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생태계 살리기 - 자기기만과 무기력을 넘어
변정수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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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의 미래는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독자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답은 다 나와 있다. 다른 삶에 대한 경험의 폭과 깊이가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결정적이거나 최소한 유력한 요인이라는 믿음, 그렇게 축적된 인문적 교양이 자신이 속한 일상적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존재를 존중받을 수 있는 결정적이거나 최소한 유력한 준거라는 믿음, 다름 아닌 책이 삶의 지혜를 구하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는 데 가장 탁월한 매개라는 믿음을 복원하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나 누릴 여유가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이며 오히려 대다수가 그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조차 누릴 수 없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나가기 위해서라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자각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바로 이것이 ‘인문 정신’이다.-32-33쪽

책은 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굳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미리 알 수가 없다. 뻔하디 뻔한 얘기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출판산업을 붕괴로 치닫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47쪽

책 한 권의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순수하게 그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제작비’나 ‘편집비’ 따위가 아니라 실은 일종의 ‘보험료’이다. 애써 만들어낸 책이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매몰 비용’이 팔리는 책에 의해 벌충되지 않으면 출판 산업은 지속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8쪽

인문서 분야에서도 간혹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지만, 그 판매량의 대부분이 ‘서가 장식용’이 아니라 ‘독서용’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분야를 불문하고 책들의 외양이 ‘읽기 편하게’보다는 ‘들고 다니거나 꽂아두기에 폼 나게’에 더 치중하는 것이야말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정직하게 대응한 결과일 것이다. -58쪽

(2008년 단행본 출판 시장의 전년도 대비 매출 30% 감소) 책이 일종의 생산재라는 교과적인 믿음과는 달리, 대중들에게 책이 선택가능한 소비재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고 있음을 여실히 방증한다. 책은 더이상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언제든 다른 소비재로 대체될 수 있는 ‘즐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즐길거리’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대체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낡은 문화상품이라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137쪽

책이 소비재로 기능하는 한, 출판산업에 미래는 없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단순히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해서 ‘좋은 책’일 수도 없다. 책이 생산재로 기능하는 선순환 구조를 염두에 둔다면, ‘다른 책을 읽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138쪽

한 사람의 독서 체험에서 중요한 것은 결코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도 아니고, 무슨 무슨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도 아니다. 다독은 무조건 권장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독서 이력을 보여주기 위한 책 읽기란 공허하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외부 세계의 지적, 정서적 자극에 민감한 성장기의 독서 체험이 이렇듯 ‘내면적 성장’과는 거리가 먼 ‘뽐내기를 통한 점수 따기’로 점철되어서는,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이기 때문에 더 많이 팔리는 황폐한 출판 시장의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141쪽

출판 매체는 다른 매체들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책을 읽어야 할 필요, 더 넓게는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과 소통할 필요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책을 읽지 않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유행 상품을 소비하고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일상을 영위한다. 그것이 ‘독자들의 변화하는 욕구’의 정체이다. -14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열 작업을 외주로 진행하는 데에는 또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터이다. 우선 상근 인력을 고용하기에는 작업량이 일정치 않거나 지속적인 작업량 유지가 불투명한 경우이다. 주먹구구 경영의 전형적 사례다. 살얼음판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나,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식의 출판으로는 점점 더 전망이 불확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출판을 접으라고 감히 조언하고 싶다.

정작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비용 면에서 유리하리라는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상근 인력으로 고용했을 때 지급해야 할 임금보다 외주 작업비가 더 싸게 먹힌다면, 결과적으로 외주 작업자는 상근 편집자로 취업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감이 끊이지 않는다는 요행이 덧붙지 않는다면 생계가 불안정해지는 부담까지 져야 한다. 고도의 정신적 집중을 요구하는 이 일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언감생심 작업의 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66쪽

아마도 매일 오후 정시 퇴근을 종용하고 휴일에는 쉬라고 입발린 소리를 늘어놓는 사장들과 중간 관리자들만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게다. 누가 보아도 무리한 작업 일정을 잡아 밤낮없이 매달리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마감을 강요하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과 휴일을 지킨다는 선언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사에서 일을 못 하게 하면 집에 일거리를 싸짊어지고 가서라도 일정은 맞추어야 하는 것을.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가.

게다가 이토록 단순한 이치를 내놓고 거스르기가 민망한 줄은 아는지 급기야 점점 더 고약한 방어 논리를 창안해내기에 이른다. 일정을 제대로 못 맞추는 것은 편집자의 무능이며, 무능하면 최소한 성실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성실이란 남들 쉴 때 쉬지 않고 죽도록 일한다는 의미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성실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이고, 설령 일부 편집자들이 무능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편집자를 무능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미련함을 예찬하는 작자들이다.-187-188쪽

무리한 일정은 반드시 그 일정을 강행한 사람들을 배반한다는 ‘일정 배반의 법칙’(강무성 전 정신세계사 편집주간이 북에디터 게시판에 올린 글)이 편집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대부분의 편집자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9쪽

모든 기호가 기호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란 어차피 임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의미’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관계망 속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러한 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요컨대 모든 문화적 생산물은 그 존재 자체로서 정치적 맥락에 포섭되어 있다. 그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문화적 생산물을 가공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뿐더러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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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구판절판


이집트의 조상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엄격한 표준에 따라 제작된 반면, 그리스의 조상에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다. 한마디로 이집트 조상의 제작 방식이 ‘기술’에 속한다면, 그리스의 그것은 ‘예술’에 속한다. 때문에 그리스의 장인들은-비록 오늘날 예술가들이 누리는 지위에는 못 미쳤겠지만-후세까지 전해지는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차이는 물론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이집트인들이 영원불변하는 내세를 지향했다면, 그리스인들은 변화무쌍한 현세를 긍정했다.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며 개별적인 감각의 세계를 존중했기에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변화를 묘사하는 것이 또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정치 체제와도 관련이 있을 게다. 이집트가 전제군주 사회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다면,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주었다. 이것이 예술가 개인의 개성적 표현을 허용하는 양식을 낳았던 것이다. -30-31쪽

감각적 세계보다 초월적 세계를 중시한 중세에는 예술로 감각적 세계를 재현하기보다는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표현해야 했다. 문제는 그 초월적 빛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학자들이야 그 아름다움이 ‘초월적’이라는 말로 때우면 그만이었지만, 장인들은 처지가 그렇게 한가롭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빛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중세의 장인은 그 과제를 재료로 해결했다. 즉 값비싼 재료의 찬란한 색채와 광휘를 그 초월적 빛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중세의 공예는 온통 번쩍이는 황금, 은은하게 비치는 은빛, 형형색색의 보석, 몽환적 효과를 내는 다양한 색깔의 희귀한 염료 등으로 뒤덮여 있었다. 중세의 공예를 뒤덮은 보석과 귀금속은 무엇보다 그 황홀한 빛과 색의 효과로 감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66-68쪽

"이 세상에 가시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악마의 일일 수도 있다."(성 아우구스티누스)-82쪽

중세에 세계는 두 겹(내세+현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루터는 더 이상 알레고리로 지시되는 초월적 층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는 한 겹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서서히 감각적인 현세가 유일한 세계라 믿게 된다. 이에 따라 사물을 초월적 의미와 연결시켰던 중세의 상징적 사유가 물러가고, 그 자리에 사물과 사물의 현실적 연관을 찾는 근대의 인과적 사유가 들어서게 된다.
초월적 층위가 사라지자, 그것을 상징하던 빛나는 재료도 필요 없게 된다. 르네상스의 저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색과 빛의 효과를 내는 데 값비싼 재료 대신에 물감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이로써 사물과 기호는 분리된다. 이미지와 텍스트 역시 분리되어, 화폭에서 쫓겨난 텍스트는 밖으로 나가 제목이 된다. 실재와 환상도 분리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장인들에게 "신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그려라."라고 요구한 바 있다. 판타지의 여름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83쪽

<<비평의 탄생>>에서 알베르트 드레스드너는 미술비평을 크게 인식과 평가, 영향의 세 측면으로 구별한다. ‘인식’이란 비평의 기술적 측면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가리킨다. ‘평가’란 비평의 평가적 측면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향’은 비평의 정치적 측면으로, 창작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려는 비평가의 시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비평의 최종 목적인지도 모른다. -273-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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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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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11쪽

"엄마, 잘 들어, 난 우리 노동자들 위에 드러워진 저 컴컴한 하늘에 겨우 구멍을 냈어. 겨우. 이제 나머지는 엄마랑 다른 사람들이 해줘야 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숨 쉴 수 있게..."(전태일)-16쪽

"15년에서 20년을 다닌 정든 일터. 나태하지도, 규율을 어기지도 않았다. 몸이 아파서 열심히 일했다. 라면과 요구르트 지급을 중단한 것도 치사하지만 참았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생애 마지막으로 만져볼 유일한 목돈, 퇴직금을 담보로 내놓자는 노조의 의견에도 모두 동의했다. 그런데 이제 "너, 나가!"하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나가야 하나? 사람이라면 질문해야 하고 합리적인 납득을 기다려야 한다. 당신이라면 그렇지 않겠나? -93쪽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93쪽

말이 용역이지, 이들이 대리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폭력이다. -103쪽

그(칠레 광부 매몰 사건)보다 긴 시간을 단전과 단수, 그리고 최루액이 쏟아지는 곳에서 버티다 결국 테러범들처럼 두들겨 맞고, 해고되고, 사법 처리되고, "선생님이 우리 아빠보고 빨갱이라고 해."라며 울고 돌아오는 자녀들을 가진 이들은...... 희망이 없다. -158쪽

신자유주의란 여기 임금이 비싸면 저기 싼 곳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것을 유연화라고 부른다. 이 아름다운 이름, ‘유연화’라는 명사는 그러나 실은 무척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이다. 그것은 해고의 유연화, 빈곤의 유연화, 살인의 유연화, 살인 은폐의 유연화, 인간 경시 유연화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렇게 싼 임금을 찾아 자본은 전 세계를 누빈다.-163쪽

모든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면 일시적으로 자본가들이 부를 차지할지 모르지만 그 후에 그들의 산업도 쇠락한다.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짜는 방식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용당해주는 99%가 있기에 이 영화도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따. 배고픈 자들은 결코 모두 단결하는 법이 없으니까. 의자를 반만 가져다 놓고 빙글빙글 돌다가 앉으라고 하면 옆 사람들을 확 밀치고 자기만 사려고 할 테니까. 그게 인간이라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랬고, 그럴 테니까. -164쪽

제주 해녀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던 외국인이 물었다.
"만일 장비가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겠군요. 예를 들면 스킨스쿠버 장비 같은."
해녀가 대답했다.
"그렇죠. 그런 게 있으면 지금보다 100배는 더 많이 딸 수 있겠죠."
외국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그걸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해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100명분을 다 따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하라고요?"-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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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3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 이런 책을 읽으면 당췌 화가나서리
 

* 아래는 출판마케팅연구소 요청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출판 격주간지 "기획회의" 325호(2012.8.5.)에 실렸습니다. 분량을 맞추느라 두 배 이상의 글을 압축하여 줄였습니다. 실린 글에는 조사가 바뀌면서 주어가 달라져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편집자론 논쟁에 관하여: 편집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    



  지난 5월 김학원, 정은숙, 이홍, 변정수, 강주헌, 정민영 님이 쓴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출간되었고, 이 책에 대한 김류미 님의 서평과 그에 대한 변정수 님의 답, 1년차 편집자의 글, 민음사 장은수 대표의 서평에 이어 북에디터, 트위터 등을 통해 편집자론 논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서는 ‘편집자로 사는 것’을 주장하는 변정수 님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을 말하는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을 살펴보려 한다.


  변정수 그리고 장은수 님의 편집자론


  "이제 편집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 "편집자로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작 책을 만들 기회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아까운 종이로 '책'이 아니라 '폐지'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편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이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이후의 판매량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라는 것.


  반면, 장은수 님은 "편집자는 지식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직업 중 하나”이며, “출판 자본에 고용되어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전문가일 뿐"이라며, "출판사가 편집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출판사의 잘못이지 스스로 브랜드가 되지 못한 편집자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개개인이 모두 브랜드인 편집자로 이루어진 출판사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그에게 편집 노동은 "높은 학습 능력과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숙련되는 일상의 여러 노동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장은수 님은 ‘편집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의 차이: 변정수 님을 중심으로


  편집자로 사는 것과 편집자로 일하는 것. 후자가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는 다른 직업인과 같다면, 전자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장은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분들이 안 보이는 반면, 변정수 님의 글을 비판하는 이들은 많다. 변정수 님은 이상적인 편집자상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고, 편집자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변정수 님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때의 동의는 그것이 '이상적인 편집자상'임을 전제했을 때이다. 모든 편집자가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로 살' 수는 없으며, 다수의 편집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면서 제 임무를 다한다.


  변정수 님은 '제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되묻지 않을까 싶다. 그분의 입장에서 편집자가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은 오탈자를 찾거나 비문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편집자의 총체적 인격을 책에 실을 것인가’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인정하자. 다수의 편집자들은 쏟아지는 원고를 짧은 일정에 맞추어 '생산해내야' 한다. 보통 직업인으로서의 역할만 하기도 버겁다. 책에 치명적 오류가 있고, 왜 이 원고를 이렇게밖에 다듬지 못했을까 의문이 생겨도 이는 편집자가 아닌 출판사 대표의 책임이다.


  변정수 님은 대표의 책임인 동시에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편집자가 원고를 장악하지 못했고, 엉망인 제품을 생산했다고. 그렇다. 하지만 편집자가 처한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으며,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해도 이는 그가 처한 현실에 기인한다. 또한 편집자가 만든 제품에 책임을 물으려면, 기획과 저자 섭외부터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신의 판단대로 진행했을 경우여야 한다.


  소비자는 질 좋은 제품을 사고 싶고, 편집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 대표도 그렇다. 그런데 일정에 맞추어 급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용 오류가 없으면 다행이고 문장이 거칠거나 오탈자가 있어도 애교로 넘어가야 한다. 독자는 불만을 표하고, 대표는 편집자를 혼낸다. 편집자는 토로할 곳이 없다.


  어떤 편집자들은 괜찮은 노동 환경에서 일하겠지만, 어떤 편집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면접 자리에서 연봉 1,500만 원을 불렀다는 인문 출판사, 표정이 어둡다며 또는 출산 예정이라며 해고하는 출판사가 있다. 연차가 없거나 있어도 못 쓰는 출판사는 수두룩하고, 작업 속도가 느리다며 해고하는 출판사도 있다. 다른 출판사로 이직한 뒤에도 전 출판사의 관계자로부터 말이 전해지며 재차 해고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들에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위에 언급한 삶을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삶 전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된다.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도, 그게 현실이다. 물론 변정수 님도 편집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들이 수도 없이 저지르는 실무적인 판단 착오의 이면을 꼼꼼히 들춰보면, 바로 이런 식(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주먹구구식 경영)의 대책 없는 낙관이 안일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하며 편집자들이 처한 환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시, 편집자로 산다는 것


  변정수 님의 편집자론은 편집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 불편함은 나쁘지 않다.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편집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월급 도둑 취급한다거나 대우는 제대로 안 해주는 현실을 무시하고 요구만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변정수 님의 글에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인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변정수 님이 주장한 바를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이상적인 편집자상'에 맞추면 어떨까 싶다. 장은수 님과 변정수 님의 말대로 편집자는 '만들어진다'. 변정수 님은 편집자는 타고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되기 이전에 축적한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 글에서 변정수 님은 다시 이렇게 서술했다.


  "편집자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긴장과 근본적으로 낯설고 새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존중어린 관심이 체화되고 내면화되는 지속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신입 직원이 편집자로서 축적한 경험과 노력으로 변정수 님이 말한 '편집자'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편집자로 일하는 것과 편집자로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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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론 살림지식총서 246
이종오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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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공통 언어의 사용에서 개인, 집단 또는 장르의 특징이 된다. 흔히 개인적 문체를 ‘작가의 목소리’라고 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사람마다 고유의 독특한 어법과 말버릇, 음성이 있듯 작가들도 글을 쓸 때에 사용하는 자기 고유의 어법이 있다. 그 어법에 따라 어떤 사람의 글은 강한 느낌이 나고(강건체: 논설문이나 연설문), 어떤 사람의 글은 부드럽기도 하며(우유체: 논문, 법문, 공문)이 들기도 한다. -17쪽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바이이)-34쪽

"낱말의 의미에 대해서 묻지 말고, 그 사용에 대해서 물어라."(비트겐슈타인)-41쪽

명료성의 심화란 ‘하늘’이라는 기호가 지시성을 벗어나 그것의 물질성, 즉 ‘하늘거리다’ ‘하늘하늘’과 같은 기호의 소리만을 강조하는 것이고, 명료성의 증대란 ‘하늘하늘’이 갖는 개념과는 전혀 관계없이 ‘흐늘흐늘’ ‘흐느적흐느적’ ‘하느적하느적’과 같이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그 느낌이 다른 언어 기호에 관심을 두는 것을 뜻한다. (이승훈, 1993)-85쪽

문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구체적 문장들에서 추출한 결과 확인할 수 있는 글 습관의 유형이다. 그래서 작가에 따라 개성적으로 나타나는 글 습관(이광수의 글투, 채만식의 글투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글 습관(고전 소설의 글투, 근대 시기의 글투), 글의 양식에 따라 나타나는 글 버릇(대중적인 글투, 보고서 글투 등), 목적에 따른 글 버릇(해학적인 글투) 등을 구분할 수 있다. -86쪽

문체는 유형적 문체와 개성적 문체로 대별되는데, 이때의 개성적 문체는 흔히 문장 양식을 가리킨다. 유형적 문체는 ‘많은 표현에 공통되는 어떤 문체상의 특수성이 인식되는 것’을 가리킨다. 표기 형식이나 어휘, 어법, 수사, 문장, 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적 문체가 이루어지고, 시대나 지역 사회에 따라 다른 유형적 문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개성적 문체란 어떤 표현의 특수성이 유형을 띠지 않고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는 작가와 작품에 국한되지 않으며, 넓게는 특정한 필자와 문장에 나타난다. -86쪽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다."(기이로)-87쪽

"언어는 민족의 존재 그 자체이며, 언어의 특성이 곧 민족의 특성이다."(흄볼트)-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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