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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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기다려. 지금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거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나라 말도 아니야. 당신과 나에게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들 사이에 그런 말이 있지. 사실은 그런거야. 당신과 그 어떤 사람, 당신과 부인, 당신과 전에 함께 있던 여자, 당신과 아버지, 당신과 친구, 그런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단 한 종류의 말이"
<신혼부부> 中 -13쪽

"이렇게 전차를 타고 계속 많은 것들을 보고 있어. 끝이 없는 직선처럼 언제부턴가 계속 이러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들은 전차라는 것을 아침에 정기권을 보이고 개찰구를 빠져나가 밤에 원래의 역에 돌아오기 위한 안정된 상자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
여자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불안정해지고 말아."
나는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야. 모든 건 마음의 문제지. 만일 인생을 전차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돌아가야 할 집과 계속해야 할 일들을 전차라는 기능과 뒤섞지 않으면, 여기에 탄 사람들 거의 모두가 가방 속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만으로도 지금 곧 아주 먼 곳으로 갈 수도 있어."
<신혼부부> 中 -15쪽

"몸을 써서 밖을 향해 계속 표현하는 것보다도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지금까지 나는 격렬하게 움직여서 간신히 자신을 지탱해 왔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했지."
<도마뱀> 中-33-34쪽

"또 만나줘요"
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만지고 싶어서, 미칠 정도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그녀의 손을 만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지요. 신이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든 부자연스럽든 상관없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났다. 사실은 그랬다. 그럭저럭 서로 마음이 있는 두 사람이 있어 별 생각 없이 약속을 하고 밤이 되어 먹고 마시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오늘쯤 해도 된다고 서로가 암묵의 타협을 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만지고 싶어서, 키스를 하고 싶고 껴안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일방적으로든 아니든 눈물이 날 정도로 하고 싶어서, 지금 곧, 그 사람하고만, 그 사람이 아니면 싫다, 바로 그런 것이 사랑이었다. 생각이 났다.
"그래 또 만나"
<도마뱀> 中-34-35쪽

내 사랑은 네 사랑과 조금 달라.
예를 들면 네가 눈을 감았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주의 중심이 너에게 집중하지.
그러면 네 모습은 한 없이 작아지고 뒤에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지. 너를 중심으로 해서, 그것은 엄청난 가속으로 점점 퍼져가지. 내 과거의 모든 것,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 내가 쓴 모든 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모든 경치, 별자리, 아련히 푸른 지구가 보이는 암흑의 우주 공간까지.
대단해 대단해 하고 나는 내심 미칠 듯이 기뻐하고, 그리고 네가 눈을 뜬 순간 그것은 전부 사라져버리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하지.
둘의 생각은 이처럼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태고의 남녀야. 아담과 이브의 연정 모델이지. 사랑하는 사이인 남녀 중의 모든 여자에게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여러가지 버릇이, 모든 남자에게는 응시의 순간이 있어. 상대방을 서로 따라하며 영원히 이어지는 나선이지.
DNA처럼, 이 대우주처럼.
그때 신기하게 그녀가 내 쪽을 보고 웃으며, 대답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로 아름다웠어. 난 정말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나선> 中-67-68쪽

아마도 심한 질투란 거의 모든 경우에 본인과 상대방과의 관계성이 아니라 단순히 에너지가 약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리라.
<김치꿈> 中-85-86쪽

"아, 본래 이런 게 장례식이란 거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생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모든 걸 잊고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애도하고 애석해하며 진심으로 슬퍼하고 명복을 빌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태어나서 꿋꿋이 살아가다가 죽어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죽은 사람도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용서를 받은 상태다.
<오카와바타 기담> 中-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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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2006-05-0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여태 안 읽었다는...^^; 읽어야하는데 다른 것들에 자꾸만 밀리고 밀려서 방학때나 읽어야겠내요.

마늘빵 2006-05-0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렇게 밀리고 밀리다가 요번에 영화 <도마뱀> 때문에 생각나서 집어들었어요. 혹시 같은 내용인가 해서. 아니더라구요. ^^
 



  이 영화 역시 킬링타임용으로 아주 딱이다. 킬링타임용으로 보는 재미 말고도 또 다른 재미가 있으니, 내가 좋아라하는 두 배우가 출연한다. 처음엔 모르고 봤는데 보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인데 하면서 무릎을 탁. 포스터 왼쪽에 있는 아저씨가 로렌스 휘시번. 오른쪽이 에단 호크다. 로렌스 휘시번은 이전에도 영화를 몇 편 찍었지만 내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아 그 책임감 강하고 무게있는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니. <매트릭스>의 네로도 네로지만, 모피어스 또한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여기선 악당으로 나온다. 근데 마냥 악당만도 아닌. 오른쪽의 에단 호크는 정말 누구지 누구지 하면서 한참 뒤에 알았다. 너무나 다른 역할이었기에. 내가 그를 기억하는 건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에서의 이미지였으니 당연히 여기서의 그 약에 쪄든 경찰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르지.

 

* 여기 두 아저씨.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가 경찰과 범죄자로 변신해서 나왔네. 에단 호크와 로렌스 휘시번.

  <어설트13>은 디트로이트의 악명높은 범죄자들을 호송하던 차량이 폭설로 예정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무너질 것만 같은 옛날 건물의 고립된 13구역 경찰서로 방향을 틀면서 생기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13구역 경찰서에는 은퇴를 앞둔 나이든 할아버지 뚱보 형사와 술에 쩔은 여비서 하나, 약에 쩔은 경사 하나, 그의 충실한 동료 하나만이 있을 뿐. 그러니 뭐 죄수들 관리가 제대로 되겠어. 새해를 맞이하며 경찰서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있던 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싫을 밖에. 그런데 이들 때문에 경찰특공대로부터 공격을 받게되니 더욱 어이 없을 밖에.

  13구역의 경찰관들과 이곳에 갇힌 죄수들은 힘을 합쳐 밖에서 공격해오는 부패한 경찰특공대를 맞아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믿지 않으면 우리는 질 수 밖에 없다. 저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믿어라. 믿을지어다.

 허나 믿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키며 서로를 의심케되고 그때마다 죄수 대빵 로렌스 휘시번과 경찰 대빵 에단 호크가 서로의 진영을 때로는 말로 다독이며 때로는 폭력으로 다스리며 믿음을 강요하는데.

  전형적인 미국판 범죄 스릴러 액션으로 범죄자와 경찰관의 대립, 부패경찰과 선량경찰의 대립 구도는 익히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써먹어 왔던 방식이다. 다만 다른 것은 위기에 처한 범죄자와 선량경찰이 힘을 합쳤닫는 것. 결국 많은 이들이 죽게 되지만 킬링타임용 영화는 원래 시간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많이 죽인다. 그 긴 러닝타임동안 아무리 천천히 죽여도 사람은 죽게 되어있다. 좋았던 시절은 가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끝까지 살아남았구나. 딱 쇼파에 누워 오징어 뜯으며 즐기는 영화이지만 그저 로렌스 휘시번과 에단 호크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 근데 두 사람은 이 영화를 왜 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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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0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왜 그래요.. ??? ㅎㅎㅎ

승주나무 2006-05-0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러게요. 하나 골라 봐야겠수다^^

마늘빵 2006-05-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 그동안 본거 올리는건데요. 너무 많이 올리셔서 그러시는거죠? ^^
계속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하나 올리니깐 필받아서 계속 올리고 있어요. 아직 두개 더 남았는데. 내일 할까 오늘 마저 할까 생각중이에요.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고 따분하고 무기력하고 뭔가 재미를 찾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영화. <이탈리안 잡>은 이탈리아 영화가 아니다. 미국 영화다. 이탈리아 영화는 아니어도 뭔가 유럽풍의 냄새가 짙게 풍기기에 프랑스 영화인가, 의심(?)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미국 영화다. 범죄 액션물인 영화는 흔히 말하는 킬링타임용. 2003년 극장 개봉했던 영화이고, <이탈리안 잡 투>가 곧 개봉예정인 듯 하다. 개봉일이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지만 일단 두번째 작품도 인터넷에 오르는 걸로 봐서는 말야. 특별히 뭔가를 기대할 것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게 되는 흥미위주의 영화인지라 대체로 만족스럽다.

  금고털이 전문범 끼리의 한탕작전에서 한 멤버가 죽고, 그의 딸은 배신당한 동료들 집단에 들어가 복수를 결심한다. 뭐 이정도 간단한 줄거리 흘렸으면 대충 머리속에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줄거리가 꿰어진다. 매력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죽은 금고털이 존 브릿저의 딸 스텔라. 그녀는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배신자 스티브에게 접근해 복수할 기회를 살피지만 그녀의 얼굴을 알아버린 스티브로 인해 첫번째 계획 실패.

  컴퓨터 전문가, 자동차 전문가, 폭약 전문가, 금고털이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멤버들이 배신자가 강탈한 금고를 털기 위해 뭉쳤다. 만만치 않은 배신자와 또 만만치 않은 복수집단. 실력가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누가 승리할 것인가. 뭐 결과야 안봐도 뻔하지만 그 과정을 보는 재미지.  세 대의 미니카로 금괴를 탈취하는 장면이 멋있다.

 

* 배신자 스티브와 그를 구워삶기 위해 접근하는 존 브릿저의 딸 스텔라. 그리고 서 있는 자는 존 브릿저의 옛 동료이자 스텔라를 사랑하는 찰리. 구워삶으려 만났지만 이미 얼굴을 알아버렸다. 계획실패.



* 극중 스텔라. 실제 이름 샤를리스 테론.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으로 75년생의 그녀. 이쁘네. 오늘내일 개봉하는 영화 <노스컨츄리>에 조시 역으로 나온다고 하니 눈여겨 봐야겠다. 여기서는 이렇게 아리따운 이쁜 매력적인 여성으로 나오지만 <노스컨츄리>에서는 광부의 딸로 나온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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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0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를리스 테론이 열연한 '몬스터' 보시면 놀라시겠네요... ㅎㅎㅎ

마늘빵 2006-05-0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건 머에요. 이쁘게 나와요?

라주미힌 2006-05-0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빌려 보세요... ㅎㅎㅎ 샤를리스가 얼마나 위대한 연기자인지 알게 됩니다.
기억상으론 저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마늘빵 2006-05-0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무슨 영화인가 검색이라도 해봐야겠다.
 



  으하하. 영화 포스터 정말 잘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렇게 재밌게 단촐하게 요약해준 포스터도 없을 것이다. 대개 영화 포스터는 실제 영화 속 장면의 일부분을 따가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영화 속의 장면보다는 영화의 줄거리와 내용, 장르를 한꺼번에 잘 보여줄 수 있는 설정형의 포스터들이 많아지고 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포스터 또한 그와 같은 종류. 최강희가 무식한(?) 부엌칼을 들고 생닭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살벌한 표정으로 요리하려 들고, 한쪽에선 냉장고로 추정되는 폐쇄된 공간에 구석에 찌그러져 묶여있는 잔뜩 쫄은 박용우가 올려져있다.

  "수상한 남녀의 예측불허 연애담" 이라는 짧은 수식어 또한 영화의 줄거리를 매우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본으로 만들어졌다는, 대박 배우도, 대박 감독도 없는 이 영화가 이만큼의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에 대한 올바른(?) 기대감을 심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재미도 재미지만 개봉이전의 포스터를 비롯한 광고에서부터 영화는 110분의 줄거리를 한 컷의 설정 사진에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와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감상이 딱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기대감을 갖게 하여 극장 좌석에 앉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실망감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영화판 상황이다. 이미 영화를 보고난 관객의 입소문은 그 무엇보다 확실한 영화 광고다. 그러니 괜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제대로 된 기대감과 그에 맞는 만족감을 선사하는 영화가 오래간다. 백만 스물 둘, 백만 스물 셋. 힘세고 오래가는 건전지 에너자이저.

 

* 대학 영문학 강사 황대우. 앞좌석에서 그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듣지 않고 문자질을 하고 있는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 아휴. 한심한 것들.



* 우아한 저 자태. 와인잔을 살짝 손에 쥔 포즈하며,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섹시한 흰색 강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조명 아래 와인 한 모금의 맛을 느끼는 그녀. 그녀가 살인자라고요? 어떻게 믿어요?

  살벌녀 최강희. 본명 이미자. 가명 이미나.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이탈리아에서 그림공부를 하려고 계획중이다. 정말? 옛 남자친구 처리하기가 특기이며 남자 꼬시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칼 좀 쓸 줄 알고 김치냉장고를 사랑한다.

 달콤남 박용우. 이름 황대우.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대학교에서 영문학 강사를 하고 있으며, 닭살커플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연애라는건 유치한 애들이 하는 짓거리라는 그가 경험한 첫 연애는 과연 어떤 연애? 허리다치고 갑자기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는 그는 아랫집에 사는 신비한(?) 분위기의 그녀에게 푹 빠져 얼떨결에 데이트를 하게 되고, 닭살 커플을 제일 싫어한다는 그가 영화도 같이 보고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도. 그런 그가 어느날 이렇게 말한다면. 전 세상에서 김치냉장고가 제일 싫어요.

  선수녀와 순수남의 만남. 전혀 선수 같아 보이지 않는 그녀는 연애에도 선수지만 살인에도 선수다. 손잡고 키스하고 혀 집어넣고 껴안고 온갖 스킨쉽의 여왕이면서 이렇게 달콤한 면모 이면에는 눈깜빡하지 않고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냉정함(?)을 갖추고 있다. 이 절묘한 조화. 최상의 조합인가. 확실히 선수는 선수다. 이런 선수에게 공부만 했던 순수남이 걸려들었으니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죽음은 면할 수 있을까. 뭐 그가 그녀에게 잘만한다면야 죽이기야 하겠어.

  영화는 매우 재밌다. 달콤하게 키스하면서도 살벌하게 칼부림하고 코믹한 대사 던져주는 센스. 두 주인공 못지 않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 커플이 있으니, 그들은 장미와 계동.

#1
장미 "칼질도 해본 년이나 잘하지. 입맛이 좀 없네요. 넌 참 비위도 좋다 미나야. 어제는 쑤시고 오늘은 썰고."

#2
미나 "지금 나한테 씨발 이라고 그랬어요?"
대우 "네 씨발이라고 했어요. 나도 화나면 욕해요. 씨발."
계동 "씨발이 욕이랜다. 씨발"

#3
대우 "이게 뭐에요?"
미나 "혀요. 혀 싫어요? 빼요?"
대우 "빼지마요. 빼지마. 혀 너무 좋아."

#4
대우 "참 너도 키스할 때 입에다 혀 집어넣고 그러니?"

#5
미나 "땀 때문에 씻어야 되는데"
대우 "괜찮아요. 저혈압이라서 짜게 먹어도 돼요."


  아주 대사들이 어쩜 장면장면과 그렇게 딱딱 떨어지면서 웃음을 자아내는지 11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봤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솔직한 대사 때문에 웃고, 또 너무나 재밌는 상황에 살벌한 대사 때문에 웃기도 하고. 웃음을 자극하는 요소는 각각 다르지만 공통점은 웃기다는 사실. 살벌해도 웃기고 적나라해도 웃기고. 두 사람의 표정이며 행동이며 대사 하나하나며 어쩜 이렇게 코믹할 수가 있는지. 또 보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 >

  하나.  평생 공부하느라 연애  한번 못해본 사람들은 순수하다. 그리고 쉽게 넘어간다. 그리고 푹 빠진다. 작업에 성공하기 위한 비법 하나. 순수남, 순수녀를 공략하라. 살짝 작업들어가도 금방 넘어온다.

  둘. 공부남, 공부녀는 연애에 관심없다? 노 노 노. 관심있다. 그런데 관심 없는 척하는 거다. 연애에 관심 없는 남녀가 어딨어.

  셋. 이쁜 여자는 살인해도 된다? 된다 된다 된다 안됀다. 되긴 뭐가 안돼. 안돼지. (무슨 소리야) 어떤 의도에서 살인을 했건  살인은 용납되지 않는다. 영화는 두 남녀의 재미난 연애담을 담아내느라 살인을 저질러버린 미나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영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묻어가게' 되는건 안된다. 사랑하면 살인도 용서가 된다? 그건 아니지. "과거는 상관없어. 사람만 안죽였음 돼지"라던 대우의 첫날밤의 대사는 영화 말미에 "괜찮아 뭐 죽일 수도 있는거지." 로 치환된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영화는 코믹한 요소를 자아내기 위해 살인이라는 소재를 삼아 살벌함과 달콤함을 버무렸지만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뭐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리 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는 부분인 것은 사실.

  영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또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지만, 실제 범죄자들은 어떤 영화나 음악, 소설을 통해 살인을 결심하게 되는 사례들이 실제로 있다.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듣고 총기난사를 했던 미국의 어느 고등학생 이야기나 영화 <친구>를 보고서 죽이는 법을 배웠다는 한 젊은이의 말은 영화나 음악, 소설 등의 문화적 매체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또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박용우와 최강희. 두 사람 모두 영화계 거물은 아니다. <여고괴담>으로 얼굴을 선보인 최강희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횡무진하며 그녀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그다지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연말마다 상을 받는 드라마나 영화는 없었지만,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은 모두 나를 포함한 그녀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매니아층을 만들었다. 드라마 <광끼> <학교> <단팥빵>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와니와 준하> 등. 오히려 영화로 얼굴을 선보였지만 영화보다 드라마에서 더 강세를 보였던 그녀. 난 그녀가 너무 좋다. 특히나 일요일 아침마다 했던 <단팥빵>을 보기 위해 꼬박꼬박 8시에 일어나던 그때가 생각난다. 최강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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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0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무지하게 잼나게 봤는뎅^^ 근데 끝이.. 좀... 허무했어요..ㅠㅜ 그냥 베스트극장의 결말 같은..?? 그것만빼면 재미있는 영화였는듯...

마늘빵 2006-05-05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저도 이거 재밌게 봤어요. 끝은 정말 무슨 베스트극장 결말처럼 끝나버렸죠? 결국 맺어지지도 않고.

비연 2006-05-0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요즘 영화를 많이 보시는 듯~^^ 덕분에 평 열심히 잘 읽고 있어요..ㅋ
가서 보지는 못하고 대리만족하는 비연...으흐흑~

마늘빵 2006-05-0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비연님. 이주전쯤부터 본 걸 계속 귀찮아서 안쓰고 있다가 오늘 필받은김에 다 썼어요. 아 다는 아니고 또 남았어요. ^^

비연 2006-05-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군요....^^;; 전 낼 미션 임파서블 3를 볼 예정인데..

마늘빵 2006-05-0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그거 보고 왔어요. ^^ 써야지...
 



  요즘 개봉되고 있는 한국 영화에는 대작 감독들의 작품이 전무하다. 죄 신인감독들, 혹은 한 두편의 그닥 성공하지 못했던 감독들의 작품이 대부분. <사생결단>의 최호 감독 역시 처음 들어본 사람이었고, 가벼운 뒷조사 결과 그는 <후아유>와 <바이준>으로 얼굴을 내민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 작품 모두 보지 않았으니 패스.

  "한국판 느와르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하여, <달콤한 인생>에 한국판 느와르의 맛을 제대로 들여버린 나로서는 이 영화 또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최고로 알았던 때에서 <달콤한 인생>으로의 놀라움을 느끼기까지에 이르며 푹 빠져버린 나는 <사생결단>까지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역시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뭐 그냥 "그럭저럭 만족" 이라고나 할까.

  범죄와 파멸이 반복되는 어두운 지하세계의 우울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에이 인생 갈대로 가라는 자조적인 가치관과 시니컬하고 껄렁껄렁한 말투. 이런 영화들이 요즘 왜 이렇게 좋은지. 류승범과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앞세워 마약 판매상 대 끈질긴 형사의 구조를 삼아 전개되는 영화는 폼생폼사. 두 주인공의 옷차림이나 말투, 행동거지 하나하나  폼에 잔뜩 신경을 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영화 속 배경이나 장면 하나하나, 구도 하나하나까지도 폼 좀 잡았다.


 

 

 

 

 

 



 

 

 

 

 

  폼만 잔뜩 들어간 마약 중간판매상 이상도. 사실 그는 별거 아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니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더 있으랴. 처음엔 꼬봉으로 시작해 지금은 그래도 부산에서는 어느 정도 어깨에 힘 좀 들어간 중간상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사는게 그지꼴이지만 폼 나는 멋진 검은 선그라스에 살림살이에 맞지 않게 양복 빼입고 등장한 마약거물 장철을 잡는데 미친 무대뽀 경찰 도경장이 있다.

   이상도 VS 도경장

 장철 잡이에 실패하고 찌끄래기로 이상도를 감옥에 넣었던 도경장, "그 동안에 니 멀 해묵든... 최선을 다 해서... 뒤봐주께!" 라고 말만 그럴 듯 하게 포장해 출소한 이상도를 꼬드긴다. 믿어? 못믿어? 못믿어 못믿어 믿어 믿어 믿어, 로 바뀌어버린 이상도. 그는 순수한걸까 멍청한걸까? 다시 도경장의 그물에 말려들어 함정수사에 협조를 하고, 결국은 범인이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감지한 그는 범인을 신고하길 포기하고, 내 살 길 찾기 위해 또 한 탕 저지른다.   결국 죽음을 향한 두 사람의 질주는 한 사람의 죽음을 불러오고.

  진실은 없다. 살기 위해 몸부림칠뿐. 마약상인 이상도도 경찰인 도경장도 결국 각자의 살 길을 찾기 위해 질주했을 뿐이다. 삶의 정점을 향해 질주 했을 뿐이다. 진실은 없다. 단지 살고 싶었을 뿐. 제대로 폼 나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을 뿐. 폼 내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쓰겠나. 결국 폼 잡으려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되니.

  폼 좀 잡으려는 사람들은 영화 <사생결단> 속의 그들이 아니라, 여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짓밟히는 약자가 되기보다는 짓밟는 강자가 되겠다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상도와 도경장. 그 어느 누구도 삶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합법과 범법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엇이 합법이고 그 무엇이 범법이란 말인가. 한쪽은 범죄자로 한쪽은 경찰로 겉보기에 한쪽은 범법자로 한쪽은 법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이다. 두 사람은 모두 폼나는 삶을 위해 살았고, 여기 우리들도 폼 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을 산다. <사생결단>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양자택일을 한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솔직하고 선량한 사람은 따로 없다. 모두가 솔직했고 모두가 선량했다. 이상도도, 도경장도, 마약계 거물 장철도, 이상도가 돌봐준 여자 지영이도. 삶을 위해 몸부림 쳤건만 누구는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새 삶을 찾았고 누구는 자살했다. 길은 정해져있지 않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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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0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랑 같이 보는거에요? 애인 생기셨나...

마늘빵 2006-05-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 요새 혼자보러 댕겨요. ㅠ-ㅠ

라주미힌 2006-05-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헉... ^^;; 얼렁 애인 생기시길...
전 자꾸 집에서 결혼하래요. ㅡ..ㅡ;
뭐가 있어야 하지.

마늘빵 2006-05-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라주미힌님 결혼하기엔 뭐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 이시긴 하지만 아직 인생을 좀더 재밌게 즐기면서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전 아직 덜 놀아서. ㅋㅋㅋ 뭐 결혼한다고 삶이 쫑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