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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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이상주의자는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되, 결코 불의한 현실을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승인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실에 대해 절망한다는 것은 여기서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로 이상주의자는 불의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것을 사실로서 인정한다 하더라도 불의가 현실의 존립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존재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불의가 지배하는 현실은 어디까지나 왜곡된 현실이지 참된 현실이 아닙니다."(플라톤 부분)-48쪽

"절대적인 악과 완전한 불의는 행복의 원천이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절대적 무능력일 뿐입니다. 약은 오직 선에 기생해서만 악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선도 아무런 의로움도 없는 곳에서는 악과 불의조차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플라톤 부분)-60쪽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오직 우리의 영혼이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 때입니다. 오직 영혼이 자기 일을 잘하여 선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좋은 삶,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플라톤 부분)-64쪽

"참된 행복이란 우리의 이성이 탁월함을 실현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따른 정신의 활동"이라 하는 것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 부분)-87쪽

"따라서 우리는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그 모든 일이 필연적인 운명에 따른 일임을 깨닫고, 내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스토아주의자들의 가르침인 것입니다."(스토아 학파 부분)-127쪽

"참된 쾌락은 육체와 정신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모든 종류의 혼란과 광기가 제거될 때 이룩됩니다."(에피쿠로스 부분)-151쪽

"선한 의자가 선한 까닭은 선한 의지가 우리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선한 의자가 그것이 낳는 결과 때문에 선해지는 것이라면 참으로 선한 것은 결과이며 선한 의지는 그 결과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선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칸트는 선이 선 아닌 다른 것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칸트 부분)-267쪽

"의무감이란 우리가 자연적 정념에 따라 생각할 때에는 하기 싫은 일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도덕적 요구에 따라 행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마음입니다."(칸트 부분)-273쪽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선하냐 악하냐를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행위하기를 나 자신이 기꺼이 바랄 수 있는지를 되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칸트 부분)-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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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카페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안시열 옮김 / 김영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몇년전부터 철학의 대중화 작업들이 활발하다. 몇몇 생각있는 철학자들이 대중적인 서적을 내놓고 반응이 괜찮자 다수의 철학자들이 뛰어들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형국이다. 내가 처음 철학을 접할 때 철학입문서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소피의 세계><논리야 놀자> 시리즈와 동녘에서 나온 <철학에세이> 정도였다. 기타 몇몇 입문서라 자처하는 책들이 있긴 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이 정도일 듯 싶다.

 그중에서 <논리야 놀자>시리즈는 보지 않았다. <소피의 세계>는 철학에 입문한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접했지만 별로 땡기질 않았다. 그래서 보다 말았다. <철학에세이>는 내가 처음 철학을 시작할 때 접했다. 철학을 했다고 하면 뭐 대단하다 싶겠지만 그냥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 하다.

 <소크라테스 카페>를 소개하면서 난데없이 철학입문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책이 철학입문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조성오씨의 <철학에세이>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입문서다. 조성오 씨의 철학에세이가 좀더 철학적 깊이를 담은 내용이고 좀더 경직되어있다면 <소크라테스 카페>는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고 편하다. 책상에 정색하고 앉아 책을 읽는 모양새와 쇼파에 드러워서 설렁설렁 읽는 모양새로 비유를 하면 좋을듯 싶다.

 <소크라테스 카페>는 비록 책이 두껍긴 하지만 다 읽고나면 그다지 심도있고 어려운 내용은 없다. 그냥 두꺼워서 겁만 줄 뿐이다. 다른 어떤 철학에 대한 서적보다도 훨씬 빨리 읽히고 쉽게 읽힌다.

 저자 크리스토퍼 필립스와 역자 안시열씨의 이력은 둘다 독특하다. 저자는 정치철학, 유전공학, 교육철학 세개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역사 안시열씨는 화학교육과를 졸업해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하고, 통역번역 대학원을 졸업했다. 건드린 분야도 둘다 세가지고 각기 다른 분야를 건드렸다.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들의 특이한 이력은 저자나 역자나 좀더 넓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저자와 역자의 그러함 때문이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는 절대 철학적 지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간혹가다 철학자라 불리우는 자들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며 그들이 내뱉은 말 중 유명해진 문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이 책에서 큰 위치를 점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그냥 그러한 철학자들이 있다는 것만 알릴 뿐이지 그들이 한 말에 대한 주석이나 분석을 달고 있지는 않다.

 철학은 묻고 대답하고 또 묻고 대답하고 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난다.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대화법인 산파술을 통해서 상대방의 대답을 유도하고 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실제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것을 운영하며 자영업자, 노숙자, 교사, 교수, 공무원 등의 여러 사람들과 접함으로써 스스로가 소크라테스가 된다. 많은 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그들 자신을 깨우치게 돕고 저자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소크라테스 카페를 운영하면서 겪는 일들을 재료로 삼아 소크라테스와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편하다. 철학이 중심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책의 맨 뒤에 언급된 각각의 철학자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소크라테스 카페를 만들고 운영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철학은 혼자 할 수도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폭넓어질 수 있다. 소크라테스 카페는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쉽게 철학에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모임이다. 이 책을 읽은 뒤에 자신이 소크라테스 카페를 만들어 운영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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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3-1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라... 저에게 철학은 너무 어렵더군요.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때에도 서양사상때문에 윤리를 포기했어요..

마늘빵 2005-03-1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것 때문에 윤리가 재밌었는데... ㅡㅡa
 
소크라테스 카페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안시열 옮김 / 김영사 / 2001년 10월
절판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즉 자신이 믿는 바를 주장할 용기와 함께 자신이 믿는 바에 다른 사람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 카페의 신조이다."-23쪽

"소크라테스는 어떤 지식을 깨닫거나 어떤 가정을 세우고 나면, 이에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이를 다시 조명하고 분석하여 도전해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어느 것에 ㄷ해서도 완전한 영구불변의 해답을 찾아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32쪽

"소크라테스식의 문답법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가능성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37쪽

"소크라테스에게서 새로운 점은,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방식이다."-45쪽

"과학은 관찰 대상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왜'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입니다. '왜'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유와 의미를 추구합니다. 인간 개인의 특성이나 아름다운 인생, 훌륭한 삶과 같은 것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86쪽

"어떤 일을 행하게 될 때까지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주저함은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서 언제나 비효과적인 결과만을 낳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창조하는 데에는 하나의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을 모르면 수많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멋진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 진실은 바로 결행의 순간에 그 결정으로부터 모든 사건의 흐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보이지 않는 사건과 만남, 그리고 꿈도 꿔보지 않았던 물질적 지원이 밀려온다. 무엇을 할 수 있든, 무엇을 꿈꿀 수 있든 간에, 일단 시작하라. 용감함에는 천재성, 힘, 마술이 들어있다. 지금 시작하라."(괴테)-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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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9년 9월
구판절판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
(제 1장 제 1부의 주제)-5쪽

"아무리 강한 자도 자기의 힘을 권리로, 그리고 그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영구히 지배자가 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제 1부 제 3장 강자의 권리에 관하여)-9쪽

"힘의 강압으로 복종해야 한다면 사람은 의무로써 복종할 필요는 없으며 또 복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복종할 의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리라는 말은 힘에 아무것도 덧붙이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제 3장 강자의 권리에 관하여)-9쪽

"어떤 인간도 자기와 같은 인간에 대해 자연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고 또 힘은 어떤 권리도 만들어 내지 않으므로, 계약만이 인간 상호간의 정당한 모든 권위의 기초로 남는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1쪽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에게는 어떤 보상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포기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며, 또 인간의 의지에서 모든 자유를 빼앗는 것은 바로 인간의 행동에서 모든 도덕성을 제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2쪽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사물간의 관계이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아니다."
(제 1부 제 4장 노예제도에 관하여)-13쪽

"사회계약은 유명무실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전체 의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제 1부 제 7장 주권자에 대하여)-25쪽

"전체 의사만이 국가의 힘을 공동 이익이라는 국가 설립의 목적에 따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해 사회의 설립이 필요해졌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 이해관계의 일치이기 때문이다."
(제 2부 제 1장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35쪽

"우리를 사회체에 결합시키는 계약이 의무적인 것은 오직 그것이 쌍무적이기 때문이다. 이 계약의 특성은 그것을 이행할 때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는 데 있다. 전체 의사가 항상 옳은 것이 되고, 또 사람들 모두가 각 사람의 행복을 끊임없이 원하는 것은 누구나 '각자'라는 말을 자기로 생각하고 또 모든 사람을 위해 투표할 때 실은 제 자신을 생각하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 2부 제 4장 주권의 한계에 관하여)-43쪽

"입법자는 국가에서 어느 점으로 보나 비상한 인물이다. 재능에 있어서 그러하지만 그의 직무에 있어서도 재능 못지 않게 특별하다. 이것은 행정직도 아니고 주권도 아니다. 이 직무는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구조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구조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공통되는 것이 없는 특별하고도 상위의 기능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지배하는 자는 법을 지배해서는 안되고, 법을 지배하는 자는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제 2부 제 7장 입법자에 관하여)-55쪽

"진정한 민주정치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가 지배하고 소수가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제 3부 제 4장 민주정치에 관하여)-88쪽

"단일정부는 그것이 단일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 최상의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가 입법부에 충분히 의존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국민과 군주와의 관계보다 군주와 주권자와의 관계가 더 가까우면, 정부를 분할함으로써 이 균형의 결함을 보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분할된 각 부분들은 국민들에게는 같은 권위를 유지할 수 있고, 주권자에 대해서는 힘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제 3부 제 7장 혼합정부에 관하여)-101쪽

"국민이 주권의 주체로써 정당하게 의회를 구성할 때 정부의 모든 법률은 중지되고 행정권은 정지되며 가장 미천한 시민의 신분도 최고행정관의 신분에 못지 않게 성스럽고 불가침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대표된 자가 몸소 나타날 때 대표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 3부 제 14장 주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3))-121쪽

"법은 오직 전체 의사의 선언인 만큼 입법권에 있어서 국민이 대표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의 적용에 불과한 행정권에 있어서는 국민은 대표될 수도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
(제 3부 제 15장 대의원 또는 대표자들에 관하여)-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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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진작 이 책을 보지 않았던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처음 들어본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가 늘어놓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사유는 정말이지 나를 '깜딱' 놀라게 했다. 너무 다 까발린거 아냐? 라는 반응과 함께.

 1995년에 이미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쩐일인지 금새 절판이 되었나보다. 이 책은 결국 2002년에 청미래 출판사를 통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아마도 제목이 주는 딱딱함과 지루함 때문에 먼저번 것이 절판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청미래는 제목을 바꿈으로써 표지를 이쁘게 디자인함으로써 다시 독자의 눈길을 끌었고 이 책은 꽤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역자 정영목씨에 대해서 말하자면, 요전에 내가 읽은 <극단의 형벌>이라는 책의 역자이기도 했다. 참 익숙한 이름이다 싶어 최근 읽은 책들을 살펴봤더니 일치했다. 자신이 번역할 책을 고르는데 재주를 가진 듯 하다. <극단의 형벌> 역시 베스트셀러라고까지는 말 할 수 없지만 꽤 인기있는 사회과학 서적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 이 전혀 보통사람같지 않은 보통은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책을 25살 무렵에 썼다고 하니 어이쿠 이런 지금의 내나이보다 어리지 않은가? 어린놈(?)이 사랑과 연애, 이별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거 아냐? 라는 약간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섞어 보통을 부러워하는 나.

 엄연히 '소설'이라고는 하나 역시 보통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개 소설에는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이라는 구성이 있는데 이 구성들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높낮이를 조절하며 관객을 사로잡기도 하고 잠시 풀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의 형식을 무시하고 있다. 물론 보통의 소설에도 형식은 있고, 스토리도 있다. 두 연인이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기까지의 줄거리가 있으니깐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런데 그 비중이 지극히 낮다. 보통의 소설에서 스토리가 아닌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스토리는 남는 게 없다. 그럼 스토리를 제외한 나머지 것이 뭐냐? 사유다.

 보통은 사랑에 대한 사유와 분석을 적용함으로써 소설을 풀어나간다. 소설의 원동력이 줄거리가 아니라 사유인 셈이다. 누가 철학자 아니랠까봐 그는 소설 속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 칸트 등을 끌어들이고 조지오웰과 알베르 카뮈 등의 작가들까지 전방에 포진시킨다. 마치 자신의 현학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 또 여기서 그 나이대의 그의 현학에 시기심과 부러움을 다시 한번 보낸다.

 자신의 경험담일까? 아니면 순수한 허구일까? 소설이라 했으니 허구라고 해야겠지만 모든 작가들의 자신의 경험담을 비롯해 주변의 경험담을  토대로 삼아 소설을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혀 백지상태에서는 소설을 전개해나갈 수는 없다. 더군다나 사랑에 대해서라면 나의 경험담이 필수다. 보통의 이 소설은 아마도 추측하건대 보통의 젊은날의 사랑의 경험담을 녹여 이것저것 붙여놓음으로써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지난 사랑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많이 서툴렀다. 사랑에. 사랑은 그저 마음만으로 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물음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대사처럼 사랑은 변하는 것이 맞고,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으며, 사랑은 마음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었다. 그리고 지금 비록 그 때 이후로 내게 사랑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때보다는 좀더 낫겠지라고 내게 속삭인다.

 보통은 사랑의 싹틈에서 사랑의 진행, 다툼, 갈등,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자기사유를 통해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그가 그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까발리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뭘 생각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야 할 바 이상으로 그가 더 까발려줘서 나는 그의 까발림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의 사유과 분석을 읽고 다 기억해낸다 하더라도 실전에 부딪혀 내가 경험하지 않는 한 난 그의 사유를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할 듯 싶다. 그렇담 남은 과제는 내게 사랑이 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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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보관함에 이 책 들어갑니다. ^^

하루(春) 2005-03-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요즘 인기 많은가 봐요.. 자주 눈에 띄어서 힘들어요. --;

마늘빵 2005-03-1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자주 눈에 띄길래 샀어요. 알라디너님들이 혹시 저 출판사와 짜고서 고스톱을 치는건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제기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