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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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이 아름답다고, 또는 아름다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름답기는커녕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던 내 청춘의 나날들. 청춘은 늘 내게 벗어 던지고 싶은 짐이었고, 갚을 수 없는 빚 같은 것이었으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지같음'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청춘을 본 적은 있다. 해가 뜨면 스러지고 말 풀잎 끝 새벽이슬을 보는 것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안쓰럽기까지 했던 그런 청춘을 만난 적이 있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것이 실제로, 즉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나는 이 추억 하나로 한 십년은 족히 버텨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0쪽

장승욱에게 있어서 술은,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있어서 술이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뭍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에게 공기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이, 그리고 물 속에서 사는 물고기들에게 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이, 장승욱이라는 인간에게는, 술이 그와 같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숨을 쉬듯 술을 마시고, 물속을 헤엄치듯 술잔 속에서의 유영을 즐길 수가 있단 말인가? (페이퍼 발행인 김원) -37쪽

술비 - 일찍이 조정권 시인은 비를 바라보는 마음의 형태를 일곱가지로 나눈 바 있지만, 술꾼들에게 비를 바라보는 마음이란 둘일 수가 없다. 비 내리는 날 술꾼이 술을 마시는 것은 빗방울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술꾼들은 자기의 살과 피 속에 살고 있는 슬픔의 아이들을 불러내느 비의 호명에 귀 기울이면서 더 큰 슬픔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모든 비는 똑같다. 술비인 것이다. -42쪽

인터뷰어 : 장승팔, 인터뷰이 : 고은 시인

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시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시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는 규정되지 않은, 어디에 가둘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왜 시를 쓰십니까?
비유하자면 나는 시라는 무기형을 선고받은 무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나의 존재이유이며, 존재 증명입니다. 내가 시고, 시가 나입니다.

시인은 누구나 고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단 한번도 내 시의 샘이 마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말라 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나는 죽어서도 시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내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나도 모릅니다. 다만 나는 시인으로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문제가 없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내 삶에 문제가 없다면 아마 나는 사막에 가서라도 문제를 찾아 헤맬 것입니다.

문학적으로 스승이 있다면?
나에게 스승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얘기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장님 시인 호메로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테와 중국의 시인 이백정도.

스스로 대표작을 꼽는다면?
어떻게 대표작이 있겠습니까. 오늘 쓰는 시 한 편이 대표작이랄 수 있겠지요. 남들은 '만인보'라고들 합디다만.
-129-130쪽

무덤: 무(無)에 덤을 붙은 것. 사람은 없음에서 태어나 죽음으로써 다시 없음으로 돌아간다. 결국 삶이란 없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통로일진대 없음인 죽음을 담는 무덤이야말로 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경마장에 가는 말들>中)-219쪽

원래 나에게는 내 나름의 룸살롱 對 파트너 행동수칙이 있다. 첫째, 반말을 하지 않는다(물론 말 자체를 거의 안하기도 하지만). 둘째 술은 두 손으로 받고, 두 손으로 따른다. 셋째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나는 또한 누가 내 몸에 손 대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남의 손이 닿기만 해도 통증을 느낄 정도다. 그러니 남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정한 원칙이다). 나도 초년병 시절에는 몸이 됐든 마음이 됐든 파트너가 된 여자와 뭔가 소통을 해보려고 시도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돈이 매개가 되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 거기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은 특히 술자리를 마치고 모두가 계산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실체를 또렷이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위와 같은 행동수칙을 정함으로써 더 높고 두꺼운 벽을 쌓아버리고 만 것이다. -321-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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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3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통 이 작품 장정일이 쓴 서평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읽어본 만한 작품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프락시스님이 올려주신 밑줄긋기를 읽어보니 더욱 읽고 싶어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접하는 저자이지만 이쪽 방면에서는 세계적으로 꽤나 유명한 사람인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복거일에게서 시작된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관심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영어공용화 논쟁은 많은 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세계시민주의, 언어 등등. 영어공용화에 대한 관심이 <언어의 죽음>으로 온 것은, 공용화된 이후의 이전의 언어에 대한 시각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한 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며, 그 언어들이 매일같이 몇개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언어가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 등등의 다른 거대어들에 의해 잊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 이전에 저자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를 통해 영어로 단일화되어가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 다른 언어들의 소멸에 대한 메세지를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왜 영어는 세계어인가>에 대한 보충물이라고 말한다.

  "이에 나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에 대한 일종의 보충서인 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 손실에 대한 정보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전문가 집단의 보고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언어 사상 중대한 순간에 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현실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책은 그렇다는 주장을 담고 있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책의 목표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어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가? 언어는 왜 죽는가? - 그리고 왜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가?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어려운 질문을 다루고 있다. 언어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응할 방법은 있는가? 대응해야 하는가?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특히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면밀하고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대답은 힘찬 '그렇다'와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수두룩하다. 언어의 죽음 또한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일이다. 우리는 만일 영어공용화가 선언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어느 소수의 사람들만이 느끼고 있는 그 절실함이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언어의 죽음>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 언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2. 언어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3. 언어는 왜 죽는가, 4.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5.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를 통해서 언어의 죽음을 기정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왜 우리의 일상적 삶과 연계해 중요하며, 그렇다면 왜 일어나는지,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어교체는 통상 (개인이나 집단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위기 언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보게 되는 용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언어손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능력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어유지는 사람들이 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특별한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충성은 한 언어에 대한 위협이 인식되었을 때 그 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38쪽 각주)

   우리는 현재 언어유지 상태에 있지만, 영어공용화는 언어교체를 불러올 것이고, 언어교체는 곧 언어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언어유지 상태가 언어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언어충성도가 그만큼 중요하게 된다. 굳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언어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언어의 죽음

  전 세계적으로 언어분포는 대단히 불균등하다. 4% 정도가 유럽에, 그리고 15% 정도가 아메리카에, 31% 정도가 아프리카에, 50% 정도가 아시아와 태평양에 분포해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언급한 국가는 언어가 가장 많인 분포되어 있는 나라들이고, 파푸아뉴기니나 인도네시아만 해도 전체의 25% 정도에 해당하는 ,1529가지 언어가 있다고 한다. 정말 어머어마한 숫자다. 한 국가나 대륙에만 해도 이만큼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 언어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에 의존할까. 사실 정확히 어떤 것은 한개의 언어다, 라고 규정지을 만한 기준은 없다. 한국어의 경우 서울말과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는 각각의 언어가 아니라 한국어라는 범주안에들어가지만,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더 나뉘어질수도 있다. 영어의 경우에는 경계가 더 모호해진다.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는 그렇다치고, 아시아 영어가 있고, 그 중에서도 일본식 영어, 필리핀식 영어가 존재한다. 분명히 같은 언어이지만 지역과 특색에 따라 서로 못알아듣는 경우도 발생한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에 따르면 이런 경우 그 나라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고 달라지는 경우에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꽤나 직접적인 통계와 자료를 통해 언어의 죽음을 논한다. 33쪽에 있는 표에 따르면 1억명 이상의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8가지이며, 이는 전체 언어의 0.13 %에 불과하다. 또 1천만엔서 9,900만이 사용하는 언어는 72가지이며, 이 또한 숫자에 비해서는 극히 적은 비율인 전체언어의 1.2%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라는 것이 이름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저 8+72가지 안에 모두 속할 것이고, 그나마도 다 알지 못할 것일진대, 엄청나게 많은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언어들은 아주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사라진다해도 그들의 절실함이 우리에게까지 진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엄밀한 사실이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들이 왜 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언어를 보존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렇게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이 언어의 마지막 생존자여서 누군가와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그저 언어의 기록물일 뿐이다. 내가 사라진다면 언어 또한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언어가 있다면, 그야말로 원주민들끼리의 입말만이 존재한다면 그 언어는 아예 애초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언어가 사라짐은 물론 언어의 존재 사실 조차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비극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경우이고(극단적이라고 해서 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극단은 비극과 연결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라도 언어가 원래 언어를 사용했던 이들 다수에게서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죽어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록 문서로 기록되어있다하더라도 더 이상 언어가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죽은 것이다.


  언어는 왜 죽는가

  첫째, 한 언어의 사용자 수는 우선 자연재해로 인해 심각하게 줄어들 수 있다. 태풍, 지진, 해일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죽음을 당함으로써 언어 또한 사장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언어의 숫자는 엄청나다. 하나의 언어를 천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쓰는 경우는 허다하며, 그 아래의 숫자, 수십명, 수백명이서 사용하는 언어 또한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충분히 언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이 될 수 있다.

  둘째, 문화흡수현상이다. 이는 "한 문화가 좀 더 지배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특성을 잃어 가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이 새로운 행동 양식과 습속을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첫째보다는 이 두번째 현상에 가까울 것이다. 주변의 가까운 나라들에 의해 언어는 분명 감염되어가고 있지만, 이것은 우려할 바는 아니며, 더 두려운 것은 하나의 문화나 언어가 하나의 문화와 언어를 흡수통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크게 세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하나가 지배 언어의 압력이며, 두번째가 두개 언어를 병용하는 상태이고, 세번째가 원래 언어가 새 언어에게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다. 바로 이것이 영어공용화에 있어서 복거일이 주장하는 바이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어는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첫째, 점점 더 사멸 위험이 커지고 있는 언어에서 그 언어를 구조하려는 동기가 있다고 할 때, 그 언어으 ㅣ어떤 형태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둘째, 좀 더 넓은 관점의 문제가 있다. 토착민 공동체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는 토착 문화에 반드시 포함되는 부분인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종류의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첫째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공동체 전체의 정통성을 증진할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낱말이나 발음, 문법형식 등 모든 것을 수용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고종석의 논리와 비슷하다. 언어의 진정한 생명은 변이의 폭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고, 변화하지 않는 언어는 죽은 언어 뿐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문제에 있어선 언어를 문화의 일부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자기 조상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 믿고 또 외관과 행동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토착민 공동체 속에 그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실제로 일부 보고에 따름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유력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

  언어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문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는 많다. "한편, 옛날이야기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구연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고, 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지혜의 많은 부분 또한 새 언어로 설명과 논의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새로운 언어는 이야기가 지니는 온기와 정신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 못할 것이고, 말의 응수도 잃게 되며, 일화나 농담도 그 재미가 빠져 버릴 것이다. 의례에서 사용되는 표현도 운율과 음률의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 것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지니는 이런 한계는 잘 알려져 있고 모든 언어에 공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프랑스 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의 삶과 문화, 생각을 대단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위기 언어의 문화적 무게를 그 언어를 교체해 들어가고 있는 지배 언어로부터 일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첫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들의 지위가 향상되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둘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유해지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셋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의 법적 권한이 강화되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넷째, 위기 언어는 교육계 내에서 자리 잡은 사용자들이 많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다섯째, 위기언어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글로 적을 수 있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여섯째, 위기 언어는 사용자들일 전자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제시하고 있는 여섯가지 방안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겐 그다지 먹힐 것 같진 않다. 우리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위기언어'까지 도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공용화 이후의 영어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먼 훗날 가능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 세계에서 매우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중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으므로 당장의 앞날을 걱정하진 않아도 되지만, 영어공용화는 충분히 이에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매우 학술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접하기 딱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쪽 방면에 관심이 있는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며, 저자의 오랜 시간 공들인 언어의 죽음에 대한 지식과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글자크기가 작고 내용이 딱딱해 읽는데엔 시간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또한 접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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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6-12-28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또 하나의 논문이네요.;; ㅠ_ㅠ
아프락사스님 덕분에 영어공용화 논쟁에 관심을 한번 가져보려고 했어요. 지난번부터요. 마음이 더 끌리게 되면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마늘빵 2006-12-2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길죠? ^^ 이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관련 책들을 다 보고 있어요. 흐름이 끊기면 또 관심도 전환되기 마련인지라. 재밌어요. 이건 좀 학술적이긴 해요. 처음부터 접하기엔 흥미는 좀 떨어질거에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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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계기로 영어공용화 논쟁은 신문에서 책으로 무대를 옮겼다. 논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 복거일을 시작으로  책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좀더 심도 깊게 영어공용화를 논하고 있다. 복거일은 영어공용화 논쟁의 반대자들이 거론하는 가장 큰 문제로 민족주의를 든다. "민족주의가 강렬하지 않은 사회가 있을리 없지만, 우리 사회처럼 민족주의가 모든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뒤틀리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시민들의 애국심이라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우리 사회를 실제로 이롭게 하려면, 거친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일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영어공용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2부에 가서야 나오기 시작한다. 복거일은 '1부 '지구제국' 시대의 민족주의'를 통해서 일차적으로 그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거친 민족주의의 예와 이를 올바로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이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공용화 주장의 반대의견으로 등장하는 대다수의 논거가 민족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복거일이 민족주의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놓으려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큰 가치로 여기고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적 강제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민족적 특질들에 따라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그것은 나라를 이루는데 주력이 되는 민족에 속하는 개인들이 소수 민족들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더 큰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민족이 정의하기 어렵고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민족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자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조화시키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아니 한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배척하지 아니 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리라고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족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런 이익의 추구가 다른 민족국가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만을 둘 따름이다. 거기에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두 이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기 위한 논변들은 꽤나 그럴듯하게 제시되고 있고, 또 논쟁을 떠나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이를 제어해야 하나는 목소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결국 그가 이야기하려는 영어공용화에 대한 근거로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영어공용화 반대의 목소리 중 일부를 잠재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반대자 전부를 민족주의자로 규정짓고 이에 대한 반박을 가함으로써 자기의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복거일은 영어공용화 논쟁을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로 규정짓고 있지만, 영어공용화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시각이란 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주의'보다는 '자유주의'가 한결 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옳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영어공용화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건 잘못이다.

  영어공용화 반대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이 나왔고, 그 중 다수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반론도 있으며, 오히려 복거일의 주장보다는 그들의 주장이 더 정당성의 근거를 획득하기 쉽다. 영어공용화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한 한학성의 책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가 아닌 다른 구도도 얼마든지 있으며, 민족주의저이지 않으면서도 영어공용화 반대를 할 수 있음을, 해서는 안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초점이 영어공용화여야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여서는 곤란하다. 그거 복거일이 말하는 자유주의라는 것은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우리 모두가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출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언어의 죽음>이란 책을 통해서봐도 수많은 언어들이 매일같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어의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가 쇠멸할 것이라 예상되면 어떻게든 한국어의 생존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 터이다. 이는 민족주의자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자로서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그것이 한국어든, 한국어가 아니든.

  복거일은 민족어가 완전히 쇠멸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미 다른 공용어에 밀려 힘을 잃었고, 그의 말마따나 '박물관 언어'로 전락했을 터다. 그러나 '박물관 언어'로서 한국어를 계속 보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살아있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대화를 나누고, 모든 공식 문서들은 영어로 이루어져있다면, 한국어는 그저 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한 연구대상으로서의 언어일 뿐이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것은 영어공용화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영어단일화이며, 한국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점점 떠날 것이고, 궁극에는 입말이 아닌 글말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글말만이 남아 보존되는 형편이라면, 그것을 살아있는 언어라 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크리스털에 의하면 언어는 그것을 입말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살아있다. 그러나 대화엔 나와 너가 필요한 법인데, 나만 한국어를 하고 너는 영어를 한다면 이미 이 상황에서부터 한국어는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장하는 바는, 한국어를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가 아닌 내가 사용해왔고 사용하는 언어를 살리자는 것이다. 강제로 국가가 언어를 규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이는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한국어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외국어에 의해 감염된다 하더라도 감염된 이후에도 그것은 한국어다. 우리는 감염된 언어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다른 언어를 통해서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론 감염된 언어는 과거의 순수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대화단절의 결과를 맞이하게 하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두개의 언어를,  두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세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언어생활을 위해서도, 문화적 풍부함을 위해서도 더 좋을터이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맡길 일이고, 언어를 바꾸자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나더. 복거일은 책을 통해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따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국익'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를 이룬 개인들의 이익 집합을 나타내는 '간략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들의 함수다." 그러나 이는 집합의 오류다. 개인들의 이익의 합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며, 국가의 이익 또한 그것이 분리되고 나누어진다고 하여 개인들의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물은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로 이루어져있지만,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곧 물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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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2-2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의 함수가 아닙니다. 명백히!
함수는요, 정의역의 한 값에 대하여 공역에 하나의 대응이 있어야 하는데요.
<이익>은 분명히 한 놈이 여럿을 가진 것이거든요. 그래서 '영어공용화'는 함수와 자유주의를 표명하고 발설하지만, 그놈들은 <가진자들의 제국>을 꿈꾼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책들, 저도 대학원 다닐 때 집중적으로 읽었더랬는데, 대학원이라도 다니시나봐요.^^

마늘빵 2006-12-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습니다. 개인들의 이익의 합이 국익, 국익이 개인들의 이익의 합으로 환산되는건 아니죠. 글샘님은 국문학 하셨죠? ^^ 전 대학원에서 다루는건 아니고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대학원은 다니지만 윤리학 전공입니다.

2007-01-13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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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저축과 투자의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는가? 만약 안다면 재테크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본개념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는 '한번 배워 평생 가는 똑똑한 재테크 습관'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고 있다. 사회생활한지 얼마 안돼서 여기저기 돈 쓰다보니깐 남아난 것도 없고, 대학시절 학자금대출 받은 것은 아직도 갚고 있는 중이고, 없는 돈이지만 뭔가 안될까 하고 이저저거 머리 좀 굴려보고픈 이들이 봐야할 책이 딱 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놀랍게도 재테크와 관련해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일수록 실현 가능성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닫는 것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독자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단돈 1000만 원이라도 빨리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부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달콤한 묘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통쾌해했다. 부자마인드 하나로 드라마틱하게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는 스토리에 열광했다." 

  그건 정말일테다. 지금껏 나온 재테크/실용 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던가. 부자들의 인생살이법이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나는 2년만에 몇 억을 벌었다 등등의 이런 제목들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같은 재테크 관련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달콤함은 조금도 주지 않는다. 정말 쥐어짜란다. 허리띠 졸라매고 아둥바둥 살아 돈 빠짝 모으란다. 다만 옛 어른들 말씀과 다른 것은 그걸 가지고 고스란히 은행창구에 가서 계좌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은행을 버리라고, 은행을 버리고 투자를 하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옛 어른의 말씀과 다른 것은 그것 하나이다. 이 마인드를 가지고 이제 어떻게 투자하고 돈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방법을 알려준다. 최소한의 이런 마인드 - 허리띠 졸라매고 졸라게 저축하면서 그 돈으로 투자할 생각 - 이 없다면 더 이상 책장을 넘겨봐야 손만 아프다.

   이 책은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을 겨냥하고 있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대개 사회생활 이제 몇년 지닌 여자들과 군대 면제 받은 남자들, 그리고 제대하고 막 대학 졸업하고 취업에 겨우 성공한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이야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문제지, 돈 있으면 다 대학가니깐 절대다수가 '학사'를 기본으로 이력서를 꾸리니 대학을 안나온 이들을 여기에서 제외시켰다고 해서 그들을 차별한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런 흐름 속에서는 대학을 안가는 이들이 더 특수한 경우이므로, 그들에게는 또다른 인생설계법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재테크 마인드와 몇몇 방법들은 실제로 내가 머리 속에 생각해놓고 있는 바였다. 그간 신문을 보면서 아 나도 이거 해봐야지, 저거 해보면 어떨까, 이런 막연한 그림은 그리고 있었는데, 일단 돈이 없다는 것, 대출금까지 하면 내 통장은 마이너스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본 뒤에도 나는 아직 대출금 때문에 발벗고 나설 수 없는 형편이지만, 최소한 대출금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졌다. 예전엔 아 대출금 언제 갚아, 이것 때문에 안돼, 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대출금으로 생겨나는 이자가 내가 대출금을 갚지 않고 돈 모아 투자해서 얻어낼 수 있는 이익금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돈이 조금 있더라도 대출금을 먼저 갚는 것이 우선이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런 것이 이 책을 읽은 효과이다. 그래 나 돈없어,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돈이 없어도 조금만 모으면 최소한 100만원만 있어도 투자는 가능하고, 매달 꼬박꼬박 월급들어온다면,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전제하에, 돈이 금방 모일 수 있고, 이걸 가지고 투자연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깨달았다. 나는 세대주도 아닌지라 청약어쩌구 가입하지도 못하니, 또 큰 목돈이 있어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통장을 이자주지도 않는 은행통장으로 하지 말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일단 재테크의 첫 발을 밟은 것이라고.

  184쪽 에는 도식이 하나 그려져있다. 나는 이제 어디에 해당되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A에서 J까지의 타입을 나누고, 내가 어디에 해당하는가인데, 나는 E 유형이다. "내 집 마련이 가장 힘든 상황이다. 종자돈 모으기와 청약통장 만들기를 하루라도 빨리 병행해야 한다." 며 일단 청약통장을 준비하라 하지만 난 세대주가 아니라구우우. 이거 가짜로 어떻게 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나는 대출금이 먼저인걸. -_- 아 오늘 대출금 나가는 날인데 확인해봐야겠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함없는 사실은 내가 '재테크를 하기에는'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지만, 재테크 마인드는 생겼다. 의욕은 넘친다. 자 이제 허리띠 졸라 졸라. 근데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이브와 크리스마스에는 돈 좀 써주자고. (됐어됐어 그런 마인드가 이미 넌 글러먹었다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특별한 날엔 돈 써야지 맨날 어떻게 아득바득 모으고 있어 써써)

  자 이제 내가 제일 먼저 재테크를 위해 할 일은, 월급통장 바꾸고 대출금 얼른 갚는 것.

 

  잡설.

  아마도 추정컨대 지금까지 내가 돈 주고 구입한 자기계발서적은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21살 이래로, 딱 세번이다. <보물찾기> <남자생활백서>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그리고 굳이 하나를 더 말하자면 철학자 탁석산의 <대한민국 50대의 힘>인데, 이건 분류만 자기계발이지 자기계발이라고 하긴 뭣하기 때문에 패스. 딱 이 세 권은 모두 구입결과 대만족이었다.

  대놓고 나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등에 반감을 표했지만, 자꾸 이래되면 대놓고 반감을 표현할 수 없다고. 구입한 실용서적들이 100% 만족감을 주면 어쩌자는거야. 분명한 것은 아직도 나는 서점에 깔리는 많은 자기계발/실용서 중 다수가 쓰레기라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점  -그치만 그 중 이렇게 잘만 발굴해서 보면, 때로는 그것들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음으로써 대개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그중 쓰레기가 아님을 증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형 인간>과 같은 안좋은 책들이 나오기 때문에(내가 아침형 인간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 이다. 또다시 그러나, 몇 차례의 이런 선택의 결과로 이쪽 부류의 책들에 대한 전반적인 혐오나 반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도 자기계발서적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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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12-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알아봤더니 월세 들어와있는 집주인께서 원하면 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아직 일단은 대출금이 먼저 인거 같아서요. 대출금 빼고 다음달부터 매달 꼬박꼬박 조금씩이라도 해볼까 생각중여요. ^^

놀자 2006-12-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재테크 서적 몇권을 봤는데 별로더라구요. 그래서 관심을 끊었는데
이 책은 좋다니 읽어봐야겠어요.^^ 감사~

마늘빵 2006-12-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자님 / 네 이 책은 괜찮으실 겁니다. 재테크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치 않으시다면. 다른 것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괜찮은 거.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 갔더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 내용은 별로겠군, 했는데. 하핫. 보고싶어졌어요.

마늘빵 2006-12-2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지 않는 사람님 / 네 이거 재테크 쪽 베스트셀러인거 같아요. 꽤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테크에 대한 마인드와 전반적인 안내가 친절합니다.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10월
절판


이에 나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에 대한 일종의 보충서인 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 손실에 대한 정보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전문가 집단의 보고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언어 사상 중대한 순간에 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현실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책은 그렇다는 주장을 담고 있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책의 목표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어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가? 언어는 왜 죽는가? - 그리고 왜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가?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어려운 질문을 다루고 있따. 언어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응할 방법은 있는가? 대응해야 하는가?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특히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면밀하고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대답은 힘찬 '그렇다'와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11쪽

만일 내가 한 가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라면 내 언어는 의사 소통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죽은 것이다. 언어는 말 할 대상이 있을 때에만 정말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은 나 혼자뿐일 때 내 언어에 대한 나의 지식은 과거 내 일족이 사용한 구어의 저장소 내지 기록 보관소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일 그 언어가 문자화 된 적이 없거나 기록된 적이 없다면 남아 있는 것은 그게 전부이다. (그런 언어가 아직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보관소는 보관자가 죽은 지 오래된 뒤에도 계속 존재하지만, 문자나 테이프로 기록되지 않은 언어는 마지막 사용자가 죽는 순간 보관소 또한 영영 사라져 버린다. 하나의 언어가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은 채 죽으면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17쪽

물론 그 가운데 다수는 같은 언어의 여러 방언을 가리키는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별할 때 다른 방향의 어려움이 야기된다. 주어진 이름이 있을 때, 그것은 한 가지 언어 전체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의 방언을 가리키는가? 언어 체계가 두 가지 있을 때 이를 두 가지 별개 언어로 생각해야 하는가, 한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언어학자들의 논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지도 한 세기 이상 지났다. ... 중략 ...
간단히 설명하면,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언어 체계가 (두드러지게)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면 이 둘은 같은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한다. ... 중략 ... 반면에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보다 정치, 사회학적 기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도 있어서, 서로 이해가 가능한데도 별개의 언어로 취급되는 언어 체계도 있다.
... 중략 ...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영어의 새로운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재로는 싱가포르 어, 가나 어, 카리브 어, 또 그 밖의 '신종영어'들을 '영어의 변종'쯤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지역에서 정치, 사회적 움직임이 생겨나 이런 영어가 장차 하나의 언어로 '승격'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24-27쪽

언어는 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죽었다고 표현한다. 물론 기록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 있는 언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은 말할 상대방이 없으면 유창한지 아닌지를 보여줄 수 없으므로, 하나의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한 명 남았을 때, 그리고 젊은 층에서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러나 두 명 또는 스무명, 또는 200명이 남았을 때는 어떨까? 언어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야 할까? -28-29쪽

각주 밑줄

언어교체는 통상 (개인이나 집단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위기 언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보게 되는 용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언어손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능력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어유지는 사람들이 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특별한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충성은 한 언어에 대한 위협이 인식되었을 때 그 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38쪽

문화란 주로 말과 글이라는 언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죽음으로 인해 언어의 전달이 무너지면 지식 상속에 심각한 손실이 일어난다. 즉, 언어의 다양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우리가 끌어 쓸 수 있는 지식 기반이 낮아지기 때문에 인류이 적응력이 감소하는 것이다.-60쪽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서 세계관을 또 다른 훌륭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면 객관적인 취향을 개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T.S.엘리엇) -85쪽

특정 견해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죽은 언어를 분석하고 추론하고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는 소위 지적 훈련 때문이 아니다. 지적 훈련은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그 언어로만 그 견해가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86쪽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흡수할 때 위기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지배 언어를 말해야 한다는 지대한 압력이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이런 압력은 정치, 사회, 또는 경제적 차원에서 행사된다. 보상이나 추천, 또는 정부나 전국 기관이 도입한 법률 등의 형태를 띠는 '하향식' 압력일수도 있고, 소속 사회의 유행이나 동류 집단의 압력 형태를 띠는 '상향식' 일수도 있으며, 또는 부분적으로만 인식되고 이해되는 정치, 사회적, 경제, 사회적 요인들 간의 상호 작용 결과 뚜렷한 방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압력이 어디에서 오든 결과적으로는 - 제 2단계 - 두 개 언어를 병용하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원래 언어 사용 능력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점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게 도니다. 그러다가 (대개는 급속도로) 두 개 언어 병용 상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언어가 새 언어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121쪽

우리는 자기 조상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 믿고 또 외관과 행동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토착민 공동체 속에 그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실제로 일부 보고에 따름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유력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179-180쪽

언어 교체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 새로운 문화와 옛 문화는 물론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딴판도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 연구가 거의 시작되지도 않은 - 질문은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언어 교체가 일어날 때, 문화의 유지되는 부분과 잃는 부분은 무엇인가? 옛 언어의 어떤 요소들이 중대한 문화손실없이 새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가? 한편, 옛날이야기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구연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고, 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지혜의 많은 부분 또한 새 언어로 설명과 논의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새로운 언어는 이야기가 지니는 온기와 정신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 못할 것이고, 말의 응수도 잃게 되며, 일화나 농담도 그 재미가 빠져 버릴 것이다. 의례에서 사용되는 표현도 운율과 음률의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 것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지니는 이런 한계는 잘 알려져 있고 모든 언어에 공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프랑스 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의 삶과 문화, 생각을 대단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위기 언어의 문화적 무게를 그 언어를 교체해 들어가고 있는 지배 언어로부터 일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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