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접하는 저자이지만 이쪽 방면에서는 세계적으로 꽤나 유명한 사람인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복거일에게서 시작된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관심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영어공용화 논쟁은 많은 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세계시민주의, 언어 등등. 영어공용화에 대한 관심이 <언어의 죽음>으로 온 것은, 공용화된 이후의 이전의 언어에 대한 시각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한 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며, 그 언어들이 매일같이 몇개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언어가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 등등의 다른 거대어들에 의해 잊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 이전에 저자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를 통해 영어로 단일화되어가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 다른 언어들의 소멸에 대한 메세지를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왜 영어는 세계어인가>에 대한 보충물이라고 말한다.

  "이에 나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에 대한 일종의 보충서인 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 손실에 대한 정보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전문가 집단의 보고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언어 사상 중대한 순간에 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현실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책은 그렇다는 주장을 담고 있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책의 목표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어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가? 언어는 왜 죽는가? - 그리고 왜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가?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어려운 질문을 다루고 있다. 언어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응할 방법은 있는가? 대응해야 하는가?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특히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면밀하고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대답은 힘찬 '그렇다'와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수두룩하다. 언어의 죽음 또한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일이다. 우리는 만일 영어공용화가 선언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어느 소수의 사람들만이 느끼고 있는 그 절실함이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언어의 죽음>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 언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2. 언어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3. 언어는 왜 죽는가, 4.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5.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를 통해서 언어의 죽음을 기정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왜 우리의 일상적 삶과 연계해 중요하며, 그렇다면 왜 일어나는지,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어교체는 통상 (개인이나 집단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위기 언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보게 되는 용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언어손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능력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어유지는 사람들이 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특별한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충성은 한 언어에 대한 위협이 인식되었을 때 그 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38쪽 각주)

   우리는 현재 언어유지 상태에 있지만, 영어공용화는 언어교체를 불러올 것이고, 언어교체는 곧 언어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언어유지 상태가 언어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언어충성도가 그만큼 중요하게 된다. 굳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언어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언어의 죽음

  전 세계적으로 언어분포는 대단히 불균등하다. 4% 정도가 유럽에, 그리고 15% 정도가 아메리카에, 31% 정도가 아프리카에, 50% 정도가 아시아와 태평양에 분포해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언급한 국가는 언어가 가장 많인 분포되어 있는 나라들이고, 파푸아뉴기니나 인도네시아만 해도 전체의 25% 정도에 해당하는 ,1529가지 언어가 있다고 한다. 정말 어머어마한 숫자다. 한 국가나 대륙에만 해도 이만큼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 언어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에 의존할까. 사실 정확히 어떤 것은 한개의 언어다, 라고 규정지을 만한 기준은 없다. 한국어의 경우 서울말과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는 각각의 언어가 아니라 한국어라는 범주안에들어가지만,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더 나뉘어질수도 있다. 영어의 경우에는 경계가 더 모호해진다.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는 그렇다치고, 아시아 영어가 있고, 그 중에서도 일본식 영어, 필리핀식 영어가 존재한다. 분명히 같은 언어이지만 지역과 특색에 따라 서로 못알아듣는 경우도 발생한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에 따르면 이런 경우 그 나라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고 달라지는 경우에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꽤나 직접적인 통계와 자료를 통해 언어의 죽음을 논한다. 33쪽에 있는 표에 따르면 1억명 이상의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8가지이며, 이는 전체 언어의 0.13 %에 불과하다. 또 1천만엔서 9,900만이 사용하는 언어는 72가지이며, 이 또한 숫자에 비해서는 극히 적은 비율인 전체언어의 1.2%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라는 것이 이름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저 8+72가지 안에 모두 속할 것이고, 그나마도 다 알지 못할 것일진대, 엄청나게 많은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언어들은 아주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사라진다해도 그들의 절실함이 우리에게까지 진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엄밀한 사실이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들이 왜 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언어를 보존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렇게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이 언어의 마지막 생존자여서 누군가와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그저 언어의 기록물일 뿐이다. 내가 사라진다면 언어 또한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언어가 있다면, 그야말로 원주민들끼리의 입말만이 존재한다면 그 언어는 아예 애초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언어가 사라짐은 물론 언어의 존재 사실 조차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비극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경우이고(극단적이라고 해서 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극단은 비극과 연결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라도 언어가 원래 언어를 사용했던 이들 다수에게서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죽어간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록 문서로 기록되어있다하더라도 더 이상 언어가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죽은 것이다.


  언어는 왜 죽는가

  첫째, 한 언어의 사용자 수는 우선 자연재해로 인해 심각하게 줄어들 수 있다. 태풍, 지진, 해일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죽음을 당함으로써 언어 또한 사장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언어의 숫자는 엄청나다. 하나의 언어를 천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쓰는 경우는 허다하며, 그 아래의 숫자, 수십명, 수백명이서 사용하는 언어 또한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충분히 언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이 될 수 있다.

  둘째, 문화흡수현상이다. 이는 "한 문화가 좀 더 지배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특성을 잃어 가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이 새로운 행동 양식과 습속을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첫째보다는 이 두번째 현상에 가까울 것이다. 주변의 가까운 나라들에 의해 언어는 분명 감염되어가고 있지만, 이것은 우려할 바는 아니며, 더 두려운 것은 하나의 문화나 언어가 하나의 문화와 언어를 흡수통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크게 세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하나가 지배 언어의 압력이며, 두번째가 두개 언어를 병용하는 상태이고, 세번째가 원래 언어가 새 언어에게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다. 바로 이것이 영어공용화에 있어서 복거일이 주장하는 바이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어는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첫째, 점점 더 사멸 위험이 커지고 있는 언어에서 그 언어를 구조하려는 동기가 있다고 할 때, 그 언어으 ㅣ어떤 형태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둘째, 좀 더 넓은 관점의 문제가 있다. 토착민 공동체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는 토착 문화에 반드시 포함되는 부분인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종류의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첫째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공동체 전체의 정통성을 증진할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낱말이나 발음, 문법형식 등 모든 것을 수용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고종석의 논리와 비슷하다. 언어의 진정한 생명은 변이의 폭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고, 변화하지 않는 언어는 죽은 언어 뿐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문제에 있어선 언어를 문화의 일부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자기 조상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 믿고 또 외관과 행동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토착민 공동체 속에 그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실제로 일부 보고에 따름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유력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

  언어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문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는 많다. "한편, 옛날이야기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구연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고, 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지혜의 많은 부분 또한 새 언어로 설명과 논의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새로운 언어는 이야기가 지니는 온기와 정신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 못할 것이고, 말의 응수도 잃게 되며, 일화나 농담도 그 재미가 빠져 버릴 것이다. 의례에서 사용되는 표현도 운율과 음률의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 것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지니는 이런 한계는 잘 알려져 있고 모든 언어에 공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프랑스 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의 삶과 문화, 생각을 대단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위기 언어의 문화적 무게를 그 언어를 교체해 들어가고 있는 지배 언어로부터 일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첫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들의 지위가 향상되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둘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유해지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셋째, 위기 언어는 지배 언어 공동체 내에서 사용자의 법적 권한이 강화되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넷째, 위기 언어는 교육계 내에서 자리 잡은 사용자들이 많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다섯째, 위기언어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글로 적을 수 있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여섯째, 위기 언어는 사용자들일 전자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면 발전을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제시하고 있는 여섯가지 방안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겐 그다지 먹힐 것 같진 않다. 우리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위기언어'까지 도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공용화 이후의 영어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먼 훗날 가능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 세계에서 매우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중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으므로 당장의 앞날을 걱정하진 않아도 되지만, 영어공용화는 충분히 이에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매우 학술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접하기 딱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쪽 방면에 관심이 있는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며, 저자의 오랜 시간 공들인 언어의 죽음에 대한 지식과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글자크기가 작고 내용이 딱딱해 읽는데엔 시간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또한 접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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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6-12-28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또 하나의 논문이네요.;; ㅠ_ㅠ
아프락사스님 덕분에 영어공용화 논쟁에 관심을 한번 가져보려고 했어요. 지난번부터요. 마음이 더 끌리게 되면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마늘빵 2006-12-2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길죠? ^^ 이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관련 책들을 다 보고 있어요. 흐름이 끊기면 또 관심도 전환되기 마련인지라. 재밌어요. 이건 좀 학술적이긴 해요. 처음부터 접하기엔 흥미는 좀 떨어질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