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절판


언어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언어는 하나의 활동, 혹은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 체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고 전달해 줄 수 있는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생계를 꾸릴 수단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사회가 번성할 수 없는 곳에서는 언어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언어가 그 사용자를 잃게 되면, 그 언어는 죽어간다.-18쪽

인간의 발명품인 언어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에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문화, 기술, 예술, 음악,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한 것이 언어였다. 모든 인간들이 축적해 놓은 풍요로운 지혜의 원천이 바로 언어이다. 기술은 다른 기술로 대체될 수 있지만, 언어들은 그렇지 않다. 각 언어마다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창이 있다. 모든 언어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며, 언어가 스스로 일구어 낸 모든 문화의 기념비와도 같다. 다양성의 상실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의 일부라도 잃게 된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손실을 안겨 주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가질 권리, 그 언어를 문화 자원으로 보존하고, 자손들에게 물려줄 권리를 갖고 있다.-34-35쪽

과거에는 이러한 멸종이 대개 인간의 개입과 관계없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개입을 통해, 특히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유례 없는 규모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언어들의 멸종은 전 세계적인 생태계 붕괴 현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소위 생물언어적 다양성의 위기가 발생하게 된 이면에는, 인간이 지구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39쪽

언어의 전환은 지구촌 현상을 불러온 훨씬 대규모의 사회적 변화 과정의 징후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계 도처의 사람들, 심지어 아마존의 가장 외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몇몇 세계 언어들이 확산됨에 따라 많은 소규모 언어들이 사멸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촌에서는 세계 인구 중 약 90퍼센트가 백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인간 사회가 이렇게 급진적으로 재편됨에 따라 영어와 몇몇 세계 언어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재편이 '적자생존'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ㅇ느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 아래서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이 이루어진 이상적인 시장경제 체제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지배적인 언어의 등장은 사회적 변화가 불균등하게 일어남에 따라,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간에 현저한 자원의 불균형이 생긴 데서 나온 결과이다. -41쪽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소주 민족들이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동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체적으로 무시되고 있는데, 이는 동화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큰 그림을 놓고 보면, 강요된 동화와 자발적인 동화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47쪽

언어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지닌 다양한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목표라는 점은 인정한다. 사회언어학자인 조슈아 피시먼은 언어 유지를 반대하는 입장 또한 가치 기준에 관한 하나의 의견인 만큼, 언어 유지를 지지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가치 기준에 관한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언어 유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소규모의 문화와 언어들이 단순히 사멸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언어나 전통 문화가 없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히 강요에 의한 획일화가 좋다거나, 한 민족이 언어를 상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0쪽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큰 과정의 주요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인간이 자연환경과 그 환경에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언어의 위기에 관한 문제는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56쪽

특정 언어들이 확산되어 나가는 반면 다른 언어들이 위축되는 이유는 언어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언어를 확산시키는 것은 사람들이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이런 확산들은 지역적 생태 환경의 영향으로 유발되었다. 즉 사람들은 자원이 빈약한 터전에서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해 가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원하는 지역을 다른 집단이 이미 점거하고 있는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있었다. 더 나중에 일어난 확산은 에트루리아어를 비롯한 다른 여러 언어들의 사멸을 불러왔다. 로마 제국이 정복하기 이전까지 유럽에는 아마도 현재까지 살아남은 서유럽의 바스크어와 같은 비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가 어떤 지역으로 확산되면, 일부 구조적인 특성들이 다른 특성들을 제치고 퍼져 나가게 된다. 이렇게 언어의 확산은 한 지역의 언어적 다양성을 고갈시키게 된다.-73쪽

일반적으로 외래어가 한 언어의 어휘로 채택되는 정도는 문화적 접촉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죽어가는 언어는 새 언어로부터 많은 단어를 도입했을 수 있다. 일부는 새로운 것들을 가리키면서, 또는 원래의 단어들을 대체하면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악순환을 낳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고 여기는 언어를 말하는 데 반감을 가지기 때문이다.-100쪽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배우거나 문어체에 어울릴 만한, 보다 형식을 갖춘 표현법을 습득할 기회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충분히 가르치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 언어의 보다 단순한 측면들을 먼저 익힌 후에 더 복잡한 것으로 옮겨 간다. 구조가 복잡할수록 언어를 배우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영어를 하는 아이들이라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되기 전에는 세세한 관계절 구문을 완전히 숙지하지는 못한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관계절들, 특히 "내가 앉은 의자는 빨간 칠을 했다" 같은 유형의 표현들은 구어보다는 문어에서 훨씬 더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작문을 배우기 전에는 그런 문형을 접하지 않는다. 위기에 처한 언어들의 경우, 아이들의 언어 습득이 바로 이런 종류의 복잡한 문법들을 익히는 나이에 중단되면서 학교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하도록 강요받기 쉽다-101-102쪽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따라서 태평양의 오세아니아 언어들에는 물고기의 경제적, 문화적 중요성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개념에 대해 문법적인 차이를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의 차이, 또는 단수와 복수의 차이), 언어들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에 개별적인 이름을 부여한다. 따라서 세계의 많은 언어들은 머릿속의 개념의 범주를 형성하는 구조에 관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며, 인간 정신의 무궁한 창의성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109-110쪽

한 언어의 일부분을 다른 어어와 비교해서, 특별한 문법 구조로 인해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여러 가지 사물이나 상황을 더 쉽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음으르 보여 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피진어를 제외하고) 원시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언어를 바라볼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언어만이 논리적이라고 간주할 만한 필연성이 없단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을 비추는 창으로서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또한 언어 구조의 문제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언어도 없다. 모리스 스와데시는 선천적으로 취약하게 타고난 언어, 즉 천성적으로 환경 변화를 이겨 낼 능력이 없는 언어는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모든 언어들 역시 한때는 기술적으로 더 단순한 사회에서 쓰이던 것들이었다. 아직도 텔레비전을 가릴키는 단어가 없는 언어들이 많다. 하지만 영어에도 텔레비젼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그 단어가 없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든 새로운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12-113쪽

토착 언어와 문화를 원시적이고 후진적이라고 무시하면서 그것을 서구의 언어와 문화로 대치하는 것이 현대화의 진보와 선행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미래를 이상적인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런 견해는 많은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다. (중략)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고쳐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가장 유형이 다른 언어들을 연구하는 데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언어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126-127쪽

언어는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몇 가지 의미에서 언어와 연관짓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생태학을 뜻하는 영어의 ecology라는 단어의 어원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 이다. 언어는 부모가 아이에게 말을 전해 주어 항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어야 번성할 수 있다. 사회는 살 만한 환경과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가 있어야만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가 생겨나고 사멸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언어 자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생태학적 사회관이다. 인간은 지형과 천연 자원에 의해, 자신의 지식과 기회에 의해,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의해서 그 경계가 그어지는 복합적인 장에서 움직이는 행위자들이다. 희귀생물이 생태계에 얽혀 있듯이 언어 역시 사회적, 지리적 기반에 얽혀 있다.-139쪽

우리는 인간의 행위를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가 접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를 택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러는 편이 많은 사람들과 정보와 용역을 교류하는 데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수의 언어를 계속 고수한다면, 그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비용이 어떤 이유에서든 너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 언어의 문화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오류이다.-150쪽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노력은 대부분 긴밀하게 얽힌 지역 사회에서 좋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선물하기나 수다 떨기, 종교적이거나 세속적 모임 등과 같은 인간의 여러 행위들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종종 이런 활동들을 원시적인 심리 상태에서 기인한 기묘하고 비합리적인 잔재 정도로 치부한다. 예를 들어 발전 이론가들은 원시 부족들이 힘들게 얻은 생산물을 불필요한 큰 잔치에 쏟아 붓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 같은 활동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리의 경제적 시각이 비현실적으로 편협하기 때문이다.-150-151쪽

언어를 직접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토착민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정책들이 소수 언어를 사멸시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실은 언어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전반적인 생태적, 경제적 기반의 결과물이라는 우리의 견해가 옳다는 확신을 준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단속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를 겨냥한 정치적 행위들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반면 경제적, 사회적 영역의 주요 물자들은 손에 넣고 통제할 수가 있다. 그런데 언어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 없이 번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언어를 소생시키고자 하는 운동에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157쪽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규모가 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면 사람들 스스로 그것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강제로 사람들을 '현대화'시키려는 시도들은 잘되어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고, 잘못되면 다른 문제들을 덮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세계 경제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모국어를 잃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쉽사리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만약 그들에게 스스로 개발 조건을 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흔히 양쪽에 모두 유리한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즉 지역 사회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보다 광역의 경제 및 정치 체제에 적절히 전략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되면 철저한 다중 언어 사회가 이루어져서 그 사회에서 쓰이는 모든 언어가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받고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248쪽

많은 사람들은 변방 국가들의 언어 보존과 경제 개발의 필요성은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감상적 찬미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지역 상황에 적합하게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 주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따라서 언어의 사멸은,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관련된 여러 가지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게 해 주는 "유익한" 문제이다.-256쪽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개발에 따른 이런 편향성들 - 도회지 엘리트 위주이며 자원 고갈과 동질화를 지향하는 성향 - 은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위해 작용하는 우호적인 자유 시장 체제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식민 시대와 식민지 이후 시대에 소집단 엘리트들이 자원과 기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런 엘리트들은 정치 제도와 법 제도를 이용해서, 그리고 종종 실력 행사까지 해가며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주변 지역 사람들의 자원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국가 발전은 시골 사람들의 자원으로 자금을 마련하면서도, 그들을 위해서는 별 혜택을 주지 않는다. 도회지의 엘리트들은 시골의 빈곤을 완화시켜 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소득을 유용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는 장기적으로 다수에게 최선의 소득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소수에게 가장 높은 수입을 주는 쪽으로 전용된다. -268쪽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한다고 해서 언어의 종류와 문화가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제공하는 신나고 유익한 혜택을 누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를 습득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다양성의 유지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언어들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하며 공존해 왔다. 더욱이 이중 또는 다중 언어 상황은 강력한 지역적인 정체성과 아울러 세계적인 의사교류 체제의 이점을 거의 추가 비용없이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의 자생적인 언어 습득 능력은 거의 무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언론에서 종종 다중 언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무슨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 통제하지 못하는 지식이나 조직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289-290쪽

어떤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정체성에서 나오는 행동 또는 특정의 사회에 소속되려는 행동이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언어나 이름의 선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290쪽

언어는 복장, 행동 양식, 종교나 직업 등 여러 특성들과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한 언어를 포기하거나 잃게 되면 다른 언어가 곧 대체하겠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생긴다. 언어는 궁극적인 상징체계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시하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나 경험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큰 부분은 그 문화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가 사라질 때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느낀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대릴 베이브 윌슨은 아주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너ㅏ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만 한다."-321-322쪽

"세계의 문화를 단일하게 통합하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인간의 창의성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고갈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문화적 획일성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일원적인 체제는 특권적 소수 세력의 지배권을 더 강화할 뿐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건강함과 성취를 함께 이룰 수 있는 이 세계의 잠재적인 원천의 하나이다." (론 크로콤)-332쪽

"우리가 본질적으로 언어를 통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 적응한다든지,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하고 사고하는것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수적 수단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사실상 "현실"세계란, 상당 부분이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한 사회적 현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비슷하지 않다. 서로 다른 사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들이다. 같은 세상에 이름만 다르게 붙인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사피어) -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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