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구청인가 어디에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는 동생은 모 방송에서 알바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고, 과외를 세 개인가 뛰고 있으며, 구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에 뽑혀서 여길 다니고 있는데, 아 도서관인가. 하여간 잘 모르겠지만, 도서관인거 같다. 하튼 여기서 새 책을 접하고, 디비디를 접하고 하면서 맘에 드는 걸 몇 개씩 빌려오고 있다. 이번에 빌려온 디비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건 책도 있다. 동생방에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책도 보고 싶다. 아 나 읽을 책 내 방에 쌓여있는데. 언제 다봐.  

  네덜란드의 1665년. 16살 먹은 소녀가 집안 형편의 어려움으로 인해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오자마자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대뜸 할 일을 지시해주는 고참 하녀. 말 시키기 전에도 먼저 입을 열지 말라는 마나님. 고생문이 훤히 보인다. 집안을 둘러보던 그리트.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쩍 벌어지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먹은 표정을 짓는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이런 그리트에게 오묘한 감정을 갖게 된 베르메르. 그녀에게 그림을 보는 법, 색을 만드는 법, 물체의 구도를 잡는 법 등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일하기에도 바쁜 그리트. 하지만 몰래 베르메르의 방에 들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 이것이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 물론 모델은 그리트다. 청색과 백색 두건의 조화. 뒤로 쭉 늘어뜨린 두건.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자태. 사랑스런 눈빛과 앵두같은 입술. 그리고 진주귀걸이 포인트. 너무나 아름답다.

   베르메르의 그리트에 대한 사랑, 하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는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6명의 아이가 있다. 장모님의 집에서 그의 후원자 라이벤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아내는 베르메르의 그리트에 대한 눈빛을 읽고 그녀를 경계하고, 딸은 그리트를 골탕먹이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 그 그림엔 입술을 살짝 벌리고 베르메르를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있으니. 게다가 그녀는 아내의 진주귀걸이까지 했다. 분노. 그녀는 집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몰래 진주귀걸이와 그녀가 했던 두건을 하녀를 통해 보내준다.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지켜보는 안타까운 심정.  

  영화는 화가 베르메르와 그의 하녀이자  제자이자 모델인 그리트의 사랑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장면에는 당연히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 물감을 만드는 장면, 그의 화실 등의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 속에 그림에 대한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풀고 덧칠하고 따뜻한 색감을 만들어나간다. 인물의 구도를 잡는 면에서도, 집안 곳곳의 장면들을 잡아내는데서도, 하나의 그림과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감독이 그린 그림 몇 작품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보여지는 듯한 느낌이다. 감독은 빛을 매우 잘 활용했다.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구도, 그리고 그림자까지도 매우 세심하게 처리한 듯 하다. 꼼꼼하고 세심한 그의 시선이 이 영화를 그림과 같이 만들어냈다.   어떤 감독인가 알아봤더니 그의 필로그래피에는 이 영화 단 한편만 걸려있다.

   하나 더.  84년생인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도. <아일랜드>에서의 모습과는 딴 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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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으로만 읽었어요. 읽고 나서 보니 정말 그림속 여인의 표정이 오묘해 보였죠

마늘빵 2006-01-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으로도 보려구요. 동생 책꽂이에 있어요. 지금 읽고 있는거 읽고선 봐야겠어요. 읽을 책이 너무 많아.

세실 2006-01-0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잊고 있었군요. 책을 참 재미있게 보고 한동안 추천도 많이 했는데 영화를 잊고 있었네요~~~~
 



  난 어릴적부터 싸움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그걸 재능이라고 표현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난 누군가와 싸운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리기 싫었다.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항상 매학년 올라갈때마다 착하고 순진하고 귀엽게(?) 생긴 녀석들을 건드리는 넘들이 몇몇 있다. 난 그 착하고 순진한 넘 중의 하나였고, 거기에 맨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하던 녀석이었으니 애들이 더 싫어했을터. 난 운동과는 담을 쌓았고, 오락실, 게임, 말뚝박기 이런 데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도 난 공부만 하던 놈이었다. 그 공부를 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모두 말아먹긴 했지만. 당연히 아이들은 날 건드린다. 체격이 크지도 않았고, 항상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았고, 순해빠졌으니까. 

  중학교 때 어떤 놈이 지나갈때마다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리곤 했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으면 책이나 노트를 빼앗아 도망가곤 했다. 보통 이런 애들은 상대가 반응을 보여주길 원한다. 그래서 난 반응을 안했다. 할테면 해라. 그런데 한번은 화가 무지 나서 얼핏봐도 내가 질께 뻔한 상대한테 - 아마 그놈은 우리반 짱이었을 것 - 대들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욕을 퍼부었다. 그랬더니 이 놈이 날 뒤로 끌고 가서는 막 패는거다. 난 한대도 못때렸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거 같다. 그때 당시 맞는 날 위해 몇몇 친구들이 말리고 날 끌어냈다. 난 잘못한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좀 논다 싶은 애들도 나를 챙겨주는 넘들이 있었다. 

  <싸움의 기술>에서 백윤식은 말한다. 체력도 됐고, 근육도 붙었고, 기술도 됐고, 그런데 때리질 못한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상대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를 때려서 상처를 입히는 두려움, 또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 난 싸워도 때리는 시늉만했다. 주먹은 날아가지만 힘이 실려있지 않고 엉뚱한 곳을 향한다. 그건 상대를 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난 몇 대 맞는다. 차라리 그게 더 낫다.  



* 사부님 제발 알려주십쇼. 라면까지 끓여다 대령하지만. "계란 넣었지? 난 계란 넣은거 안먹어. " 



* 맨날 만화책이나 보고 조그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자는 이 폐인. 당신의 정체는 무엇?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오판수는 부실고딩 송병태를 훈련시킨다. 맨날 맞고 다니는 이 왕따. 결국 그는 해낸다. 그를 괴롭히던 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작살 내준 것. 맨날 맞기만 하는 그가 상대를 하나하나 꺾는 순간 난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들이 보복을 할 것이란걸. 그리고 신나게 맞는다. 사부 오판수가 그를 도와주기전까지는.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맨날 맞고 사는 나를 당신이 이해해? 그래 불쌍하다. 괴롭겠지. 그래서 싸움을 배워보겠다? 배웠다. 그리고 복수했다. 그런데 기분이 어떠냐? 좋더냐? 복수할 때의 그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감정.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화는 이런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상대에게 대항하면  상대도 당연히 더 세게 나온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또다른 폭력을 낳고. 끝은 없다.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전수해줄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크게 폭력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괜히 멋모르는 중고딩들이 이 영화를 보고 따라하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나 더.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 중 한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 만화책 같지 않냐?" 아. 그러네. 난 만화를 즐겨보지 않아 눈치채진 못했지만, 마치 일본 만화책을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싸움고수가 하수에게 기술을 전파해주는. 일본 만화에는 하수가 열심히 연마해서 세상을 재패하는 형식이 흔하지 않던가.

  또 하나 더. 이 영화는 혼자 비디오로 빌려다 보면 재미없다. 극장 맨 앞줄에서 다 여럿이 함께 보여 웃음보를 터뜨릴때 비로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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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려움이 있어요. 실천하기 전에 나를 막아서는 두려움. ^^

깐따삐야 2006-01-0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참 착하셨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 하루에도 열두번씩은 싸웠던 것 같아요. 물론 아프락사스님처럼 착하고 귀엽게 생긴 아해들은 안 건드렸지만. ㅎ

마태우스 2006-01-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조각같은 얼굴을 때리는 사람이 있다니, 말세로다...

마늘빵 2006-01-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 저도 그런 두려움 있습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항상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너무 고민을 많이해서 주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깐따삐야님 / ㅎㅎ 싸움꾼이셨네요! ^^ (농담)
마태우스님 / ㅡㅡ; 할 말을 잃게 만드시네요...
 
그리스 로마 신화 - 김혜니 교수 에센스 세계문학 1
토마스 불핀치 지음, 김혜니 옮김 / 타임기획 / 1999년 6월
절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에 넥타르를 뿌렸따. 피와 넥타르가 섞이자 마치 연못 위의 빗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거품이 일어났다. 그 거품 속에서 석류꽃 같은 핏빛 꽃이 한 송이 피어났다. 이 꽃을 아네모네라고 부른다. 아네모네는 그리스 말로 '바람의 꽃'이라는 뜻이다. 바람이 불어서 꽃을 피게 하고, 또 바람이 불어서 꽃잎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67쪽

"제우스는 여신이 또 땅을 돌보지 않을 것을 염려해 신들을 불러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석류 네 알을 먹은 페르세포네를 일 년 중 넉 달 동안만 저승에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페르세포네는, 매년 넉 달 동안은 저승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딸이 저승에 있는 넉 달 동안, 데메테르는 화가 나서 땅을 돌보지 않았다. 그 동안 땅은 꽁꽁 얼어 나무나 곡식이 얼어 죽고 찬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딸이 저승에서 돌아오면 데메테르는 일을 활발하여 하여, 다시 땅이 따뜻해지고 풀이 돋고, 곡식이 자라는 봄을 열어 주었다. 인간 세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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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뒤늦게 발견된 헝가리의 대문호"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대단한 작품으로 칭송하고 있지만, 다 읽은 뒤의 느낌은 '글쎄...' 이다. 내가 지금 처해있는 현실 - 실연 - 에 걸맞지 않는 책이기 때문일까. 이 책을 직접 사서 본 것은 아니고 이벤트를 통해 함께 얻어보게 되었지만, '열정'이라는 제목 때문에 가슴 아픈 사랑의 사연이 담겨있는 소설이 아닐까 추측했었다. 산도르 마라이에 대해서도, <열정>이라는 책에 대해서도 어떤 작은 정보도 없이 접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기대와 현실이 빗나간 때문에, 결국 어긋난 기대를 가지고 책을 접하게 된 것이 잘못.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문호'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의 무엇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고, 따로 좋아하는 소설류가 있는 만큼 이런 류의 소설 - 지난일을 회상하며 홀로 독백하고 있는 - 에 아직 정이 들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고. 누군가가 이 소설을 통해 대단한 깨달음과 교훈과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잘된 일이고, 내가 이  소설을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접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열정>이라는 소설은 주지하다시피, 산도르 마라이 라는 헝가리의 소설가의 작품이다. 그는 이것 말고도 <사랑> <결혼의 변화> <이혼 전야> <유언> 등의 작품을 남겼다. 후일 헝가리가 공산주의로 자리굳히면서 망명갔던 그는 부르주아 작가로 분류되어 입국이 금지되었고, 미국에서 망명생활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열정>이라는 소설에 앞서 <사랑>이라는 소설을 먼저 접했으면 그에 대한 나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당면한 현실이 <열정>이라는 우정을 다룬(?) 소설을 읽기에 적합한 시점이 아니라는 점에서.

  헨릭과 콘라드의 대화. 이것은 마치 소설이 아닌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 관객의 시선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체된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은 마주보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헨릭의 독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것은 우정에 관한 소설이다. 아니다.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아니다. 시작은 사랑이었지만, 우정으로 건너가고, 다시 사랑으로 매듭짓는다.

  헨릭과 콘라드는 둘 도 없는 친구다. 헨릭은 크리스티나와 결혼을 했고, 콘라드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헨릭이 사냥길에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을 안 콘라드는 그 길로 내뺐고, 헨릭은 기다렸다. 41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크리스티나는 이미 죽었고, 헨릭은 콘라드를 기다렸다. 콘라드는 할아버지가 된 모습으로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가 된 헨릭을 찾아왔다. 이야기한다. 콘라드는. 콘라드는 지난 과오에 대해서 헨릭에게 해명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해명은 간데없고 두 사람의 지난 삶에서 묻어나오는 인생의 교훈과 깨달음만 남았다.

  나의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아내와 나의 절친한 친구가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눴다. 정조란 무엇이고, 나는 사랑한 여인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던가? 상대방이 정조라는 것에 구속되어 행복할 수 없는데도 정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결혼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았다. 아내는 바람폈고, 나는 불행의 길을 걸었다. 아내는 그래서 행복했을까. 나는 아내와 행복했다. 이것은 누구의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다. 아내는 내 친구와 바람을 피고 행복했는가? 그 순간 행복했을지라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그로 인해 자신 또한 행복하지 않을거란걸 몰랐단 말인가? 변명해봐 콘라드!

  절친한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긴 헨릭의 이야기 속에는 우정, 사랑, 인생, 또 이해와 진실과 관계와 행복이 들어있다. 두 사람은 불꺼진 어두컴컴한 무대 위의 나무의자 위에 올라앉아 고개를 숙이고 대화를 하고 있다. 조명은 두 사람만을 비추고 있다. 자, 이제 관객이 할 일은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듣는 것 뿐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당신이 올라갈 차례다. 올라가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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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봤는데 오래전에 봤는지 리뷰가 없어서 이번에 다시 본 김에 쓴다. 2003년 5월에 개봉했으니 3년 좀 못되는 시간이다. 경찰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경찰 이야기를 실감나게 다루는 영화는 많지 않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경찰영화가 <강력 3반>인데 이건 정말 영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나름대로 뭐 경찰의 고충 이런 점들을 강조하면서 눈물 좀 짜내고 싶었나본데, 눈물은커녕 짜증만 났다. 진정한 경찰영화라면 <와일드 카드>쯤은 되어야한다. 아니면 <공공의 적>이나. <공공의 적>이 적의 싸가지없음에 촛점을 맞췄다면, <와일드 카드>는 적의 싸가지와 경찰의 정의감 두 가지 모두 조화롭게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주연. 정진영, 양동근, 한채영. 셋 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다. 감독은 김유진이라는 감독인데 잘 모른다. 예전에 <금홍아 금홍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진영의 경우, 난 이 사람의 진득함과 진지함이 마음에 든다. 이 사람의 연기에는 눈빛이 살아있고, 진심이 들어있다. 연기를 하면서 가식적인 사람도 있다. 이것은 연기를 잘하냐 못하냐의 차이가 아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인데 정진영의 연기는 하다못해 비중없는 단역이라 할지라도 진지하다.



* 한달 내내 양동근의 관심에도 말 한마디 않던 그녀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습격했다.

 

  양동근, 그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영화를 하는 아는 후배가 양동근, 그리고 배두나와 친하다고 하는데, 두 사람과 찍은 사진도 있는 것으로 봐서 정말 친한 듯 하다. 서로 연락도 주고 받는 사이라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전에도 난 양동근을 좋아했다. 정진영과 같은 이유에서인데 그는 영화배우로서의 뽀대가 없다. 가오를 잡지 않는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행동한다. 직접 본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영화 이외에서 보여주는, 그리고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한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공통점은 그는 말이 없고 항상 진지하며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난 그가 좋다.

  마지막 한채영의 경우, 연기를 잘하진 않는다. 사실. 그리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는 별로 본 것도 없고, 보고싶은 마음도 안든다. 하지만 그녀 또한 진실되어 보이며-아닐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쁘다. 하지만 김희선과 손예진은 이쁘지만 인간으로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니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좋다는 말은 아님.

  내가 좋아하는 세 배우가 출연했다. 양동근은 역시 어느 영화에서나 참 빈곤하고 가진 것 없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역할로 나온다. 영화가 배우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 예 故 이은주 씨 - 양동근의 인생이 밑바닥이 될까 우려된다. 그 또한 그런 생활을 즐기는 듯도 하다. 그의 경우 배우의 실제 삶이 영화에 반영되는건지 아니면 영화의 삶이 그의 실제 삶으로 반영되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하다.

  영화에선 세 사람 말고 주연급에 해당되는 이가 있는데 4인조 뻑치기 - 명칭이 이게 맞나 모르겠다. 4인조 뻑치기의 대장급인 배우가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약간 사악하고 인정머리 없어보이는 이미지. 좀 매력있다. 그의 사악함은 영화내내 볼 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을 쇠구슬로 습격해서 죽이고 금품 강탈하고, 노래 잘해서 90점 넘으면 살려준대놓고 돌아와서 맥주병으로 수차례 가격해서 죽이고, 경찰 찌르고,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끝까지 반항하며 방제수(양동근 분)의 허벅지를 찌른다.

  영화는 분노가 치밀만큼 잔인한 뻑치기단과 역시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분노만큼이나 분노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달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만든다. 마치 <공공의 적 1> 을 볼 때으 마음가짐이랄까. 저런 싸가지없는. 저런 건 그냥 잡아가두는 정도론 안돼. 이런 마음. 영화 속 뻑치기들이 난리를 치고 다닐 때마다 내심 어여 잡아서 족쳐라 라고 속으로 되뇌이는 나를 발견한다. 정의감이 너무 앞서나간걸까. 어쨌든 결론은 정의의 승리. 당연하게도.  



* 분노에 찬 방제수가 범인이 갇혀있는 승용차를 부수는 장면. 영화 속 장면에선 그 뿐 아니라 다른 동료 경찰들도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를 들고서 이 차를 때려부순다. 마치 오락실 스트리트 파이터 처럼. 너도 한번 당해봐라. 이거다. 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마.

 



   영화 속에서 한가지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수사반장이 서로 다투는 경찰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한다.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 정말 결전의 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칼을 두려워하는 선배 경찰이 양동근을  살리기 위해 칼을 나눠먹는다. 그리고 쓰러진다.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일전의 두 사람의 다툼은 이렇게 화해된다. 오른쪽 제일 작은 아저씨가 수사반장. 왼쪽 두번째가 칼을 나눠먹은 아저씨.

  요즘 경찰들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요즘뿐만 아니라 언제나 경찰들은 신세한탄을 해왔다. 검찰과 대립하며 미약한 힘을 어떻게든 좀 키워보려고. 대등하게 맞먹어보려고 했고. 지금와서 수사권(?)이 경찰에게 넘어가며 지위향상이 좀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검찰에 비해선 턱없이 힘이 약하다. 또 최근엔 시위농민들과 한바탕하면서 생긴 불행한 사건으로 경찰청장이 퇴임을 했고, 경찰이 주눅들었다. 농민들의 주장도 맞고, 경찰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박봉에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강도와 일대일 상황이라도 될라면 잘못하면 칼맞고, 음주운전 측정하다 차에 끌려가 죽고 이래저래 좋을거 하나 없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경찰에 몸담은 분들. 존경합니다. 비리경찰도 많고, 부도덕한 경찰도 많지만 성실하고 불만없이 꿋꿋이 일하는 경찰들 존경합니다. 정의실현을 위해. (이때의 정의는 박정희, 전두환 때의 정의와는 분명 다른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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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5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대로 재미났던 기억이 납니다

마늘빵 2006-01-0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이렇다하게 뜰 만한 영환 아니지만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했던 바를 잘 드러냈다고 봐요. 그건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이 만들어나간거겠지요. 자칫 잘못하면 <강력3반>이 될수도 있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