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그다지 화목한 가정이 아니다. 활화산이었던 적은 아주 가끔 한 두번이었지만, 언제나 휴화산이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휴화산이다. 아버지는 현재 우리집에 거주하고 계시지 않다. 일종의 별거인데, 합의된 별거도 아니고, 이혼은 더더욱 아니고, 두분이 크게 다투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싫어하신다. 내가 볼 때 두분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너무나 다르다 두분은.
이분법적이긴 하지만, 아버지를 이상주의자로 볼 수 있다면, 어머니는 현실주의자다. 아버지는 현실적인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그리고 세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분이다. 한 예로 오랫만에 어제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동생 학교에 가는데, 내릴 때 버스단말기에 카드를 찍었더니,
"그거 찍어야되니?"
"어 그럼! 찍어야지. 안찍으면 나중에 돈 더 나와."
아 이런. 버스카드 바뀐지가 언젠데 카드만 들고 다니시면서 탈 때만 찍고 내릴 때 안찍으신단 말이냐. 이제부터는 찍고 다니시겠지. 그렇담 환승하는 법에 대해서도 모르고 계신거 아닌가? 흠. 하나의 작은 예를 들었지만 아버지는 이렇다. 이러한 세상의 작은 변화들에 무관심하고, 그냥 나중에 알게 되면 알게 되는거고 아니면 말고. 좋게 말하면 세속의 이치를 떠나있다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감각하신거다.
반면 어머니는 세상의 작은 변화들을 모두 체험하시고 때로는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나도 현실에 좀 무감각한 편이다. 안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유전인가?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생은 어머니를 닮았다. 얘는 별거 다 안다. 영화 싸게 보는 법 등 돈과 관련해서 싸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아니면 같은 값에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정보들에 민감하다. 얼마전 내가 우리은행에 가서 신용카드를 만든 것도, 얘기 거기서 체크카드를 만들어 CGV 영화관 1500원 할인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수십년을 사셨다. 초창기 신혼 때 몇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이런 상태로 사셨다. 두분 다 많이 늙으셨고 타협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봐도 타협 불가능이다. 그러니 서로를 인정하고 그냥 싫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월세비와 전화세만을 매달 갖다주러 한달에 한번 오시고, 어머니는 가정경제를 이끌어가셔야한다. 그런데 어머니도 늙으셨는지라 이제 어디 불러주는데도 없다. 얼마전까지는 슈퍼마켓 매장에서 카운터를 보셨지만 그곳 사정도 안좋아 그만두신지 꽤 됐다. 얼마 받지도 못하면서 고생만 하시는데 지금 우리집은 이제 먹고 살 돈이 없다. 동생은 아직 직장을 잡지 못했고, 나도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지라, 생활비를 댄다는 것은 힘들다. 무슨 밑천이 있어서 조그만 포장마차라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그거라도 할텐데 그런 정도의 여력도 없다. 하긴 어머니도 넉넉치 않은 우리집이지만 밖에 나갔을 때 우리가 못사는 집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했던 터라 그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으실 것이다. 밖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보이고 싶어하셨으니까.
가끔 특별한 일이 있어 가족이 다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난 부담스럽다. 불편하다. 나랑 어머니랑 동생 혹은 나랑 아버지 이렇게 있는 게 더 편하다. 아버지-어머니-나-동생 혹은 아버지-어머니-나, 아버지-나-동생 이런 자리는 매우 불편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안경제에 신경을 안쓴다고 싫어하고, 물론 이전에 성격때문에 싫어하시긴 했지만, 동생도 아버지의 그런 점 때문에 싫어하고, 나는 중간이다. 동생 졸업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나보고 아버지한테 전화하라 했다. 아니 내가 왜. 난 이런 거 싫다. 우리 가족은 나를 통해서 대화가 된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동생이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거는 상황이란 쉽지 않다. 난 거절했다. 그럼 동생 졸업식이니까 걔보고 전화하라고. 자꾸 날 통해서 대화를 하려고 하면 관계회복은 힘들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랬더니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동생 졸업식있다고 전화했다.
또, 우리 가족이 함께 어딜 걸어가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모양새인데, 네명이 함께 걸어가면, '함께'는 없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간다. 상황 1. 아버지 혼자 저 멀찌감치 걸어가신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고, 뒤에 어머니와 동생이 뒤따라 온다. 상황 2. 어머니와 동생이 먼저 걷는다. 내가 걷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따라온다. 항상 이렇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과도 같다. 나는 항상 중간이다. 아니면 외롭게 있을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 옆에 따라 간다.
졸업식이라고 불러놓고는 왜 따로따로 걷냐고 어머니한테 뭐라 했다. 화가 나서 그런건 아니고, 그러지 말라고. 불렀으면 같이 다녀야지 왜 다 따로따로 다니냐고. 어제 세븐스프링스에서도 그랬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먹으러 가는데 어머니와 동생이 먼저 가고, 나도 따라가고, 아버지는 기다렸다 우리가 자리에 온 뒤에 일어나셨다.
난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불편하다. 이런 모습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