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구판절판


내가 국어의 혼탁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불순함의 옹호자이기 때문이다. 불순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의 단색 취향, 유니폼 취향을 혐오한다는 것이고, 자기와는 영 다르게 생겨먹은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 바 토박이말과 한자어와 유럽계 어휘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쉰다. 나는 한문투로 휘어지고 일본 문투로 굽어지고 서양 문투로 닳은 한국어 문장 속에서 풍요와 세련을 느낀다. 순수한 토박이말과 토박이 문체로 이루어진 한국어 속에서라면 나는 질식할 것 같다.
언어 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 정왜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25쪽

그렇다면 8세기의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를 한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들 대다수는 무심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충이 <잣나무가>를 부르며 사용한 언어도 한국어라고 부르고, 황지우가 <뜰 앞의 잣나무>를 쓰며 사용한 언어도 한국어라고 부른다. 그 두 언어를 한 언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8세기의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 사이에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언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대답하기 힘든 물음이다. 그 대답하기 힘든 물음에 '혈연적 동일성'이라는 손쉬운 대답이 제출된 시기는 19세기다. 19세기 유럽의 언어학자들은 세상의 무수한 언어들을 '혈연관계'에 따라 분류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들은 '핏줄'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언어들을 묶어 '가족(어족)'을 만들어, 그 가족의 '조상(조어)'을 찾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58쪽

지리언어학의 관점에 서면, 방언과 독립적인 언어를 구별하는 가장 커다란 기준은 의사소통 가능성이다. 즉 두 화자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은 별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리 언어학의 이 공간차원을 시간차원으로 곧추세울 수도 있다. 즉 '진화상태'의 어떤 언어가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든, 서로 다른 시점의 이 언어 화자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리라고 추정된)다면, 그 언어는 별개의 언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8세기의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는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언어라고 할 만하다.
...중략...
우리가 이런 관점에 서면, 의사소통 가능성의 경계에 따라서 시간축 위의 한국어는 수많은 한국어들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한국어가 아니라 무수한 한국어들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한국어 문학이 아니라 무수한 한국어 문학들이다. -69-70쪽

외래어가 됐든 번역투가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제 5공화국 초기 삼청 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 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 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 순화'의 충동에 내재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121쪽

여기서 꼭 강조돼야 하는 것은 영어공용어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했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 지식과 정보는 곧 권력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문제를 떠나서, 한 사회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는 사회와 전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180쪽

우리가 이중언어 사용자가 됐을 때, 더 나아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먼 미래에 민족어가 '박물관 언어'가 됐을 때, 궁극적으로 민족이 사라져버렸을 때, 우리는 잠시 정체성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민족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가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대신에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인류로서의 정체성을 얻을 것이고, 민족주의의 억압이 풀린 여러 단계의 인간관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들을 얻게 될 것이다. ... 중략 ...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우리 모두가 중국인이고 한국인이듯, 먼 미래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우리가 지금도 10대때부터 배우고 있는 영어에 그리스 이래의 유럽 문화가 담겼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그리스 이래의 (또는 이집트 이래의) 유럽 문화는 지금 우리 제도, 우리 일상 생활, 우리 사상의 본질적 부분이 되어 있다. 그것이 '외래 문명'이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외래 문명'의 힘에 많은 부분이 밀려난 우리의 '재래 문명' - 한문 문명 - 역시 우리가 조금 일찍 받아들인 외래 문명일 뿐이다. 말을 바꾸어, 유럽에서 온 그 '외래 문명'은 우리가 조금 늦게 받아들인 재래 문명일 뿐이다.

-181-182쪽

한글이 한자와 싸워온 과정은 그대로 민주주의가 봉건주의와 싸워온 과정이다. 우리는 한글이 우리 글이어서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자를 배우지 않을 수는 없다. 지난 2천년 동안 한자를 매개로 해서 무수한 중국어 단어, 일본어 단어들이 한국어에 차용됐고, 그렇게 차용된 한자어들은 당연히 한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수입된 한자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와는 다른 독자적인 한국 음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차용된 한자어들은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이다. -216쪽

원음주의를 근본주의적으로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은 세 가지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소리의 물리적 특성만을 생각할 뿐 그 소리들이 한 언어에서 조직되는 음운체계를 간과하고 있다. 둘째, 그들은 언어 규범에 대한 최종 심판관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위에서도 이야기한 관습의 문제다. 셋째, 그들은 외국어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237쪽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를 묻고 슬픔을 느낄 때,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위한 슬픔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을 위한 슬픔이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를 묻을 때, 우리들의 일부를 거기에 묻는다. 우리가 그들과 공유한 과거를 묻는다. 그들의 죽음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을 미래의 가능성을 묻는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 뒤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바로 그 사라져버린 우리 자신의 일부가 유발하는 슬픔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이를 위해 마련한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해 마련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버렸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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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0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너무 좋으신 책만 읽으신다. 좋으시겠어요. 기말 고사 잘 보셨는지요.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마늘빵 2006-12-06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기말고사는 다음주에요. 이건 2년전에 읽었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또 다르게 다가오네요.

비로그인 2006-12-06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몇 세대가 더 지나면 한자는 전문영역의 학자들의 언어가 될것이라 예측해봅니다.
라틴어가 그런 경로를 걸었지요..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할까? 민음 바칼로레아 34
미셸 오트쿠베르튀르 지음, 김성희 옮김, 김현철 감수 / 민음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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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중단행위에 관한 지침
우리나라에서는 대한 의사 협회가 2001년에 제정하여 2006년 4월 22일 전면 개정한 의사 윤리 지침에 회복 불능 환자의 진료 중단에 관한 내용이 제 16조, 제 17조, 제 18조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제16조 2항) "의사는 의료행위가 의학적으로 무익, 무용하다고 판단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하여 환자 또는 그 보호자가 적극적이고 확실한 의사표시에 의하여 의학적, 사회통념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법령이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 의료 행위를 보류, 철회, 중단할 수 있다. (제18조) -23쪽

의사는 인간의 신체를 고치는 데에는 유능하지만, 그 신체가 정신의 또 다른 일면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체는 고쳐졌어도 정신은 계속 고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래서 의학은 병든 장기를 치료하는 동안은 그 장기가 한 인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아예 잊는 쪽을 택한다. 치료하고 있는 대상이 다름 아니라 병든 한 인간이라는 사실, 곧 육체와 정신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뒤로 한 채 오로지 장기에만 몰두하는 것이다.-25쪽

환자 가족이 안락사를 요청할 때가 있는데, 소중한 사람의 고통을 보는 게 힘들고 보살피는데 지쳤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족의 요청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을 요청하는 사람이 정말 충분히 생각해서 진정으로 죽음을 원해서 이성적으로 부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고통이 이성을 잃게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만한 여유가 정말 있을까? 정말 자기의 진정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일까? -46쪽

사상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존엄성에 대한 그러한 정의를 거부하고, 존엄성이란 개체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존엄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화와 질병을 '존엄성 상실' 상태로 간주하는 것은, 늙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가치 판단으로 곧 이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존엄성은 안락사 합법화를 얻어 내기 위한 인질에 지나지 않는다. 존엄성을 이유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존엄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한단 말인가? -57쪽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사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고통을 덜기 위해 다량의 진통제가 필요할 때 그렇게 처방하는 것과,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과도한 양의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을 질적으로 매우 다른 행위다. 보통 의사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양심 조항에 해당되는 사안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의사는 자신의 의도와 기본적인 규칙에 의해 움직이고, 자신의 가치 체계가 근거하고 있는 원칙에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선택할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안락사 문제가 법학이 아니라 윤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학은 사회의 폐단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둔 학문이고, 윤리학은 의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이다.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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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타로서 무망한 고통에 견디질 못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정말 괴로웠지요...


짱꿀라 2006-12-05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락사는 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로 아픔을 참지 못하는 환자를 볼때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답니다.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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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한국의 늙은 철학자 박이문은 묻는다. 개인적으로 박이문의 책은 처음 접한다. 그의 다른 몇몇 저서들이 책꽂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마음먹고 읽어야하는 작가 목록에 올려놓은지라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사회의 가장 나이든 철학자 중 한명이므로 아 뭔가 대단하고 심오한 학문적 필력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일까 하는 우려였겠지만, 그것은 정말 우려였다. 박이문의 글은 매우 쉽게 읽혔다. 뭔가 아는 체하지도 거들먹거리지도 심오하고 무겁지도 않았다. 마치 갓 강호에 얼굴을 비친 소장 철학자 같은 어설픔과 가벼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박이문의 내공이 약해서가 아니다. 박이문의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비판하는 부분은, 그가 이 책에서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사색을 하다가 갑자기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보기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사색을 멈춘다는 것은 언급한 주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않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결론을 내리지 않음에 의미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어쩌면 그건 정말 내가 박이문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고, 그 만한 기대를 할만한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나의 주관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의 노 철학자가 아무런 의도 없이 그렇게 사색을 멈춰버렸을까.

  이 책은 박이문이 <철학과 현실>이라는 철학 계간지에 5년동안 기고했던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1부 실존적 선택과 2부 사회적 규범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문제와 "공동체는 어떤 틀을 갖추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논한다. 나는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또 홀로있음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죽음과 고독, 개인, 가치, 실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자연과 문화, 전쟁, 인권, 주권, 악법,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커다란 주제거리들을 던져놓고는 사색을 전개하다 멈춘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지 않고 저자는 빠져버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너희들의 몫이니라 한다.

  결론이 있는 글과 결론이 없는 글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글쓴이의 주관을 뚜렷하게 알 수가 있고, 독자는 이에 대한 반박내지는 공감으로 글에 다가선다. 저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이에 반하는 나의 논리와  사색을 전개할 것이고, 반대로 공감한다면 왜 어떤 의미에서 공감을  하게 되었는지, 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사색을 전개한다. 그러나 결론이 없는 글은 언제나 독자의 몫을 남겨놓으며 자 이제 이만큼 내가 함께 와줬으니까 네 생각을 전개해봐, 하고 빠져버린다. 마치 스승이 제자를 데리고 옆에서 도와주며 공부를 하다가 자 이제 네가 해봐, 하고 놔두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박이문의 철학함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의 몫을 남겨놓고 안내만 해주는 방식.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어려운 주제거리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다가 독자는 여기에 멈춰서서 나의 생각을 전개해야한다. 그것이 박이문의 의도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그러므로 독자가 사색하도록 하기 위해 안내서 역할만을 해줄 뿐이다. 어떤 특정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사색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스스로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슬며시 알려주고 나온다. 에필로그에 쓰여있는 짧은 글은 이를 시사한다.

  "만일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필자와 함께 그 문제들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필자는 이 책에서 보람을 느끼겠다."

  그에게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많은 주제거리들과 생각거리들이 독자의 눈 앞에 쏟아져있지만 이 정도만으로 박이문은 충분히 제 할일을 했다고 본다. 아직 사색함이 서투른 이들보다는 사색하고 싶지만 어찌 해야할지 잘 모르는, 인생을 성찰하고 좀더 진지하게 살아보고자 마음을 먹은 이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한 사색서이다. 사색은 나의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사물들에 대한 사색은 결국 나에게로 다가가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다.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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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노 철학자가 아무런 의도 없이 그렇게 사색을 멈춰버렸을까."
그렇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이분의 다른 책들에 각각의 의문에 대한 이분의 답이 있지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내신 책중에, '이성은 죽지 않았다 /당대'를
이분의 주저로 꼽고 싶습니다.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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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거일의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발언 이후 참 많은 글들이 오가고 책이 나왔다. 영어공용화에 반대하는 글과  책은 많지만 지식인 논쟁에 불과하고, 대중들이 좀더 쉽게 알아들어먹을 만한, 전문적인 글에 익숙치 않은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나온 것이 시정곤, 정주리, 장영준, 박영준, 최경봉 다섯 사람이 쓰고 엮어낸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책이다.

  '티비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던 바 있는 이 책은, 일종의 가상 르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영어공용화 논쟁에 왜 시작이 되었고, 만약 시행된다면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가 하는 과정과 미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어공용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과연 영어공용화란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기 어려운 이들에겐 찬반 논쟁에 관한 다른 책자들보다는 이 책 하나로 충분할 듯 하다.

  복거일은 그의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 처음에 영어공용화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인터넷 투표를 했더니 우리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이에 반대했지만, 몇년이 지나고 다시 한번 투표를 했더니 찬성 의견이 훨씬 많더라. 그런데 의문이 든다. 과연 이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은 영어공용어화 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투표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영어공용어화의 의미이다. 잘못 이해하는 경우 영어공용어화를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활용하자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 '영어를 열심히 배우자 對 그러지 말자' 구도로 논쟁을 이해하는 이들이 있달까. 이는 분명 잘못되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공서의 온갖 공문들, 그리고 초중고등, 대학교의 모든 교재들, 강의, 수업, 표지판 등등 지금 한국어가 쓰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영어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를 잘못 이해하고 투표를 한 이들도 있지 않을까, 또 많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이런 이들을 위해 영어공용어화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공용어화 실시 이후의 삶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몸으로 간접 체험토록 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저자들이 밝히고 있듯 그들의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주관이 개입하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영어공용어화 반대의 입장에서 쓰여진 가상 르뽀라는 것.

  "필자들은 영어 공용화를 실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영어 공용화가 좋으냐 나쁘냐 라는 가치 판단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대신 영어 공용화가 실시되고 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중략...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선정하는 과정에는 필자의 관점이 상당 부분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필자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선에서 의견을 조율해 나갔다. " 

  영어공용어화가 이 땅에 선언된 이후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먼저 티비와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공용어화가 선언되고,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재미교포들이 한국으로 대거 들어와 한국의 교단과 정계, 기업계를 주름잡고, 국어시간은 영어시간으로 변한다. 영어로 이름을 짓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시위를 하며 한국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은 이제 사라지고 달러가 들어와 조지 워싱턴이 한국을 지배한다.

  한국어를 살리자며 만든 한국어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고, 아이는 영어로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부모는 아이와 언어갈등이 생긴다. 노인들은 말을 아예 하지 못해 집안에서 속앓이를 하고, 어떤 이는 자살한다. 헬로윈 데이가 우리나라 공식휴일로 지정되고, 영어를 하는 것에서 이제는 고급영어를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을까의 고민으로 옮겨간다. 혀 수술을 하고, 미국 북동부에 유학을 보내 앵글로색슨의 정통 영어를 배우도록 한다. 천박한 흑인영어나 동남아 계열의 영어, 콩글리쉬는 먹히지 않는다. 어떤 발음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결정된다. 사람들은 이제 미국인과 결혼하기를 원하고, 결혼정보회사에 등록된 순위는 한국인이 꼴지에서 두번째. 꼴지는 동남아.

  영어공용화 백년 이후 이제는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급부상했다. 사람들은 중국어 조기교육을 실시하고 중국어 학교에 보내 어릴때부터 익숙한 환경에 내몬다. 일부 학자들은 이제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을 하고 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안다. 얼마 안있어 곧 영어,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가 공용어로 지정될 터이고, 한국어는 이미 사라졌고, 영어는 쇠퇴할 것이며, 중국어가 뜰 것이란 사실을.

  이 책은 매우 꼼꼼하고 자세하게 영어공용화 이후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대강대강의 스케치만 한 것이 아니라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칠 해 색칠하고 골목골목의 명암까지 세세하게  신경썼다.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룬 모습들 말고도 현실에서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사건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나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 정도만으로도 우리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영어공용어화 선언 이후의 현실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서문에서 저자들이 말했듯 이 글은 원칙상 반대의 입장에서 그려진 가상 르뽀이나 무시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섯명이 모여 꽤나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토론을 반복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또한 이 책은 친절하고 자세한 각주와 일본에 지배당했을 시기의 신문자료들, 문서 등을 보여주고,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영어교육에 대한 기사들, 사진들을 실어 논의가 딱딱해지지 않도록 편집에까지 신경을 썼다. 풍부한 자료와 각주, 그리고 뒷부록에 실린 영어공용어화 논쟁 당시의 지식인들의 글을 차례대로 실어줌으로써 이 한 권으로 충분하게끔 만들었다. 여기에 소개된 수많은 참고문헌들은 이 논쟁에 관해 더 알고프고, 공부하고픈 이들을 위해 충분한 자료가 될 듯 하다. 그중 경상대 인문학연구소가 엮은 <세계화 시대의 국제어>, 김영명의 <나는 고발한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최은경의 <세계 영어들의 정체성 - 그 신화와 실제>, 후나바시 요이치의 <나는 왜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 등은 추가로 보고픈 책들이다.

 

  * 영어공용어화 논쟁과 관련하여 많은 책이 나와있지만 먼저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조동일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
 한학성의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시정곤 외 5명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김영명 <나는 고발한다>
 고종석 <감염된 언어>

 이 정도만 보더라도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관해선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 대한 반론이 없고, 언급이 안된 것은 좀 의아하지만,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 안에 수록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복거일은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책에서 자주 그의 제자를 자청하는 고종석의 글을 인용하고 있으며,
 고종석의 논변은 복거일의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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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5
한학성 지음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참여한 학자와 작가 등의 지식인들은 꽤나 많다. 복거일이 시작했지만 찬성논증보다는 반대논증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반대논증을 펼치는 이들이 모두 같은 위치에서 복거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자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입장이 있고, 어떤 이는 복거일의 탈민족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비판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영어공용어화로 빚어지는 신계급문제에 대해 들고 일어서기도 하며, 어떤 이는 민족어 순결주의의 입장에서, 어떤 이는 영어전문가의 입장에서, 교육학자의 입장에서 복거일을 비판한다. 각자 영어공용어화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거는 각기 조금씩 다르다. 2000년에 나온 한학성이라는 영어교육학과 교수의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또한 영어공용어화가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반대의견이지만,  무조건 복거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문제가 어디에서 촉발되었는가, 또 그 과정은 어떠한가, 반대의견들과 찬성의견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선보인 책 중에 가장 낫다고 할 수 있다.

  매우 적은 분량의 책세상문고이지만 이 책 안에서 한학성은 다양한 관점에서 영어공용어화의 허와 실에 대해 살피고 있다. 크게 논쟁을 복거일의 1차 논쟁, 문인들간의 2차 논쟁, 일본내의 영어공용어화 논쟁으로 인한 3차 논쟁으로 시기를 세 갈래로 보고, 각 시기마다 어떻게 논쟁이 벌어졌는가를 살피면서, 그간의 논쟁을 '세계주의 대 민족주의' '평등주의 대 계급주의' '외래어 수용주의 대 민족어 순결주의' '전 국민 영어론 대 영어 전문가론' 으로 대결구도를 분류하고 있다. 영어를 대세다. 세계어다. 국제어다, 등의 주장으로 일관된 세계주의는 영어 공용어화 논쟁의 주된 흐름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 민족의 정체성, 주체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민족주의파다. 민족어는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언어를 단순히 도구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쪽의 의견인데, 극단으로 나아가서는 지 엄마를 갈아치우는 자식 놈이 어디에 있느냐는 비약으로까지 치고간다. 평등주의 대 계급주의는 영어를 모두 사용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 고급영어를 구사하는 자와 방언을 구사하는 자 간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또 전 국민 영어론은 모든 국민이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는 영어는 특정한 분야의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이 하면 된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한학성은 이렇게 논쟁의 구도를 살피고, 바로 영어공용어 논쟁의 헛점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복거일이 내세우는 이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반박하고 들어간다. 후손들의 모국어 선택권론, 지구 제국 중심부로로의 진입론, 보편어 문학론, 실시간 정보 획득론, 전 국민 영어론, 언어도구론, 언어진화론, 외국어습득론 등등 복거일이 내세우는 근거들에 이름을 붙여 이에 대한 일대일의 반박을 통해 복거일을 넉다운 시킨다.

  "복거일의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그의 주장을 한번 뒤집어보기로 하자. 그의 주장은 결국 '영어 공용어화로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단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구사력이 현저히 향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중략... 결국 영어의 공용어화는 그 자체로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묘책이 아니라 영어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달성이 가능한 목표라는 점에서 영어 공용어화로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복거일이 갈망하는 것처럼 전 국민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조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닫는 것은 이제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테니 국민들은 알아서 영어를 배우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즉시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때는 이미 모국어를 습득한 후가 됨을 의미한다. ...중략... 사람들에게 모국어 선택권은 없다. 모국어는 단지 그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후손들의 모국어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

  그러나 한학성의 반론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도구론에 대한 반박으로서 촘스키의 이론을 들고나오며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요소이고, 교육, 문화, 종교, 예술 등의 것들이 부여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간편한 반박으로는 무력화시키기엔 부족하다. 그저 학자들간의 이론적 견해차일 뿐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고판 책인지라 분량이 작고 많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좀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반박을 했어야 했다. 한학성이 이에 대한 다른 근거를 들지 못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말을 줄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복거일에 대한 반박이후에 한학성은 영어공용어화 논쟁이 빚어지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처방을 내린다. 영어에 대한 투자에 비해 우리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영어 교육에서부터 그 문제가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어교육학자 답게 이에 대해 자세한 처방을 내린다.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어원은 영어와 동일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우리와 비슷한, 하지만 투자에 비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들의 교육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동시에 또 우리나라 영어교사자격이 주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한다. 너무나 쉽게 자격이 주어지고 있으므로 좀더 엄격하게 소수에게만 자격을 주도록 하고 이들을 해외연수를 시켜 능숙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안식년같은 것을 주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도록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한학성은 복거일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어공용화에 찬성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현실이 이에 부적합하고 이러한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뿐. 그는 복거일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인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다음의 맺음말은 이를 시사하고 있다.

  "영어 공용어론은 현재로는 실현 가능성이 전무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나라 영어 교육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고 말로만의 개혁이 아니라 실질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증폭시킨다면,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영어 교육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주장은 훗날 좀더 현실성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리 나라에서의 영어 공용어 논쟁은 무의미한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을 몇자 첨언하자면, 나는 영어 공용어화에 반대이다. 실현가능성이 좀더 높아진 다음에도 나는 반대이다. 한학성이 인용한 촘스키의 말마따나 언어라는 것은 단지 도구로서 활용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온갖 것들, 문학, 역사, 유머 등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로 언어가 사라지면 이러한 하나의 민족의 문화가 함께 소멸되는 것이며, 민족 문화의 소멸은 곧 민족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영어로 된 문학과 영어로 된 유머 등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지고 영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겉모습은 동양인일지라도 우리의 내면의 모습은 원래의 우리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을 상실한 그 누군가가 되어있을 뿐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는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와 맞부딪히면서 서로 영향을 받고 새로운 단어를 생성하기도 하며, 또 변화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원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귀속되거나, 다른 언어로 변질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하다. 이미 귀속되고 변질되었다면 그건 이미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수용가능하지만, 그것이 '외래어'이고 '수요'가능할 때에만 그렇다. 외래어가 외래어로 불리고, 그것이 수용되는 것일 때에만.

  이 책은 매우 짧으면서도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동시에 모든 걸 압축하면서도 한학성이라는 학자 자신의 목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뒤에 ' 더 읽어야 할 자료들'에는 이 논쟁과 관련하여 관심있는 이들이 더 읽어야 할 문헌들이 간단한 소개글과 함께 실려있어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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