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뜻에 맞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인류에게 훨씬 더 큰 이득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21쪽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도덕적 실책을 용서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훌륭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도가 있다. 동정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즉 고문, 살인, 폭력, 강간, 억압을 일삼는 사람들과 그것을 명하는 사람들은 그 한도에서 벗어난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자들의 이름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낭비일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저질러도 된다고 용인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정의다. -26쪽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가치를 잘못 인식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의대생일지 모르는 웨이터나 짬이 나면 문학상을 겨냥하여 소설을 쓰고 있을지 모르는 버스 운전기사를 인간 자체로서가 아니라 직업으로(더 구체적으로는 소득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례는 여기서 나온다.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짓거나 돈으로 환산하게 되면 상대방을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했듯 인간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큰 무례일 뿐 아니라 큰 잘못이기도 하다. -29쪽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설사 화해 불가능한 가치들이 공존한다는 상대주의적 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리고 그 딜레마를 해결할 방책을 도저히 못 찾겠다고 해도, 사회의 존립이 걸린 그 끊임없이 흔들리는 미묘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최선의 희망을 걸어야 할 것은 바로 예의다. -29쪽
타협은 양측 모두에게 만족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원래 몫은 전혀 잃지 않으면서 얻어내야 할 것보다 더 많이 얻었다는 즐거운 믿음을 양측에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협상가는 양측 모두 자신이 똑똑해서 그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31쪽
용기와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가장 힘든 상태에서 가장 값진 교훈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보면 진짜 패배란 패배감에 빠져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경우다. -42쪽
주관적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 혹은 꿈없이 잠을 자는 상태와 다를 바 없으므로 아무런 공포를 수반하지 않는다. 다만 두려운 것은 장차 죽으리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죽음 역시 생명 활동의 일부분이다. 오로지 살아 있는 존재만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먹고, 걷고, 행복을 느끼고, 병에 걸리는 여느 일상 행위들처럼 죽음 역시 하나의 기쁨일 수 있다. 다만 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만 겪게 되는데, 이때 커다란 슬픔이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죽음은 사실 우리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오로지 삶만을 경험할 뿐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관적을 볼 때 불멸의 존재나 다름없다. -47쪽
자연주의적 견해에서 보면 죽음은 태어나지 않은 것과 동일하므로 특별히 가져가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정해질 따름이다. 죽음이 가져가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이라면 좋은 죽음이요, 기회와 희망,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져간다며 나쁜 죽음이다. 죽음의 당사자는 죽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나쁜 것은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잃으리라는 예상인 것이다. -49쪽
"언젠가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오늘 벌어진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볼테르) -54쪽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킨다는 의미에서 가장 나쁜 악이다."(니체) -55쪽
희망은 실현 여부를 떠나 하나의 미덕이다. 희망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이자 목적이며, 용기와 상상력, 가능성과 기대에 찬 긍정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희망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최선은 희망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55-56쪽
"한쪽이 솔직하면 서로가 소직해지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 점은 포도주나 사랑이나 마찬가지다." (몽테뉴)-65쪽
살아가기 위해 거짓말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생의 잔인한 한 측면이다.(니체) -66쪽
결과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이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플라톤 같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곤혹감을 느낀다(차라리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틀린 말을 한다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 경우 이중의 죄를 짓게 된다. 하나는 진실을 알면서도 숨긴 죄요, 또 하나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거짓으로 이끈 죄다. 이런 곤란한 점 때문에 후대의 철학자들, 특히 칸트 같은 사람은 철학자들만 아는 영리한 태도를 취했다. 그에 의하면 거짓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인정할 수 없지만, 거짓말과 다르고 의미도 약한 부정확한 말은 때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거짓말이 상대방을 독살하는 수준이라면 부정확한 말은 멀리서 공격하는 정도라는 것(칸트의 비유)이다. -68쪽
조국과 친구 중 어느 한쪽을 배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국을 배반할 배짱을 가졌으면 좋겠다" (포스터)
"친구란 내가 잘못된 길을 걸을 때도 같은 편을 들어주는 것" (마크 트웨인) -75쪽
망상은 착각과 다르다. 착각은 원래 감각기관의 왜곡된 인식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심리보다는 신체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다. 흔히 보는 마술쇼가 착각을 유도하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착각은 믿음인아 희망의 의미로도 쓰인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내나 직업에 관해 착각할 때 그것은 의식적인 오해다. 착각은 망상보다 약하고 덜 나쁜 상태를 가리키며,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인해 빚어진다. -86쪽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공자) -89쪽
민족주의를 갈구하는 욕구 자체는 나쁠 것이 없으나 문제는 그것이 수용해서는 안되는 욕구와 섞인다는 데 있다. 우리느 모두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발전을 가져오고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문화를 높이 평가한다. 여기까지도 좋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은 다른 집단과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를 저해한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민족성, 지리, 언어 또는 종교의 일체성으로 규정되는 독특한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주변에 벽을 세워 '외국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자를 그냥 타자로 보는 것만으로 부족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타자를 우리의 생활 방식, 우리의 일, 심지어 우리의 딸들에게까지 위협적인 요소라고 간주해야만 한다. -108쪽
증오는 인간의 나약한 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밖으로 표출하여 다른 것에 고착시키는 유치한 정서이기 때문에 그렇다.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할 경우(예컨대 정직하자ㅣ 못하거나, 악의가 있다거나, 배신을 한 경우) 적절한 반응은 경멸할 만한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격렬한 감정을 내비칠 가치가 없다. 프랑스의 작가 라 로슈푸코가 말했듯이 "증오심이 지나치게 격해지면 그 대상을 증오할 가치조차 없어진다." 도덕주의자들, 즉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소심한 도덕관념(특히 최근들어 나타나는 실패한 가족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면 누구나 증오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한 심리는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정이나 생활양식을 두려워하고, 남들의 관심과 경험에 무지하며,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질시하고, 남들이 하는 일에 대해 혐오와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증오의 구성요소다. -119 쪽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그 내부에 있는 자신의 일부분을 증오하는 것이다." (헤르만 헷세) -120쪽
집단을 통째로 증오하기는 쉽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증오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가령 우리가 어떤 개인을 미워하거나 경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증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결국 자기 내부에 깊은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므로 그것은 무엇보다 증오하는 사람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명확히 드러낸다. 게다가 어떤 집단의 일원일 경우 반대 집단을 증오하는 것은 더 쉽다. 증오는 집단정신의 자연스러운 정서이며, 일종의 신앙심처럼 광범위하게 퍼지는 무형의 히스테리이기 때문이다. -120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면 그 증오가 점점 커져 곧 전 인류를 증오하게 된다." (사르트르) -120쪽
보복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적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보복을 포기하면 적보다 우월한 사람이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121쪽
"쾌락의 추구가 진정 죽음과 고통의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면, 또 욕망은 한계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무절제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에픽테토스) -126쪽
"포도 덩굴은 세 종류의 포도를 키운다. 첫째는 쾌락이요, 둘째는 도취요, 셋째는 구역질이다." (아나카르시스)-128쪽
"인간 최악의 불행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빼앗긴다는 사실이다." (자크 마리탱) -132쪽
교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주도하는 자선활동이 국내외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다른 세속적인 지원 단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자선활동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세속적인 단체들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활동하는 것이므로 초자연적인 힘에 관한 믿음에 호소하여 근거를 설명하거나 동기를 찾을 필요가 없다. 둘째, 세속적인 단체들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명시적인거나 암묵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특정한 세계관, 가령 로마가톨릭교나 기타 교단 등 특정 신앙을 내세우지 않는다. 셋째, 종교단체들의 보잘것없는 자선활동은 역사적으로 종교가 세계에 가한 엄청난 양의 고통을 상쇄하지 못한다. -140쪽
인간이 미신을 믿는 이유는 상상력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상상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산타야나) -176쪽
외설은 정확한 법적 정의를 내리기 불가능한 용어다. 법정의 관행상 그것은 '판사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버틀란트 러셀) -183쪽
요컨대 훌륭한 야망은 책임성 있는 야망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단순한 야망은 노력 없이 도약하려 하고 손쉽게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심이다. 그 차이를 익숙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칵테일파티에서 돋보이고자 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책상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 태도다. 또한 전자는 지위를, 후자는 과정을 원한다. 어떤 사람이 되려는 것이 전자라면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이 후자인 것이다. -215-216쪽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을 알 수 있고, 예술 작품을 보면 자신의 영혼을 알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 -220쪽
아무 할 일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일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226쪽
평화는 승리의 기대감보다 더 좋고 안전하다. (리비우스)-229쪽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은 늘 어린이로 살아가려는 것과 같다. (키케로) -242쪽
동물 행동학자들은 원숭이와 영장류의 사회구조를 구분한다. 전자는 무리의 힘을 폭력적으로 동원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고통'의 사회구조이며, 후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여 사회적 서열을 정하는 '쾌락'의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비비원숭이의 경우 대장 수컷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 다른 비비들은 도망을 친다. 반면에 침팬지의 대장 수컷이 그렇게 하면 다른 침팬지들은 앉아서 지켜본다. -248쪽
늙는다는 것은 바쁜 사람이면 가질 수 없는 나쁜 습관이다. (앙드레 모루아)-260쪽
선물의 가치를 가격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시의 적절하고, 배려가 담겨 있고, 참된 우정이나 사랑이 깃든 선물의 가치는 도저히 돈으로 측정할 수 없다. 그러한 선물은 주는 사람의 자아 일부분을 전달한다. 그 선물 속에는 주는 사람이 받을 사람을 열심히 생각한 결과, 무엇이 자신의 느낌을 가장 잘 대변해줄지 정성껏 찾고 고른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263쪽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지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냉철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의 진리를 말해준다. 자신이 받은 선물이 진정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선물을 준 상대방을 아주 잘 알거나 무척 사랑한다는 것이다.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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