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 불리는, <엠퍼러스 클럽>. 이번으로써 두번째 이 영화를 본 것인데, 가끔씩 봐줄 필요가 있는 영화다. 적어도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의 역사선생인 훈데르트 선생.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과 같은 재치와 악동(?) 기질은 없지만, 점잖은 품행과 도덕적인 인격으로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 교사상이다.



  로마의 성립과 멸망을 다루고 있는 교실. 아주 개구지다 못해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세드윅 벨이라는 학생이 칠판 앞에 나와있다.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작성하던 도표를 마저 작성하라고 해보고, 못하니깐 로마의 왕 40명을 읊어보라고 하고, 또 여기에 장난으로 맞받아치자, 그에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명언을 던지며 자존심을 꺾어버린다. 아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내용은 이런거였는데. 지식이 없는 자에게는 지식을 전수해주고, 뭐가 없는 자에게는 뭐를 해주면 되지만, 인격적으로 안된 자에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라는 식의 내용. 한번의 일격. 그리고 이어지는 확인사살. 훈데르트 선생은 벨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에게 로마의 40대 왕을 연대순으로 읊게 만든다. 20명쯤 외웠을까. 여기서 그만. 그것으로도 벨을 향한 확인사살을 충분했다.





* 왼쪽에서 두번째가 벨, 맨오른쪽이 벨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 못한 마틴.

  벨은 상원의원의 아들로, 매우 명민하고, 똑똑하지만 그 좋은 머리로 잔꾀를 부리는 바람에 온갖 말썽을 다 불러오는 학생이다. 타고난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그를 잘 따르며, 그가 한가지 행동을 선동하고 나서면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그를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니 학교에서 문제가 될 밖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학교 물을 다 흐리게 하는 셈이다.

  하지만 훈데르트 선생의 고민은 그가 다른 학생들까지도 물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매우 똑똑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딴 짓으로 그 잔머리를 쓰는 것이 안타까운데 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건네주며, 그 책으로 공부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화되는 벨의 모습.

  이 학교에는 줄리어스 시저 대회라는 것이 있는데, 시험성적에 따라 1등부터 3등까지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그 중 주관식 문제를 순서대로 맞춰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그 해의 줄리어스 시저가 되는 대회다. 벨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이 대회에 목을 매고 매 시험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 시험. 훈데르트 선생은 벨에게 A- 를 주었다. 그리고 순위표를 보니, 벨이 4위로 대회에는 출전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훈데르트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 애정으로 그에게 A+ 를 주고, 3위에 있는 마틴을 끌어내린다. 대회날. 학부모들과 교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선생은 벨의 컨닝행위를 눈치챈다. 교장에겐 말했으나 그대로 진행하라는 지시. 할 수 없이 그는 벨의 차례에 어려운 문제를 낸다. 벨은 떨어지고 다른 친구가 대회 우승했다. 대회가 끝난 뒤 대면한 두 사람. 벨은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치 않다는 주의자. 선생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주의.

  훗날. 20년쯤 지난 뒤, 벨은 거대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리조트로 친구들과 선생을 초대 재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는 대학원생을 고용해 이어폰으로 정답을 받아내고 선생은 또 눈치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문제를 내서 대회 우승을 막는다. 화장실에서 대면한 두 사람. 20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주고 받는데, 화장실 대변칸에서 나온 벨의 아들이 이 대화를 들었다. 당황한 벨.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질을 가지고 상원의원에 도전한다.

 

  이 영화  한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 교실에서 벌어진 학생의 장난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영화에서 훈데르트 선생은 벨이 머리는 좋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지식으로 망신을 주는 방법을 택했고, 먹혀들었다. 이 장면을 볼 때 떠오른 생각은, 학생들 마다의 각각의 특성을 기억하고 있다가 거기에 맞게 일대일로 대응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말은 쉬운데 이게 굉장히 힘들다. 교단에 서본지 얼마 안되는 나는 영화 속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나와 말장난을 치려고 할 때를 경험했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같이 놀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맘은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수업을 해야하는데 였다. 앞으로 교실에서 참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접하게 될텐데 매트릭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머리좋고 공부 안하는 학생은 지식으로 망신을 주고,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안하고 인격적으로 문제도 있는 아이는 어떻게 다루고 하는 방식들을 세워야겠다.

2.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 어떻게 흥미를 유발 할 수 있을까? 또 관심은 있는데 노력해도 별로 발전하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이끌어줄 것인가? 사실 이 문제 많이 느끼고 있고, 고민도 하는데, 방법은 찾지 못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데 내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대해 자질의 회의감을 가진적도 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참 미안하다. 영화 속에서는 다행히 벨을 제외하고는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각자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되거나 흥미를 이끌어줘야 할 만한 학생은 없었다. 물론 영화가 벨과 훈데르트 선생 두 사람을 촛점으로 삼았기 때문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3.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은 어찌할 것인가?

  세드윅 벨은 교실에서도, 20년이 지나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인격적 결함을 보여줬다. 성공한 대기업의 사장이고,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줄리어스 시저 재대결에서조차도 컨닝을 했다. 그리고 20년뒤 그를 찾은 선생님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인격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공부에 대한 열기를 불어넣어줬고, 결국 편법을 쓰면서까지 줄리어스 시저 대회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다면 훈데르트 선생처럼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신경써줬을테지만,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학생인 경우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공부에 대한 흥미나 열정이 필요한게 아니라 인간됨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훈데르트는 공부를 통해서 그가 좀 변하길 바랬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교육관은 그렇다.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학생일 때에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학생이 그대로 사회로 나아갔을 경우에 문제는 커진다. 머리 똑똑하지만 잔머리쓰고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밖에 나가서 분명 큰 일을 저지른다. 그가 비록 겉으로 성공한 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판사 등과 같은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이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을 때 우리사회는 더욱 암울하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만 인격적으로 된 놈이 그를 바라보면서 느낄 자존심의 상처 혹은 상실감은 어떨것이며, 또 그런 놈이 지도자로 있는 사회가 돌아가는 논리는 어떻겠는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미성년자를 벗어나기 전에 수정불가능한 존재로 인식되는 학생이라면 난 그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오히려 막겠다. 방해하겠다. 중도에 그를 변화시키지 못한 부모와 선생과 사회의 잘못도 있지만.

 

 두번째 같은 영화를 봤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다. 지난번엔 교사의 입장에서 보기보다는 그냥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정도로만 봤고, 이번에는 교사의 입장에서 교사-학생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 봤다. 같은 영화도 어느 시기에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를 다음에 또 볼 생각이 있다.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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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8-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 정말 현실적 문제입니다. 억지로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마늘빵 2005-08-0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항상 고민입니다. 저는 말빨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놈이라, 그런거 영 소질이 없거든요. 어린 학생들일수록 그런게 중요한데... 영 젬병입니다.

이리스 2005-08-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

마늘빵 2005-08-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거 정말 재밌습니다. 감동도 있고. 근데 배신도 있죠. 저 학생이 다 커서까지도 끝까지 샘을 배신하는 바람에, 샘의 얼굴에 표정이... ㅠ_ㅠ
 
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구판절판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다른 생명체는 할 수 없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지성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히 인간 종 -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지 안믿는지와는 상관없이 - 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해 그 존재의 지속이 위협받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134쪽

"문화적 종분화는 분명히 세계 평화의 장벽이다. 우리가 '지구촌'보다 더 작은 집단을 중요시하는 한, 편견과 무지를 계속해서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조그마한 집단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없다. 실제로 수렵 채집 집단적 성향으로 인해 작은 집단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또한 완전히 믿을 수 있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내부의 친구 집단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해준다. 위험은 오직 우리 집단과 달리 생각하는 다른 어떤 집단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고, 도랑을 파고, 지뢰밭을 만듦으로써 생긴다."-176쪽

"어떤 면에서 인간의 공격적 행위는 실로 독특하다. 침팬지들도 희생자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인간적인 의미의 잔인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오직 인간들만이 자기가 가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혹은 심지어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에게 의도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 따라서 나는 오직 우리 인간만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177쪽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278쪽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기도만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자신을 투신할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도 주변 생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슈바이처)-311쪽

"모든 개인은 중요하다.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 모든 개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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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8-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게 읽은 책인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늘 이렇다니까요~
아프락사스님께서.. 밑줄 그은 부분을 따라...
기억을 좀 더듬다 갑니다. 제가 저 책을 읽을 당시... 복순이라는 강아지녀석에게 폭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 절절했었지요~

2005-08-0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8-0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저도 읽은 책 무슨내용인지 말해보라면 나중엔 모릅니다. ㅋㅋ 붕어인가봐요. 그래서 이런걸 남겨두죠. 나중에 기억해보려고.

이리스 2005-08-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붕어... 붕어... 부웅어어어어.... (충격!)
여러분, 아프락사스님은 붕어래요~ 붕어래요~
ㅋㅋ

마늘빵 2005-08-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 / ㅡㅡ^ 뻐끔뻐끔
 

 

 

 

 

  얘도 포스터가 유치하네? 99년 포스터인데 무슨 007시리즈를 떠올린다. 불과 6년전의 영화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건가? 요즘 포스터들은 다 멋있는데. 우리나라 영화만 봐도 영화가 대박터지기 시작하면서 신경을 써서 그런건지 포스터가 다 이쁘다. 한번은 어느 영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 나비효과였나? - 외국영화를 우리나라에서 홍보를 하는데 포스터를 새로 제작했나보더라. 그런데 이 포스터가 맘에 든다고 외국에서 다시 사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두 유명 도둑의 이야기. 늙었지만 분위기 있는 남자 숀코너리와 이쁘고 날씬한 여자 도둑 캐서린 제타 존스. 얼마전에 캐서린 제타 존스가 나왔던 <마스크 오브 조로>를 보고서 그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었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금방 또 보게 될 줄이야. 금방 개봉한 것도 아니고 한참 전의 것을. 요새 케이블에서 뭐 그런 시리즈 하나? 캐서린 제타 존스 다시 보기. 뭐 이런거. 참 아까 지나가는 자막을 보니깐 삼순이 때문에 유행을 타서 그런가본데, 영화속의 '삼순이'찾기 기획을 하나보더라. 지금껏 개봉되었던 영화들 중에서 삼순이스러운(?) 여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만 따로 모아서 방영하는 거다. 이렇게 시리즈물로 묶어서 보면 또다른 재미가 있을텐데. 뭐 그렇다고 티비 앞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만을 골라서 훔쳐내는 두 도둑놈년들. 서로 각자 딴 맘으로 접근하게 되지만, 두 남녀가 만났으니 - 비록 남자가 늙기는 했지만 - 어찌 러브스토리가 없을 수 있더냐. 본래 계획은 마음 속에 숨겨두고 둘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빠지게 된다. 함께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작업을 성공해내고, 또다시 국제은행에서 80억달러를 인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원래 '앤트랩먼트'라는 제목의 뜻은, 함정에 빠지게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래 두 남녀가 서로를 함정에 빠지게 하려던 것을 일컫는 말. 나중엔 두 남녀가 짜고 다른 놈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함께 떠나버리지만.

  이 영화를 보는 재미 하나는 고가의 예술품을 털기 위해 삼엄한 경비와 보안시스템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묘기를 보는 것. 영화 처음부분에 캐서린 제타 존스가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고 숀 코너리의 지시에 따라 적외선(?) 망을 부드럽게 피해가는 장면. 뚱뚱한 여자는 도둑질도 못하냐? 라는 소리도 나올 법 하다. 크크. 묘기와 더불어 그녀의 S곡선을 감상하는 재미도. (퍽)

  영화를 보는 두번째 재미. 숀 코너리다. 그는 정말 하는 영화마다 어쩜 그렇게 다 멋있는 역할만 따내는건지. 내가 나중에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지나 늙어 쭈글쭈글 할아버지가 되면 숀 코너리같이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쩜 저렇게 멋있게 늙을 수 있는거야. 그러기 위해선 여기저기 돈 투자를 많이 해야겠지만... 뭐 숀 코너리는 지방흡입이나 아니면 하다못해 보톡스 수술도 안해봤겠어? <파인딩 포레스트>에서의 늙고 분위기 있는 은둔형 작가, <더 록>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메이슨, <카멜롯의 전설> 이나 <의적 로민 후드>와 같은 영화에서의 중후하고 정의로운 사내 등등 이 사람은 내내 멋쟁이만 도맡는다. 관객들이 배우에 대해 갖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영화를 통해 만들어지듯이 그의 실제 모습과는 달리 내가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숀 코너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난 그렇담 숀 코너리의 환상을 쫓아 늙고 싶다우.

  오래전에 봤던 영화였지만 다시 봐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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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유치한 포스터 좀 봐라. 얼마나 오래된 영화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근데 뭐 그다지 오래라고 할 수 도 없는 1993년인데. 그때면 난 중딩? 음 오래는 오래군. 요즘 중딩을 가르치고 있으니.

  요즘 영화의 러닝타임이 대부분 2시간을 훌쩍 넘기는데 비해 이 당시에는 보통 한시간 반정도에서 두시간 사이의 영화들이 많았다. 뭐 통계를 낸건 아니고 내 경험상 그렇게 느껴진다는 야기. 97분. 약 한시간 반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줄거리를 더 긴 시간에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압축하여 장면장면마다 빠른 스토리전개를 보여준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뭔가 더 있어도 될 듯 하다 싶은 곳에서도 그냥 생략해서 뛰어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극중 군보가 천보의 배신으로 함께 하던 사람들이 죽자 충격을 받고 바보가 되어있던 장면이 있었는데, 잘 싸우고선 집에 돌아와 바보가 된 장면으로 넘어오거나, 아니면 바보에서 갑자기 도를  깨닫고 태극권의 강자로 변신하는 모습 등은 중간과정이 너무나 생략되어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중국의 역사 속의 정치적 상황이야, 이미 중고등학교 배운 뒤로 세월이 한참 흘러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역사에는 별로 관심도 없던 지라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시대적 배경이 언제적인지도 모르고 보는 나다. 지금껏 삼국지를 다섯번인가 여섯번인가 본거 같은데. 그래도 시대적 배경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 속의 역사적 상황은 매우 혼란기였던 듯 하다. 관리들이 부패해서 민중의 삶을 통째로 빼앗으려 들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을 처벌할 영웅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 이때 무술의 강자가 나타났는데군보와 천보. 둘은 한 스승밑에서 자라난 무술 강자들이다. 군보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놈이고, 반면 천보는 무술은 뛰어나지만 심성이 비뚤어진 놈이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천보의 배신. 군보의 복수. 관군이 되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천보와 그에 맞서는 군보. 역시 오랫만에 봐도 이연걸의 무공은 시선을 확사로잡는다. 예전에 무술영화들을 보다가 이건 당연히 카메라 등 여러기법을 이용해서 찍은거겠지 하고 그냥 봤던 나는, 어느날 이연걸이 실제로 그런 연기를 직접하는 것을 봤을 때 놀랐다. 아 이런. 저런게 실제로 가능하구나 하고. 한때 중국의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끌었을 때 이연걸이 자주 우리나라 티비에도 등장하곤 했다. 잘생기고 젊고 무술도 잘하고. 지금은 나이를 꽤 먹었겠지만.

  오랫만에 본 태극권. 이 영화 때문에 갑자기 중학교 때 하루에 4-5개씩 보던 <의천도룡기>가 생각난다. 이게 25편짜린가 그랬는데. 난 이영화가 좋아서 나중에 게임으로 나왔을 때 정품 '의천도룡기'를 샀던 적이 있다. '동방불패'도. '동방불패' 오락은 정말 재밌었다. 롤플레잉 게임이었는데.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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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된 아버지 - 책가방문고 1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33
토마스 앤스티 지음, 조기룡 옮김 / 내인생의책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동화 읽기 제 4탄. <아들이 된 아버지> 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의 몸이 자기 몸이 아닌 타인의 몸으로 바뀌는 이야기는 이미 영화에서도 써먹은 바 있는 소재다. <핫 칙>이라는 영화에서는 머리까지고 늙고 키도 작은 한 땅달보 좀도둑이 마법의 귀걸이로 인해 이쁘고 날씬하고 매력적인 한 여고생과 몸이 바뀌는 상황을 그려냈었다. 서로 극에서 극으로 몸뚱이가 바뀌어버린 두 남녀는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찾는다. 하지만 이내 여고생의 몸으로 바뀐 좀도둑은 아쉬울게 없다는 걸 깨닫고 이쁘고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몸이 바뀐 여고생 입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들이 된 아버지>에서는 거꾸로다. 나이 어린 아들과 머리까지고 배나온 늙은 아버지와 몸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몸을 가지게 된 아들보다 아들의 몸을 가지게 된 아버지가 더 난리다. 상황인 즉 아들의 몸을 가진 아버지는 이제 기숙사 학교로 들어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하는 것이다. 공부도 해야하고, 선생님께 혼나고 맞고. 반면 아버지의 몸을 가지게 된 아들은 회사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나가고 나가서도 직원들과 전쟁놀이나 하려고 하고, 집에서도 딸과 놀아주는 다정하고 착한 아빠가 되었다. 아버지의 몸을 가진 아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다. 하지만 아들의 몸을 가진 아버지는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동화 속에서 이런 상황설정을 한 것은,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맨날 공부만 하고, 선생님께 혼나고,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의 좋은 점, 나쁜 점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도록 하는데 있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는 어른이 되어서의 나쁜 점이 부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오히려 어른이 더 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은 아이들보다는 아버지가 먼저 읽어야 할 책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 아니라 어른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라는 말이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라는 의미로.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 가지 시각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동화이다.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거기에서 뭔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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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8-06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핀치 러너 조서>인줄 알았다는. 동화는 아니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핀치 러너 조서> 한번 읽어보세요. 흑흑 감동.

마늘빵 2005-08-0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내용을 다룬 소설이 있나봐요? ^^ ㅋ 오엔 겐자부로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소설은 하나도 안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