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神의 나라 -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
노 다니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주변국 일본과 관련된 문제라면 언제나 그것은 '대립'의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 매년 문제가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새로운 역사 교과서, 독도 문제, 헌법개정 등등의 사안들은 그네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한국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일본의 교육법과 교과서 검정 승인 문제조차도 우리는 한국과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이건 내정간섭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말한다. 그것은 당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고. 얼마전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올리자 일본은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노라 선포했다. 이건 전쟁을 의미한다. "당장 전쟁을 하겠다"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당신들과 전쟁을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정도로는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 중국, 한국 대 일본의 대결 구도는 해가 갈수록 점점 영원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한다.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도 미국과 맞먹는 세계 경제 대국의 위치를 내세우며 국제 사회에서 또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은 일본이 더 이상 자국의 안위만을 책임지고 방어하는 수준의 군사력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한국의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이다.

  과연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생각으로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주의주장은 거의 생략하고 있지만 일단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들어가는 듯 하다. 일본은 우경화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나 할까. 저자의 생각으로는 우경화의 한 가운데에는 일본 스스로 본국을 '신의 나라'로 인식하는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신의 나라에 대한 인식'의 근거로서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일본을 20년 이상 연구하고 경험한 한국인으로서 중립적인 시점에서 이 책을 쓰고자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지일'이 극일의 기초라는 생각에서 이다. 이 책의 목적은 일본인의 속마음을 느끼고 아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지, 일본의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하여 증오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한국인들은 사람에 따라 충격을 받거나, 분노하거나, 감동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책은 일본 지배 세력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내서이며 이야기책이다. 외국인에게 서울을 보여주는 관광안내인은 남대문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할 뿐, 평가는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공저하고 재미있게 소개만 하고자 한다. 그들의 생각과 언행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책 제목은 저자의 글쓴 의도와 다르게 이미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 신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의 이러한 일본의 못마땅한 모습들을 두고 일본은 결코 군사대국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며, 다시한번 아시아 지배의 야욕을 부리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탁석산(철학자)은 일본은 그저 보통국가의 모습을 갖추려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한편의 의견과는 달리 저자는 이미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에 대한 한편의 시각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것은 저들의 행태가 이미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 내의 우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저자는 글 쓴 의도와는 다르게 객관적 위치를 상실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의 말대로 이 책엔 주의주장은 담겨있지 않으며, 그저 잘 짜여진 한편의 레포트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성실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하여 잘 만든 레포트라고나 할까. 그저 일본을 공부하는데 있어 하나의 참고자료로서 그저 '참고'만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덧붙여 나의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나 또한 한국에서 교육받고 한국 언론의 일본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또한 한국의 주장이 틀렸다 에 대한 근거보다 일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 라는 주장의 근거들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본과 관련하여 터지고 있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대개의 한국인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애국자도 아니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저 하나의 개인으로서 존재하고픈 위인임에도 한국과 일본을 떠나 하나의 개인으로서 보더라도 일본의 최근의 행태들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안별로 보자면 조금 의견은 다르다. 독도문제와 교과서 역사 왜곡문제, 신사참배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그 밖의 아시아 국가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일본 자위군의 이라크 파병이나 헌법 개정 등의 사안에 있어서는 그것이 일본이 야심을 드러내는 근거라 생각지 않고, 하나의 보통국가로서 모습을 갖추려는 시도라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일본의 우파들이 아닌 다른 정치적 색깔을 가진 이들은, 혹은 정치적 색깔을 지니지 않은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우경화의 근거로서 신의 나라라는 인식을 들 수 있다면, 이에 반대하는 다른 세력들의 생각의 중심에는 천황과 신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것이 우파들 뿐 아니라 일본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근거라면 같은 근거에서 어떻게 다른 두 주장이 나왔을지도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 -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
노 다니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품절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생존의 길인 동시에 아시아 민족의 생존의 길이었다. 일본이 전쟁에 지기는 하였지만, 무력으로 모든 식민지에서 구미열강을 몰아내고, 그 결과 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차례차례 독립을 얻었던 것이다.<이부끼> (1996, 8월)-106쪽

일본의 천황주의는 다른 곳에서 보이는 민족주의와는 종류가 다르다. 민족주의란 국가라는 공동체를 정의하고 그 안에서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그 정체성의 기준을 민족이라는 것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인종적으로 동질성을 가진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 문화, 언어 등을 사고와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강하고 비합리적으로 발전하여 배타적인 성격을 띨 때 국수주의라 한다. 최근 한국이나 중국도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국수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이지 본질적인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주의는 나라의 정점에 천황이 서 있고 그 천황에 인격이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중심은 인간집단으로서 민족인 데 반해, 천황주의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천황이라는 것이며, 더구나 그 천황이 신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다. -108-10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생활백서 - 보다 행복해지기 위한 남자들의 생활 기술
에스콰이어남자생활연구회 엮음 / 가야북스 / 2006년 9월
품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여자에게는, 좀 더 현실적인 계산들이 머릿속에 들어차게 된다. 앞으로의 삶이 '춘향'이 될지 '향단'이 될지를 결저짓는 고리인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는 탓도 있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비교적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남자들은 그제에 언제 여자 손 한번 잡아볼지, 어떻게 하면 뽀뽀할 수 있을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철없는 모습을 버리고 그럴듯한 남성으로 변해간다. 경제력이 가져다주는 여유도 있다. 한때 그들이 건네주었던 장미 한 송이는 다발의 묶음으로 변했을 것이고, 싸구려 통닭집 대신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무엇보다 '너 없으면 안된다'는 치기 어린 마음 대신, 주위를 돌아보며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한 번 해 보겠다'는 목적성을 가진 행동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센스 있게 차려 입을 줄 안은 옷차림, 깔끔한 매너, 경제적 여유, 사회적 성공이 '널 위해 존재한다'가 아니라 '날 위해 존재한다'는 남자들의 자신감에서 비로소 여자들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52쪽

사랑은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그녀가 괴물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의 즐거운 기간이다.
(존 배리모어)-131쪽

우리들이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곧 한 가지 문제에 부딪친다.
즉,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사람은 사랑할 보람이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 -235쪽

어린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 받기 때문에 사랑한다'이지만
어른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 받는다'입니다.
미숙한 사랑은 '나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므로 당신이 필요하다' 입니다.
(에리히 프롬) -29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0-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널 위해 존재한다'가 아니라 '날 위해 존재한다'는 자신감에서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눈에 쏘옥 들어오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마늘빵 2006-10-0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몇몇 여성들에게 물어봤다. 여자에게 있어서 행복한 사건이 뭐일 것 같아요? 어떤 이는 남자, 어떤 이는 소개팅, 어떤 이는 결혼, 어떤 이는 임신, 어떤 이는 남편의 죽음 이라 했다. 남편의 죽음은 제일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대답. -_-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프랑스의 작가의 소설 <행복한 사건>은 저들의 대답 중 어느 한 가지를 다룬 책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써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정 반대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여성에게 있어 '임신'이라는 것은 나와 사랑하는 남자의(물론 강간이나 원나잇 등의 원인으로 임신도 가능하지만 이런 것은 예외로 치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것은 일종의 하나의 사랑의 결실이기에 임신한 여성에게도, 임신한 여성을 아내로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도 행복한 사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임신과 동시에 출산과 동시에 모든 환상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아 행복했던 나날이여. 연애는 달콤했고 신혼생활 또한 달콤했으나, 임신과 출산으로 달콤함은 쓴 맛이 되어버렸다. 아아 행복했던 나날이여.

  "니콜라는 내 배에 올려진 아기를 보았다.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에 천사의 얼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내가 기대하던 장밋빛 뺨에 미소를 띤 얼굴이기는커녕, 이게 왠 원숭이 새끼인가 싶었다. 털 많고, 지저분하며, 태지와 분비물을 뚝뚝 흘리고, 온몸이 붉은색과 보라색으로 얼룩덜룩하며, 예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P72)

  "그보다도, 이 애는 누구인가?
레아.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똘똘 뭉친 괴물, 오로지 제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써먹는 아이, 타인에 대한 관심은 눈곱만치도 없이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존재, 그저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전혀 없는 식충이. 아기는 오로지 먹기 위해 살았다. 아기는 식사를 끝내자마자 어느새 소화시켜 버리고는 다시 배를 채워야만 했다. 아기에게는 먹는 것 말고는 뭐든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권력은 예외일지도. 아기는 권력을 좋아했다. 아기가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에는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지, 안그러면 분노를 터뜨렸다. 아기는 화가 나기 시작하면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히스테리,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 광기의 온갖 징후를 여실히 드러냈다. " (P94)

  아아 세상에 어느 엄마가 어디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도 아니고, 남편이 바람피다 생긴 아이를 데려온 것도 아닌, 제 아이를 향해 이토록 가혹한 말을 쏟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진정 '행복한 사건'이란 말인가. '행복'은 어느새 '불행'으로 치환되어버렸다. 나는 불행해 나는 불행해 나는 불행해. 어서 이 괴물을 어떻게 좀 해줘.

  철학 박사 논문 심사를 앞두고 있는 그녀는 갑작스레 닥쳐버린 이 현실이, 헤어나올 수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힘겹다.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내 인생은, 내 할 일은. 다 끝났지 뭐. 이놈의 애새끼가 애물단지로 둔갑하고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 이눔의 시끼, 이눔의 시끼.

  하지만 그녀는 곧 이런 혼란 속에서 주변의 다른 엄마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편과의 다툼, 외도, 돌아온 현실 속에서 생각한다. 그녀는 어느새 철학자가 되어있다. 인생의 철학자가.

  "아이를 갖고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데도 배턴을 넘겨주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다. 이 모든 방정식을 풀거나 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아이를 낳고, 번성하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부모에게 꽉 매여 살고, 좀 자유로워지는가 싶으면 이제 자식들에게 더 꽉 매여 살아간다. 행복, 그래 행복이다. 하지만 한 순간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부다...... " (P238)

  소설 제목 '행복한 사건'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사건'의 요약된 제목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둘만의 신혼생활은 매우 달콤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닥쳐오는 일상의 변화들은 너무도 이전의 달콤함에 비해 쓰디 쓰다. 애 새끼는 밤낮으로 울어대지, 밥달라 칭얼거리지, 밥먹이고 나면 끅끅 대며 한 시간 동안 트름해야지, 똥오줌도 못가리고, 싱긋싱긋 웃다가 앙앙 울어대기도 하고, 집안의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다. 애 새끼가 어떤 행동을 하면 마당쇠와 무수리는 개그맨도 됐다가, 요리사도 된다. 원하는대로 - 원하는 바가 뭔지를 차라리 말이나 해줬으면 좋으련만 - 최고의 권력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현실이고, 인생임을 그리고 행복임을 깨닫는다. 다만 이전의 달콤함과는 다른 따뜻함의 느낌으로 행복은 찾아왔다. 그것이 아기가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선사한 선물과도 같은 또다른 사랑이다.

  분명코 결혼한 부부가 아기를 낳느냐, 안낳느냐 하는 부분은 두 사람의 인생에 있어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아기를 낳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두 사람은 좀더 많은 문화생활과 여행을 향유할 수 있다. 또한 아이에 시달리며 이런저런 집안일들에 치여살 필요도 없고 오직 두 사람의 즐거움을 그리고 각자의 원하는 바의 인생을 살면 된다. 하지만 아기를 낳는 순간 그것은 소설 속에서 작가가 그려낸 천국에서 지옥으로 옮겨간 듯한 인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것이 천국이 되는가 지옥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두 사람에게 달려있다. 사랑하는 서로의 모습을 아기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활짝 벌어지는 행복한 일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는 두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생각컨대 후자를 택한다 할지라도 갑작스레 변한 현실이 고달프기는 하겠지만 '고달픔=불행'은 아니리라. 변화는 언제나 두렵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평온이 찾아온다.

  "책은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와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사르트르와 카프카 만큼이나 염세적이고 어둡지는 않지만, 오히려 밝고 재밌지만, 내면 묘사에 있어서는 사르트르 못지 않았다. 임신한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이 소설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전개되며 줄거리가 진행된다기보다 정체된 상태에서 '임신'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따라 시선을 옮겨가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던 작품이다. 평생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 보지 못할 내가, 임신한 여성이 겪는 심리적 변화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혹여 언젠가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되는 날, 아마도 나는 이 소설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행복한 사건>  표지 뒷면에 실린 나의 글 인용)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10-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리뷰 쓰셨네요^^ 전 아직입니다.. 뒤쪽 책날개에 있는 님의 서평을 읽어보았어요. 그러잖아도 이름을 보고 님이길래 알라딘에 밝혀서 공개하고 소문 퍼뜨릴까^^ 생각중이었는데요.. 그래도 되나요? 리뷰도 멋집니다..

마늘빵 2006-10-0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배혜경님 제 이름을 알고 계셨나요? ^^ 쑥쓰... 제가 머 여기에 인용하면서 밝혔는데요 뭐. ^^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6-10-0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독특한 시선이네요. 보통 아이를 낳으면 낳는 고통보다 키우는 기쁨을 먼저 더 크게 이야기하곤 하는데 '지옥'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육아를 버거워하는가봅니다.그래도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까지 하잖아요. 님께서 혹시 이 책을 읽고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실까봐 강조하는데 아이 키우기 정말 재밌어요.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만요.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A. C. 그레일링 지음, 남경태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8월
품절


"남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뜻에 맞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인류에게 훨씬 더 큰 이득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21쪽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도덕적 실책을 용서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훌륭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도가 있다. 동정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즉 고문, 살인, 폭력, 강간, 억압을 일삼는 사람들과 그것을 명하는 사람들은 그 한도에서 벗어난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자들의 이름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낭비일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저질러도 된다고 용인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정의다. -26쪽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가치를 잘못 인식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의대생일지 모르는 웨이터나 짬이 나면 문학상을 겨냥하여 소설을 쓰고 있을지 모르는 버스 운전기사를 인간 자체로서가 아니라 직업으로(더 구체적으로는 소득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례는 여기서 나온다.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짓거나 돈으로 환산하게 되면 상대방을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했듯 인간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큰 무례일 뿐 아니라 큰 잘못이기도 하다. -29쪽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설사 화해 불가능한 가치들이 공존한다는 상대주의적 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리고 그 딜레마를 해결할 방책을 도저히 못 찾겠다고 해도, 사회의 존립이 걸린 그 끊임없이 흔들리는 미묘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최선의 희망을 걸어야 할 것은 바로 예의다. -29쪽

타협은 양측 모두에게 만족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원래 몫은 전혀 잃지 않으면서 얻어내야 할 것보다 더 많이 얻었다는 즐거운 믿음을 양측에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협상가는 양측 모두 자신이 똑똑해서 그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31쪽

용기와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가장 힘든 상태에서 가장 값진 교훈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보면 진짜 패배란 패배감에 빠져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경우다. -42쪽

주관적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 혹은 꿈없이 잠을 자는 상태와 다를 바 없으므로 아무런 공포를 수반하지 않는다. 다만 두려운 것은 장차 죽으리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죽음 역시 생명 활동의 일부분이다. 오로지 살아 있는 존재만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먹고, 걷고, 행복을 느끼고, 병에 걸리는 여느 일상 행위들처럼 죽음 역시 하나의 기쁨일 수 있다. 다만 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만 겪게 되는데, 이때 커다란 슬픔이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죽음은 사실 우리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오로지 삶만을 경험할 뿐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관적을 볼 때 불멸의 존재나 다름없다. -47쪽

자연주의적 견해에서 보면 죽음은 태어나지 않은 것과 동일하므로 특별히 가져가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정해질 따름이다. 죽음이 가져가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이라면 좋은 죽음이요, 기회와 희망,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져간다며 나쁜 죽음이다. 죽음의 당사자는 죽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나쁜 것은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잃으리라는 예상인 것이다. -49쪽

"언젠가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오늘 벌어진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볼테르) -54쪽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킨다는 의미에서 가장 나쁜 악이다."(니체) -55쪽

희망은 실현 여부를 떠나 하나의 미덕이다. 희망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이자 목적이며, 용기와 상상력, 가능성과 기대에 찬 긍정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희망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최선은 희망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55-56쪽

"한쪽이 솔직하면 서로가 소직해지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 점은 포도주나 사랑이나 마찬가지다." (몽테뉴)-65쪽

살아가기 위해 거짓말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생의 잔인한 한 측면이다.(니체) -66쪽

결과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이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플라톤 같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곤혹감을 느낀다(차라리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틀린 말을 한다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 경우 이중의 죄를 짓게 된다. 하나는 진실을 알면서도 숨긴 죄요, 또 하나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거짓으로 이끈 죄다.
이런 곤란한 점 때문에 후대의 철학자들, 특히 칸트 같은 사람은 철학자들만 아는 영리한 태도를 취했다. 그에 의하면 거짓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인정할 수 없지만, 거짓말과 다르고 의미도 약한 부정확한 말은 때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거짓말이 상대방을 독살하는 수준이라면 부정확한 말은 멀리서 공격하는 정도라는 것(칸트의 비유)이다. -68쪽

조국과 친구 중 어느 한쪽을 배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국을 배반할 배짱을 가졌으면 좋겠다" (포스터)

"친구란 내가 잘못된 길을 걸을 때도 같은 편을 들어주는 것" (마크 트웨인) -75쪽

망상은 착각과 다르다. 착각은 원래 감각기관의 왜곡된 인식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심리보다는 신체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다. 흔히 보는 마술쇼가 착각을 유도하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착각은 믿음인아 희망의 의미로도 쓰인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내나 직업에 관해 착각할 때 그것은 의식적인 오해다. 착각은 망상보다 약하고 덜 나쁜 상태를 가리키며,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인해 빚어진다. -86쪽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공자) -89쪽

민족주의를 갈구하는 욕구 자체는 나쁠 것이 없으나 문제는 그것이 수용해서는 안되는 욕구와 섞인다는 데 있다. 우리느 모두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발전을 가져오고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문화를 높이 평가한다. 여기까지도 좋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은 다른 집단과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를 저해한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민족성, 지리, 언어 또는 종교의 일체성으로 규정되는 독특한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주변에 벽을 세워 '외국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자를 그냥 타자로 보는 것만으로 부족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타자를 우리의 생활 방식, 우리의 일, 심지어 우리의 딸들에게까지 위협적인 요소라고 간주해야만 한다. -108쪽

증오는 인간의 나약한 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밖으로 표출하여 다른 것에 고착시키는 유치한 정서이기 때문에 그렇다.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할 경우(예컨대 정직하자ㅣ 못하거나, 악의가 있다거나, 배신을 한 경우) 적절한 반응은 경멸할 만한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격렬한 감정을 내비칠 가치가 없다. 프랑스의 작가 라 로슈푸코가 말했듯이 "증오심이 지나치게 격해지면 그 대상을 증오할 가치조차 없어진다."
도덕주의자들, 즉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소심한 도덕관념(특히 최근들어 나타나는 실패한 가족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면 누구나 증오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한 심리는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정이나 생활양식을 두려워하고, 남들의 관심과 경험에 무지하며,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질시하고, 남들이 하는 일에 대해 혐오와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증오의 구성요소다. -119 쪽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그 내부에 있는 자신의 일부분을 증오하는 것이다."
(헤르만 헷세) -120쪽

집단을 통째로 증오하기는 쉽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증오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가령 우리가 어떤 개인을 미워하거나 경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증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결국 자기 내부에 깊은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므로 그것은 무엇보다 증오하는 사람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명확히 드러낸다. 게다가 어떤 집단의 일원일 경우 반대 집단을 증오하는 것은 더 쉽다. 증오는 집단정신의 자연스러운 정서이며, 일종의 신앙심처럼 광범위하게 퍼지는 무형의 히스테리이기 때문이다. -120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면 그 증오가 점점 커져 곧 전 인류를 증오하게 된다." (사르트르) -120쪽

보복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적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보복을 포기하면 적보다 우월한 사람이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121쪽

"쾌락의 추구가 진정 죽음과 고통의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면, 또 욕망은 한계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무절제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에픽테토스) -126쪽

"포도 덩굴은 세 종류의 포도를 키운다. 첫째는 쾌락이요, 둘째는 도취요, 셋째는 구역질이다." (아나카르시스)-128쪽

"인간 최악의 불행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빼앗긴다는 사실이다." (자크 마리탱) -132쪽

교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주도하는 자선활동이 국내외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다른 세속적인 지원 단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자선활동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세속적인 단체들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활동하는 것이므로 초자연적인 힘에 관한 믿음에 호소하여 근거를 설명하거나 동기를 찾을 필요가 없다. 둘째, 세속적인 단체들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명시적인거나 암묵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특정한 세계관, 가령 로마가톨릭교나 기타 교단 등 특정 신앙을 내세우지 않는다. 셋째, 종교단체들의 보잘것없는 자선활동은 역사적으로 종교가 세계에 가한 엄청난 양의 고통을 상쇄하지 못한다. -140쪽

인간이 미신을 믿는 이유는 상상력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상상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산타야나) -176쪽

외설은 정확한 법적 정의를 내리기 불가능한 용어다. 법정의 관행상 그것은 '판사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버틀란트 러셀) -183쪽

요컨대 훌륭한 야망은 책임성 있는 야망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단순한 야망은 노력 없이 도약하려 하고 손쉽게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심이다.
그 차이를 익숙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칵테일파티에서 돋보이고자 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책상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 태도다. 또한 전자는 지위를, 후자는 과정을 원한다. 어떤 사람이 되려는 것이 전자라면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이 후자인 것이다. -215-216쪽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을 알 수 있고, 예술 작품을 보면 자신의 영혼을 알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 -220쪽

아무 할 일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일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226쪽

평화는 승리의 기대감보다 더 좋고 안전하다. (리비우스)-229쪽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은 늘 어린이로 살아가려는 것과 같다. (키케로) -242쪽

동물 행동학자들은 원숭이와 영장류의 사회구조를 구분한다. 전자는 무리의 힘을 폭력적으로 동원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고통'의 사회구조이며, 후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여 사회적 서열을 정하는 '쾌락'의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비비원숭이의 경우 대장 수컷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 다른 비비들은 도망을 친다. 반면에 침팬지의 대장 수컷이 그렇게 하면 다른 침팬지들은 앉아서 지켜본다. -248쪽

늙는다는 것은 바쁜 사람이면 가질 수 없는 나쁜 습관이다. (앙드레 모루아)-260쪽

선물의 가치를 가격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시의 적절하고, 배려가 담겨 있고, 참된 우정이나 사랑이 깃든 선물의 가치는 도저히 돈으로 측정할 수 없다. 그러한 선물은 주는 사람의 자아 일부분을 전달한다. 그 선물 속에는 주는 사람이 받을 사람을 열심히 생각한 결과, 무엇이 자신의 느낌을 가장 잘 대변해줄지 정성껏 찾고 고른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263쪽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지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냉철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의 진리를 말해준다. 자신이 받은 선물이 진정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선물을 준 상대방을 아주 잘 알거나 무척 사랑한다는 것이다. -265-26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