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의 공간적 표상이 바로 시계다. 근대적 시간은 시계에 의해 지배된다. 시계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공간적으로 위치시켜놓은 기계다. 처음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도구였던 시계가 곧바로 인간의 신체를 지배하는 존재로 전도된다. 시계를 신체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문명적 신체가 되는 첫번째 코스다. -40쪽
결국 문명과 비문명 사이의 경계는 시간을 얼마나 잘개 쪼개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어떤 태도로 전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즉, 시간-기계 란 하루를 분 단위로 잘게 쪼개서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이 곧 금 이라는 명제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43쪽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건 대상과 대상 간에 확연한 위계가 설정됨과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가 구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관계 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는 물론 주인조차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우주를 소유할 수 있되, 결코 그것과 함께, 혹은 그 속에서 공명의 춤을 출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인의 시공간이다. -58쪽
근대 이후의 역사서는 구체적인 궤적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민족의 기원과 유래를 설정하고 그 웅대한 자취를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때 역사란 신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지적인 충돌과 차이들을 지우고 '국민'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역사를 공통의 기억으로 전유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역사서술에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사서적 통일성이 요청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연대기적으로 듬성듬성 나열되기보다 사건들 사이가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주체와 동기들이 명료하게 부여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완결되고 잘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민족의 '대서사'로서의 역사, 이 대서사야말로 근대 민족담론에 피와 살을 입힌 장본인이었다. -68-69쪽
결국 근대 역사는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과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현재라는 단 하나의 평면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 평면을 이끌어가는 척도가 바로 진보다. 미개와 진화, 야만과 문명의 차이는 결국 시간적 차이를 지칭하게 된다. '아직 이른' 좀더 늦은' 등의 언표들이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그런 기준에 따르면, 역사가 진보한다는 건 앞의 시기가 뒤의 시기보다 열등한, 달리 말하면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성숙해지는 수직적 위계를 지닌다. -78쪽
노마드의 여정에는 목적지가 없다. 아니,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해야 맞다. 따라서 그는 여정마다에서 마주치는 온갖 대상들과의 능동적 접속을 시도한다. -84쪽
동양적 사유에서 악은 기본적으로 불선(不善), 곧 선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악이란 결코 본래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며 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에 이름 붙인 것일 따름이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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