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생 남이 제출한 질문지에 답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실로 청춘에 대한 모독이자 삶을 노예화하는 지름길이다. -7쪽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며,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7쪽

"잃을 것은 낡고 병든 지식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부다."(고미숙)-11쪽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식으로' 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무슨 소리!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하고 있는 걸." 이런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바로 그게 전 사회가 '학교화'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사교육은 아무리 날고긴다 한들 학교식 공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의 이념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학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인 것. 더 끔찍한 건, 학교가 늘어날수록 이런 양상은 한층 심화될 뿐이라고 한다. 즉,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관을 늘리고,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학교는 더더욱 공부에 대한 이미지와 표상들을 몽땅 흡입해버리고 만다.-33쪽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삼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이런 식의 '공부법' 자체를 잊은 지 오래다. 여학생들이 대학의 대세를 이뤘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기가 뭣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여성들이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 마침내 지성의 영토를 장악하고는 기껏 '돈과 권력만 밝히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40-41쪽

"군자의 아름다운 말 속에는 혹 뉘우칠 만한 것이 있고, 착한 행실 속에도 혹 허물이 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경우에는 1년 내내 읽어도 뉘우칠 것이 없으며, 백 사람이 따라서 행하더라도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박지원)-52쪽

아무리 즐거워도 돈이 되지 않으면 '인생에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아무리 싫어하는 것이라도 돈이 되면 '몹시 유용한' 일이 된다. 돈이 깊이 개입하는 순간, 어떤 활동이든 졸지에 타율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활동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명력은 완전 잠식되고 만다.-53쪽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요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또 논술이나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독서를 해야 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 이분법적 통념을 깨기는 무리다. 결국, 지금처럼 '교육민주화'가 엄청 실현되었다고 평가되는 시대에도 학교식 공부에서 독서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책의 엑기스를 쏙 빼버린 껍데기에 불과하다. 좋아하던 글도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영 밥맛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나마 시험이 끝나자마자, 교과서나 참고서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그와 더불어 책과는 영원히 안녕을 고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기이한 책읽기!-55-56쪽

그들(대학생)에게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토론 수업이니 자기주도 학습이니 하는 것도 세계와 대상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는 법이다. 헌데, 대체 독서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눈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지금 대학생들은 도무지 질문을 할 줄 모른다. 사회에 대해서건 삶에 대해서건 질문이 없다. 왜? 독서를 하지 않으니까. 눈앞의 이익만 좇아가느라 바쁜데, 무슨 질문이 있겠는가. 질문을 하려면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마주쳐야 하는 바, 독서를 하지 않고는 그런 마주침 자체가 불가능하다. 질문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니 질문이 없고, 오, 이 악순환의 고리!-58쪽

좀 웃기는 말이지만, '서울대증후군'이란 게 있다. 수능이나 대학입학 성적을 다 늙어서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을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공주병에 못지않은 나르시시즘이다. 그런가 하면, 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들은 자신은 평생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결국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이래저래 평생을 성적에 발목이 묶여 사는 셈이다.-59-60쪽

여건만 좋으면, 지원만 충분하면 활동은 저절로 굴러가리라는 발상, 이것이 바로 학교가 퍼뜨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락한 거짓말의 덫이다. 즉 창의성에 대해 전혀 '창의적으로' 사유하지 못한 것.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창의성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한다. 창의적 삶에 대한 상상력은 땅에 묻어둔 채 아무리 시설을 확장하고 서비스를 완비한들 그 안에 있는 주체는 더더욱 창의성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65쪽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콩도르세)-66쪽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탁오, <분서>) -69쪽

학교가 배움터가 아닌 제도로서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근대 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 작동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 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어떤 교수가 있는지 그 학과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을 고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커트라인과 동급, 장학금 여부, 이런 정보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니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거야 당연지사, 자업자득이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생을 만나 어떤 학문을 터득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학교의 위상, 그 학과의 사회 진출 비율, 그게 선택의 유일한 척도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학벌이 높아질수록 공부와 삶 사이의 소외와 간극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80쪽

나는 '인문학의 위기'를 유포하는 교수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과연 교수들이 대학 안에서 능동적인 학습망을 조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주어진 커리큘럼만 단순 반복하면서, 프로젝트와 외유에 분주한 채 그저 세태만 탓하고 있다면, 다른 게 아니라 그런 행태 자체가 위기의 징후다. 만약 진정 위기를 절박하게 느낀다면 교수들이 먼저 그런 풍토에 맞서 능동적인 지식 활동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즉, 학교가 부과한 통념들로부터 탈주하여 '앎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86쪽

"군자는 글로써 벗을 만나고, 벗으로써 어짊을 북돋운다."(<논어>, [안연]편)-88쪽

"시를 노래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단 그들의 뜻을 드러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뛰고 소리치고 휘파람 부는 것을 노래를 통해 발산하고, 그 답답하고 억눌리고 막혀 있는 것은 음절을 통해 펼쳐내게 하는 것이고, 글을 읽도록 인도하는 것은 비단 그 지각을 계발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침잠하고 반복하여 그 마음을 보존하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어서 그 뜻을 펴게 하는 것이다."(왕양명, <전습록>)-91쪽

보통 연구실을 찾아오는 신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별로 아는 게 없는데도 배울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135쪽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글쓰기의 지평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문체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 아니, 문체는 얼굴이요 몸이다. (중략)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아마 탁월한 직관력을 가진 점쟁이라면, 문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운명을 다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139쪽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175-176쪽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에피쿠로스)-193쪽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주자가 말했듯이,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야말로 가장 억압적이면서 가장 소외된 계급에 해당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입시를 위한 전쟁터에 내몰리고 거짓된 표상의 덫에 걸려 청춘을 다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01쪽

대인이란 남을 비호하는 사람이요, 소인이란 남에게서 비호를 받는 자입니다. 무릇 대인의 견식과 역량이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모두 남을 비호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 날마다 확충되고 자라나며 날마다 번청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의 그늘에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이 죽을 때까지 견식과 역량으로 채워질 날은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의 비호나 받을 줄 알지 자신이 남을 비호할 일이 있는 줄은 아예 알지도 못합니다. 집에서는 부모의 보호를 받고, 관리가 되면 상관의 비호를 받으며, 조정에서는 재상의 보호를 받길 원하고, 변방의 장수가 되어서는 중앙 관료가 두둔해주길 바라고, 성현을 자처하는 자들은 공자나 맹자의 비호를 구하며, 문장가를 자처하는 자들은 반고나 사마천의 그늘에 들기를 원합니다. (이탁오, <분서>) -2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