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구판절판


이집트의 조상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엄격한 표준에 따라 제작된 반면, 그리스의 조상에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다. 한마디로 이집트 조상의 제작 방식이 ‘기술’에 속한다면, 그리스의 그것은 ‘예술’에 속한다. 때문에 그리스의 장인들은-비록 오늘날 예술가들이 누리는 지위에는 못 미쳤겠지만-후세까지 전해지는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차이는 물론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이집트인들이 영원불변하는 내세를 지향했다면, 그리스인들은 변화무쌍한 현세를 긍정했다.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며 개별적인 감각의 세계를 존중했기에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변화를 묘사하는 것이 또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정치 체제와도 관련이 있을 게다. 이집트가 전제군주 사회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다면,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주었다. 이것이 예술가 개인의 개성적 표현을 허용하는 양식을 낳았던 것이다. -30-31쪽

감각적 세계보다 초월적 세계를 중시한 중세에는 예술로 감각적 세계를 재현하기보다는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표현해야 했다. 문제는 그 초월적 빛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학자들이야 그 아름다움이 ‘초월적’이라는 말로 때우면 그만이었지만, 장인들은 처지가 그렇게 한가롭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빛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중세의 장인은 그 과제를 재료로 해결했다. 즉 값비싼 재료의 찬란한 색채와 광휘를 그 초월적 빛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중세의 공예는 온통 번쩍이는 황금, 은은하게 비치는 은빛, 형형색색의 보석, 몽환적 효과를 내는 다양한 색깔의 희귀한 염료 등으로 뒤덮여 있었다. 중세의 공예를 뒤덮은 보석과 귀금속은 무엇보다 그 황홀한 빛과 색의 효과로 감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66-68쪽

"이 세상에 가시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악마의 일일 수도 있다."(성 아우구스티누스)-82쪽

중세에 세계는 두 겹(내세+현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루터는 더 이상 알레고리로 지시되는 초월적 층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는 한 겹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서서히 감각적인 현세가 유일한 세계라 믿게 된다. 이에 따라 사물을 초월적 의미와 연결시켰던 중세의 상징적 사유가 물러가고, 그 자리에 사물과 사물의 현실적 연관을 찾는 근대의 인과적 사유가 들어서게 된다.
초월적 층위가 사라지자, 그것을 상징하던 빛나는 재료도 필요 없게 된다. 르네상스의 저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색과 빛의 효과를 내는 데 값비싼 재료 대신에 물감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이로써 사물과 기호는 분리된다. 이미지와 텍스트 역시 분리되어, 화폭에서 쫓겨난 텍스트는 밖으로 나가 제목이 된다. 실재와 환상도 분리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장인들에게 "신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그려라."라고 요구한 바 있다. 판타지의 여름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83쪽

<<비평의 탄생>>에서 알베르트 드레스드너는 미술비평을 크게 인식과 평가, 영향의 세 측면으로 구별한다. ‘인식’이란 비평의 기술적 측면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가리킨다. ‘평가’란 비평의 평가적 측면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향’은 비평의 정치적 측면으로, 창작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려는 비평가의 시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비평의 최종 목적인지도 모른다. -273-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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