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나왔다는 말에 난 퍼뜩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나온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상영된게 올해 2월이었으니깐 10개월이나 흐른 셈이다. 그 동안 뭐했나 몰라. 상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난 비됴 혹은 디비디를 빌려다가 언능 보고 싶었으나 이상하게도 항상 마음 뿐이었다. 왜 그랬나 몰라.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이렇게 뒤늦게 내가 보고싶어하던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내 발길이 비디오 대여점으로 향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터. 그것은 '귀차니즘'에 기인할 터.

  이 영화는 재즈뮤지션 레이 찰스에 대한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레이 찰스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왜? 아니 레이 찰스를 모르면서 왜 이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수많은 재즈 매니아들이 이 영화의 상영을 오랜시간 기다렸을 것이나 나는 어 이런 영화도 나왔네?! 뭐야? 재즈 뮤지션 레이 찰스? 음. 어디서 들어봤더라. 이런 정도의 감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레이>가 보고 싶었단 말이다. 첫째, 그것이 실화이기에, 둘째, 그것이 뮤지션의 삶을 그렸기에.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는 그게 다다. 정말이다.

  난 실화를 그린 영화들을 좋아하고, 또한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매우 좋아라 한다. 바이올린, 피아노, 색소폰 등등 악기를 불문하고, 록, 재즈, 컨츄리 장르를 불문하고, 그저 음악가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환영이다. 예전에 에미넴을 잘 모르던 시절 보게 된 영화 <8 mile>은 대단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맨날 신문기사에 지 애미 욕하다 애미한테 고소당했네, 누구랑 섹스를 했네 하는 따위의 막말을 해대는 놈이라 그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의 삶을 그려낸 영화 <8 mile>은 나로 하여금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게끔 했다. 난 영화가 끝난 즉시 바로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그의 음반 1,2,3집을 모두 샀다. 그리고 최근 그의 베스트음반이 나왔다길래 인터넷 주문 장바구니에 넣고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지우기까지 했다. 라이브 음반이라면 당장에 결재까지 눌렀겠지만 이미 있는 음반의 곡들이 모아진 것이라 삭제.

  <백야> <데블스 어드버킷> 으로 유명한 테일퍼 핵포드 감독은 영화 <레이>를 위해서 15년간을 레이 찰스와 교류했다고 한다. 한편의 잘만든 영화를 위해서 그만큼 오랫시간의 노력을 한 것이다. 물론 처음엔 영화를 목적으로 만났을지라도 - 그것도 확실치는 않겠지만 -, 그간의 세월들은 그 둘을 친구가 되게 했을테고 - 왜냐면 핵포드 감독도 나이가 만만치 않으니깐 - 그 솔직한 교재가 재즈뮤지션 레이 찰스의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솔직히 담아대는데 이바지했을 것이다. 레이 찰스가 죽은 것이 2004년, 그리고 2005년 2월 영화 <레이>가 개봉했다. 시기상으로 딱 들어맞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레이 찰스를 위한, 그를 기리기 위한 아주 적절한 때에, 모든 그의 팬들이, 재즈 팬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할 그 시기에 영화는 개봉한 것이다.

  가난했던 조지아주 어린 시절, 동생을 사고로 잃고, 이후 자신은 7세에 시력을 잃었다. 어머니는 그를 맹아학교에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학교생활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좋아해 몰래 보러가고, 그곳에서 보고 들으며 음악을 배웠다. 컨츄리. 지금 그는 재즈의 왕으로 알려져있지만 본래 그가 보고 듣고 자란 음악은 컨츄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연중 블루스, 재즈, 컨츄리를 넘나들며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맹인이자 흑인이어서 자그마한 공연을 뛰어도 다른 뮤지션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애틀란틱 음반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음반을 낸 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여 결국 그래미 상까지 휩쓰는 쾌거를 이루고 돈도 펑펑 써도 남을 만치 벌었다. 음악에 빠져 지내며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마약에 손대기도 해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또 조지아주의 공연에서 백인과 흑인의 좌절 차별로 흑인들이 시위를 하자 이에 공감하며 최초의 공연거부를 하기도 했고, 이것이 발판이 되어 흑인차별철폐는 물론이고 평생 공연 금지 판정을 받은 조지아주로부터 초청공연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영화 <레이>는 이런 그의 모든 삶의 희노애락을 다 보여준다. 일부러 미화시키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감독인 헥포드가 그의 삶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수많은 여자들과의 사건들, 그리고 마약사건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 레이 찰스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 대단했다. 와.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정말 실제 뮤지션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 레이 찰스의 아내 델라와 그의 아들. 돈이 많으면 뭐해.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데. 불쌍.

  어머니는 그를 보내며 절대 마음만은 장애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세상에 당당히 맞섰다. 절대 맹인이라고 동정을 받거나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우뚝 섰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낳았고, 음악인으로 대성공을 했다. 장애가 있는 그가 정상인이 이루기도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그의 전부였고, 그 음악은 결국 그를 만들어냈다. 마약에 빠져, 음악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하고 외도하고, 큰 성공을 이루기는 했지만 그는 가정에 있어서 만큼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 델라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으며, 결국 그가 약을 스스로 끊도록 만들었다. 그는 큰 성공을 했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말씀하신 "마음만은 장애인이 되지 말아라"라는 말에 어긋나게 살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다시 태어났다.



* 가운데가 레이의 애인 마지. 레이 찰스 밴드의 코러스 세 명 중 한명으로, 훗날 레이의 아들까지 낳는다.

  레이 찰스. 난 재즈 음악에 관심이 있지만 사실 재즈 음악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에미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그의 팬이 되었듯 레이 찰스를 모른 채 이 영화를 봤지만 지금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내 지갑이 더 얇아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레이 찰스.

 

p.s.

1. 그가 집을 나가 밖에서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밖에서 낳은 자식까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 되려 그를 보살펴준 헌신적인(?) 그의 아내 델라에게 존경을. 이게 존경할 만한 일인지 아니면 바보라고 욕을 해줘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레이 찰스는 여자복은 타고난 듯 하며, 그중에도 그의 아내 델라는 최고다.

2. 이런식으로 인종차별반대에 앞장 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신이 인종차별의 희생자였으면서도 그는 크게 성공한 뒤에도 인종차별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연예인이에요. 그래 너 연예인 맞다. 그런데 너도 흑인이다. 레이는 나중에 조지아주에서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그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도와줄 것을 요청한 뒤에 비로서 이에 대해 인식한 듯 하며, 수많은 이들이 인종차별 반대에 오랜동안 힘써왔음에도 그들의 이름은 뒤에 묻히고, 오직 그가 인종차별철폐에 대단한 공을 세운 것 마냥 되어버렸다. 난 이게 좀 못마땅하다.

3. 우리나라에서라면 이게 가능할까 싶다. 저때가 1940년대부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 200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저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애인이 저만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아마도 봉제공장에서 박음질을 하거나 집에서 구슬을 꿰거나 길에서 도장을 파고 있지 않을까. 흑인이면서 장애인인 그가 그 차별을 극복하고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단한 의지와 노력도 한몫했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뒷받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비록 그 때가 흑인차별과 장애인 차별이 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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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2-1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고 갑니다.(__)

마늘빵 2005-12-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녕히 주무세요.
 



  영화 <굿바이 레닌>은 극장 상영관을 통해 개봉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일간신문 문화면을 통해서였으며, 조금이나마 영화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는 일요일 낮에 하는 어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러나 충분히 그 장면들만으로도 이 영화를 나를 사로잡았고 집에 디비디도 없던 시절, 무턱대고 인터넷 주문을 통해 굿바이 레닌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는 말씀.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거짓말을 할 터. 영화 속에서 동독시민인 크리스티아네의 아들 알렉스가 베를린 장벽 철거 시위대에 들어섰다 경찰의 진압을 받는 것을 보고 알렉스의 엄마 크리스티아네는 그만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만다. 엄마가 코마상태로 병원에 있는 동안에 동독은 서독으로서의 흡수통일에 가까워지게 되고 동독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버거킹과 맥도날드의 로고가 건물에 걸리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엄마가 의식을 찾은 뒤, 아들 알렉스는 엄마의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엄마를 위해 통일된 사실을 숨기려 온갖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선의의 거짓말. 영화 <굿바이 레닌>을 통해 거짓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말의 상황>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이고, 두 번째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이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의 경우 이는 사기다.


  첫 번째, 나쁜 의도의 거짓말


  「인건이는 혜림이와 사귀고 있는데 얼마전 영화모임에서 지선이를 알게 되었고 혜림이 몰래 지선이를 만나 데이트를 했다. 인건이와 지선이가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인건이는 혜림이에게서 몇 건의 문자메세지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했다. 전화도 세 차례 왔지만 모두 무시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혜림이를 만났을 때 그녀가 이에 대해 추궁하자 자느라 전화 온줄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는 나쁜 거짓말의 예이다. 인건이는 분명히 혜림이 몰래 지선이와 데이트를 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내 혜림이를 속였다. 누가 봐도 인건이가 잘못한 상황이고 혜림이만 불쌍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나쁜 거짓말은 ‘언제나’ 용납될 수 없는가?


  위의 사례에 약간의 상황을 덧붙여보자.


  「인건이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혜림이와 사귀기전에는 여러 여자친구들과 데이트하며 영화 보기를 즐겼지만 혜림이와 사귄 뒤로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혜림이 때문에 꼭 보고 싶은데 놓친 영화들이 부지기수다. 아 오늘 또 저 영화 개봉했어. <도쿄타워>. 인건이는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무지. 하지만 혜림이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내가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단 말야?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인건이는 ‘너무나 영화가 보고 싶어서’ 혜림이 몰래 지선이를 만나 영화를 봤다. 꼭 지선이가 아니어도 되지만 기왕이면 더 마음이 가는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런데 혜림이가 영화보는 중간에 전화를 했다. 마음이 찔렸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혜림이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남들이 보면 나보고 못됐다고 하겠지만」


  좀전의 상황에 약간의 상황을 더 추가했다. 어떤가? 분명 위에서 이 상황을 나쁜 거짓말 이라고 했지만 인건이의 변론을 듣고 보니 나쁜 의도로 그랬다고 몰아붙이기엔 인건이가 불쌍하지 않은가? 앞에서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과 좋은 거짓말 두가지로 나눠봤지만 거짓말을 좀더 세분화 시킬 필요가 있다.


  나쁜 거짓말에는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줄 수 있는 거짓말이 있는 반면,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또 알려질 경우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을 경우 피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짓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집을 계약했다가 중복계약으로 사기를 당해 지금껏 모은 모든 돈을 날려버린 경우는 나쁜 거짓말의 전자에 속하고, 위의 사례는 후자에 속한다. 계약사기는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는 명백히 타인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범죄이고, 후자의 경우는 드러나지 않을 수고 있는 경우이다. 나는 후자의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두 번째, 좋은 의도의 거짓말


  자 이제 두 번째 좋은 의도의 거짓말을 한번 살펴보자. 흔히 말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부른다. 영화 속 장면에서 알렉스가 엄마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제는 나오지 않는 동독제품을 만들어내고, 통일사실을 숨기기 위해 라디오 안테나를 부러뜨리고 고장났다고 하는 장면, 창문 밖 고층 빌딩에 걸린 맥도날드 간판을 보고 놀란 엄마를 위해 맥도날드는 50년대에 동독에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고 가짜 뉴스를 제작하는 장면 등 알렉스의 거짓말은 엄청나다. 이 많은 거짓말들이 모두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사냥꾼이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데 토끼가 얼른 도망쳐 어느 오두막집으로 들어가 사정을 했다. 한번만 숨겨주면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사냥꾼이 오두막에 도달해서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지나가는 토끼 봤소?” “네. 저쪽 방향으로 재빠르게 도망치던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사냥꾼은 오두막 주인이 잘못 알려준 방향으로 달려갔다. 토끼는 오두막 주인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전형적인 선의의 거짓말의 사례이다. 토끼를 살리기 위해 오두막 주인은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했다. 만일 사실을 그대로 말했더라면 토끼는 여지 없이 잡혀 구이가 됐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이 오두막 주인의 행동은 칭찬받을 만하다. 단 한번의 거짓말로 토끼의 목숨을 살렸으니 말이다.


  알렉스도 영화 속에서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모두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결국 죽는 순간까지도 통일사실을 몰랐지만 그것은 엄마가 마음편히 세상을 하직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알렉스의 ‘배려’였다. 수많은 거짓말들을 애써 하지 않고 엄마가 깨어난 순간 “엄마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됐어요.” 라고 말했다간 엄마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터. 알렉스의 효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언제나 정당한가?


  만일 칸트가 이 사태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면 어땠을까? 칸트는 <거짓말할 권리>라는 글에서 위의 예와 비슷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한 친구가 내 집에 숨었고, 살인강도가 나타나 나에게 친구의 행방을 묻는다. 이는 위의 사례보다 더 독한 경우다. 위에서는 사냥꾼을 피해 도망온 토끼를 구해준 경우이지만, 칸트의 예는 살인범에게 친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거짓말할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불가피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생겨날지 모르는 많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형식적 의무이다. 그에 의하면, 허위 진술은 “내가, 나에게 부당하게 말하도록 강요하는, 그에게 잘못을 행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이것은 인류 일반에게 행해진 하나의 잘못(ein Unrecht)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행해진 거짓말의 문제가 그 상황 속에 있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인류 전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칸트가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알기 원하는 문제는 한 인간이 구체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거짓말할 권리가 보편적 원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거나 ‘진실에의 의무가 예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거짓말을 하든 하지 않든, 발생하는 결과는 우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당신이 거짓말을 함으로써 당신의 친구가 살인강도에게 희생되는 경우와 진실을 말했음에도 그 친구가 그 살인강도에게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당신이 거짓말을 했을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또 당신이 엄격하게 진실했다면 공적인 정의의 차원에서 예견되지 못한 결과가 있었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요컨대, 칸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진실을 말하든 결과가 좋거나 나쁜 것은 우연적이라는 것이며, 그 우연적인 결과를 예상하여 원칙을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칸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실하지 않을 권리란 것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한 결과를 미리 예상하여야만 성립될 수 있는 것으로 원칙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칸트 윤리학에 있어 거짓말 문제」, 김종식)


  선의의 거짓말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게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되려 이득을 전달해주는 결과를 얻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에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칸트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함으로서 생기는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다. 이는 순전히 우연적인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길을 택했다고 해서 타인이 이로인해 이득을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득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순전히 나의 머리 속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추측일 뿐이다. 거짓말을 했고 결과가 나빴다면 이는 나의 양심을 속인 첫 번째 잘못과 나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타인이 입은 해까지 포함해 두 개의 잘못을 범하게 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선의의 거짓말이 언제나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것은 나의 의도의 문제일 뿐 ‘선의의 결과’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옳다고 말할수도 없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굿바이 레닌> 속에서 알렉스의 선의의 거짓말은 순전히 그 혼자만의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낙관에서 비롯된 행위일뿐 그렇다고 해서 -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거짓말로 인해 엄마가 기분좋게(?) 돌아가셨지만 - ‘반드시’ 선의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므로 잘못이다.



  거짓말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할 때는 거짓말에 대한 다양한 상황을 주어준 뒤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은 어떤 것인지를 말해보도록하고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진행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내가 생각한 행동과 남이 생각한 행동의 차이와 각각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까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짓말에 대한 생각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생각의 넓이와 범위가 확장되고 또한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 이 글에 들어간 필자의 관점은 논의를 활발히 하기 위해 본래의 제 생각보다 극단으로 약간 치우친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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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2-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굿바이 레닌" 개봉했더랬어요. ^^
2. 글의 요지와는 상관없지만, 전 그 영화 보면서 어머니가 정말 끝까지 눈치를 못 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알고도 아들의 정성에 속아준 게 아닐까 하는...
3. 그런데 칸트가 들었다는 살인강도의 예에서요, 우리는 살인강도가 물으면 꼭 대답해야 하나요?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나요? 침묵할 권리, 질문을 거부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요? 이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마늘빵 2005-12-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
1. 굿바이 레닌 개봉했었나요?? 엇 왜 몰랐지. ㅡㅡ;;;; 전 국제영화제에서만 한줄 알았어요.
2. ^^ 전 그런 생각까진 안했는데. 다만 이런 생각은 했어요.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저렇게까지 힘들여가며 거짓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아무도 없는 시골 한적한 곳에 이사를 가서 거기서 살면 저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말이에요. 영화는 일부러 코믹하고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그런 장면들을 넣었겠지만요.
3. 네 칸트에게 있어서는 거짓말은 절대 안됩니다. 물었을 때 대답해야할 의무가 아니라, 누군가 질문을 했을 때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할 의무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칸트는 철학을 함에 있어 언제나 인류전체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법칙을 세우려고 노력했고, 각각의 상황상황마다 달리 적용되는 거짓말 같은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때 칸트가 상정하고 있는, 주장하고 있는 바는 윤리학의 이론상의 원칙이고요, 우리네 삶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실천윤리학의 문제에서는 따로 다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칸트가 실제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합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만요. ^^

플라시보 2005-12-1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굿바이 레닌 보고 싶었었는데. 이거랑 비슷하다는 우리나라 영화 (간큰가족이었나?) 를 보고 앓느니 죽지라는 걸 생각했었습니다. 흐... 하나의 영화로 이렇게 풍부한 생각을 하시는 님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인간의 뇌란. 그 어떤 우주보다도 넓고 광활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갑니다.

마늘빵 2005-12-1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 전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넘 좋아해서 디비디까지 구입해놨는걸요. 참고로 제가 가지고 있는 디비디는 딱 두개인데, <봄날은 간다>와 <굿바이레닌>입니다. 조만간 <비포선라이즈>와 <비포선셋>을 구입할 생각이에요. ^^ 전 영화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생각꼬리물기 놀이 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드럼치는 거 빼고 다른 취미 하나 없이 여행도 안다니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심심하지 않았던 것은 바론 이런 놀이 때문이에요. 혼자 하는 놀이라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marine 2005-12-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아프락사스님!! 전 무슨 공산주의 혁명 이야기인 줄 알고 봤다가 다소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 간 큰 가족이 완벽하게 패러디 한 것 같던데 굿바이 레닌과는 달리 코메디 쪽 느낌이 강합니다
비포선라이즈랑 비포선셋 너무 좋죠? 전 특히 비포선셋이 더 좋았어요 Love is a dialogue 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죠

마늘빵 2005-12-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 ^^ 네 전 간큰가족은 안봐서 잘 모르겠어요. 굿바이레닌은 독일통일의 과정을 축약적으로 보여주지만 진실된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또 그걸 코믹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통일 된 이후의 동독인들의 상실감. 지금껏 10번 넘게 본거 같은데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포선라이즈 선셋 은 시리즈로 사려고 했는데 지금 절판으로 되어있더라구요. 훔...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절판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80쪽

'예쁘다'라는, 말 그대로 아주 예쁜 말이 예술과 관련된 쪽으로 넘어오게 되면 의미가 변한다. 예쁘다라는 것은 예술적이라기보다 상업적이며, 현실적이라기보다 공상적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다. 우유각소녀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 '예쁘다'라는 말의 근원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117쪽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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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1-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터 옆에서 작업하면 시끄럽겠다.. ;

마늘빵 2005-11-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2005-12-05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철학자 탁석산의 글짓기 시리즈 5권 중 3권이다. 앞선 두 권을 통해서는 논술이라는 글쓰기가 어떤 것이고, 좋은 논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큼직하고 개괄적인 부분들을 살펴봤다면, 드디어 3권에서는 실전연습에 들어간다. 당장 논술 공부가 급한 수험생이고, 시리즈 5권을 모두 읽을 시간이 없다면, 3권만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제대로된 글쓰기 훈련을 위해서라면 - 애초에 탁석산 선생이 의도했듯이 - 1권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며 글쓰기에 대한 개념부터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름대로 잘쓴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글쓰기를 즐기는 나 조차도 그의 첫 관문에서 빵점을 받고 시작했다.

  앞선 두 권을 통해 글이란게 뭔지 파악을 했다면, 3권부터는 실전이다. 글쓰기는 인격수양을 위해서 하는 거다?! 라는 이상적이고 대단한 명제를 깨어부수고  글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며 그 목적을 위해 글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탁석산. 그는 기존의 글에 대한 모든 상식을 다 깨어부수고 처음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대학논술시험에 대한 우리네 상식적인 대처방안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봐라. 개뿔. 그런거 필요 없단다. 논술시험준비를 위해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읽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고, 카뮈를 알고, 카프카를 알고, 헤르만 헷세,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알아가는 모든 과정들, 다 필요없다. 그게 뭐냐. 무슨 대한민국 대학 논술시험 따위를 준비하는데 그런 거창한 것들이 필요하느냐. 우리 대학논술이 무슨 프랑스 바깔로레야인줄 아느냐?! 개뿔 아무것도 볼 거 없다는 저자의 발언. 논술의 질문이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수험생이 대답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우리네처럼 지문이 여러개 나오고 지문이 길어질수록 수험생은 더 쉽게 쓸 수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면 주어진 지문 안에서만 해결하면 되니깐. 굳이 저런 거창한 대문호들, 철학자들의 작품을 읽고 파악해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그냥 그럴듯해보이려는 것일 뿐.

  읽고 파악하고, 비판하고, 쓴다. 그게 전부 다다. 어찌보면 그동안 우리가 논술을 가르치고 배워오면서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정말 저 안에 다 들어있다. 괜히 어려운 지문이 나왔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고 벌벌떨지 말자. 이미 답을 다 지문안에 줬는데 뭘 떨고 앉아있는가 그대여.

  탁석산은 3권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논술 기출문제 몇가지를 들어가며 분석하고, 실제로 문제에 대한 답을 써보며 그 방법을 세밀하게 지도해주고 있다. 이보다 더 친절할 순 없다?! 책 속의 현민이와 멘토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우리네 논술시험이 껌으로 보인다. 아그작 아그작. 별거 아니네?!

  심지어 저자는 집중력있게 논술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쪼꼬렛이나 바나나와 같은 당분을 섭취하라는 조언까지도 한 장을 따로 할애해서 해주고 있다. 글쎄 별 필요없는 책 페이지 수 채우기 위한 수작(?) 같아 보이지만 그것도 탁석산에겐 귀엽게 허용된다. 이후 또 다른 장에서 그 자신이 직접 들어놓은 시험준비를 위한질문들은 매우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쉽게 볼 만한 주제는 결코 아니다. 짤막하게 자신이 들어놓은 질문 몇가지를 골라내어 대답까지 해주고 있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또 기왕에 책을 읽을거라면 지금 읽고 있는 고전작품들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논쟁적인 작품들을 읽을 것을 권유한다. 이건 나도 동의하는 바 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또 격렬하게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작품일수록 독자의 사유는 넓고 깊어진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아직 '근간'이라 표기 되어 있는 그의 나머지 4,5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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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1-2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봐야겠어요. 논술 준비용 도서라고 게시판에 붙여놓은 도서목록 프린트보면, 들뢰즈도 있고, 타키투스도 있고, 니체도 있고, 시오노 나나미도 있고, 이거 원...손도 대기 싫던데요.

마늘빵 2005-11-2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무슨 논술준비용 도서들이 대학에서 전공자들도 읽기 힘든 걸 읽으라고 하고 있으니 뭐가 되겠어요? 정말 저런건 프랑스 같이 바깔로레야를 치루는 국가에서나 권장할 만한 것이지 우리나라에는 필요 없는 짓 같아요. 괜히 논술문에 유식한 척 몇글자 적어봤자 오히려 문맥의 흐름이나 방해하지나 않을지 몰라요.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절판


제시문이 길게, 그것도 여러 개 주어진다는 점에 유의하자는 것이다. 장문의 제시문을 여러 개 제시하는 것은 채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논제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제시되는 것이고, 출제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여러 개 노출된다는 것을 말한다. -42쪽

모든 글쓰기는 김밥이 아니라 비빔밥에 가깝기 때문이지. 잡다한 체험, 복잡하고 다단한 생각들, 미묘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섞이고 스며들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쓰기니까.-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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