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적부터 싸움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그걸 재능이라고 표현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난 누군가와 싸운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리기 싫었다.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항상 매학년 올라갈때마다 착하고 순진하고 귀엽게(?) 생긴 녀석들을 건드리는 넘들이 몇몇 있다. 난 그 착하고 순진한 넘 중의 하나였고, 거기에 맨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하던 녀석이었으니 애들이 더 싫어했을터. 난 운동과는 담을 쌓았고, 오락실, 게임, 말뚝박기 이런 데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도 난 공부만 하던 놈이었다. 그 공부를 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모두 말아먹긴 했지만. 당연히 아이들은 날 건드린다. 체격이 크지도 않았고, 항상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았고, 순해빠졌으니까. 

  중학교 때 어떤 놈이 지나갈때마다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리곤 했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으면 책이나 노트를 빼앗아 도망가곤 했다. 보통 이런 애들은 상대가 반응을 보여주길 원한다. 그래서 난 반응을 안했다. 할테면 해라. 그런데 한번은 화가 무지 나서 얼핏봐도 내가 질께 뻔한 상대한테 - 아마 그놈은 우리반 짱이었을 것 - 대들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욕을 퍼부었다. 그랬더니 이 놈이 날 뒤로 끌고 가서는 막 패는거다. 난 한대도 못때렸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거 같다. 그때 당시 맞는 날 위해 몇몇 친구들이 말리고 날 끌어냈다. 난 잘못한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좀 논다 싶은 애들도 나를 챙겨주는 넘들이 있었다. 

  <싸움의 기술>에서 백윤식은 말한다. 체력도 됐고, 근육도 붙었고, 기술도 됐고, 그런데 때리질 못한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상대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를 때려서 상처를 입히는 두려움, 또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 난 싸워도 때리는 시늉만했다. 주먹은 날아가지만 힘이 실려있지 않고 엉뚱한 곳을 향한다. 그건 상대를 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난 몇 대 맞는다. 차라리 그게 더 낫다.  



* 사부님 제발 알려주십쇼. 라면까지 끓여다 대령하지만. "계란 넣었지? 난 계란 넣은거 안먹어. " 



* 맨날 만화책이나 보고 조그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자는 이 폐인. 당신의 정체는 무엇?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오판수는 부실고딩 송병태를 훈련시킨다. 맨날 맞고 다니는 이 왕따. 결국 그는 해낸다. 그를 괴롭히던 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작살 내준 것. 맨날 맞기만 하는 그가 상대를 하나하나 꺾는 순간 난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들이 보복을 할 것이란걸. 그리고 신나게 맞는다. 사부 오판수가 그를 도와주기전까지는.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맨날 맞고 사는 나를 당신이 이해해? 그래 불쌍하다. 괴롭겠지. 그래서 싸움을 배워보겠다? 배웠다. 그리고 복수했다. 그런데 기분이 어떠냐? 좋더냐? 복수할 때의 그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감정.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화는 이런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상대에게 대항하면  상대도 당연히 더 세게 나온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또다른 폭력을 낳고. 끝은 없다.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전수해줄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크게 폭력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괜히 멋모르는 중고딩들이 이 영화를 보고 따라하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나 더.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 중 한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 만화책 같지 않냐?" 아. 그러네. 난 만화를 즐겨보지 않아 눈치채진 못했지만, 마치 일본 만화책을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싸움고수가 하수에게 기술을 전파해주는. 일본 만화에는 하수가 열심히 연마해서 세상을 재패하는 형식이 흔하지 않던가.

  또 하나 더. 이 영화는 혼자 비디오로 빌려다 보면 재미없다. 극장 맨 앞줄에서 다 여럿이 함께 보여 웃음보를 터뜨릴때 비로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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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려움이 있어요. 실천하기 전에 나를 막아서는 두려움. ^^

깐따삐야 2006-01-0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참 착하셨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 하루에도 열두번씩은 싸웠던 것 같아요. 물론 아프락사스님처럼 착하고 귀엽게 생긴 아해들은 안 건드렸지만. ㅎ

마태우스 2006-01-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조각같은 얼굴을 때리는 사람이 있다니, 말세로다...

마늘빵 2006-01-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 저도 그런 두려움 있습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항상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너무 고민을 많이해서 주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깐따삐야님 / ㅎㅎ 싸움꾼이셨네요! ^^ (농담)
마태우스님 / ㅡㅡ; 할 말을 잃게 만드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