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생 남이 제출한 질문지에 답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실로 청춘에 대한 모독이자 삶을 노예화하는 지름길이다. -7쪽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며,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7쪽

"잃을 것은 낡고 병든 지식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부다."(고미숙)-11쪽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식으로' 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무슨 소리!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하고 있는 걸." 이런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바로 그게 전 사회가 '학교화'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사교육은 아무리 날고긴다 한들 학교식 공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의 이념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학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인 것. 더 끔찍한 건, 학교가 늘어날수록 이런 양상은 한층 심화될 뿐이라고 한다. 즉,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관을 늘리고,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학교는 더더욱 공부에 대한 이미지와 표상들을 몽땅 흡입해버리고 만다.-33쪽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삼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이런 식의 '공부법' 자체를 잊은 지 오래다. 여학생들이 대학의 대세를 이뤘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기가 뭣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여성들이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 마침내 지성의 영토를 장악하고는 기껏 '돈과 권력만 밝히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40-41쪽

"군자의 아름다운 말 속에는 혹 뉘우칠 만한 것이 있고, 착한 행실 속에도 혹 허물이 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경우에는 1년 내내 읽어도 뉘우칠 것이 없으며, 백 사람이 따라서 행하더라도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박지원)-52쪽

아무리 즐거워도 돈이 되지 않으면 '인생에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아무리 싫어하는 것이라도 돈이 되면 '몹시 유용한' 일이 된다. 돈이 깊이 개입하는 순간, 어떤 활동이든 졸지에 타율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활동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명력은 완전 잠식되고 만다.-53쪽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요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또 논술이나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독서를 해야 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 이분법적 통념을 깨기는 무리다. 결국, 지금처럼 '교육민주화'가 엄청 실현되었다고 평가되는 시대에도 학교식 공부에서 독서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책의 엑기스를 쏙 빼버린 껍데기에 불과하다. 좋아하던 글도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영 밥맛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나마 시험이 끝나자마자, 교과서나 참고서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그와 더불어 책과는 영원히 안녕을 고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기이한 책읽기!-55-56쪽

그들(대학생)에게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토론 수업이니 자기주도 학습이니 하는 것도 세계와 대상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는 법이다. 헌데, 대체 독서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눈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지금 대학생들은 도무지 질문을 할 줄 모른다. 사회에 대해서건 삶에 대해서건 질문이 없다. 왜? 독서를 하지 않으니까. 눈앞의 이익만 좇아가느라 바쁜데, 무슨 질문이 있겠는가. 질문을 하려면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마주쳐야 하는 바, 독서를 하지 않고는 그런 마주침 자체가 불가능하다. 질문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니 질문이 없고, 오, 이 악순환의 고리!-58쪽

좀 웃기는 말이지만, '서울대증후군'이란 게 있다. 수능이나 대학입학 성적을 다 늙어서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을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공주병에 못지않은 나르시시즘이다. 그런가 하면, 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들은 자신은 평생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결국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이래저래 평생을 성적에 발목이 묶여 사는 셈이다.-59-60쪽

여건만 좋으면, 지원만 충분하면 활동은 저절로 굴러가리라는 발상, 이것이 바로 학교가 퍼뜨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락한 거짓말의 덫이다. 즉 창의성에 대해 전혀 '창의적으로' 사유하지 못한 것.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창의성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한다. 창의적 삶에 대한 상상력은 땅에 묻어둔 채 아무리 시설을 확장하고 서비스를 완비한들 그 안에 있는 주체는 더더욱 창의성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65쪽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콩도르세)-66쪽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탁오, <분서>) -69쪽

학교가 배움터가 아닌 제도로서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근대 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 작동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 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어떤 교수가 있는지 그 학과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을 고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커트라인과 동급, 장학금 여부, 이런 정보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니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거야 당연지사, 자업자득이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생을 만나 어떤 학문을 터득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학교의 위상, 그 학과의 사회 진출 비율, 그게 선택의 유일한 척도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학벌이 높아질수록 공부와 삶 사이의 소외와 간극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80쪽

나는 '인문학의 위기'를 유포하는 교수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과연 교수들이 대학 안에서 능동적인 학습망을 조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주어진 커리큘럼만 단순 반복하면서, 프로젝트와 외유에 분주한 채 그저 세태만 탓하고 있다면, 다른 게 아니라 그런 행태 자체가 위기의 징후다. 만약 진정 위기를 절박하게 느낀다면 교수들이 먼저 그런 풍토에 맞서 능동적인 지식 활동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즉, 학교가 부과한 통념들로부터 탈주하여 '앎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86쪽

"군자는 글로써 벗을 만나고, 벗으로써 어짊을 북돋운다."(<논어>, [안연]편)-88쪽

"시를 노래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단 그들의 뜻을 드러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뛰고 소리치고 휘파람 부는 것을 노래를 통해 발산하고, 그 답답하고 억눌리고 막혀 있는 것은 음절을 통해 펼쳐내게 하는 것이고, 글을 읽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단 그 지각을 계발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침잠하고 반복하여 그 마음을 보존하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어서 그 뜻을 펴게 하는 것이다."(왕양명, <전습록>)-91쪽

보통 연구실을 찾아오는 신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별로 아는 게 없는데도 배울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135쪽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글쓰기의 지평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문체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 아니, 문체는 얼굴이요 몸이다. (중략)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아마 탁월한 직관력을 가진 점쟁이라면, 문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운명을 다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139쪽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175-176쪽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에피쿠로스)-193쪽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주자가 말했듯이,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야말로 가장 억압적이면서 가장 소외된 계급에 해당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입시를 위한 전쟁터에 내몰리고 거짓된 표상의 덫에 걸려 청춘을 다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01쪽

대인이란 남을 비호하는 사람이요, 소인이란 남에게서 비호를 받는 자입니다. 무릇 대인의 견식과 역량이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모두 남을 비호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 날마다 확충되고 자라나며 날마다 번청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의 그늘에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이 죽을 때까지 견식과 역량으로 채워질 날은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의 비호나 받을 줄 알지 자신이 남을 비호할 일이 있는 줄은 아예 알지도 못합니다. 집에서는 부모의 보호를 받고, 관리가 되면 상관의 비호를 받으며, 조정에서는 재상의 보호를 받길 원하고, 변방의 장수가 되어서는 중앙 관료가 두둔해주길 바라고, 성현을 자처하는 자들은 공자나 맹자의 비호를 구하며, 문장가를 자처하는 자들은 반고나 사마천의 그늘에 들기를 원합니다. (이탁오, <분서>)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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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술에 딴지걸다
문우일 지음, 한국논술평가원 감수 / 명진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대학에서 철학과 윤리교육을 전공한 현직 교사가 쓴 논술서다. 보기에 따라서 달리보여 평가를 내리기 애매한 책인데, 나름 철학을 쉽게 풀어 써가며 현실의 문제와 연결시키려 한 흔적이 보이고, 예화를 많이 들어가며 설명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는 그 노력을 인정해주고 싶지만, 결과적으로 고등학교 교과서 <윤리와 사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에서는 내용에 크게 신선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봐야겠다.

  아무래도 현직 교사인 저자가 수업 시간에 활용했던 예화들을 통해서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쓰려 한 것 같은데, 이 책의 내용은 '<윤리와 사상> 더하기 약간의 논리학 이론'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대학 논술에 자주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론의 토대가 되는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대략 다시 한번 정리해볼 목적으로 이 책을 빠르게 일독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느 정도 흐름을 타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으나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예시는 볼만하고, 각 단원의 뒤에 첨부되어 있는 '철학과 함께 하는 논술'의 문제도 철학적 주제를 현실 사회와 연계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쓴 흔적이 보인다. 교양서도 학습서도 아닌 그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 중간성격을 함께 지니지만 훌륭한 책도 있을 수 있다 -, 실질적인 논리훈련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오래전 책세상에서 나온 탁석산의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나 박우현의 <논리를 모르면 웃을 수도 없다>를, 철학교양물을 읽고 싶다면 명진출판사에서 나온 탁석산의 <철학 읽어주는 남자>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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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술에 딴지걸다
문우일 지음, 한국논술평가원 감수 / 명진출판사 / 2007년 9월
품절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을 통해 반성하며 사는 삶이에요. 그런 삶이 기초가 됐을 때 비로소 훌륭한 한 편의 글이 탄생하는 거죠.

만약 이것이 논술의 전부라면 구태여 철학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고리타분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무슨 이익이 있는 걸까요?

(중략)

구체적으로 이런 의문에 대해 철학자들의 고민을 추적해보면 철학이 우리의 삶속에서 왜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답니다. 철학자들의 고민이 현실에 대한 문제를 풀어낸 결과물로써, 그들의 철학이 적어도 유사한 상황 속에서 우리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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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절판


언어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언어는 하나의 활동, 혹은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 체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고 전달해 줄 수 있는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생계를 꾸릴 수단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사회가 번성할 수 없는 곳에서는 언어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언어가 그 사용자를 잃게 되면, 그 언어는 죽어간다.-18쪽

인간의 발명품인 언어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에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문화, 기술, 예술, 음악,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한 것이 언어였다. 모든 인간들이 축적해 놓은 풍요로운 지혜의 원천이 바로 언어이다. 기술은 다른 기술로 대체될 수 있지만, 언어들은 그렇지 않다. 각 언어마다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창이 있다. 모든 언어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며, 언어가 스스로 일구어 낸 모든 문화의 기념비와도 같다. 다양성의 상실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의 일부라도 잃게 된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손실을 안겨 주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가질 권리, 그 언어를 문화 자원으로 보존하고, 자손들에게 물려줄 권리를 갖고 있다.-34-35쪽

과거에는 이러한 멸종이 대개 인간의 개입과 관계없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개입을 통해, 특히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유례 없는 규모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언어들의 멸종은 전 세계적인 생태계 붕괴 현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소위 생물언어적 다양성의 위기가 발생하게 된 이면에는, 인간이 지구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39쪽

언어의 전환은 지구촌 현상을 불러온 훨씬 대규모의 사회적 변화 과정의 징후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계 도처의 사람들, 심지어 아마존의 가장 외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몇몇 세계 언어들이 확산됨에 따라 많은 소규모 언어들이 사멸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촌에서는 세계 인구 중 약 90퍼센트가 백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인간 사회가 이렇게 급진적으로 재편됨에 따라 영어와 몇몇 세계 언어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재편이 '적자생존'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ㅇ느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 아래서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이 이루어진 이상적인 시장경제 체제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지배적인 언어의 등장은 사회적 변화가 불균등하게 일어남에 따라,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간에 현저한 자원의 불균형이 생긴 데서 나온 결과이다. -41쪽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소주 민족들이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동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체적으로 무시되고 있는데, 이는 동화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큰 그림을 놓고 보면, 강요된 동화와 자발적인 동화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47쪽

언어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지닌 다양한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목표라는 점은 인정한다. 사회언어학자인 조슈아 피시먼은 언어 유지를 반대하는 입장 또한 가치 기준에 관한 하나의 의견인 만큼, 언어 유지를 지지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가치 기준에 관한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언어 유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소규모의 문화와 언어들이 단순히 사멸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언어나 전통 문화가 없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히 강요에 의한 획일화가 좋다거나, 한 민족이 언어를 상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0쪽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큰 과정의 주요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인간이 자연환경과 그 환경에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언어의 위기에 관한 문제는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56쪽

특정 언어들이 확산되어 나가는 반면 다른 언어들이 위축되는 이유는 언어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언어를 확산시키는 것은 사람들이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이런 확산들은 지역적 생태 환경의 영향으로 유발되었다. 즉 사람들은 자원이 빈약한 터전에서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해 가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원하는 지역을 다른 집단이 이미 점거하고 있는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있었다. 더 나중에 일어난 확산은 에트루리아어를 비롯한 다른 여러 언어들의 사멸을 불러왔다. 로마 제국이 정복하기 이전까지 유럽에는 아마도 현재까지 살아남은 서유럽의 바스크어와 같은 비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가 어떤 지역으로 확산되면, 일부 구조적인 특성들이 다른 특성들을 제치고 퍼져 나가게 된다. 이렇게 언어의 확산은 한 지역의 언어적 다양성을 고갈시키게 된다.-73쪽

일반적으로 외래어가 한 언어의 어휘로 채택되는 정도는 문화적 접촉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죽어가는 언어는 새 언어로부터 많은 단어를 도입했을 수 있다. 일부는 새로운 것들을 가리키면서, 또는 원래의 단어들을 대체하면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악순환을 낳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고 여기는 언어를 말하는 데 반감을 가지기 때문이다.-100쪽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배우거나 문어체에 어울릴 만한, 보다 형식을 갖춘 표현법을 습득할 기회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충분히 가르치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 언어의 보다 단순한 측면들을 먼저 익힌 후에 더 복잡한 것으로 옮겨 간다. 구조가 복잡할수록 언어를 배우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영어를 하는 아이들이라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되기 전에는 세세한 관계절 구문을 완전히 숙지하지는 못한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관계절들, 특히 "내가 앉은 의자는 빨간 칠을 했다" 같은 유형의 표현들은 구어보다는 문어에서 훨씬 더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작문을 배우기 전에는 그런 문형을 접하지 않는다. 위기에 처한 언어들의 경우, 아이들의 언어 습득이 바로 이런 종류의 복잡한 문법들을 익히는 나이에 중단되면서 학교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하도록 강요받기 쉽다-101-102쪽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따라서 태평양의 오세아니아 언어들에는 물고기의 경제적, 문화적 중요성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개념에 대해 문법적인 차이를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의 차이, 또는 단수와 복수의 차이), 언어들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에 개별적인 이름을 부여한다. 따라서 세계의 많은 언어들은 머릿속의 개념의 범주를 형성하는 구조에 관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며, 인간 정신의 무궁한 창의성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109-110쪽

한 언어의 일부분을 다른 어어와 비교해서, 특별한 문법 구조로 인해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여러 가지 사물이나 상황을 더 쉽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음으르 보여 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피진어를 제외하고) 원시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언어를 바라볼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언어만이 논리적이라고 간주할 만한 필연성이 없단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을 비추는 창으로서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또한 언어 구조의 문제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언어도 없다. 모리스 스와데시는 선천적으로 취약하게 타고난 언어, 즉 천성적으로 환경 변화를 이겨 낼 능력이 없는 언어는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모든 언어들 역시 한때는 기술적으로 더 단순한 사회에서 쓰이던 것들이었다. 아직도 텔레비전을 가릴키는 단어가 없는 언어들이 많다. 하지만 영어에도 텔레비젼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그 단어가 없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든 새로운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12-113쪽

토착 언어와 문화를 원시적이고 후진적이라고 무시하면서 그것을 서구의 언어와 문화로 대치하는 것이 현대화의 진보와 선행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미래를 이상적인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런 견해는 많은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다. (중략)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고쳐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가장 유형이 다른 언어들을 연구하는 데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언어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126-127쪽

언어는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몇 가지 의미에서 언어와 연관짓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생태학을 뜻하는 영어의 ecology라는 단어의 어원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 이다. 언어는 부모가 아이에게 말을 전해 주어 항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어야 번성할 수 있다. 사회는 살 만한 환경과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가 있어야만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가 생겨나고 사멸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언어 자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생태학적 사회관이다. 인간은 지형과 천연 자원에 의해, 자신의 지식과 기회에 의해,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의해서 그 경계가 그어지는 복합적인 장에서 움직이는 행위자들이다. 희귀생물이 생태계에 얽혀 있듯이 언어 역시 사회적, 지리적 기반에 얽혀 있다.-139쪽

우리는 인간의 행위를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가 접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를 택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러는 편이 많은 사람들과 정보와 용역을 교류하는 데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수의 언어를 계속 고수한다면, 그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비용이 어떤 이유에서든 너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 언어의 문화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오류이다.-150쪽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노력은 대부분 긴밀하게 얽힌 지역 사회에서 좋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선물하기나 수다 떨기, 종교적이거나 세속적 모임 등과 같은 인간의 여러 행위들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종종 이런 활동들을 원시적인 심리 상태에서 기인한 기묘하고 비합리적인 잔재 정도로 치부한다. 예를 들어 발전 이론가들은 원시 부족들이 힘들게 얻은 생산물을 불필요한 큰 잔치에 쏟아 붓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 같은 활동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리의 경제적 시각이 비현실적으로 편협하기 때문이다.-150-151쪽

언어를 직접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토착민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정책들이 소수 언어를 사멸시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실은 언어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전반적인 생태적, 경제적 기반의 결과물이라는 우리의 견해가 옳다는 확신을 준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단속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를 겨냥한 정치적 행위들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반면 경제적, 사회적 영역의 주요 물자들은 손에 넣고 통제할 수가 있다. 그런데 언어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 없이 번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언어를 소생시키고자 하는 운동에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157쪽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규모가 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면 사람들 스스로 그것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강제로 사람들을 '현대화'시키려는 시도들은 잘되어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고, 잘못되면 다른 문제들을 덮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세계 경제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모국어를 잃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쉽사리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그들에게 스스로 개발 조건을 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흔히 양쪽에 모두 유리한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즉 지역 사회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보다 광역의 경제 및 정치 체제에 적절히 전략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되면 철저한 다중 언어 사회가 이루어져서 그 사회에서 쓰이는 모든 언어가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받고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248쪽

많은 사람들은 변방 국가들의 언어 보존과 경제 개발의 필요성은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감상적 찬미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지역 상황에 적합하게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 주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따라서 언어의 사멸은,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관련된 여러 가지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게 해 주는 "유익한" 문제이다.-256쪽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개발에 따른 이런 편향성들 - 도회지 엘리트 위주이며 자원 고갈과 동질화를 지향하는 성향 - 은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위해 작용하는 우호적인 자유 시장 체제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식민 시대와 식민지 이후 시대에 소집단 엘리트들이 자원과 기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런 엘리트들은 정치 제도와 법 제도를 이용해서, 그리고 종종 실력 행사까지 해가며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주변 지역 사람들의 자원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국가 발전은 시골 사람들의 자원으로 자금을 마련하면서도, 그들을 위해서는 별 혜택을 주지 않는다. 도회지의 엘리트들은 시골의 빈곤을 완화시켜 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소득을 유용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는 장기적으로 다수에게 최선의 소득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소수에게 가장 높은 수입을 주는 쪽으로 전용된다. -268쪽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한다고 해서 언어의 종류와 문화가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제공하는 신나고 유익한 혜택을 누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를 습득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다양성의 유지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언어들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하며 공존해 왔다. 더욱이 이중 또는 다중 언어 상황은 강력한 지역적인 정체성과 아울러 세계적인 의사교류 체제의 이점을 거의 추가 비용없이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의 자생적인 언어 습득 능력은 거의 무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언론에서 종종 다중 언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무슨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 통제하지 못하는 지식이나 조직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289-290쪽

어떤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정체성에서 나오는 행동 또는 특정의 사회에 소속되려는 행동이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언어나 이름의 선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290쪽

언어는 복장, 행동 양식, 종교나 직업 등 여러 특성들과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한 언어를 포기하거나 잃게 되면 다른 언어가 곧 대체하겠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생긴다. 언어는 궁극적인 상징체계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시하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나 경험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큰 부분은 그 문화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가 사라질 때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느낀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대릴 베이브 윌슨은 아주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너ㅏ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만 한다."-321-322쪽

"세계의 문화를 단일하게 통합하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인간의 창의성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고갈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문화적 획일성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일원적인 체제는 특권적 소수 세력의 지배권을 더 강화할 뿐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건강함과 성취를 함께 이룰 수 있는 이 세계의 잠재적인 원천의 하나이다." (론 크로콤)-332쪽

"우리가 본질적으로 언어를 통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 적응한다든지,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하고 사고하는것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수적 수단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사실상 "현실"세계란, 상당 부분이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한 사회적 현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비슷하지 않다. 서로 다른 사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들이다. 같은 세상에 이름만 다르게 붙인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사피어) -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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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간다 - 글로벌 마켓을 누비는 해외영업 실전 매뉴얼
성수선 지음 / 부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인터넷 서점 內 이 책의 카테고리는 '경제경영>마케팅/세일즈' 이지만, 개인적으로 '에세이'에 넣어줘야 하지 않나 싶다. 흔히 경제경영 실용서로 분류되는 책들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해외영업'을 하고자 하는 갓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이나 아직 업무에 익숙치 않은 사원들이 읽으면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분명한 실용서이긴 하지만, 대개의 실용서가 담아내는 컨텐츠와는 거리가 한참 멀고, 그녀의 글쓰기가 자신의 일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해외영업만 10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언론고시 준비도 했다던 그녀는 보기좋게 낙방하고, 얼결에(?) 찔러넣었던 이력서가 최종합격을 통보해오는 바람에, 오늘에 이르게 된다. 어릴 적 꿈꾸던 미녀 스파이는 되지 못했지만 노트북을 들고 세계를 누비며 바이어들과 거래를 하는 베테랑 미녀 영업사원으로 그 꿈을 대신하고 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는 측면에서 스파이와 다를 바 없고, 감성 영업을 통해 그들로부터 사인을 받아낸다는 측면에서 스파이와 다를 바 없다(?). 

  철저히 자기 일을 즐기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이상적인 회사원'의 전형. 삼성정밀화학 해외영업 담당 여성과장 1호.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독서를 하고 쓴 감상문과 자신의 일상을 토대로 쓴 일기글이 홈페이지에 가득하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회사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작업들은 그녀가 오늘에 이르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대개의 회사원들은 매일 자기계발서 읽고 토익 공부하며 자신의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보기에 안쓰럽다. 하지만 성수선씨에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강박관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오히려 평균적인 회사원의 행태를 역행하는 삶을 산다. 회사일과 동떨어진 책읽기와 글쓰기는 '감성 영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책에는 그녀의 감성 영업 비결이 가득하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건 전략적으로 접근해서는 먹히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전략과 계획보다는 진심어린 마음이 필요하다. 감성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계획을 짜고 준비한들 상대에게 전달될리 없다.

  매우 재밌게 읽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이 책을 읽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버렸고, 토요일자 한겨레 신문을 사려던 생각을 집에 들어온 다음에야 떠올린 바람에 결국 토요일자 한겨레 신문을 사지 못했다. 평소 그녀가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포스팅하던 일상의 재밌는 글들이 종이 위로 올라온 느낌이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다던 그녀 답게 문장은 매우 가독성이 높고 맛깔나다. 순식간에 책 한권을 다 읽어버렸다. 해외 영업을 할 일이 전혀 없는, 심지어는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까 싶은, 직업이 영업사원도 아닌 나에게, 이 책에 담긴 노하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난 에세이로서 내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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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03-1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이 그 책이군요 :)

다락방 2008-03-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렇군요! 잘 읽었어요. :)

개인주의 2008-03-11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에세이에 분류해주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