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늦게 일어나 밥먹고 티비보다 다시 들어와 누워 한낮까지 자고 다시 또 일어나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밤 10시가 될 때까지 티비만 봤다. 직업상 시간의 여유가 많음에도 나는 언제나 바빴다. 일 벌여놓는걸 좋아하기에,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일들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기에,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며 거기서 성취감을 느끼기에,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두 가지 직업 이외에도, 시간을 쪼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누가 돈을 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내가 보고 듣고 읽은 것에 대해 기록을 남겼고, 그것은 이제 270편의 책리뷰와 290여편의 영화리뷰로 남았다. 그리고 몇 편의 진지한 글로도 남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대단하다고. 리뷰의 질을 떠나 꾸준히 성실하게 이와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자체로서 대단하다고. 근 3년간 참 열심히도 리뷰를 썼다. 그리고 첫 리뷰와 최근의 리뷰는 질적으로 다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리뷰는 내게 다른 여러 기회들을 안겨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기도 했다.

  리뷰를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사람들'의 다수를 모르고 지냈을 것이고, 여자친구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랬다. 쿨하지 않으면서 쿨한 척 한다고. 때로 쿨한 척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내가 쿨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쿨함이 사회적 유행이 되었고, 쿨함은 곧 좋은 것으로 연결지어지기도 하지만, 난 쿨하지 않은 내가 좋다. 사랑에 있어, 만남과 이별에 있어, 쿨함은 한 사람 뒤에 또 한 사람을 쉽게 만나고 잊도록 해주지만, 그것이 사랑일까 되물어보면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기법이나 내용면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도 못하는, 대중들의 평가도 그저그런, '사랑을 놓치다'라는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올려놓는건, 그들의 쿨하지 못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애절하게 질질짜고 전혀 안 쿨한 사랑영화. 요즘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힘들어하는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 아, 한번의 고백을 위해 십년의 세월을 보냈던가. 난 그간 뭘 했던가. 우리가 만나기 위해 십년의 세월은 너무나 가혹했고, 십년은 우리의 그 애틋했던 느낌을 지속시키기 힘들었다. 어긋나고 어긋나고 또 어긋나고. 보는 관객이 더 화가 나고 답답해하는 그런 영화. 하지만 쿨한 요즘 세상에도, 과거와 똑같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그렇게 힘들다. 세상의 흐름과 사랑방식의 변화 문제가 아니라 본래적인 사랑의 문제이다. 쿨하지 않다고, 찌질하다고 그들을 욕하지마라. 정말 쿨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일지니.

   쿨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이다. 
  사랑한 사람으로부터, 헤어지자, 라는 말을 듣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사.랑. 이었다면.
  사랑한 사람에게, 헤어지자, 라는 말을 하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사.랑. 이었다면. 

  상당히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이 많다. 어쩌면 스스로를 분석해 볼 때, 내가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으로 보이는건, 나의 약한 면모를 감추기 위한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이성의 장벽을 쌓아올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쉽게 상처 받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집에서조차 나는 냉정한 놈으로 인식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태어날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그들 앞에서도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에 쌓아올린 장벽의 앞모습만 보여준다. 가족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건 익숙하다. 나 자신조차 모를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때로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하루이틀 쌓이고 쌓여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급기야는 이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잘 맞는다 싶은 사람임에도, 그 사람이 내가 아니고서야 나와 같을 수는 없으며, 차이는 존재하고 차이는 갈등을 불러온다.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준다면 갈등의 불씨는 꺼질 것이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보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사귐에 있어 '차이인정'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지는건, 그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다투는건 서로가 사랑한다는 증거다. 다르면 그만, 이 아니라 달라도 좋아, 가 난 더 좋다. 내가 찾는건 쾌락이 아니라 사랑이니. 

  리뷰를 쓰고,  내 일상의 삶 속에서 생각한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멈추지 않을테지만,  집착은 좀 버리려 한다. 안써지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말고, 밀린 것에 대해서도 부담갖지 말고. 글은 기록으로 시작해 내게 여러 기회를 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사랑을 주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므로. 수단을 위해 그 뒤에 있을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해보고픈 것들에 도전하고, 삶을 바쁘게 꾸려갈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아래,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에만 한정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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