽게 된다면 천상 북폴리오 것을 읽게 생겼다. 넥서스는 '중학교 영어로 다시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 이기에 부적합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북폴리오인데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모두 담겨있어 부피도 크고 가격부담도 좀 있다. 애초 두 책을 다 읽을거라면 책세상문고보단 북폴리오를 구입하는게 이득이다.

   루이스 캐럴은 일찍이 예술적인 재능을 드러냈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고 청력이 좋지 않았으며 이런 장애 때문인지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집 밖의 다른 이들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집 안의 동생들과 놀다보니 동화를 집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의 직업은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이고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 동화로 더 알려져있으니 동화작가로서 그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참으로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 시절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학장으로 온 헨리 리델의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서 배를 타고 놀며 그네들에게 재밌는 이야기 한 편을 해줬는데,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태가 되었다. 앨리스는 그때 배를 타고 있던 세 아이 중 한 아이의 이름이었는데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즉석해서 말로 환타지 소설을 쓴 셈이다. 이후 이것을 책으로 내려고 마음 먹으면서 이야기에 이것저것 덧붙이고 새로 꾸미고 하며 지금과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앨리스란 아이가 토끼를 발견하고는 따라가다 굴로 떨어지고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체험하기도 하는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책은 동화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환타지 소설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각종 장면들이 이후 곳곳의 소설과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환타지는 "현실의 타자로서 현실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현실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지금, 그의 소설이 여기저기에 적용되고 드러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매트릭스> 또한 그 많은 시도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린 시절 무심코 읽고 받아들였던 것을 제법 자란 지금에 와서 다시 살펴보는 일은 즐겁다. 생각하지 못한 채 주는대로 넙죽넙죽 받기만 했던 시절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이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금, 내가 현재 읽고 있는 다른 것들, 받아들이고 있는 다른 것들이, 또 내가 한참 자란 뒤에 다르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분명 다를 것이다. 코흘리개 찔찔이가 읽었던 동화는 이제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환타지 작품으로서, 다른 문학과 영화의 재료로서 다가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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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2-0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적 앨리스를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ㅠ.ㅠ ;; 이제라도 읽어봐야겠어요.
책세상 문고본 관심두고 있었는데... 책이 괜찮았나 보군요. 뺘쑝님 멋져용~!

마늘빵 2007-02-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카님 / ^^ 아 본적 있는데 기억 못하시는거 아녀요? 만화든 동화든 보셨을텐데. 이번에 한번 보세요.

mind0735 2007-02-0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나온걸 잠깐 봤는데.. 그것도 드문드문 봐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그나저나.. 이상한 나라의, 와 신기한 나라의, 는 정말 어감이 틀리군요. 어느것이 정답인지... 네. 꼭 읽어보겠습니다. ^^

마늘빵 2007-02-0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onderful 을 번역한건데, 머 어느 걸로 하든 의미는 괜찮은거 같아요.

가넷 2007-02-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리오에서 나온 걸 살려고 했었는데... 다들 리뷰에 올리신것이나 다른 곳에서 관련 정보를 볼때 편집이나 번역에 문제가 있는 듯 해서... -_-; 안 그랬으면 사버렸을텐데 말이죠..ㅜ; 그런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값이 아주 착한 것 같네요.ㅋㅋ

마늘빵 2007-02-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격이 그냥 부담없이 낼 수 있는 정도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판도 좋아하는데, 싸고 휴대하기 좋게 나오는거 같아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2007-04-09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이선민.최홍렬 엮음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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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는 조선일보에 2004년 8월 10일부터 2005년 3월 1일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나야 조선일보를 보지 않으니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책으로서 대했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별로다. 이 책의 내용들이 조선일보 연재물 이었기 때문에,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이 책은 대담집이고 나는 대담집을 좋아한다. 대담집의 장점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현장에서 엿듣고 있는 거 같은 사실감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말을 하더라도 대화이기 때문에 - 대화란 곧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에 가깝다 -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일전에 읽은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도 세계의 문학의 특별기획으로 구성된 대담집인데,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은걸 배웠고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 고민이 풀리면서 또다른 더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책이기에 '대담집'에 대한 내 감정은 더욱 호의적이다. 참고로 이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 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이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를 접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들의 대화가 좀 진행이 된다 싶으면 금방 끊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문지면의 연재물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대화를 하다마는 느낌이다. '잠깐 인터뷰' 형식이랄까. 제자가 스승을 만나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승이 이에 대해 답하고 여기서 대화를 주고 받는 이 형식과 과정은 참으로 좋은데, 볼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일보 연재 당시엔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신문 연재물이 책으로 옮겨진다고 해서 반드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잡지에 기고하기엔 퍽 좋은 글이 묶여져 책으로 냈을 때 별거 아닌 책이 되는 이치와 같달까. 글은 성격에 맞게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다. 인기있던 신문 연재물이라 해서 책으로 묶어서 '괜찮은 책'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걸 책으로 묶고 싶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면, 대담 분량을 더 늘려서 묶었어야 할 것이다. 이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뭔가 시각이 트인다거나 삶의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하는 뭔가가 있어야 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이 내게 전해준 것은 잘 몰랐던 많은 이들을 접했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하나 더. 대담이 조선일보 연재물이라 그런지 이 안에 대담에 참여한 이들 중 다수가 조선일보식의 사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사건이나 경제문제나 교육문제, 친일청산문제에 대해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선일보식 사고방식과 그 사람들의 평소 가치관이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마저도 왜 조선일보의 계략이라 생각되는거지.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관점을 떠나 대담까지도 '조선일보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 속이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정치성이야 잘 모른다쳐도 김호기와 임지현이 대담자 리스트에 들어있는 것은 참으로 거시기허다.

  유일하게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것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김용구의 말이다.

  "저는 후학들이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이 되길 바랍니다. 지식인은 활자나 기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여 그 사회의 문화 향상에 영향을 주는 사회 계층을 지칭합니다. 교수와 언론인, 종교인이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국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식인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술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강대국 국제 정치 이론을 충실히 전파하는 집단인데, 이들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대국 이론을 전달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전달 자체가 자기 해석이 결부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념 전달자 또는 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 집단의 명분을 선전하는 집단인데, 그들이 지탱하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고 이른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의 그들 역할도 상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너무 많은 교수들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국제 정치학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셋째,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처한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설정해 이에 대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입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런 지식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에게는 자연히 뒤따라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p.s. 리뷰를 쓰다 전에 읽었던 두 대담집을 검색해보았다.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 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가 절판되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은 둘 다 판매중이다. 절판되어 참 아깝다고 생각했던 두 책이 다시 보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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