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계기로 영어공용화 논쟁은 신문에서 책으로 무대를 옮겼다. 논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 복거일을 시작으로  책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좀더 심도 깊게 영어공용화를 논하고 있다. 복거일은 영어공용화 논쟁의 반대자들이 거론하는 가장 큰 문제로 민족주의를 든다. "민족주의가 강렬하지 않은 사회가 있을리 없지만, 우리 사회처럼 민족주의가 모든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뒤틀리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시민들의 애국심이라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우리 사회를 실제로 이롭게 하려면, 거친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일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영어공용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2부에 가서야 나오기 시작한다. 복거일은 '1부 '지구제국' 시대의 민족주의'를 통해서 일차적으로 그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거친 민족주의의 예와 이를 올바로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이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공용화 주장의 반대의견으로 등장하는 대다수의 논거가 민족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복거일이 민족주의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놓으려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큰 가치로 여기고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적 강제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민족적 특질들에 따라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그것은 나라를 이루는데 주력이 되는 민족에 속하는 개인들이 소수 민족들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더 큰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민족이 정의하기 어렵고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민족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자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조화시키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아니 한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배척하지 아니 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리라고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족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런 이익의 추구가 다른 민족국가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만을 둘 따름이다. 거기에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두 이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기 위한 논변들은 꽤나 그럴듯하게 제시되고 있고, 또 논쟁을 떠나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이를 제어해야 하나는 목소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결국 그가 이야기하려는 영어공용화에 대한 근거로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영어공용화 반대의 목소리 중 일부를 잠재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반대자 전부를 민족주의자로 규정짓고 이에 대한 반박을 가함으로써 자기의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복거일은 영어공용화 논쟁을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로 규정짓고 있지만, 영어공용화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시각이란 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주의'보다는 '자유주의'가 한결 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옳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영어공용화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건 잘못이다.

  영어공용화 반대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이 나왔고, 그 중 다수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반론도 있으며, 오히려 복거일의 주장보다는 그들의 주장이 더 정당성의 근거를 획득하기 쉽다. 영어공용화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한 한학성의 책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가 아닌 다른 구도도 얼마든지 있으며, 민족주의저이지 않으면서도 영어공용화 반대를 할 수 있음을, 해서는 안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초점이 영어공용화여야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여서는 곤란하다. 그거 복거일이 말하는 자유주의라는 것은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우리 모두가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출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언어의 죽음>이란 책을 통해서봐도 수많은 언어들이 매일같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어의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가 쇠멸할 것이라 예상되면 어떻게든 한국어의 생존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 터이다. 이는 민족주의자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자로서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그것이 한국어든, 한국어가 아니든.

  복거일은 민족어가 완전히 쇠멸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미 다른 공용어에 밀려 힘을 잃었고, 그의 말마따나 '박물관 언어'로 전락했을 터다. 그러나 '박물관 언어'로서 한국어를 계속 보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살아있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대화를 나누고, 모든 공식 문서들은 영어로 이루어져있다면, 한국어는 그저 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한 연구대상으로서의 언어일 뿐이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것은 영어공용화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영어단일화이며, 한국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점점 떠날 것이고, 궁극에는 입말이 아닌 글말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글말만이 남아 보존되는 형편이라면, 그것을 살아있는 언어라 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크리스털에 의하면 언어는 그것을 입말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살아있다. 그러나 대화엔 나와 너가 필요한 법인데, 나만 한국어를 하고 너는 영어를 한다면 이미 이 상황에서부터 한국어는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장하는 바는, 한국어를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가 아닌 내가 사용해왔고 사용하는 언어를 살리자는 것이다. 강제로 국가가 언어를 규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이는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한국어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외국어에 의해 감염된다 하더라도 감염된 이후에도 그것은 한국어다. 우리는 감염된 언어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다른 언어를 통해서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론 감염된 언어는 과거의 순수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대화단절의 결과를 맞이하게 하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두개의 언어를,  두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세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언어생활을 위해서도, 문화적 풍부함을 위해서도 더 좋을터이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맡길 일이고, 언어를 바꾸자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나더. 복거일은 책을 통해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따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국익'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를 이룬 개인들의 이익 집합을 나타내는 '간략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들의 함수다." 그러나 이는 집합의 오류다. 개인들의 이익의 합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며, 국가의 이익 또한 그것이 분리되고 나누어진다고 하여 개인들의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물은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로 이루어져있지만,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곧 물인 것은 아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6-12-2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의 함수가 아닙니다. 명백히!
함수는요, 정의역의 한 값에 대하여 공역에 하나의 대응이 있어야 하는데요.
<이익>은 분명히 한 놈이 여럿을 가진 것이거든요. 그래서 '영어공용화'는 함수와 자유주의를 표명하고 발설하지만, 그놈들은 <가진자들의 제국>을 꿈꾼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책들, 저도 대학원 다닐 때 집중적으로 읽었더랬는데, 대학원이라도 다니시나봐요.^^

마늘빵 2006-12-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습니다. 개인들의 이익의 합이 국익, 국익이 개인들의 이익의 합으로 환산되는건 아니죠. 글샘님은 국문학 하셨죠? ^^ 전 대학원에서 다루는건 아니고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대학원은 다니지만 윤리학 전공입니다.

2007-01-13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