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10월
절판


이에 나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에 대한 일종의 보충서인 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 손실에 대한 정보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전문가 집단의 보고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언어 사상 중대한 순간에 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현실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책은 그렇다는 주장을 담고 있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책의 목표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어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가? 언어는 왜 죽는가? - 그리고 왜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가?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어려운 질문을 다루고 있따. 언어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응할 방법은 있는가? 대응해야 하는가?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특히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면밀하고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대답은 힘찬 '그렇다'와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11쪽

만일 내가 한 가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라면 내 언어는 의사 소통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죽은 것이다. 언어는 말 할 대상이 있을 때에만 정말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은 나 혼자뿐일 때 내 언어에 대한 나의 지식은 과거 내 일족이 사용한 구어의 저장소 내지 기록 보관소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일 그 언어가 문자화 된 적이 없거나 기록된 적이 없다면 남아 있는 것은 그게 전부이다. (그런 언어가 아직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보관소는 보관자가 죽은 지 오래된 뒤에도 계속 존재하지만, 문자나 테이프로 기록되지 않은 언어는 마지막 사용자가 죽는 순간 보관소 또한 영영 사라져 버린다. 하나의 언어가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은 채 죽으면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17쪽

물론 그 가운데 다수는 같은 언어의 여러 방언을 가리키는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별할 때 다른 방향의 어려움이 야기된다. 주어진 이름이 있을 때, 그것은 한 가지 언어 전체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의 방언을 가리키는가? 언어 체계가 두 가지 있을 때 이를 두 가지 별개 언어로 생각해야 하는가, 한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언어학자들의 논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지도 한 세기 이상 지났다. ... 중략 ...
간단히 설명하면,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언어 체계가 (두드러지게)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면 이 둘은 같은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한다. ... 중략 ... 반면에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보다 정치, 사회학적 기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도 있어서, 서로 이해가 가능한데도 별개의 언어로 취급되는 언어 체계도 있다.
... 중략 ...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영어의 새로운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재로는 싱가포르 어, 가나 어, 카리브 어, 또 그 밖의 '신종영어'들을 '영어의 변종'쯤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지역에서 정치, 사회적 움직임이 생겨나 이런 영어가 장차 하나의 언어로 '승격'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24-27쪽

언어는 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죽었다고 표현한다. 물론 기록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 있는 언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은 말할 상대방이 없으면 유창한지 아닌지를 보여줄 수 없으므로, 하나의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한 명 남았을 때, 그리고 젊은 층에서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러나 두 명 또는 스무명, 또는 200명이 남았을 때는 어떨까? 언어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야 할까? -28-29쪽

각주 밑줄

언어교체는 통상 (개인이나 집단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위기 언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보게 되는 용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언어손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능력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어유지는 사람들이 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특별한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충성은 한 언어에 대한 위협이 인식되었을 때 그 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38쪽

문화란 주로 말과 글이라는 언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죽음으로 인해 언어의 전달이 무너지면 지식 상속에 심각한 손실이 일어난다. 즉, 언어의 다양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우리가 끌어 쓸 수 있는 지식 기반이 낮아지기 때문에 인류이 적응력이 감소하는 것이다.-60쪽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서 세계관을 또 다른 훌륭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면 객관적인 취향을 개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T.S.엘리엇) -85쪽

특정 견해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죽은 언어를 분석하고 추론하고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는 소위 지적 훈련 때문이 아니다. 지적 훈련은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그 언어로만 그 견해가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86쪽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흡수할 때 위기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지배 언어를 말해야 한다는 지대한 압력이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이런 압력은 정치, 사회, 또는 경제적 차원에서 행사된다. 보상이나 추천, 또는 정부나 전국 기관이 도입한 법률 등의 형태를 띠는 '하향식' 압력일수도 있고, 소속 사회의 유행이나 동류 집단의 압력 형태를 띠는 '상향식' 일수도 있으며, 또는 부분적으로만 인식되고 이해되는 정치, 사회적, 경제, 사회적 요인들 간의 상호 작용 결과 뚜렷한 방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압력이 어디에서 오든 결과적으로는 - 제 2단계 - 두 개 언어를 병용하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원래 언어 사용 능력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점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게 도니다. 그러다가 (대개는 급속도로) 두 개 언어 병용 상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언어가 새 언어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121쪽

우리는 자기 조상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 믿고 또 외관과 행동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토착민 공동체 속에 그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실제로 일부 보고에 따름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유력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179-180쪽

언어 교체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 새로운 문화와 옛 문화는 물론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딴판도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 연구가 거의 시작되지도 않은 - 질문은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언어 교체가 일어날 때, 문화의 유지되는 부분과 잃는 부분은 무엇인가? 옛 언어의 어떤 요소들이 중대한 문화손실없이 새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가? 한편, 옛날이야기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구연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고, 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지혜의 많은 부분 또한 새 언어로 설명과 논의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새로운 언어는 이야기가 지니는 온기와 정신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 못할 것이고, 말의 응수도 잃게 되며, 일화나 농담도 그 재미가 빠져 버릴 것이다. 의례에서 사용되는 표현도 운율과 음률의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 것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지니는 이런 한계는 잘 알려져 있고 모든 언어에 공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프랑스 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의 삶과 문화, 생각을 대단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위기 언어의 문화적 무게를 그 언어를 교체해 들어가고 있는 지배 언어로부터 일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